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 예수님을 먹을 수 있나?
제가 어릴 적만 해도 무엇을 먹는 것은 주로 배고픔을 해소하기 위해서였습니다. 그 후로도 수십 년을 그렇게 알아 오다가 어느 날 이 관념이 깨졌습니다. 식당을 운영하는 한 형제님과 한 동안 성경 공부를 한 적이 있는데, 끝날 때쯤 되면 여종업원이 음식을 내오곤 했습니다. 그날도 밥, 국, 김치 정도를 먹고 있는 제게, 그 종업원이 조심스럽게 다가와 말했습니다. “국과 김치는 집에서도 많이 드시니 다른 반찬도 드세요.” 그 이후로 저는 저의 식사 습관을 되돌아보게 되었습니다. 특히 얼마 전부터는 근육 감소를 고려하여 단백질이 포함된 삶은 계란, 김, 북어포, 두부, 콩장 등의 음식을 챙겨 먹고 있습니다. 또한 가능하면 후식으로 먹던 과일 그리고 야채를 먼저 먹고, 그 후 단백질, 탄수화물 순으로 먹습니다. 전과 비교하면 대단한 발전입니다. 그러나 아래 본문처럼 영적인 양식을 먹는 것은 또 다른 이야기입니다.
“보아라 내가 문밖에 서서, 문을 두드린다.
누구든지 내 음성을 듣고 문을 열면,
내가 그에게 들어가 그와 함께 먹고,
그는 나와 함께 먹을 것이다(계 3:20).
위 본문은 언뜻 보면 평이한데, 적용을 생각하고 읽으면 간단하지가 않습니다. 아래 내용은 이 본문을 깊이 묵상하고 추구한 것을 정리한 것입니다.
믿는 이들이 대상임: 어떤 분은 위 본문을 불신자 전도 때 사용합니다. 그러나 그것은 문맥을 벗어난 적용입니다. 사실 이 말씀은 주님께서 “라오디게아에 있는 교회”에게 하신 것입니다(14절). 즉 위 본문은 이미 주님을 믿고 거듭나서 한 지역의 교회가 되었지만, 어떤 이유로 주님의 임재를 놓치고 타락한 상태로 떨어진 교회에게 하신 말씀입니다.
“내 음성을 듣고 문을 열면”: 이 역시 가족과 사는 집에 누가 와서 현관문을 두드리는 것을 연상하면 곤란합니다. 전후 문맥은 우리의 마음의 문을 주님께 열어 드리는 것을 가리킵니다(아 5:2 참조). 즉 한 때는 주님의 임재 안에서 신앙생활을 잘했었지만, 어떤 계기로 주님과의 사이에 ‘간격’이 생긴 것입니다. 그리고 그 ‘간격’이 무엇인지는 ‘라오디게아’라는 교회 이름 자체에 말해주고 있습니다.
즉 ‘라오스’(2992)는 ‘백성’(평신도)을 의미하고, ‘디케’(1349)는 ‘옳음’ ‘법적인 결정’(판단)이라는 의미가 있습니다. 이것은 ‘라오디게아 교회 성도들’이 주님의 의견과 관점과 임재보다는 자신의 의견과 관점을 더 확신하게 된 것을 내포합니다. 대체로 이런 확신은 성경 지식이 쌓이고 어느 정도 영적 체험까지 있다 보면 생기는 부작용입니다. 이러한 영적인 교만이 주님을 밖에 서 계시도록 하는 분리를 가져왔습니다. 따라서 빛 가운데서 이러한 자신의 상태를 보고 교만을 회개하는 것이 ‘음성을 듣고 문을 여는 것’입니다. 이 점은 저를 포함해서 추구하는 모든 이들에게 참으로 경고가 되는 대목입니다.
“내가 그에게 들어가 그와 함께 먹고: 이 부분도 그 사람이 사는 실내 공간에 들어가 식탁에 앉아 빵이나 우유 혹은 생선 요리를 먹는 장면을 떠올리면 초점을 놓친 것입니다. 참고로 요한계시록 2-3장에 나오는 “생명나무”(2:7), “감추어진 만나”(2:17), 위 본문의 (함께) “먹고”(데이프네오, 1172, 정찬(dinner)의 ‘데이프논’에서 유래함)는 모두 우리의 영적인 먹거리이신 주님 자신을 먹는 것을 가리킵니다. 바로 이 대목에 이르렀을 때 제가 과거에 고민하면서 추구하여 얻었던 빛이 큰 도움을 주었습니다. 그것은 아래에서 보듯이 사람이 주 예수님을 먹을 수 있고, 주 예수님의 음식도 있다는 것입니다.
1) 주님께서 친히 “나를 먹는 그 사람(he who eats Me)도 나로 말미암아 살 것” 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요 6:57). 참고로 우리가 무엇을 먹는다는 것은 음식이 유기적으로 우리 안에 흡수되도록, 그것을 우리 안으로 받아들이는 것입니다. 따라서 위 주 ‘예수님을 먹는다’는 것도 거듭난 새사람 안에 생명의 방식으로 흡수되실 수 있도록, 그분을 우리 안으로 받아들이는 것입니다(요 10:10 하반절 참조).
구체적으로 주님은 이미 우리 거듭난 영 안에 계시지만, 우리의 혼은 자신의 생각과 감정과 의지로 가득합니다. 그러나 일상생활에서 자신을 비우고 그분의 생각과 감정과 의지를 우리 안으로 받아들이는 방식으로 그분을 ‘먹을 때’, 우리는 그분을 인격 삼아 ‘살 수’ 있습니다(고전 2:16, 살후 3:5, 빌 2:13 참조).
2) 주님은 “나의 음식은 나를 보내신 분의 뜻을 행하고 그분의 일을 완성하는 것”이라고 말씀하십니다. 즉 우리가 그분을 먹고 변화되고 그분의 몸으로 건축되는 것이 바로 그분의 음식입니다.
가능하면 몸에 좋은 음식을 먹어야겠다는 생각을 늘 하지만 가끔은 라면도 먹고, 햄버거나 튀긴 양파링도 먹게 됩니다. 영적인 먹거리와 관련해서도 일탈이 아주 없지는 않지만, 위와 같이 진리를 인식할 때 중심이 잡힘을 깨닫습니다.
첫댓글 감사합니다~ ^^
예수 먹는것을 알고 감사합니다 하는지
예수님을 먹는게 아녀.
예수님과 <함께> 먹는 것이지.
<먹다>는 원어를 잘 찾아봐요.
예수님을 먹는다는 말의 근거는
요 6:57을 제시했지요.
@김바울 요6:5에서는 자신이 떡이라는 전제하에서 하신 말씀이예요.
그러니까 먹는다는 말도 성립이 될 수 있지요.
그리고 그때 쓰인 단어가 파고(또는 에스띠오)인데 반하여, 계3:20에서의 단어는 데이프네오입니다.
이 단어는 저녁식사나, 잔치등에 참석하다는 뜻입니다.
먹는다는 의미가 아니라 식사자리에 앉는 것을 말합니다.
무엇보다, 요6장에서는 예수님이 동사(먹다)의 목적어로 쓰였지만 계3장에서는 예수님이 전치사(함께)의 목적어로 쓰였다는 것입니다.
결코 똑같지 않습니다.
@김바울
성경을 해석 하는 순간, 성경은 하나님 뜻이 아닌 성경을 해석한 인간 뜻이 됩니다
그 증거로 백인백색 모두 제각각 해석해놓고 자신 성경 해석만 맞다고 싸우잖아요
베드로후서 3 : 16<새번역>
바울이 보낸 모든 편지 가운데는. 알기 어려운 구절들이 더러 있습니다.. 무식하고
믿음이 약한 사람들이 다른 성경을 잘못 해석하듯이 그것도 잘못 해석해서 스스로
멸망을 부르고 있습니다?
고전1:21,
세상이 자기 지혜로는 하나님을 알 수 없읍니다.이것이 하나님의 지혜로운 경륜입니다?
고전 2 : 11,
그 사람의 영이 아니고서야, 누가 그 사람의 생각을 알 수 있겠습니까
이와 같이 하나님의 영이 아니고서는, 아무도 하나님의 생각을 알지 못합니다?
잠언 30 : 6<공동번역>
하나님 말씀에 아무것도 더 보태지 마라. 거짓말쟁이라고 꾸지람을 들으리라?
요한 22 : 18
누구든 성경 말씀에 다른 것을 더하는 사람은 하나님께서 이책에 기록된 재앙을
그에게 내릴 것입니다?
이사야 55 : 8,
내 생각은 너희 생각과 다르며 내길은 너희 길과 다름이니라. 여호와 말씀이니라
이는 하늘이 땅보다 높음같이 내길은 너희길보다 높으며 내생각은 너희 생각보다
높음이라?
@갈렙 단어가 같지 않은 것은 사실입니다.
정찬으로 먹는 것이 구체적으로 무엇을 의미하는가를
조금 더 묵상해 본 것입니다. 우리가 먹는 밥, 국, 불고기, 잡채 먹는 걸 말씀하신 것이 아님은 분명합니다.
@갈렙 자신이 떡이라는 말씀의 본질이 무엇일까요?
@김바울
자신이 가지고 있는 진리,
자신의 감정,
자신의 포부등이겠지요.
교제를 통하여 그러한 것들을 나누어 주시겠다는 뜻으로 이해합니다.
그러한 정찬에 초대하시는 것이지요.
@갈렙 주님께서 가지고 계신 진리, 감정, 포부 등을 구체적으로 어떻게 우리에게 나눠주시는지
혹시 개인적인 체험을 좀 소개해 주실 수 있을까요?
참고로 본문은 그것을 '먹고'라고 표현했습니다.
@김바울 예수님이 자신의 진리와 감정과 포부등을 말씀하시는 것이 우리에게 나누어 주시는 것이라 봅니다.
그런 말씀을 하실 때, 그것을 우리 마음 속에 담아 두는 것이 먹는 것이 아니겠어요?
성경은 <하나님의 말씀>을 <먹거리> 처럼 표현하신 적이 많이 있습니다.
"여호와를 경외하는 <도>는 정결하여 영원까지 이르고 여호와의 <법>도 진실하여 다 의로우니
금 곧 많은 순금보다 더 사모할 것이며 꿀과 <송이꿀>보다 더 달도다 (시19:0-10)
"인자야 너는 발견한 것을 먹으라 너는 이 <두루마리>를 먹고 가서 이스라엘 족속에게 말하라."(겔3:1)
"작은 <두루마리>를 갖다 먹어 버리니 내 입에는 꿀 같이 다나 먹은 후에 내 배에서는 쓰게 되더라."(계10:10)
이처럼 우리가 예수님을 우리의 마음에 영접해 드리면, 우리 안으로 들어오셔서 많은 말씀을 나누어 주시리라고 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