|
광복군을 뿌리로 삼아야 한다는 것이 헌법의 명령
유시민 작가
정부가 끝내 육군사관학교의 독립운동가 흉상을 치울 모양이다. 문재인 정부 때 육사 교정에 나란히 세웠던 다섯 흉상의 주인공은 일본을 상대로 전쟁을 벌였던 홍범도‧김좌진·지청천·이범석 장군과 신흥무관학교를 세워 독립군을 양성한 이회영 선생이다. 한마디로 우리의 독립전쟁영웅들이다.
이 문제와 관련해 국방부는 이런 주장을 담은 ‘입장문’을 냈다. “공산주의 국가인 북한의 침략에 대비해 자유민주주의와 대한민국을 수호하는 장교를 육성하는 것이 육사의 정체성이다.” 신원식 국방부장관 지명자는 같은 견해를 더 분명하게 표현했다. “조국수호 반공전사 양성이 육사의 본질적 기능이자 정체성이다.” 국무총리를 비롯한 정부 요인과 여당 주요 인사들은 홍범도 장군의 독립운동 공적은 인정하지만 소련공산당에 가입한 이력 때문에 육사의 정체성에 부합하지 않는다고 말한다. 홍범도 장군 대신 ‘한국전쟁 영웅’ 백선엽 장군의 흉상을 육사 교정에 세우자는 일각의 제안도 같은 맥락이다.
반면 광복회는 ‘입장문’에서 흉상 철거를 ‘독립운동 역사를 폄훼하는 반헌법적 행태’이자 ‘개탄스러운 독립운동 흔적지우기’로 규정했다. 이종찬 광복회장은 더 구체적으로 말했다. 독립운동 선열들이 신흥무관학교를 세워 독립군을 양성한 것이 1940년 9월 17일 대한민국임시정부의 광복군 창설로 이어졌다는 사실을 들어 국군의 뿌리가 의병-독립군-광복군임을 강조한 그는 일제의 머슴 노릇을 한 이들을 국군의 원조라고 치켜세우는 현실을 개탄했다.
1일 서울 육군사관학교에서 열린 독립전쟁 영웅 5인 흉상 제막식에서 사관생도와 참석자들이 기념사진을 찍고 있다. 육사는 독립전쟁에 일생을 바친 홍범도, 김좌진, 지청천, 이범석 장군, 그리고 신흥무관학교를 설립한 이회영 선생의 흉상을 탄피 300kg을 녹여 제작했다. 2018.3.1. 연합뉴스
윤석열 대통령은 비공개 국무회의에서 이런 말을 했다고 한다. “어떻게 하자고 하진 않겠지만, 어떤 게 옳은지 한 번 생각해 볼 필요는 있다.” 국방부와 육사가 대통령의 뜻을 거슬러 이런 일을 벌였을 리는 만무한 만큼 굳이 대통령의 생각이 어떤지 알아볼 필요는 없다. 그렇지만 어떤 게 옳은지 생각해 봐서 나쁠 건 없기에, 대통령의 권고를 받아들여 내가 생각해 본 바를 이야기하겠다.
사실: 육사의 뿌리는 불확실하다
먼저 질문을 정확하게 하자. 대한민국 육군사관학교는 어디에 뿌리를 두었는가? 이것은 역사의 사실에 관한 질문이다. 대답하려면 우리 육군과 육사의 역사를 살펴야 한다. 육사는 뿌리를 어디에 두어야 하는가? 이것은 이념적 지향 또는 정치적 당위에 관한 질문이다. 이 질문에 대답하려면 헌법을 보아야 한다. 두 질문을 뒤섞으면 논란만 커질 뿐 답이 나오지는 않는다.
먼저 사실부터 살펴보자. 나는 우리 육군과 육사의 창설과 관련 있는 사실 가운데 어떤 사람들이 국군과 육사를 조직하고 지휘했는가에 관한 사실이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먼저 육군을 보자. 1948년 이승만 대통령이 임명했던 초대 육군참모총장부터 박정희 대통령이 서거한 1979년의 22대 총장까지 정부 수립 이후 32년 동안 19명의 장군이 육군을 조직하고 지휘했다. 백선엽 장군을 비롯해 두 차례 총장을 지낸 이가 셋 있어서 사람 수는 22명이 아니라 19명이다.
그 열아홉 중에 열넷은 일본군, 셋은 일제의 괴뢰국가였던 만주국 군 경력이 있었다. 계급은 대좌(대령)부터 하사관과 간부 후보생까지 다양했다. 그들의 이름을 확인하고 싶으면 육군 홈페이지 ‘육군소개’의 ‘역대 총장’ 항목을 열어보시기 바란다. 하지만 역대 총장의 경력에서 일본군이나 만주군 복무 사실을 확인할 수는 없을 것이다. 우리 육군은 그런 정보를 국민에게 제공하지 않는다. 19명 중에서 일본군이나 만주군 관련 경력이 전혀 없는 사람은 20대 노재현 장군과 22대 정승화 장군뿐이었다. 일본군이나 만주군 경력이 있었던 육군참모총장들이 모두 친일반민족행위자라는 말은 아니다. 광복군과 싸운 부대에 복무한 탓에 <친일인명사전>에 오른 이는 몇뿐이다. 나는 창설 이후 30여 년 동안 우리 육군을 지휘한 장군들이 거의 모두 일본군 경력이 있다는 사실을 거론했을 뿐이다.
누가 육군을 만들고 이끌었는지에 관한 역사의 사실을 근거로 삼을 경우, 대한민국 육군은 일본군 또는 친일파에 뿌리를 두었다고 하는 게 타당하다. 어찌 다른 주장을 할 수 있겠는가. 그렇다면 육사도 그런가? 아니다. 육사는 육군과 다르다. 육사는 정부 수립 이전인 1946년 4월 ‘국가경비대사관학교’로 문을 열었다. 짧은 기간 재직했던 초대부터 3대까지 교장과 5대 교장은 일본군 출신이었다. 여기까지는 육군이나 다를 바 없다. 하지만 4대 교장과 6-9대 교장은 모두 광복군 출신이었다. 그들의 이름과 경력을 알고 싶은 독자는 육사 홈페이지 ‘육사 소개’의 ‘역대 교장’ 정보를 참고하시기 바란다. 육사 홈페이지도 육군과 마찬가지로 초기 교장들의 일본군 경력 정보를 제공하지 않는다.
육군 지휘부를 일본군 출신으로 채웠던 이승만 대통령이 도대체 왜 육사 교장 자리에는 광복군을 등용했을까? 위험을 부담하지 않으면서 명분을 세우려고 그랬는지도 모른다. 육사 교장은 전투부대를 지휘하지 않고 계급도 낮았다. 광복군을 기용해도 정치적으로 걱정할 일이 없었다. 하지만 꼭 그런 게 아니었을 수도 있다. 이승만 대통령은 권력을 유지하려고 일본군과 일본경찰 등 친일반민족행위자들과 결탁했다. 하지만 그런 그조차 육군 장교를 양성하는 사관학교는 달라야 한다고 생각했을 수 있다. 어쨌든 육사는 일본군과 광복군 가운데 어느 쪽에 뿌리가 있다고 단정할 수 없다.
당위: 육사의 뿌리는 광복군이어야 한다
이제 다음 질문으로 넘어가자. 육군사관학교는 어디에 뿌리를 두어야 하는가? 이것은 과거의 사실이 아니라 현재의 당위 또는 미래의 지향을 묻는 규범적 질문이다. 역사의 사실이 아니라 우리 국민이 합의한 규범을 기준으로 삼아 대답해야 한다. 그런 규범이 있는가? 있다. 대한민국 헌법이다. 육사가 어디에 뿌리를 두어야 하는지, 육사의 정체성이 무엇이어야 하는지, 우리는 각자 나름의 주장을 할 수 있다. 신념과 가치관이 다르면 주장도 다른 게 당연하다. 하지만 육사 교정에 특정한 역사 인물의 흉상을 세우거나 철거하는 것은 주관적 생각을 말하는 게 아니라 국가의 강제 권력을 행사하는 일이다. 정부의 강제 권력 행사 목적과 방법은 우리 사회의 최고규범인 헌법에 맞아야 한다.
대한민국 헌법은 육사의 뿌리에 대해 어떤 이야기를 하고 있는가? 현행 헌법 전문(前文)은 이렇게 말한다. “대한민국은 3.1운동으로 건립된 대한민국임시정부의 법통을 계승한다.” 제5조②와 제74조①에서는 다음과 같은 규정을 두었다. “국군은 국가의 안전보장과 국토방위의 신성한 의무를 수행함을 사명으로 하며, 그 정치적 중립성은 준수된다. 대통령은 헌법과 법률이 정하는 바에 의하여 국군을 통수한다.” 현행 헌법만 그런 게 아니다. 1948년 제정한 제헌헌법의 전문, 제6조, 제61조도 같은 말을 했다. “대한국민은 기미삼일운동으로 대한민국을 건립하여 세계에 선포한 위대한 독립정신을 계승하여 이제 민주독립국가를 재건한다.” “국군은 국토방위의 신성한 의무를 수행함을 사명으로 한다.” “대통령은 국군을 통수한다.”
여러 차례 바뀌었지만 우리 헌법이 그린 대한민국의 이력과 자화상은 늘 같았다. “우리 국민은 3.1운동으로 민주공화국을 건립했고 대한민국임시정부를 세웠으며 1948년 정식 정부를 수립하고 민주독립국가를 재건했다.” 국군의 사명과 대통령의 통수권에 관한 조항도 바뀐 것이 없다. “우리 국군의 사명은 국가 안보와 국토 방위이고, 대통령은 국군을 통수하면서 그 임무를 수행한다.” 헌법은 우리의 국가 안보와 국토를 위협하는 세력이 누구이며 어떤 이념을 가졌는지를 따지지 않는다.
대한민국임시정부의 ‘정규군’이었던 광복군의 적은, 국권과 국토를 침탈한 제국주의 일본이었다. 분단 이후 한국전쟁을 거쳐 오늘에 이르기까지 국군의 적은 북한이었다. 그러나 미래에는 다시 일본이 적이 될 수도 있다. 예컨대 독도 영유권을 주장하면서 일본 군대가 동해를 침략할 경우 우리 국군은 당연히 그들과 싸운다. 어떤 이유에서든 중국이나 러시아 군대가 대한민국을 침략하는 경우에도 마찬가지다. 우리 국군은 주권과 영토를 공격하는 침략자를 물리쳐야 한다. 침략자의 이념이 무엇이든 상관없다. 그게 국군의 사명이다. 육사‧해사‧공사는 그 일을 할 국군 장교를 양성하는 기관이다.
육사의 뿌리는 무엇이어야 하는가? 헌법이 준 대답은 분명하다. 육군을 포함한 우리 국군과 육사를 포함한 군사교육기관은 광복군을 뿌리로 삼아야 한다. 창설 이후 30년 동안 일본군 경력을 가진 참모총장들이 육군을 지휘했고, 설립 초기 육사 교장 여럿이 일본군 출신이었다는 것은 바꿀 수 없는 역사의 사실이다. 하지만 육군과 육사가 그 사실에 얽매여야 하는 건 아니다. 그것은 정리하고 소화하고 극복해야 하는 과거의 사실일 뿐이다. 그런 사실이 있기 때문에 육군과 육사가 광복군과 신흥무관학교를 뿌리로 삼아서는 안 된다고 하는 것은 사실을 당위로 여기는 착각에 지나지 않는다. 국군의 사명을 ‘반공’ ‘반북’으로 한정하고 육사의 정체성을 ‘반공전사 양성’으로 제약하는 것도 그렇다. 우리 육군과 육사는 분단시대인 지금이나 통일을 이룬 후에나 변함없이 광복군을 자신의 뿌리로 여겨야 한다. 이것이 헌법의 명령이다.
‘방구석 여포’의 참호 속 포효 “돌격 앞으로~”
대통령이 “어떤 게 옳은지 한 번 생각해 보라”고 해서 진지하게 생각해 보았다. 그런데 “어떻게 하자고 하진 않겠지만”이라는 말은 국군 통수권자의 입에서 나올 말이 아니다. 대통령은 국방부와 육사를 앞세워 독립전쟁 영웅들의 흉상을 철거하면서 그런 말로 책임을 회피한다. 떳떳한 태도가 아니다. 독립전쟁 영웅의 흉상 철거는 육사 교정의 조경 개선 사업이 아니다. 육군과 육사의 정체성과 헌법 해석에 관한 문제다. 대통령이 자신의 견해를 분명하게 밝히고 토론해야 마땅하다.
그러나 윤대통령은 그럴 뜻이 없다. 당연하다. 그는 ‘방구석 여포’다. 윤석열 대통령은 ‘나를 따르라’고 외치며 앞장서는 지휘관이 아니다. 참호에 숨어서 ‘돌격 앞으로’만 외쳐댄다. 직접 논쟁을 벌일 만한 철학이 없다. 위험을 감수하는 용기도 없다. 불리한 싸움에서 선봉을 맡는 배짱 역시 없다. 누구도 항의하거나 반박하지 않는 곳에서만, 오로지 박수 칠 준비만 하고 모인 사람들 앞에서만, 아무 의미 없는 말을 포효하듯 내뿜고 타격 대상이 누구인지 모를 어퍼컷을 휘두른다. 윤 대통령은 취임 1년 4개월이 지나도록 야당과 한마디 대화를 하지 않았고, 국회의 다수야당 대표가 18일 넘게 곡기를 끊고 있는데도 알은척조차 하지 않았다.
대통령이 여당 국회의원 연찬회에서 한 말을 보라. “국가의 정치적 지향과 가치에서 중요한 게 이념이다. 철 지난 이념이라 하면 안 된다. 나라를 제대로 이끄는 데 필요한 철학이 이념이다. 우리 당은 이념보다 실용을 추구한다고 하지만 철학과 방향이 분명하지 않으면 실용도 없다. 새가 날아가는 방향이 정해져 있어야 왼쪽 오른쪽 날개인 보수와 진보가 힘을 합쳐 성장과 분배로 발전한다. 우리는 앞으로 가려고 하는데 뒤로 가겠다고 하면 협치를 할 수 없다. 정치에는 타협이 필요하지만 어떤 가치로 할 것인지 우리 스스로 국가 정체성을 성찰하고 확고한 방향을 잡아야 한다.” (취지를 건드리지 않는 범위에서 어휘와 문장을 일부 다듬고 바로잡은 점, 독자들의 양해를 구한다. 말이 되지 않는 표현과 문장이 많아서 그대로는 인용하기 어려웠다)
무슨 말인가? 간단하다. “내가 절대적으로 옳다. 모든 일을 내 생각대로 해야 나라가 잘 된다. 야당은 뒤로 가려는 세력이니까 대화할 필요가 없다.” 그런 말이다. 그런데 윤 대통령은 자신의 이념이 어떤 것인지 말하지 않는다. 말을 많이 하는데도 내용이 없고 의미와 맥락을 짐작하기 어렵다. 박근혜 대통령의 말도 이런 정도는 아니었다. 그러면서도 윤 대통령은 자신이 똑똑하고 현명하며 유능하다고 믿는 듯하다. 그걸 막 나무랄 수는 없다. 사람은 누구나 그런 경향이 있지 않은가.
더닝-크루거 효과의 한쪽 극단에 있는 인물들
미국 심리학자 데이비드 더닝과 저스틴 크루거는 1999년 대학생들을 대상으로 실시한 흥미로운 실험 결과를 발표했다. 사람은 특정 분야에서 자신의 지식과 능력을 과대평가하는 경향이 있다는 사실을 확인한 논문이었다. 그들의 연구에 따르면 이런 경향은 상대적으로 덜 똑똑하고 덜 유능한 사람들한테서 더 뚜렷하게 나타났다. 반면 메타인지(자기 자신의 생각과 감정을 직시하는 능력 또는 자신이 아는 것과 모르는 것을 구분하는 능력)가 뛰어난 사람들은 자신의 지적 수준과 능력을 과소평가하는 경향을 드러냈다. 이런 흥미로운 현상을 가리켜 ‘더닝-크루거 효과’라고 한다.
더닝-크루거 현상의 한쪽 극단에는 ‘너무나 어리석은 나머지 자신이 어리석다는 사실을 전혀 인지하지 못하는’ 사람들이 있다. 역사는 그런 사람이 권좌에 올라 권력을 행사하는 것을 제어할 수단이 없을 때 끔찍한 비극이 벌어진다는 것을 거듭 보여주었다. 역사가들의 관찰과 연구에 따르면 히틀러와 스탈린이 그랬고 늙은 마오쩌둥도 비슷했다. 홀로코스트, 대숙청, 문화대혁명 같은 참극은 그렇게 해서 일어났다. 끝이 보이지 않는 우크라이나 전쟁도 푸틴과 젤렌스키가 ‘자신이 얼마나 어리석은지 모를 정도로 어리석은’ 사람이어서 벌어진 참극이라 할 수 있다.
나는 윤석열 대통령도 그런 사람이 아닌지 의심한다. 지금 대한민국은 총체적 난국을 맞고 있다. 경제성장률은 하락하고, 금리와 물가는 오르고, 수출이 급감하고, 민간부채가 세계에서 가장 빠른 속도로 증가하는데 대통령과 정부여당은 권력놀음에만 몰두하고 있다. 장마철 재난예방부터 일본 방사능 오염수 방류 대처까지 정부의 행정이 제대로 돌아가는 경우를 보기 어렵다. 자신의 무능을 전혀 인지하지 못할 정도로 무능한 대통령이 권력을 마음껏 휘두르게 방치하면 대한민국과 한반도에 어떤 일이 생길까?
다행이다. 야당과 국회와 법원과 시민단체와, 주말마다 광장에 모이는 시민들이 그런 대통령의 권력 행사를 어느 정도라도 제어하고 있으니.
출처 : 육사의 뿌리를 생각한다 < 유시민 관찰 < 민들레 광장 < 기사본문 - 세상을 바꾸는 시민언론 민들레 (mindlenews.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