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춘분(春分)
서 정 인
나는 오늘 생전 처음으로 미국에 편지를 보냈다. 생전 처음이라니까 나이가 많은 것 같은데, 사실은 나는 올해 열일곱 살 된 계집애다. 고둥학교에 다닐 나이지만, 집안 사정으로 진학을 그만두고 집에서 어머니를 돕고 있다. 나의 어머니는 계모다.
나는 고양이가 기지개를 켜고 있는 예쁜 카드에다가, 오빠 부지런히 일해서 돈 많이 벌어요, 라고 썼다. 일주일 후면 이민 간 큰오빠의 스물여섯 번째 생일이다. 큰오빠는 작년에 떠나면서 자리가 잡히면 자전거 부품 가게를 낼 수 있도록 작은 오빠에게 돈을 부쳐 주겠다고 약속했다.그리고 가게가 잘 되면 작은 오빠가 나를 고등학교에 보내 주기로 되어 있었다. 지금 작은오빠는 고물상을 겸해서 작은 자전거 수리점을 하고 있는데, 헌 자전거 빵꾸나 때워 가지고서는 우리 네 식구 법 먹기에도 겨웁다. 그래서 오빠는 고물상을 한다. 자기 돈이 조금 있어야 하긴 하지만 그쪽이 더 수입이 좋다. 아마 사람의 손보다는 돈이 돈을 더 잘 버는 모양이다. 우리집 가게는 서향이어서 아침 나절 음지인데, 추운 겨울날, 오빠가 털 꺼진 구공탄 재 하나 옆에 놔놓고, 곱은 손가락으로, 손가락이 아무리 굵은 마디와 두꺼운 가죽으로 덮여 있어도 손가락을 조금도 무서워하지 않는 억척스런 고무타이어를 쇠바퀴로부터 비집어 까서 튜브를 꺼내 가지고 풀칠을 하고 있는 것을 보면 어린 속에도 짠한 색각이 든다. 그렇게 해서 오빠의 손가락이 벌어들이는 돈은 백동전 한 닢이다. 그런데 헌 차틀 사서, 손보고 기름치고 조이고 닦아(닦는 일은 나도 할 수 있다) 팔면 들어간 부속품값과 금리를 제하고도 몇천 원이 떨어진다.
그럴 때면 오빠는 아버지가 반대하는 것도 무릅쓰고 아빠 몰래 나에게 청바지도 사주고, 버너와 배낭도 사준다. 그렇게 해서 장만한 등산복을 차려 입고 친구들과 함께 등산을 간다. 그러면 나는 내가 고등학교에 다니고 있는 것 같은 생각이 든다. 그러나 나는 학교에 못다니는 것을 슬퍼하지 않는다. 말 이빨 같은 선생들을 안 보고도 학교 다니는 기분을 낼 수 있다면 그것이 더 나을지도 모른다.
우체국 앞 네거리는 항상 번잡하다. 나는 편지를 부치는 동안 잠시이지만 누가 자전거를 끌고 가버릴까 봐서 마음이 조마조마해진다. 그래서 일을 마치고 나오면 자전거가 여럿 틈에 끼여서 내가 세워 둔 자리에 비스듬히 한 발로 기대 서 있는 것이 새삼스럽게 대견스러워 보인다. 나는 자전거를 아스팔트 길 위로 끌고 나가서 한 발을 발판 위에 딛고 날름 안장 위에 올라앉았다.
그때 맞은편 제과점에서 용길이가 나오는 것이 보였다. 거리가 하도 붐벼서 그 뒤에 따라나오는 여학생이 그와 동행인지 아닌지 알 수 없었다. 그는 이쪽을 향하고 있었지만, 내가 자전거를 몰고 가서 앞바퀴를 그의 발부리에 들이댔을 때까지 나를 알아보지 못했다.
그는 눈이 뚱그래져서 얼굴을 붉히며 뒤를 돌아보았다. 거기에는 예쁘게 생긴 여자 고등학생 둘이 서 있었다. 그 애들은 나를 용길이와는 아무 상관없는 많은 행인들 중의 하나쯤으로 여기고 있는 눈치였다. 나는 갑자기 자전거의 방향을 바꾸고 힘차게 발판을 밟기 시작했다. 그리고 뒤도 돌아보지 않고 다음 네거리까지 단숨에 달려갔다. 신호등이 없는 네거리였으므로 양쪽 옆길에서 자동차가 튀어나올까봐 잠시 속력을 늦추었을 때 그가 숨을 헐떡이면서 달려와 나의 자전거 짐받이를 붙잡았다.·나는 자전차가 멈추었으므로 한 발을 땅에 딛
고 뒤를 돌아보았다. 그리고 처음으로 그를 발견한 것처럼 놀란 듯이 눈을 크게 뜨고 “어쩐 일이니?” 하고 말꼬리를 길게 뻬면서 물었다.
“너, 내 가슴 튼튼하지 않은 거 잘 알면서 왜 뛰게 하니?”
그가 숨을 헐떡이면서 볼멘 목소리로 되물었다.
“누가 뛰게 했게?”
“달아나려면 조금 빨리 달리지, 그게 뭐니, 잡힐 듯 잡힐 듯?”
“가봐라, 얘. 기다리겠다.”
“끝나고 나오는 길이야.”
“뭐가 끝나?”
“나 과외한다. 일주일 전부터. 영어하고 수학.”
“빵집에서 과외하니?”
“공부 잘 하라고 과외 선생이 한턱 쓴 거야.”
“잘 해봐라.”
내가 말했다. 듣기에 따라서는 부러움과 비꼼이 섞인 듯도 했지만, 사실은 나는 아무렇지도 않았다. 나는 천천히 자전거를 끌고 한쪽으로 길을 건넜다.
“그래, 잘 해봐야겠어. 선생 이 그렇게 부탁했거든.”
그가 따라오면서 말했다.
“선생을 위해서 공부하니?”
“그럼. 나를 위해서라면, 나는 놀았으면 좋겠어. 너랑.”
“너 참 한심하다. 선생 좋아라고 공부하니?”
“그렇다니까. 우리가 다섯이고, 우리 말고 또 두 그룹이 더 있어. 그 친구들 학교에서 받는 월급 말고 한 달에 십만 원을 올릴 거야.”
“그 친구들이 누구니?”
“영어 선생하고 수학 선생. 너 내, 한심한 줄 인제사 알았니?”
“아니. 니네 아빠 자전거 홈쳐다 팔았을 때부터 알았어.”
“그럼 맨 처음부터 알았다는 얘기 아냐?”
나는 그 애를 그 애가 즈네 아버지 자전거를 우리집 가게에 몰고와서 팔았을 때 처음 알았다. 그가 자전거를 가져왔을 때는 나는 집에 없었다. 며칠 뒤 한 남자가 그 자전거를 유심히 살피면서 팔 거냐고 물었다. 오빠는 잘 하면 자전거 한 대 팔게 된다 싶었는지 얼른 그렇다고 대답했다. 그러자 그 남자는 느닷없이 오빠의 팔을 꽉 붙잡고 같이 좀 가자고 말했다. 나는 즉시 뭐가 잘못 되었다고 생각했다. 전에도 그 비슷한 일이 한 번 있었다. 오빠는 그때 파출소까지 끌려갔었다. 그 남자는 그 자전거가 잃어버린 자기의 자전거라고 말했다.
오빠는 그의 손을 뿌리치고 고물 장부를 가지고 와서 펼쳤다. 그리고 그 자전거가 그의 것이 틀림없느냐고 물었다. 크 남자는 그렇다고 대답하고, 오빠의 허락도 없이 자전거를 불끈 들어올려서 길가로 끌어냈다. 그는 금방이라도 자전거를 타고 가버릴 것 같았다. 오빠는 미안하다고 말하고, 그 차를 판 학생의 주소가 있으니 거기부터 가보자고 했다. 그 사람은 어디냐고 물었다. 오빠가 장부를 보며 주소를 댔다. 그러자 그 사람은 눈에 띄게 기가 팍 죽었다.
결국 그 사람은 우리가 그의 아들에게 준 돈에다가 약간의 수리비와 대단히 미안하다는 말을 얹어서 오빠에게 갚고 자전거를 찾아갔다. 나는 어떻게 생긴 애가 저렇게 부모 속을 썩일까 하고 궁금하게 생각했다. 아마 아주 흉측하게 생겼을 것이라고 속으로 짐작을 했던 모양이었다. 용길이가 바지 호주머니에 두 손을 꽂고 어슬렁어슬렁 가게 앞으로 다가왔을 때, 나는 전혀 그에게서 아버지 자전거를, 도대체 자전거라는 물건을, 홈쳐서 팔 만한 데를 찾지 못했다. 그가 돌아간 뒤 오빠가 얘기를 해줘서야 나는 그가 자전거 도둑인 줄을 알았다. 나는 그를 퍽 착실하게 보았던 것을 수치스럽게 생각했다. 그는 자전거를 빌리려 왔었는데, 오빠가 아버지에게 혼나지 않았느냐고 묻자, 왜 혼이 나느냐고 되묻고, 자전거를 못 타게 해서 조금 불편하다고 대답했다. 그는 그렇게 해서 길이 트이자 그 뒤로 종종 자전거를 빌리러 왔는데, 이상하게도 그가 올 때마다 오빠가 가게에 없었다. 그래서 나는 그가 어디 골묵 같은 데에 숨어 있다가 오빠가 가게를 비우기만 하면 나타나는 것이라고 생각하게 되었다.
“이렇게 집에까지 걸어같 거니?”
내가 다리 하나를 자전거 위에 올려놓으면서 말했다.
“아냐, 난 또 수학해야 돼. 방금은 영어였거든. 아, 나의 신세도 처량하구나, 돼지 발톱에서 풀려 나오면 말 이빨에게로 가야 되니!”
“말 이빨?”
“그래. 말 이빨.”
“말 이빨한테 수학 배우니?”
“그래. 왜, 또 한심하니?”
“많이 배워라. 난 가봐야겠어.”
“넌 내가 열심히 공부해도 싫으니?”
“왜 싫으냐? 언제 내가 싫다고 했냐?”
“난 공부만 열심히 하면 네가 날 좋아할 줄 알았어. 그래서 아버질 졸라 과외도 한 거란 말야.”
“넌 여러 사람을 위해서 과외를 하는구나, 너만 빼고.”
“정말이야. 난 왜 이렇게 희생정신이 많은지 모르겠어. 난 남을 위해서 이 세상을 살고 있는 기분이야.”
“넌 위대한 사람 같은 소리를 하눈구나?”
“아무라도 위대한 사람 되면 안 되니?”
“위대한 사람 같은 소리만 하면 아무라도 위대한 사람이 되는 거니?”
“안 그러니?”
“그럼 이 세상에 위대한 사람 아닌 사람이 없게?”
“위대한 사람이 많으면 안 되니? 난 위대한 사람 같은 소리를 하고, 위대한 사람같이 보이면, 아무래도 위대한 사람이 되는 줄 알았다.”
“위대한 사람이 많아서 나쁠 리가 있니? 위대한 사람같이 보이는 사람 때문에 위대한 사람이 위대하지 않은 사람같이 보일까 봐서 그렇지.”
“넌 참 위대한 걱정을 하고 있구나?”
“걱정만 하면 뭘 하니?”
“정말이야. 쬐끔이라도 남을 위할 생각은 없니?”
“어떻게 하면 남을 위하는 거니, 과외수업말고?”
“같이 등산을 가주는 것도 위하는 거지.”
“이번 일요일에는 등산 안 가기로 했어. 다음 일요일에도 안 가고, 그 다음 일요일에도 안 갈 거야.”
“그렇다고 등산을 그만둘 것까지야 없지 않니?”
“말 이빨 집에 걸어갈 거니?”
“집으로 안 가. 여기다 방을 얻어 놓고 시간 맞춰서 모여.”
“이쪽으로 가니?”
“아냐, 반대쪽이야.”
“빨리 가봐라, 얘.”
“벌써 늦었어.”
“안 가겠니?”
“네가 가지 말라고 부탁하면 안 갈 수도 있어. 그렇지만 네가 그런 부탁을 할 리가 없지. 너는 착한 애니까. 나는 공부를 해서 좋고, 너는 나를 쫓아 버려서 좋고. 너는 참 차가운 에구나?”
그는 말을 마치자 홱 돌아서서 오던 길을 되돌아갔다. 나는 자전거 위에 걸터앉아서, 그가 사람들의 흐름 속으로 묻혀 버릴 때까지 고개를 돌려 어깨 너머로 그를 바라보았다. 그는 자전거를 훔쳤지만 착한 아이였다. 그에게 비하면 나는 차갑기는 하지만 전혀 착한 아이는 아니었다. 그는 내가 아직 학교에 다니고 있는 줄로 알고 있었다. 나는 그에게 내가 학교에 다니고 있다고 말한 적은 없지만, 학교에 다니지 않는다고 말한 적도 없었다. 나는 그가 돼지 발톱과 말 이빨에게 내가 말 이빨에게 당한 것보다 훨씬 가혹한 곤욕을 치르고 있다고 문득 생각했다.
말 이빨은 나의 중학교 이학년 적 담임선생님이었다. 그는 나를 대단히 귀여워해 주었다. 나는 그를 졸업한 뒤에 두 번 만났다. 그리고 두 번 다 혼이 났다.
처음에는 그때 무슨 영화인지 영화를 보고 나와서 영화관 앞 구멍가게 아주머니에게 번호표를 내주고 자전거 뒷바퀴에 채워 둔 자물통에 열쇠를 집어넣고 있는데, 누가 엎드린 나의 청바지 엉덩이를 손바닥으로 철썩 때렸다. 나는 깜짝 놀라서 돌아보았다. 말 이빨이었다. 나는 죄지은 사람처럼 얼굴이 붉어졌다. 그러나 그는 친절하게도 그의 자전거를 아주머니에게 맡기고 번호표를 받은 다음 나를 데리고 길 건너 빵집으로 가서 풀떡과 만두를 사주었다. 나는 배가 고프던 참이라 맛있게 먹었지만, 다음부터는 놀라지도 않고 얼굴도 붉히지 말아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는 나의 엉덩이를 두어 번 더 토닥거려 주고는 영화관 쪽으로 사라졌다.
두 번째는 그가 우리집 가게로 찾아왔을 때였다. 그때는 밤이었는데, 그는 술에 취해 있었다. 아빠랑 엄마는 나가고 없었고, 오빠는 가게문을 닫은 다음 대폿집에서 세탁소 아저씨와 술을 마시고 있었다. 그는 양철 문짝을 철렁철렁 두들겼는데, 내가 쪽문을 따주자 “빵꾸 때워 놓았어?”라고 말하면서 서슴없이 허리를 굽히고 가게 안으로 썩 들어섰다. 나는 그때사 그가 말 이빨인 줄을 알았다. 그의 자전거는 딴 자전거들과 함께 비좁은 가게 ¼에 차곡차곡 쌓이다시피 치워져 있었다. 나는 그를 도와서 그의 자전거를 통로 위로 끄집어냈다. 자전거들에는 줄도 많고 움직이는 부분도 많아서 서로 물고 늘어지는 바람에 우리들은 애를 먹었다. 그는 나에게 오백 원 짜리를 내주었다. 나는 방으로 가서 백동전 네 닢을 가지고 나와, 바퀴를 눌러 보고 있는 그에게 내밀었다. 그는 내 손을 덥석 쥐면서 잔돈은 나더러 가지라고 말했다. 나는 손을 냉큼 빼내오고 싶었지만, 그의 돈을 가지고 싶은 생각은 조금도 없었다. 말 이빨은 내가 잡힌 손을 뿌리치지 않자 나의 손을 꼭 쥐고 몇 번이고 흔들더니, 느닷없이 달려들어 또 한 팔로 나의 어깨를 끌어당기고 입을 맞췄다.
그의 숨결에서는 감 홍시 같은 냄새가 났고, 뾰쭉뾰쭉 돋은 수염의 그루터기들은 나의 뺨을 쩔렀다. 나는 숨을 멈추고 그가 놓아 주기를 기다렸다. 그는 벌겋게 달아오른 얼굴로 어린에처럼 허둥대며 자전거를 끌고 밖으로 나갔다. 나는 따라나가서 거스름 돈 네 닢을 고스란히 그의 저고리 호주머니 속에다가 떨어뜨렸다. 그는 비틀거리면서 몇 걸음 걸어가다가 버스가 지나가기를 기다려 그래도 민첩하게 자전거 위에 올라탔다. 그리고 곧 어둠 속으로 사라져 버렸다. 나는 문득 그가 측은한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초금 전에 그를 뿌리치지 않은 것은 혹 잘한 일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나는 집 안으로 들어가서 즉시 양치질을 했다.
집에는 어머니 혼자 가게를 지키고 있었다. 오빠는 예비군 훈련이라도 나간 모양이었다. 나는 잘못 들어왔다고 생각했다. 내가 청바지 입고 자전거 타는 것을 제일 싫어하는 것은 어머니였다. 어머니는 내가 집에서 빈둥빈둥 노는 것을 대단히 못마땅하게 생각했다. 그것 때문에 오빠는 어머니와 여러 차례 싸웠다. 그럴 때마다 내가 무슨 장화홍련이라도 된 것 같은 기분이 되었다. 나는 장화처럼 가련해지고 싶은 생각은 눈꼽만큼도 없었다. 아빠가 나를 나무랄 때, 만일 그것이 조금이라도 어머니 머릿속에서 나왔다는 눈치가 보이면 나는 사정없이 아빠한테 대들었다. 아빠가 무슨 배좌수냐고.
아빠는 더러 나에게 뭐라고 하고 싶어도 그 소리가 듣기 싫어서 참는 것 같았다. 오빠는 달랐다. 오빠는 뭐든지 내 편이었다. 뭐든지. 오빠가 제일 싫어하는 것은 고쳐 놓은 손님의 자전거를 임자가 찾아가기 전에 딴사람이 타는 것이었다. 그것은 그 동안에 임자가 나타나지 않아도 마찬가지였다.
언젠가 나는 남의 자전거를 타고 나가서 자전거 주인을 삼십 분 동안 기다리게 한 적이 있었다. 손님이 투덜대면서 그 동안 어디가 상했을까 봐 여기저기 늘러 보고는 자전거를 끌고 나가자 오빠가 나에게, “너 차 하나 맞춰 준다는 것이 바뻐서 여태 틈이 없었구나. 내, 내일은 틀림없이 하나 짜주지”라고 말했다. 나는 소녀지만 슬픈 노래와 눈물은 질색이다. 안 그랬더라면 그때 나는 울었을지도 모른다. 지금 타고 다니는 자전거는 그렇게 해서 오빠가 이것처것 두들겨 맞춰서 짜준 것이다.
나는 자전거를 가게에다 세워 두고 살림방으로 갔다. 가겟방이 내 방이지만, 마치 무슨 볼일이 있는 것처럼 골목을 빙 돌아 안집으로 들어갔다. 그리고 우울하고 메마른 기분이 되어 어머니의 목소리가 들려오기를 기다렸다. 한참을 기다려도 가게 쪽은 조용했다. 그래서 나는 섣불리 혹 허씨가 개과천선한 것이나 아닌가 하고 생각했다. 그것은 물론 잘못이었다. 어머니는 소리를 던지는 대신에 어느새 돌아왔는지 방문을 뉼고 얼굴을 들이밀었다.
“어디 아프냐?”
“아니요.”
“허긴 아프면 돌아다닐라고. 왜 일어서냐Y
“가게가 비었지 않아요?”
“가게문 닫아야 할까 보다.”
“오빤 어디 갔어요?”
“예비군 쪽지가 나왔다. 연기해 달라고 중대장한테 간다더라.”
어머니는 나한테 무슨 할 말이 있는 모양이었다. 나는 모른 체하고 가게로 나갔다. 오빠 일이 걱정되었다. 오빠 일이라면 즉 우리 식구들의 일이었다. 아마 또 오박육일이 나온 모양이었다. 만일 그것이라면 금년에는 좀 빠른 셈이었다. 그렇지 않아도 오빠는 그것이 나올 때가 다가온다면서 은근히 걱정을 하고 있었다. 날씨가 풀리고 따뜻해지자 자전거를 찾는 사람들이 부쩍 늘었으므로 오빠는 돈만 여유가 있으면 차나 한 열 대 떼어다 맞춰서 달아매 놓으면 좋겠다고 했다. 그것도 더워지기 전이 한철이었다. 지금 엇새 동안 문을 닫으면 그 한철에 구멍이 뻥 뚫릴 것은 뻔한 일이었다. 작년에도 그렇게 해서 퍼렇게 든 멍이 한여름 더위를 타고 찬바람이 건듯건듯 일 때까지 갔었다.
“너는 말만큼 큰 아이가 허구한 날 놀러만 다닐 셈이냐?”
어머니가 가게로 들어오면서 말했다. 아마 좋게 말하지 않기로 방침을 바꾼 모양이었다.
“왜요? 어디 식모 부탁이라도 또 받았어요?”
“식모는 싫으냐?”
나는 허씨를 쳐다보지도 않고 빵꾸 때우는 상자 위에 쭈그리고 앉아서 눈앞에 있는 자전거 뒷바퀴를 손가락 끝으로 뱅글뱅글 돌렸다.
“술집이에요?”
내가 말했다.
“술집도 괜찮겠냐? 빵집도 있고, 살림집도 있다마는. 도청 다니는 사람이라더라.”
그녀의 목소리가 갑자기 은근해졌다. 나는 그녀의 기대를 짓밟고 싶은 생각은 없었지만, 거짓말을 하고 싶은 생각은 더욱 없었다.
“아니요. 다 싫어요.”
“다 싫어? 다? 너, 너는 철 좀 들면 안 되냐?”
“철들 때가 되면 어련히 들까 봐서 그래요?”
오빠가 말했다. 언제 돌아왔는지 그는 가겟방에 있었다. 그는 방문을 열고 문턱에 걸터앉아 신을 찾아 꿰고 우리들을 지나 밖으로 나갔다. 밖에는 손님이 자전거를 끌고 와서 서 있었다. 그는 손님 때문에 방을 나왔다. 손님은 중학생이었다.
“잘 한다, 잘 해.”
어머니가 말했다. 오빠가 내 편역을 드는 것이 찰 한다는 것인지, 내게 이야기를 다 끝내기도 전에 마치 숨어 들어와서 엿듣고 있었기라도 했던 것처럼 불쑥 나타난 것이 잘 한다는 것인지 잘 알 수 없었지만, 아마 위쪽이었을 것이다. 어머니는 오빠 없을 때 내게 더 이야기하지 못한 것이 분통이 터졌을 것이다. 오빠는 자전거를 맡아서 한쪽에 세워 두고 가게 안으로 들어왔다.
“저 애를 내 생각대로 야간 학교에라도 넣는 건데 잘못했어요. 그랬더라면 회사에 들어가기도 쉬웠지요.”
“지금이라도 집어넣어라. 언제는 고등학교 나오면 취직 잘 될 줄 몰라서 안 보냈냐?”
어머니가 말했다. 그리고 옷자락으로부터 찬바람을 일으키며 밖으로 나갔다. 그러나 내가 학교를 다닌다는 것은 생각만 해도 참을 수 없는지 그녀는 몸을 홱 돌이켜서 다시 가게 안으로 들어왔다.
“그렇잖아도 지금 몇 군데 알아보고 있어요.” 오빠가 말했다. “고등공민학교 같으면 당장이라도 집어넣을 수 있어요.”
마침내 어머니의 홧보가 터졌다. 그녀가 말했다.
“뭐라구? 당장 집어넣을 수 있다구? 너는 쟤가 학교 다니면 공부를 할 줄 아느냐?”
“학교에 가서 공부를 하지 뭘 하겠어요?”
오빠가 수리 상자를 집어 들면서 말했다. 나는 이야기가 이상한 데로 흘러간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그것이 남의 이야기인 것처럼 흥미를 느꼈다. 나는 어머니의 입을 쳐다보았다. 그것이 한쪽 구석에서부터 씰룩거리면서 이지러지기 시작이다.
“학교 선생을 끌고 와서 해괴한 수작을 하는 애가 학교에서라고 행실이 온전하겠니?”
나는 오빠를 쳐다보았다. 마치 오빠가, 오빠는 남자이기 때문에, 그 말의 뜻을 제대로 알아듣지 못했을까 봐 걱정이라도 하는 것처럼. 오빠는 집게로 자전거 바퀴를 까다 말고 어머니를 쳐다보았다.
“무슨 말씀이세요, 어머니?”
“무슨 말인지는 쟤한테 물어 봐라. 더 잘 알 거다.”
어머니는 의기가 양양해서 가게 밖으로 나갔다. 그리고 오빠가 멍하게 뒤를 바라보았지만, 이번에는 되돌아오지 않고 골목을 돌아갔다. 오빠는 다시 바퀴를 까기 시작했다. 나는 난감했다. 애매하게 오빠한테 꾸중을 듣고 싶은 생각도 없었고, 오빠의 마음이 시원하도록 변명을 할 재간도 없었다. 꾸중을 하던, 변명을 듣던, 그것은 오빠의 마음이었다. 나는 오빠에게로 다가갔다. 오빠가 손을 내밀었다.
“뭐?”
내가 조금 퉁명스럽게 말했다. 그리고 오빠가 원하는 집게를 집어주었다.
“편지 부쳤냐?”
오빠가 말했다. 오빠는 바퀴를 빙 둘러서 다 까고 튜브를 끄집어내고 있었다.
“카드를 보냈어요.”
내가 말했다. 오빠는 꺼낸 튜브에다가 바람을 넣었다.
“카드? 예쁜 걸 골랐냐? 한복 입고 그네 타는 게 좋더라.”
“고양이가 그려진 카드였어요.”
물 대야를 오빠 곁에 갖다 놓으면서 내가 말했다.
“고양이?”
오빠는 살대 사이로 튜브를 차례로 끌어당겨 물속에다 폭 집어 넣었다. 거품들이 한 군데서 방울방울 솟아올랐다.
“동사무소에 간 일은 잘 되었어요?”
“동사무소?”
오빠는 튜브 터진 데를 찾아내고 그곳이 닿았을 타이어 부분을 뒤집어 까서 거기에 박힌 가시를 집게로 꼬집어 냈다.
“연기가 안 되었군요?”
“부모가 죽거나 본인이 아프면 몰라도 안 그러면 하루에 만 원씩 손해를 봐도 안 되는 모양이더라.”
“만 원만 큰 돈이우? 가난뱅이 천 원이 부자 만 원보다 더 큰지 작은지 어떻게 알아요?”
“그러니 누가 귀찮게 그걸 따지고 있냐?”
“이번에도 육 일 동안이우?”
옵바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는 튜브를 사포로 문지른 다음 물을 바르고 있었다.
“너 용길이라는 애 아냐?”
오빠가 헌 튜브 한 가닥을 오려 내면서 말했다. 나는 가슴이 뜨끔했다. 오늘은 모든 일이 이상한 쪽으로만 풀리는 날인 모양이었다. 나는 용길이를 아주 나쁜 애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그를 알고 있는 것만으로도 수치스러운 일이었다. 조금 전에 어머니가 ‘해괴한 짓’을 했다고 나를 모략했을 때에도 아무렇지도 않았던 얼굴이 확 붉어지는 것을 나는 느꼈다.
“아버지 자전거를 훔쳐다 판 애요?”
“그 애 아버지를 동사무소에서 만났다. 자전거를 물리러 왔던 사람 말이다. 채석장을 하는데, 하루 안 나가면 만 원을 손해 본단다. 그래도 연기가 안 되더라. 나는 말도 변변히 못 내보았다. 돈이란 있는 사람에겔수록 더 귀한 법이다.”
오빠는 풀칠이 마르기를 기다려 개 혓바닥처럼 늘어진 헌 튜브조각을 튜브 터진 데에다 붙였다. 그리고 수리통 위에다 얹어 놓고 그 부분을 망치로 잘근잘근 짓이겼다.
“그 사람도 여러 가지로 골치를 썩이는군요.”
내가 뻔뻔스럽게 어른처럼 말했다. 나는 남을 무더기로 팔아 넘기는 기분이 되었다.
“용길이 이야기냐? 용길이는 부모 속 썩이는 애가 아니더라. 부모 속을 썩여도 몸이 허약해서 썩이면 썩였지, 자전거를 몰래 훔쳐 팔아서 썩이는 애는 아닌가 보더라. 그 애가 우리집에 가지고 온 자전거는 아버지 자전거도 아니고, 아버지가 사준 자전거도 아니고, 지가 돈 모아서 산 자전거라고 하더라.”
오빠는 엄지 손가락 끝으로 튜브 때운 데를 꽁꽁 눌렀다. 그리고 바람 넣는 데를 테두리 구멍에다 끼워 넣고 튜브를 창자처럼 타이어 속에다 비집어 밀어 넣었다.
“제 돈으로 산 자전거는 놀고 다니면서 까먹자고 팔아도 괜찮아요?”
“제가 그러든? 지네 아버지는 다르게 얘기하더라. 담임선생이 과외를 하는데, 그 과외수업을 못 받게 했더니 몰래 자전거를 팔아서 돈을 내고 아버지한테는 잃어버렸다고 한 모양이더라.”
“왜 과외를 못 받게 해요? 채석장 하는 사람이 돈이 없어서요?”
내가 말했다. 오빠는 타이어 한 끝을 테 가녘에다 빙 둘러서 다시 말아 넣었다. 나는 그에게 펌프를 집어 주었다.
“몸이 약해서 그랬다더라? 중학교 때 너무 과외를 해서 허파를 상한 모양이더라. 침윤인가 뭔가 돼서 의사는 약을 먹고 쉬어야 한다고 그런단다. 그것이 아마 쉬운 말로 폐병이라는 걸 거다.”
오빠는 튜브에다 바람을 넣었다. 납작해진 타이어가 부풀어 오르면서 자전거를 조금씩 밀어 올렸다. 오빠는 엄지 손가락 끝으로 바퀴를 한 번 눌러 보고는 안장을 손바닥으로 철석 때렸다. 끝난 모양이었다.
“문 닫을 거요?”
“닫아라.”
“차 맞추던 거 마저 끝 안 내요?”
“내일 해야겠다.”
오빠는 더러운 대야물에 손을 씻었다.
“어디 나가요?”
“금방 다녀오겠다. 용길이 아버지가 한잔 더 하자고 할 때 할 걸 그랬다.”
오빠는 가게문을 닫았다. 그가 계속해서 말했다.
“그 양반은 장교 출신이라 마흔이 넘어서 훈련 들어간다. 내가 국민학교 삼학년 다닐 때 그 양반 제대했더라.”
“밥은 안 먹을 거요?”
내가 조금 화를 내서 말했다.
“먼저 먹어라.”
오빠는 가게 밖으로 나갔다. 그의 두 어깨가 축 처져 있었다. 나는 또 어머니와 단둘이가 되어야 할 모양이었다. 폐병이 들면 죽을까? 나는 컴컴한 가게 바닥에 쭈그리고 앉아서 생각했다. 볼이 발그레하게 상기되고, 광대뼈가 특 불거지도록 말라서 마침내는 대꼬챙이처럼 되어 죽어 갈까? 누가 문짝을 두들겼다. 자전거를 탁긴 중학생이었다. 나는 돈을 받고 차를 내주었다.
밖은 어두워지고 있었다. 나는 거리로 나갔다. 안에서 무슨 소리가 나는 것 같았었다. 밝은 낮부터 술하령을 했는지 아버지가 저쪽에서 비틀거리며 걸어오고 있었다. 아버지를 보자 나는 문득 내가 과외를 마치고 기가 죽어서 터벅터벅 돌아오는 용길이와 우연히 마주치게 될 것을 기대했었는지도 모른다는 것을 깨달았다. 나는 걸음을 멈추고 서서 아버지가 부딪쳐 오기를 기다렸다. 아버지는 앞에 누가 서 있는 지도 모르고 머리끝을 혼들면서 다가왔다. 그는 백 원만 있으면 흡족하게 취했다.
“아버지!”
“어, 어? 오냐. 어디 가냐?”
“오빠 봤어요?”
“네 오래비가 나 술 사주는 줄 아냐?”
“술 더 하시게요?”
“그만 헐란다.”
아버지는 벌써 나를 지나쳐서 걸어가고 있었다. 나는 그의 뒷모습을 바라보면서 아버지도 측은하다고 생각했다. 그가 오빠에게 “네 동생이 나 술 사주는 줄 아냐?”라고 말해도 전혀 이상한 일이 못 될 것 같았다. 나는 갑자기 어른이 된 기분이었다. 나는 다시 걷기 시작하면서 들어갈 때 생소주 작은 병 하나라도 사야겠다고 생각했다.
오빠는 모퉁이 대폿집에 없었다. 그 옆집에도 없었다. 아마 기분을 내려고 시내에라도 들어간 모양이었다. 나는 능구렁이 같은 할망구 집 문을 열어 볼까 했으나 그만두었다. 그때 바로 그 마귀할멈 같은 할망구의 목소리가 들려 왔다.
“아버지 찾으러 왔냐?”
나는 소스라치게 놀라서 홱 돌아보았다. 그녀는 문짝을 비죽이 열고 얼굴을 내밀면서 상냥하게 웃어 보였다. 나는 어금니가 몽창 나가서 그녀의 입 안이 횡하게 비어 있는 것을 보았다. 그녀가 입을 흐물거리면서 말을 계속했다.
“금방 나갔는데 못 만났냐? 아이고 내 새끼, 좋게도 생겼다.”
그녀는 마치 내 손목이라도 붙잡을 기세였다. 나는 기절초풍을 해서 도망을 치는 대신에, 마주 보고 씽긋 웃었다. 이번에는 그녀가 놀랄 차례였다. 해가 빠지고, 무르익은 봄날의 거리에는 어둠이 안개처럼 끈적끈적하게 깔려 오고 있었다.
(『벌판』, 나남, 1993)
2016년 5월 9일 읽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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