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들은 저마다 꿈을 이루기 위해 살아갑니다. 이번 삶이 그 꿈을 실현할 유일한 시간임을 알기에 고된 수련도, 치열한 승부도 마다하지 않습니다.
이러한 자세로 사는 우리도, 의문이 드는 순간은 있습니다. 꿈에 다다르기 전에 거쳐야 할 현실의 주요한 길목들을, 별다른 수고로움이나 어려움의 흔적 없이 선점한 이들을 발견했을 때입니다. 남다른 능력을 지녔으리라 짐작하지만, 오랜 시간 공들여 쌓아온 자기 기량이 좀처럼 인정받지 못하는 터에 자기보다 순탄한 길을 밟는 것처럼 보이는 그들을 여유롭게 대하기는 어렵습니다. 같은 경험이 거듭될수록 ‘노력은 열정의 낭비이고, 인생은 운에 의해 좌우되는 것’이라는 생각이 들 만합니다. 바로 그런 좌절과 소외감을 반쯤 체념적이고, 또 반쯤 냉소적인 투로 엮어낸 조어(造語)가 있지요. “될 놈 될, 안 될 안”이라는.
‘될 놈은 뭘 해도 되고, 안 될 놈은 뭘 해도 안 된다’. 경쟁사회에 부대끼는 현대인의 쓸쓸한 정서가 묻어나는 표현입니다. 그런데 알고 계십니까. 우리 고전 안에, 이런 표현이 등장할 것을 이미 헤아렸나 싶은 구절이 존재한다는 사실을요.
성공과 실패를 결정하는 것은 타고난 운수(運數)일까요, 아니면 갖추어진 재능일까요. 조선 후기의 학자 성대중은 불운을 겪는 이는 역량이 부족한 경우가, 행운을 누리는 이는 역량이 충분한 사례가 많다고 지적했습니다. 언뜻 들으면 “될 놈 될, 안 될 안”이라는 말에 담긴 숙명론(宿命論)에 그 역시 공감하고 있는 듯하지요. 실은 그렇지 않습니다. 성대중은 오히려, 운수와 재능 중 어느 한 가지 요인만으로 삶의 성패가 결정되지는 않는다고 밝힌 것입니다. 그럼 그의 말에 숨겨진 진짜 속뜻은 무엇일까요.
누구도 자신의 운수를 스스로 정할 수는 없습니다. 그러나 누구든 자신의 재능을 스스로 키울 수는 있습니다. 만약 성패가 운수와 재능의 조합에 따른 결과라면, 예상과 통제가 불가능한 요인 대신 선택과 관리가 가능한 요인에 집중하는 편이 합리적이지 않겠습니까. 종종 포기하거나 단념하고 싶어지는 오늘의 사람들에게 성대중은 이런 위로와 조언을 전하려 했다고, 저는 짐작합니다. 실패를 곧 불운이라 여겨 낙심하지 말라고. 꾸준히 다진 재능을 펼칠 기회가 올 때까지, 그 기회를 단단히 붙들어 줄 행운이 깃들 때까지, 자신을 가다듬으며 조금 더, 기다려보라고.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