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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마을에 어래산(387m)이라는 경승 좋은 산이 있는데 이태조에 얽힌 전설이 전해지고 있다.
공민왕으로부터 남달리 총애를 받고 있던 배극렴은 왕의 시역(弑逆)사건이 일어나자 정사에 뜻을 잃고 그 부인과 함께 충주 고을로 낙향하였는데 그가 어느곳에 은거하는 지는 아무도 알지 못했다.
배극렴은 어래산 동굴을 찾아 세상에 다시 나오지 않기로 작정하고 야인생활을 하고 있었다.
그 당시 좌우군 도총사였던 이성계(李成桂)가 왕실을 장악하게 되자, 그의 정권과 대외적인 명분상으로 고려 중신인 우현보, 이색, 정몽주, 배극렴등을 그의 자문직으로 절실히 필요하게 되었다.
그러나 한결같이 불사이군(不事二君)의 뜻을 고집한 우현보, 이색등은 하옥하고 정몽주는 격살하였다.
반면 배극렴의 행방이 묘연해지자 수소문끝에 충주 모 산중에 은거한다는 소문을 듣고 이성계가 직접 세 번에 걸쳐 찾아 가서야 배극렴을 만나게 되었으며,
솔직한 집권계획 등을 밝히고 앞 으로 개국공신이 되도록 간청하여 다시 정사에 나서게 되었다.
그 후 이 고을 사람들은 이태조가 세 번씩이나 이곳을 찾아 왔다고 해서 마을 이름을 삼방리(三訪里)라 하고 그 산의 이름 또한 어래산이라 칭하였으며, 배극렴이 땔나무를 하던 골짜기를 배나무골, 그 부인이 베틀을 놓고 베를 짜던 굴을 베틀굴이라고 부른다.
또 이태조가 배극렴과 첫 번째 만나서 국사를 의논했던 산정(山頂)을 국사봉(國事峰)이라 부르고 있다.
제공자 또는 참고문헌 : 충주의 향토사 (1998) 충주문화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