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거룩하고 복된 주의 날, 특별히 2023년 마지막 주일이자 마지막 날에 살아계신 하나님 앞에 나와 예배드리는 사랑하는 성도님께 하나님의 은혜와 평강이 함께 하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말씀의 제목은 “달려갈 길을 다 마칠 때”입니다.
한 해가 정말 빨리 지나간 것 같습니다. 모세는 시위를 떠난 화살처럼 세월이 빠르다고 했는데 욥은 독수리가 먹이를 향해 날아 내리는 것처럼 빠르게 지난다고 했습니다. 욥9:25-26입니다. “나의 날이 경주자보다 빨리 사라져 버리니 복을 볼 수 없구나 그 지나가는 것이 빠른 배 같이, 먹이에 날아 내리는 독수리와도 같구나” 그런 가운데서도 여기까지 인도하시고 도와주신 하나님께 감사드립니다. 우리 주님의 은혜로 지내왔음을 고백하며 주님을 찬양합니다. 할렐루야!
오늘 본문은 사도바울이 인생의 마지막이 가까이 옴을 알고, 떠날 시간이 되었음을 알고 하나님 앞에서 그의 삶을 돌아보며 그가 복음으로 낳은 아들 디모데에게 고백하는 말씀입니다. 6절에 보시면 "전제와 같이 내가 벌써 부어지고 나의 떠날 시간이 가까이왔도다"라고 했는데 전제는 구약에서 행해진 제사의 하나입니다. ‘전제’는 제사 중에 포도주를 하나님 앞에서 붓는 의식입니다. 바울은 이 ‘전제’를 자신의 죽음과 관련시켜 말하고 있습니다. 공동번역에서는 '나는 이미 피를 부어서 희생 제물이 될 준비를 갖추었습니다.'라고 했습니다. 사도바울은 순교의 시간이 다가왔음을 알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이 말씀이 장례예배에 많이 인용되고 있지만 한 해를 보내는 우리에게 교훈이 되는 말씀이 아닐 수 없습니다. 우리도 반드시 생을 마감하는 날이 있음을 알고, 달려갈 길을 다 마치는 때가 있음을 알고 한 해를 보내면서 지나온 날을 돌아보는 계기로 삼으시길 바랍니다.
사도바울은 하나님, 그리고 우리가 믿는 예수님이 어떤 분인가를 말씀합니다. 1절을 보시면 예수님은 심판자이시다고 고백합니다. 8절에도 "주 곧 의로우신 재판장"이라 했습니다. 예수님이 주님이시라는 것은 그가 모든 것을 다스리시고 판결하시는 왕임을 뜻합니다. 그는 창조자일 뿐만 아니라 통치자이고 또한 심판할 재판장이십니다. 그의 심판을 피할 자는 아무도 없습니다. 그 앞에서는 감추인 것이 드러나지 않을 것이 없습니다. 그래서 창세 이후로 모든 자들이 그 앞에서 벌거벗은 것같이 설 것이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선악 간에 행한 모든 일을 심판하실 것입니다. 전11:9에서 "청년이여 네 어린 때를 즐거워하며 네 청년의 날들을 마음에 기뻐하여 마음에 원하는 길들과 네 눈이 보는 대로 행하라 그러나 하나님이 이 모든 일로 말미암아 너를 심판하실 줄 알라"고 했습니다. 욥은 내가 육체, 이 가죽을 벗는 날에 육체 밖에서 하나님을 보리라고 했습니다. 반드시 그 날이 옵니다. 모든 인생에게 그 날이 임합니다. 아무도 그 날을 피할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주님 앞에 설 때를 준비하며 살아야 합니다. 시작이 있으니 끝이 있음을 기억하고 그 날에 부끄럽지 않는 인생이 되도록 살아야 합니다. 끝은 반드시 다가옵니다. 그러나 언제인지는 모릅니다. 망설이고 낭비하고 준비하지 않고 있다간 후회할 날이 오는 것입니다. 영국 작가 버나드 쇼처럼 “우물쭈물하다가 내 이럴 줄 알았다”라고 묘비에 남기겠습니까.
심판자이신 하나님 앞에 서기 위해 사도바울이 자신을 돌아본 것처럼 우리도 돌아볼 것이 있습니다. 먼저, 2절을 보시면 "너는 말씀을 전파하라 때를 얻든지 못 얻든지 항상 힘쓰라"고 했습니다. 5절에서도 전도자의 일을 하라고 했습니다. 즉 얼마나 복음전파에 힘썼는가, 하는 것입니다. 복음 전파는 주님의 지상명령이므로 우리가 때를 얻든지, 못 얻든지 평생에 힘써야 할 일입니다. 올 한 해 우리가 예수님을 믿으시라고 이웃에게, 친구에게 얼마만큼 전도했습니까? 만약 우리가 가까이 지내면서도 한 번도 예수님을 전하지 못했다면 한 해를 허비한 것과 다를 바 없을 것입니다. 전도는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습니다. 안중근 의사는 '하루에 한 번 책을 읽지 않으면 입에 가시가 돋친다'(일일부독서면 구중생형극) 라고 했지만 디엘 무디 목사님은 '하루에 한 번 전도하지 않으면 잠을 자지 않겠다'라고 결심했습니다. 내년에는 복음을 전하는 일에 최선을 다할 수 있기를 축복합니다.
둘째, 얼마나 참고 가르치고 경책하며 경계하며 권했는가, 입니다.(2) 때가 이르면 사람들은 바른 교훈을 받지 않고 진리에서 돌이켜 자기 사욕을 쫓을 스승을 많이 두고 그 귀를 진리에서 돌이켜 허탄한 이야기를 따를 것이라고 했습니다. 우리는 서로 돌아보며 권면해야 합니다. 오래 참음으로, 인내로 가르쳐야 합니다. 한 마디만 듣고도 열 마디를 깨닫고 따르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마는 때로는 들어도 깨닫지 못하고 보고도 깨닫지 못하는 경우가 많이 있습니다. 그럴 때에도 참고 기다리며 이끌어주어야 할 것입니다. 경책하다는 말은 정신을 차리도록 꾸짖다는 말입니다. 우리는 책망도 달게 받아야 합니다. 그래서 거짓진리나 잘못된 교리에 넘어지지 않도록 경계시켜야 합니다. 사랑으로 권하고 경계하여 서로를 세워주어야 합니다.
셋째, 맡은 직무를 다 했는가, 입니다.(5) 주께 받은 직무는 수단과 방법으로 되는 일이 아니라 인내하고 근신하므로 감당 할 수 있는 일입니다. 모든 일에 신중하고 고난도 받을 것을 각오해야 합니다. 직분을 감당하다보면 억울한 일을 당할 때도 있습니다. 직분 때문에 물질적인 손해도, 인격적인 상처도 받을 수 있습니다. 무시당하고 업신여김을 당할 수도 있습니다. 그래도 참고 견뎌야 합니다. 무엇보다 우리가 세상 사람들로부터 손가락질 당하지 않도록 매사에 조심해야 합니다. 주님은 우리에게 주신 직무를 충실히 이행했는가를 분명히 물어 보실 것입니다.
넷째, 얼마나 선한 싸움을 싸웠는가, 하는 것입니다.(7) 세상에는 끝없는 유혹이 있습니다. 그래서 주님도 시험에 들지 않도록 기도하라고 하셨습니다. 세상 임금 마귀는 주님도 유혹하여 넘어지게 하려고 했습니다. 천하영광을 주면서까지 자신에게 경배하라고 유혹했습니다. 그러나 주님은 마귀를 대적하고 이겼습니다. 우리도 주님처럼 선으로 악을 이기고 진리로 거짓을 이겨야 합니다. 물질로 유혹하는 사단의 전략에 넘어져서는 안 됩니다. 우리가 그리스도의 제자요, 군사로서 우리가 가진 무기는 칼이나 창이 아니라 진리의 말씀입니다. 믿음의 방패와 의의 갑옷입니다. 엡6:12이하입니다. “우리의 씨름은 혈과 육을 상대하는 것이 아니요 통치자들과 권세들과 이 어둠의 세상 주관자들과 하늘에 있는 악의 영들을 상대함이라 13 그러므로 하나님의 전신 갑주를 취하라 이는 악한 날에 너희가 능히 대적하고 모든 일을 행한 후에 서기 위함이라 14 그런즉 서서 진리로 너희 허리 띠를 띠고 의의 호심경을 붙이고 15 평안의 복음이 준비한 것으로 신을 신고 16 모든 것 위에 믿음의 방패를 가지고 이로써 능히 악한 자의 모든 불화살을 소멸하고 17 구원의 투구와 성령의 검 곧 하나님의 말씀을 가지라” 이런 무기를 가지고 불의에 지지 않도록, 거짓에 지지 않도록, 세상의 헛된 야망에 지지 않도록 선한 싸움을 싸워야 합니다.
다섯째, 얼마나 믿음을 지키며 살았는가를 돌아보아야 합니다.(7) 우리는 오직 믿음으로 영혼의 구원을 받습니다. 믿음으로 말로 다 할 수 없는 은혜를 또한 받았습니다. 만약 우리가 믿음을 포기하면 이 모든 은혜를 놓쳐버리고 맙니다. 사도바울은 '믿음을 지켰으니'라고 했습니다. 그는 큰 환란과 핍박과 굶주림과 추위와 강풍의 위험과 고통 속에서도 믿음을 지켰습니다. 목숨을 버리면서까지 믿음을 잃지 않았습니다. 우리도 비록 이 땅에서 모든 것을 잃는다 할지라도 믿음을 잃어서는 안 됩니다. 천하영광을 준다 해도 믿음을 포기하지 말아야 합니다. 이 땅의 것은 영원하지 못합니다. 잠시 있다가 사라지고 말 것입니다. 육체의 삶도 한 순간입니다. 그러나 우리 영혼은 영원하기에 결코 구원을 위한 믿음을 포기할 수 없는 것입니다. 어떤 시련과 고난과 역경이 있어도 예수님을 내 구주로 믿는 믿음을 끝까지 지키는 우리가 되길 바랍니다.
여섯째, 상 받기를 바라고 살았는가를 돌아보아야 합니다. 8절에 "이제 후로는 나를 위하여 의의 면류관이 예비되었으므로"라고 했습니다. 우리는 구원도, 영생도,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자격도, 권세도 오직 믿음으로 받았습니다. 우리의 행위나 노력의 결과가 아닙니다. 이것은 주님의 공로입니다. 그러나 이제 우리가 주님을 위해 사는 것은 반드시 보상을 약속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이제는 상 받도록 달려가야 합니다. 주 안에서 행한 너희 수고가 헛되지 않으리라고 했습니다. 주께서 반드시 심은 대로 거두게 하시고 행한 대로 갚아주실 것입니다. 30배, 60배, 100배로 보상해주실 것입니다. 그러므로 주님께 드린 시간, 물질, 헌신은 손해가 아닙니다. 빼앗긴 것이 아닙니다. 주님이 금세와 내세에서 분명히 갚아주실 것을 약속하셨습니다. 우리는 이 약속을 믿고 상 받기 위해 달려가야 합니다. "하나님께 나아가는 자는 반드시 그가 살아계신 것과 그를 찾는 자에게 상 주시는 이심을 믿어야 할찌니"라고 했습니다. 우리는 한 해 주님이 주실 상을 얼마나 사모하며 달려왔는지를 돌아보아야 합니다.
마지막은 주님의 나타나심, 재림을 사모하고 살았는가, 하는 것입니다. 8절 후반절에 "주의 나타나심을 사모하는 모든 자에게도니라"고 했습니다. 사도바울은 자신을 위하여만 아니라 주의 나타나심을 사모하는 모든 자에게 의의 면류관이 예비되었다고 말합니다. 우리는 주님이 반드시 다시 오실 약속을 믿습니다. 그 약속은 비록 언제 이뤄질 지 알 수 없지만 반드시 이루어질 것입니다. 우리는 그 날을 사모하고 살아야 합니다. 주님이 오늘 밤에라도 오실 수 있다는 맞이할 준비하고 있어야 합니다. '설마 오늘 오시겠나? 오늘 오시면 안 되는데!' 이런 마음을 가져서는 안 됩니다.
그렇다고 세상살이가 힘들다고 차라리 주님이 빨리 오시면 좋겠다는 생각도 해서는 안 됩니다. 현실을 기피하려고 주님 오시길 기다리는 것은 잘못된 신앙입니다. 우리는 우리 삶에 최선을 다하면서 항상 주 앞에 설 때를 사모하며 살아야 합니다. 그날에 부끄럽지 않도록 늘 깨어 준비하는 정결한 신부가 되어야 합니다. 벧전4:7,8절에 "만물의 마지막이 가까웠으니 그러므로 너희는 정신을 차리고 근신하여 기도하라 무엇보다 뜨겁게 서로 사랑할지니 사랑은 허다한 죄를 덮느니라"고 했습니다.
오늘 사도바울은 인생의 마지막을 맞으면서 이 일곱 가지를 생각했습니다. 우리도 올 한 해를 보내면서 이러한 것을 생각하며 다시 인생의 분명한 목적을 발견하고 새해를 맞이하고 달려가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