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비, 한율아!
이제 여름의 기운이 느껴지기 시작하는구나. 산은 녹음(綠陰: 나뭇잎이 우거진 숲)이 두터워지고 정원은 온갖 풀과 꽃으로 가득해졌어. 날은 더워지고 낮의 길이가 무척 길어졌어. 저녁 8시까지도 밖이 환해. 그러고 보니 1년 중 낮의 길이가 가장 긴 하지(夏至: ‘여름에 이른다’는 뜻)의 절기가 올해는 6월 21일이니 이도 며칠 남지 않았구나. 나래실농원에도 모든 것들이 무섭게 자라고 있어. 그리고 그들의 거친 숨소리가 아주 가깝게 들려오는 것만 같아. 그 대신 5월의 정원에서 느낄 수 있었던 것과 같은 달콤하고 부드러운 향기는 성큼 다가온 여름의 거친 숨결 뒤로 밀려난 것 같아. 하지만 6월이라고 해서 정원의 향기가 모두 사라진 것은 아니야. 6월의 정원은 어떤 것들의 향기가 묻어날까?
6월의 정원에서는 무엇보다도 먼저 장미의 향기가 우리 곁으로 다가오지. 초록빛 바다에 떠 있는 듯한 화려한 장미꽃의 모습을 보면 풋풋하면서도 싱그러운 꽃 내음이 전해오는 듯해. 그런데 초여름 6월의 정원은 그리 거칠지 않은 여리고 부드러운 것들이 무성한 풀숲 사이로 꽃뿐만이 아니라 풀잎의 색다른 향기를 전하기 시작해. ‘허브(Herb)’라고 하는 향초(香草)들이 그들 각자의 향기를 뿜어낸단다. 유난히 독특한 향기와 풍미를 지니는 특별한 부류의 풀들이 제철을 맞이해. 그런데 이 허브라고 하는 것은 사실 모든 종류의 풀을 의미하기도 해. ‘허브는 뿌리로부터 곧바로 풀대를 키우며 자라는(Herbs grow directly from the root with leafy stems.『The Naming of Names: The Search for Order in the World of Plants』Anna Pavord, 2005, p.27)' 것을 의미하기 때문이지. 모든 풀이 허브의 범주에 들어간다고 할 수 있어.
지금으로부터 2,300여 년 전에 식물을 체계적으로 분류하고자 하는 최초의 시도를 했던 고대 그리스의 학자인 테오프라스투스(Theophrastus 371 ~ 278 B.C.: 유명한 식물분류학자인 린네는 테오프라스투스를 ‘식물학의 아버지’라고 불렀음)는 식물을 크게 4가지로 분류했다고 해. 즉 식물을 큰 키 나무인 교목(喬木: Trees), 키가 작고 줄기가 많이 갈라지는 관목(灌木: Shrubs), 키가 아주 작은 나무 소관목(小灌木: Sub-shrubs), 그리고 풀과 같은 허브(Herbs)의 4가지로 나눈 것이지. 교목, 관목, 소관목 등 3종류의 것들은 나무, 그리고 나머지 하나인 허브는 풀이라고 할 수 있지. 식물은 지금도 보통 이와 같은 4가지로의 구분이 이루어지고 있지만, 이보다 더 쉽게는 목질의 나무줄기를 가지는 목본식물(木本植物: Woody Plants)인 나무(trees)와 그렇지 않은 초본식물(草本植物: Leafy Plants)인 풀(Herbs)의 두 가지로 구분을 하기도 해.
이처럼 허브 하면 모든 초본식물 모두를 포함하는 의미의 용어로 사용되어오고 있어. 하지만 오늘날 허브(Herb)라는 용어는 보통 매우 한정된 어느 특정 부류의 풀을 의미하는 말로 사용이 되고 있어. 즉 독특한 향기나 풍미를 지니는 그리 많지 않은 종류의 식물을 의미하지. 그 풀이 지니는 특별한 향기나 맛으로 인하여 약용(藥用), 보통의 채소와는 구분되는 식용(食用)의 양념이나 향신료, 차 따위의 음료(飮料), 화장품과 같은 미용(美容) 재료 등으로 사랑받는 부류의 식물들을 일컬어. 이를 한마디로 이야기한다면 향초(香草)라고 말할 수 있을까? 요즘은 여러 자연치료 요법 중에서도 향기와 약효를 가진 식물로 심신을 치료하는 향기요법(Aromatherapy: 아로마테라피)이 인기를 끌기도 하지. 한편 백과사전을 찾아보면 향초는 사람들이 약 5천 년 전부터 이를 이용하기 시작했다고 하며 세계적으로는 모두 5천 종의 향초가 알려져 있고 우리나라에는 약 1천 종의 향초가 있다고 하는구나. 수십만 종의 식물 모두의 숫자에 비하면 그리 많지는 않지만 그래도 제법 많은 숫자라고 할 수 있지.
그런데 우리가 일상생활에서 보통 허브라고 일컫는 향초는 그렇게 많지는 않아. 이들은 대부분이 유럽과 일본으로부터 전해진 것들인데 우리가 관심을 가지고 살펴보기도 하고 또 일상생활에서 때때로 이용할 수 있는 것들은 모두 합해서 50개의 종류를 넘지 않아. 더구나 우리가 우리 주변의 정원이나 농원에서 쉽게 접할 수 있는 것들은 20여 종에 불과하다고 할 수 있어. 라몽(Lamont)이라는 어떤 외국의 회사가 만든 린넨 천으로 만든 포스터에는 우리에게 비교적 익숙한 허브의 그림이 그려져 있어. 식탁 장식 또는 벽걸이용으로 만들어진 이 직물 포스터에는 로즈마리(Rosemary), 파슬리(Parsely), 캐모마일(Chamomile), 세이지(Sage), 타임(Thyme), 월계수(Bay), 딜(Dill), 민트(Mint), 라벤더(Lavender), 차이브(Chives), 마늘(Garlic), 그리고 바질(Bazil) 등 12가지의 허브 식물이 담겨있어. 여기에 몇 가지를 더 보탠다면 레몬 밤(Lemon Balm), 오레가노(Oregano), 회향(Fennel), 실버 타임(Silver Thyme), 서양톱풀(Yarrow), 그리고 한련화(Nasturtium)라는 걸 들 수 있을 듯해.
한편 세계적인 허브 산지로 가장 잘 알려진 곳은 프랑스 남부의 프로방스(Provence)라는 지역이야. 이곳은 지중해의 유럽 쪽 바닷가에 자리한 지역으로 날씨가 온화한 데다가 맑고 햇빛이 좋은 날이 많은 아름다운 전원풍의 여행지로도 유명한 곳이지. 특히 프로방스 지역은 허브 재배의 적지여서 여러 가지 허브가 이 지역에서 오래전부터 재배되고 있어. 그리고 이곳에서 재배되는 허브는 ‘프로방스의 허브(Herbes de Provence)’'라는 이름으로도 잘 알려졌어. 이 프로방스의 허브는 바로 앞에서 이야기한 대표적인 허브의 대부분을 포함하는데, 이들 허브의 잎이나 꽃, 줄기, 열매나 뿌리 따위를 말린 뒤 이런저런 배합으로 그들을 섞어서 주로 프랑스식 요리에 첨가하는 양념으로 사용한다고 하는구나. 타임, 로즈마리, 바질, 그리고 파슬리, 이 네 종류의 허브를 묶어서 ‘프로방스 허브의 바구니(Basket of Provence Herbs)’라고 한다고도 하는구나.
요즘은 우리나라에서도 허브로 만든 조미료를 점차 많이 사용하기 시작하고 있다고 해. 또 허브의 향기로운 내음과 맛, 향미(香味)를 즐기거나 건강과 미용 등을 위해서 많은 사람이 허브를 찾는 것이지. 한편 이들 허브는 그 원산지가 대부분 기후가 온화한 유럽의 지중해 연안 지역인데 최근에는 우리나라에도 새로운 허브가 많이 들어오고 있어. 그런데 좀 아쉬운 점이 있다면 우리나라는 겨울이 제법 추워서 허브를 재배하기가 그리 쉽지만은 않은 여건이야. 우리나라에서는 대부분의 여러해살이 허브가 겨울을 나기가 어려워서 해마다 이른 봄 온실에서 모종을 키우고 이를 다시 바깥의 노지로 옮겨심어서 기르는 수고를 아끼지 않아야만 해.
하지만 여러 곳에 허브정원(Herb Garden)이 조성되어 가족이 함께 찾아 즐길 수 있는 향기 가득한 공간이 제공되고 있단다. 그리고 허브정원에서는 허브 축제 행사가 열리는가 하면, 때때로 야외공연이 펼쳐지기도 해. 이러한 허브정원으로 우리나라에서 가장 대표적인 곳으로 허브나라(Herbnara)라는 곳이 있어. 이곳은 나래실농원에서는 그리 멀지 않은 곳이기도 한데. 약 30년 전쯤에 평창군 봉평면의 오대산 지역에 문을 열었어. 허브나라에는 개울가 계곡을 따라 각종 허브를 재배하는 작은 소꿉정원(Pocket Garden)들이 아기자기하게 꾸며져 있고 사이사이 곳곳으로 허브 관찰 산책로가 만들어져있어. 또 갤러리, 레스토랑, 허브 가공품 상점 등이 있어서 탐방객들의 많은 사랑을 받고 있어. 이곳의 독특한 매력에 이끌려 할머니와 할아버지는 그곳의 단골손님이 되었고 가끔 그 허브정원을 찾고는 한단다.
한율아, 그리고 한비야!
오늘은 둥이들에게 더욱 익숙하지 않은 것에 관해서 이야기한 것 같구나. 하지만 정원이나 텃밭을 가꾸는 사람 중에는 이러한 허브에 관한 관심이 늘어나고 있고, 할아버지 또한 좀 더 가꿔보고 싶은 생각에서 이것을 소재로 해서 편지를 써 보았단다. 그러니 그냥 가볍게 읽어주면 좋겠구나. 다음번에는 할아버지가 나래실농원에서 조금씩 기르고 있는 허브에 관해 좀 더 이야기를 이어갈까 해. 그럼 다음 주에 또 만나자꾸나. 다가오는 주말도 즐겁게 보내기 바라고~
(2022.6.16.)
첫댓글 식물은 교목ᆞ관목ᆞ소관목ᆞ허브로
나누어 진다.
교목~ 소관목은 나무지만 허브는 일명 풀이지만 오늘날은 향초로
불리운다.
세계적 향초는 5천여 종류지만 우리
나라에는 약 1천여가지. 그러나 일
반적으로 많이 쓰이는 향초는 20가
지, 허브로 만든 조미료를 생각하니
식욕이 돋웁니다.
좋은글 감사드립니다.
아무리 인공향수가 좋다 해도 어찌 천연향료만 하겠어요. 청원 허브농원에 들려 허브비빔밥을 맞있게 먹었던 기억이 새록새록 떠오르네요. 순우 덕분에 허브의 세계를 일별했습니다.그리고 기회가 되면 봉평 허브나라 농원도 방문하고 싶네요. 잘 읽었습니다..
여기까지 허브향이 날라오는 것 같습니다. 향도 여러가지 있지만 중동이나 서양권에는 그 종류가 엄청 많아 다 구분을 할 수 없지요. 나는 토속 미나리향이 좋아요. 맛도 좋고....
향초 허브에 대해 많이 배웁니다.
Are you going to Scarborough Fair
Parsley sage rosemary and thyme
Remember me to one who lives there
She once was a true love of mine
전장에서 먼저 귀가하는 친구에게 내 고향 시골 장터에 가서 사랑하는 소녀에게
말을 전해 달라던 병사는 살아 돌아 왔는지 모르겠군요.
유럽에서는 시장에서 허브를 많이 팔았나 봅니다.
정말 제가 복이 많나 봅니다 선생님.
향초, 방향제, 향수를 좋아하는데 여기에 대해 깊이 생각해 본 적이 없었습니다.
앞으로는 알고 사용해야겠어요.
선생님이 알려주신 종류들 참고해서 구입해 봐야겠습니다.
할아버지가 손주들에게 보내는 편지가 앞으로 우리 집에도 한 통 배달될 것 같아 행복합니다.
감사합니다.
훌륭한 할아버지를 둬서 자랑스럽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