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 몸이 여러 부분으로 되어있어도 하나이듯이 내 신비체도 각각 다른 기능을 하는 여러 부분으로 구성되어 있으나 사실은 하나다. 나는 이 신비체의 머리이고 성령은 영혼이며, 나의 교회 신자들은 신비체의 살아있는 지체들이다. 나무의 가지가 그 안에 나무의 생명을 담고 있듯이, 너도 내 생명을 담고 있다. 많은 밀알이 모여 한 덩이의 빵이 되듯이, 많은 물방울이 만나 바다를 이루듯이, 내 교회의 많은 사람도 바로 나 자신인 하나의 신비체 안에 통합된다.
그렇기 때문에 바오로는 이렇게 썼다. “내가 지금 육신 안에서 사는 것은, 나를 사랑하시고 나를 위하여 당신 자신을 바치신 하느님의 아드님에 대한 믿음으로 사는 것입니다.”(갈라 2,20) “그리스도와 하나되는 세례를 받은 여러분은 다 그리스도를 입었습니다. … 여러분은 모두 그리스도 예수님 안에서 하나입니다."(갈라 3,27-28) 또한 그것이 바오로가 내 교회의 신도들을 잡으러 다닐 때 내가 그에게 "사울아, 사울아, 왜 나를 박해하느냐?" (사도 9.4) 하고 말한 이유다.
내 신비체의 한 지체인 너는 나와 하나다. 네가 내 안에 살고 내가 네 안에 산다. 네가 아버지 안에 살고 그분께서 네 안에 거하신다. 네가 성령 안에 살고 성령께서 네 안에 거하신다. 네가 삼위일체 안에 살고 삼위일체께서 네 안에 거하신다.
나는 나고 너는 너다. 분리된 다른 사람들이다. 그러나 우리는 하나다. 그리스도인인 너는 그렇게 존엄한 존재다.
어떻게 그럴 수 있는가? 그것이 무엇을 의미하는가?
그것은 네가 하느님이라는 뜻이 아니다. 너도, 내 교회의 그 어떤 사람도 이렇게 일치한다고 해서 피조물의 영역을 초월하지는 못한다. 그것은 네가 인간인 내 몸과 결합되어 물리적으로 새로운 사람이 된다는 뜻이 아니다. 내 신비체는 물리적인 몸이 아니다. 그것은 네 개성과 자유의지, 네 생각과 말과 행위에 대한 책임이 없어진다는 뜻이 아니다.
그러나 내 신비체는 물리적이지 않을지라도 실제로 존재한다. 그것은 상상이나 비유적인 이야기가 아니다.
물리적인 하나 됨보다 더 수준 높은 형태의 하나 됨이다. 내 교회의 신자들과 내가 결속되는 일치의 원리는 물리적인 신체 부분들의 결합보다 그지없이 더 높은 차원의 것이다. 우리가 하나되는 이러한 관계를 적당하게 묘사할 수 있는 말이 없다. 너는 내 신비체의 한 지체로서, 태중에 있을때 네 어머니와 하나가 되었던 것 보다 더 밀접하게 나와 하나가 된다. 나 또한 태중에 있을 때 자연계의 내 어머니와 하나 된 것보다 더 밀접하게 너와 하나가 된다.
너는 이 하나 됨이 초자연계에 속하는 것임을 이해해야 한다. 너는 이중의 삶을 살고 있다. 자연계의 삶과 초자연계의 삶, 이성적 동물의 삶과 하느님의 거룩한 삶.
내 신비체는 초자연계에 속하기에 시간이나 공간의 제약을 받지 않는다. 이 사실은 네 운명 전체를 바꾼 놀라운 진실이 가능한 것임을 말해준다. 내 신비체는 시간의 제약을 받지 않기에 나는 네가 죄를 저지르기 전에 그 죄를 대속하기 위해 죽을 수 있으며, 어떤 의미에서 네가 잉태되기 전에 너를 위해 네 삶을 산다고 할 수 있다. 또한 내 신비체는 공간의 제약을 받지 않기 때문에 그 안에 모든 그리스도인을 동시에 포함할 수 있다.
인간으로서 나는 어머니 태중에 있을 때부터 지복직관 (하느님을 직접 뵙는 것-옮긴이)을 누렸다. 지복직관 속에서 나는 영원히 계속해서 내 신비체의 모든 지체를 선물로 받았다. 나는 사랑으로 그들을 품는 일을 결코 멈추지 않았다. 나는 내 어머니의 몸이라는 성전 안에서, 나자렛의 일터에서, 팔레스타인의 작은 길에서, 십자가 위에서, 내 아버지의 영원한 영광 안에서, 너를 포함해 내 교회의 모든 사람들을 보았고 그들을 품었으며, 자녀에 대한 어머니의 이해와 사랑보다, 심지어 나에 대한 내 어머니의 사랑과 이해보다 무한히 더 큰 명석함과 자애로 그렇게 하였다.
이제 내 신비체의 놀라운 진실을 희미하게나마 이해할 수 있겠느냐? 나는 항상 너를 지켜보며 사랑하고 있기 때문에 내 삶의 모든 순간이 네 삶의 모든 순간과 연결되어 있다. 내 삶의 모든 것은 어떤 의미에서 네 삶의 모든 순간에, 너의 처분에 달려있다고 할 수 있다. 언제든 나는 잘못된 모든 것을 바로잡을 준비가 되어 있다. 너는 네 뜻을 내 뜻과 일치시켜야 한다. 이것은 네 삶과 내 삶을 일치시키는 것이다. 나는 너에게 매 순간 나의 넘치는 풍요로움 속에서 너의 빈곤을 줄일 수 있는 기회를 준다.
이것이 내 신비체가 되는 것의 의미다. 우리의 일치가 물리적인 것은 아닐지라도 이 신비의 일치를 통해 우리는 네 손과 발과 팔다리가 네 몸과 하나가 되는 것보다 더 확실하게 하나가 된다. 우리는 진정 하나의 유기체이고, 하나의 신비체이며, 그것은 나 자신이다.
-도서 '나를 닮은 너에게' / 클래랜스J. 앤즐러 / 바오로딸
(4장. 우리안의 그리스도 / 그리스도의 신비체 중에서)
첫댓글 + 하느님 뜻 안에서
“이제 내 신비체의 놀라운 진실을 희미하게나마 이해할 수 있겠느냐? 나는 항상 너를 지켜보며 사랑하고 있기 때문에 내 삶의 모든 순간이 네 삶의 모든 순간과 연결되어 있다. 내 삶의 모든 것은 어떤 의미에서 네 삶의 모든 순간에, 너의 처분에 달려있다고 할 수 있다. 언제든 나는 잘못된 모든 것을 바로잡을 준비가 되어 있다. 너는 네 뜻을 내 뜻과 일치시켜야 한다. 이것은 네 삶과 내 삶을 일치시키는 것이다. 나는 너에게 매 순간 나의 넘치는 풍요로움 속에서 너의 빈곤을 줄일 수 있는 기회를 준다.”
하느님과 일치시킬 수 있는 봉헌을 생활화하게 되기를 봉헌합니다.
하느님의 뜻 안에서 복되신 어머니의 특별한 축복을 건네어 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