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지가 지나면서 여름기운이 가득합니다. 자고나면 새 여름꽃이 반갑습니다. 풀과 나무도 하루 사이에 쑥쑥 자라 어제가 다르고 오늘이 다릅니다. 낮도 길고 일조량도 많으니 생명력이 왕성할 수 밖에 없는 6월입니다. 하지만 지금부터는 무더위가 부담스러워 집니다. 그늘을 찾고 물가를 찾는 때가 왔습니다.
◉‘바다로 가자! 신비운 슬픔을 머금은 파도가 우리 다리에 입맞출거야 별들은 우리 머리위에서 반짝이네’ 19세기 후반의 러시아 시인 알렉세이 쁘레시체예프 (Алексе́й Плеще́ев)의 시 ‘뱃노래’의 일부분입니다. 여름에 뱃놀이 하는 풍경을 그란 이 시를 앞세워 살랑거리는 6월 바람을 받으며 물위에 떠 있는 배을 음악적으로 그려낸 피아노 소품이 바로 차이코프스키의 사계 6월, ‘바르카롤(Barcarolle)’입니다.
◉뱃노래의 첫부분에 쓰인 안단테 칸타빌레(Andante Cantabile)가 느리면서도 노래하듯이 흘러가는 강물과 그위에 떠 있는 배의 모습을 그려내고 있습니다. 여기에 러시아 특유의 민요적인 느낌과 슬라브적인 매력이 녹아 있는 곡입니다.
◉원래 바르카롤(Barcarolle)은 베네치아의 곤돌라 사공이 부르는 뱃노래에서 유래한 기악곡 또는 성악곡을 말합니다. 느린 8분의 6박자 또는 8분의 12박자로 돼 있습니다. 파도나 배의 동요를 암시하는 단조로운 반주로 노를 저어가며 강가의 정취를 느끼게 하는 음악입니다.
◉베니스로 부르기도 하는 베네치아는 ‘물의 도시’입니다. 직접 가보지는 못했지만 졸저 ‘대몽골 시간여행’에서 마르코 폴로를 얘기하면서 머릿속으로, 마음으로 수없이 다녀온 익숙한 곳입니다. 그곳은 물이 곧 길이고 길이 곧 물입니다. 자동차 소음도 매연도 없는 도시엔 낭만과 환상이 가득합니다. 이 뱃길따라 흐르는 낭만을 여러 작곡가들이 각자 나름의 색깔로 그려냈습니다.
◉차이코프스키가 그려낸 ‘뱃노래’는 담백하고도 간결한 느낌을 줍니다. 세계적인 피아니스트이자 지휘자인 블라디미르 아슈케나지의 피아노 연주로 만나봅니다. 올해 84살인 그는 유대인 혈통으로 원래 소련 고리키출신이지만 아이슬란드로 귀화해 주로 영국에서 활동해왔습니다. https://youtu.be/rLppm5ejotI
◉차이코프스키의 뱃노래는 다양한 매체의 배경음악으로 자주 등장해 사람들에게 비교적 익숙한 멜로디입니다. 김연아의 피겨스케이팅 배경음악으로도 등장해 그녀의 연기를 더욱 빛나게 만들어주기도 했습니다. 미국dl 자랑했던 피아니스트 반 클라이번의 연주입니다. https://youtu.be/O4YJ1vetHjA
◉오펜바흐(Offenbach)의 유일한 오페라 ‘호프만의 이야기’에 등장하는 애틋하고 달콤한 뱃노래를 만나 봅니다. 시인 호프만의 불행하게 끝나는 여성편력기를 엮은 오페라입니다. 베네치아의 여인 줄리에따에게 딱지 맞는 이야기의 첫머리에 등장하는 ‘뱃노래’입니다. 곤돌라를 타고 나타난 미녀 줄리에따가 그녀를 마중하는 청년 니콜라우스와 부르는 2중창입니다. 오페라의 줄거리와 상관없이 분위기를 돋구는 노래입니다.
◉니콜라우스 역은 남상도 여성도 맡을 수 있지만 실제로는 여성 이중창으로 자주 등장하는 노래입니다. 메조 소프라노 백재은과 소프라노 강혜정의 이중창으로 들어봅니다. https://youtu.be/bco4UXgt-Ds
◉오래전에 본 영화 ‘인생은 아름다워’에 등장하는 ‘호프만의 뱃노래’는 짠한 느낌으로 다가옵니다. 2차대전 당시 유대인 수용소의 참혹한 현실 속에서 남자 주인공이 아내에게 안부를 전하는 음악으로 등장합니다. 오페라 극장에서 아내를 만났을 때 온몸으로 사랑을 호소하는 장면이 겹쳐 집니다. 남자주인공역의 로베르토 베니니는 1998년 아카데미 남우주연상을 받았습니다. 영화속에 등장하는 이중창은 메조소프라노 안네 소피 폰 오터와 소프라노 세릴 스투더입니다. https://youtu.be/JdoXBljkT1E
◉멘델스존은 21살이던 1830년 로마로 가던 길에 베네치아에 들립니다. 여기서 그는 세 곡의 뱃노래를 만듭니다. 나중에 이 세곡을 49곡으로 이루어진 무언가(無言歌)집 속에 담습니다. 무언가, Song without words는 가사가 없는 음악을 말합니다. 듣는 사람이 가사를 머릿속으로 마음속으로 그려가며 멜로디를 따라갑니다.
◉먼저 잔물결을 나타내는 듯한 반주를 타고 우아하고 아름다운 선율이 흐르는 제1 베네치아 뱃노래부터 들어봅니다. 피아니스트 Pablo Cintron의 연주입니다. https://youtu.be/TBIOSL9sdR0
◉노래하는 듯한 선율이 아름다운 ‘제2의 베네치아 뱃노래’가 가장 널리 알려져 있습니다. 이 곡은 아일랜드 영화 원스(Once)에도 등장해 유명해졌습니다. ‘Falling Slowly’가 생각나는 이 영화에서 길거리에서 우연히 만난 남녀주인공이 서로 마음을 열고 가까워지는 계가가 되는 곡입니다. 여주인공의 피아노 연주에 남자 주인공이 감탄사를 연발합니다. 영화 영상이 너무 길어서 이 곡의 연주는 여러차례 국제 콩쿠르에서 우승했던 피아니스트 김세훈의 연주로 듣습니다. https://youtu.be/zuaWGMr9rOU
◉배를 띄워 나들이하면서 유유자적하게 즐기는 풍류는 여름에 빼놓을 수 없는 낭만으로 꼽을 수 있습니다. 그래서 동서양을 막론하고 수맣은 뱃노래가 만들어진 모양입니다. 더위에 자칫 지치기 쉬운 계절에 느리고 잔잔한 뱃노래를 들어가며 여유를 찾는 것도 괜찮은 피서일 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