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에 봤던 두 경기를 보고 느낀 점들입니다.
(평어체 양해바랍니다)
- 생각지도 못하게 레알 마드리드가 바르샤를 잡음. 경기 흐름은 국왕컵 4강 2차전과 거의 같았다. 레알 마드리드는 올드 트래포드 원정을 위해 호날두, 외질, 이과인, 케디라, 알론소, 아르벨로아를 쉬게 했고(디 마리아는 카드 누적으로 어차피 못 뜀) 바르셀로나는 사비, 푸욜, 세스크를 쉬게 했다. 스쿼드상의 차이는 있었지만 체력 차이가 컸다고 봐야 할 듯. 바르샤의 경우 빌드업을 해주는 부스케츠 주변의 움직임이 눈에 띄게 둔해졌고 그 결과 측면에서의 부정확한 오버래핑 및 롱 패스가 이어졌다. 반면 레알 마드리드는 에시앙과 모드리치에서 시작되는 일선 압박이 원활하게 이루어졌다.
- 스페인의 차세대 스트라이커인 알바로 모라타가 주말 엘 클라시코의 MVP였다. 호날두를 대신하여 좌우 측면을 쉴새없이 흔들었고 벤제마의 선제골을 어시스트했다. 호날두가 나온 후에는 쓰리톱 중앙 공격수로 뛰면서 바르샤를 지속적으로 위협. 일대일 찬스가 두어 번 있었는데 그것만 살렸더라면 평점 10점을 받을 경기라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올 시즌부터 풀타임 1군으로 올라왔는데 성장 가능성이 높고 스페인 공격수에게서 쉽게 찾기 힘든 높이와 피지컬이 있는만큼 더 많은 기회가 주어질 듯. 벤제마-이과인의 폼이 작년보다 떨어진 시점이고 둘 중 하나는 팀을 떠날 수도 있기 때문.(물론 그 자리에 카바니나 레반도프스키 등이 들어가겠지만)
- 바란은 요즘 연일들어 엘 클라시코의 지배자이다. 많은 이들이 재작년 여름에 바란에 대한 거액 투자를 탐탁치않게 여겼다. 하지만 바란이 나온 경기를 조금만 보았다면 무리뉴가 그를 택한 이유가 금방 나올 것이다.(여기에는 지단의 목소리도 크게 작용했다) 이제 20살의 어린 나이지만 필드를 파악하는 시야가 넓고 피지컬이 좋으며 공격 가담도 준수하다. 빌드업 능력만 장착하면 레알 마드리드에 최적화된 수비수가 될 수 있다. 페페가 계속 해오던 역할을 바란이 조금만 덜어줘도 마드리드의 역습은 훨씬 활발해질 것이다.
- 모드리치와 에시앙 모두 시즌 시작 직전에 들어온 경우라 손발이 안 맞을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적어도 2013년 이후에는 팀 시스템에 제법 녹아든 모습이다. 그리고 다음 시즌에는 이보다 더 개선이 가능하다. 물론 에시앙은 1년 임대지만 현재 에시앙에 무관심한 첼시의 상황으로 봐서는 완전 이적할 가능성도 있어서 레알 마드리드로 완전 이적할 경우 팀에 적지 않은 힘이 될 것이다. 모드리치는 장기적으로 알론소를 대체할 자원이기 때문에 더욱 투자을 할 필요가 있어 보인다.
- 메시의 90분보다 호날두의 30분이 훨씬 나았다. 그만큼 호날두의 컨디션이 상당히 올라와 있지만 역으로 말하면 메시의 상태가 좋지 못하다. 경기 내내 압박의 틀에 갇혀 있다보니 전방으로 나가지 못하고 중원으로 계속 가담하는 모습이 보였다. 그 상황에서 체력이 상당히 떨어짐. 최근에 메시는 고열로 팀 연습에 참가하지 못한 데다가 모든 대회에 쉬지 않고 풀 타임으로 나오면서 체력이 떨어져 있다. 자연히 메시의 피파온라인스러운 골 페이스도 주춤할 수 밖에.
- 바르샤의 가장 큰 문제는 플랜B의 부재였다. 고집스럽게 중앙에서의 3각 패스로 풀어간 게 화근이었다. 처음에는 적응이 안되지만 엘 클라시코가 1년에도 3-4번씩 벌어지다 보니 이제는 무리뉴가 패턴을 파악했다. 부스케츠에 대한 1차 압박과 레인 차단, 그 패스를 받는 이니에스타에 대한 2차적인 도움 수비 및 메시 주변에 대한 지역 방어. 무리뉴는 바르샤의 주요 패턴을 번번이 짤라버리는 압박으로 바르샤를 갉아먹었다. 티키타카가 보기에는 몰라도 체력 소모가 적지 않은 축구이기 때문에 이런 식으로 바르샤의 중원을 눌러버리면 결국 후반에는 체력적으로 우세할 수밖에 없다는 무리뉴의 계산이 들어맞았던 것이다. 자연히 측면에 있는 비야나 페드로가 할 게 별로 없다. 4-3-3을 쓰는데도 윙 포워드의 볼 포제션을 극히 제한하는 바르샤 시스템은 중앙에서의 탈압박이 되지 못하면 갇히게 된다.
- 펩 이후의 바르샤는 메시를 중앙 공격수로 활용하고 양쪽 측면의 포워드들을 공간 스트레치용으로 활용해 왔다. 하지만 이렇게 윙 포워드들을 터치라인에만 두는 전술은 패싱 레인을 제한하게 된다. 윙에서의 속도를 잘만 활용하면 의외로 중원 압박은 쉽게 뚫린다. 실제로 이 경기에서도 페드로 쪽에서 레알 마드리드의 측면 수비를 두드리는 장면이 몇 번 나왔다. 차라리 비야를 중앙에 두고 산체스와 메시를 윙 포워드로 썼다면 수비가 더 쉽게 뚫렸을 것이다. 라모스와 코엔트랑이 잦은 오버래핑으로 뒷공간에 조금씩 틈을 남겨놨기 때문이다.
- 도르트문트 시절의 카가와 신지의 포지션은 메디아 푼타라고 보는 게 맞을 것이다. 처진 공격수에 가깝다. 괴체와의 스위칭과 리턴 플레이, 라인을 뚫고 들어가는 레반도프스키의 백업 등이 주특기였다. 일본 대표팀에서도 카가와는 중앙 공격형 미드필더이다. 처음에 맨유가 카가와 영입을 발표했을 때 많은 이들은 '카가와를 중앙 미드필더로 쓸 거냐'며 의아해 했다. 하지만 이는 잘못된 이해이다. 퍼거슨이 설마 카가와의 포지션을 모르고 영입을 했겠나. 영감은 처음부터 카가와를 공격형 미드필더로 쓸 생각이었다. 카가와가 시즌 초에 적응을 못한 이유는 맨유의 포메이션 때문이었다. 4-4-2 시스템에서 카가와가 들어갈 자리가 없었으니까. 그나마 카가와가 들어갈 자리는 루니의 자리였다. 실제로 퍼거슨은 카가와를 반 페르시와 함께 투톱에 세운 적도 있었다.
- 하지만 요즘처럼 4-2-3-1을 쓰는 맨유라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공격형 미드필더들의 지속적인 스위치와 창의적인 전개, 공간 활용이 강조되는 포메이션이기 때문에 카가와 기용이 더 유연해지기 때문. 공격형 미드필더 3명의 자리는 의미가 없다. 계속 자리가 바뀌니까. 그러니까 루니가 중앙에서 출발하고 카가와가 측면에서 출발한다고 해서 이 자리가 고정되는 건 아니다. 오늘 경기에서도 카가와는 왼쪽 측면에서 출발했다.
- 안데르손, 캐릭, 클레버리 등 맨유의 중원 미드필더들이 살아난 올 시즌이라면 맨유의 공격력은 더 말할 것도 없다. 카가와가 해트트릭으로 자신감을 찾으면서 맨유의 공격 옵션은 더 다양해진다. 오늘 선발 출전한 반 페르시, 루니, 카가와, 발렌시아 외에도 애슐리 영, 웰벡, 나니, 치차리토 등이 포진한 맨유의 공격진은 어디 가도 꿀리지 않기 때문. 여느 시즌보다 화끈한 공격축구를 하고 있는 퍼거슨의 맨유는 카가와 사용 설명서도 숙지하게 되면서 우승 레이스에 확실한 종지부를 찍을 날만 남았다.
첫댓글 카가와가 도르트문트시절에 넣은 골들을 보면 대부분 레반도프스키가 공간을 열어주고 날카롭게 2선침투하는 카가와에게 타이밍 좋게 패스를 넣어주고 카가와가 특유의 결정력으로 득점하는 패턴이 많은데 맨유에서 이렇게까지 해줄수 있는 선수는 루니말고는 없죠... 선수 자체가 잘 써먹으려면 전술적으로 패턴을 만들어 줘야 하는 선수죠...
반 페르시로도 가능하죠. 조합이 안 만들어지는 건 아닙니다.
근데 반페르시가 레반도프스키 수준으로 해줄지는 의문입니다... 전방에서 몸싸움하고 공간 열어주기 위해 수비수들 끌고 다니고 제떄 찔러주고......;;;;;;;;; 본인 자체가 득점머신인데 이렇게 희생할 이유가 없죠....
카가와는 팀이 자기 중심으로 돌아가야 제 실력이 나오는 스타일이에요. 그런데 콧대높은 선수들만 모인 맨유에서 과연 레반도프스키 같은 역할을 해줄 선수가 있을까요?
카카와도 벨바톱,제코처럼 출전시간을 많이 받지 못하고 있다고 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