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아일보가 민족의 표현기관으로 자임하려면
동아일보는 스스로 잘못 낀 단추부터 정갈하게 고치시라
잘못 낀 단추는 처음부터 다시 시작하지 않는 한 여전히 옷을 비뚤게 만든다. 시작이 반이라는 말도 이와 별반 다르지 않다. 사오정은 옆에서 아무리 경고해도 자아도취에서 헤어 나오질 못한다. 오늘의 사오정은 동아일보 사설을 쓴 논설위원이다.
2월 28일자 동아일보는 독립유공자의 불행한 처우에 대해 정부를 씹고 있다. 맞다. 잘못이 있다면 호되게 회초리를 들고 반성할 때까지 내리쳐야 한다. 결과 놓고 따지면 국가유공자 특별히 독립유공자 후손의 넉넉지 못한 현실이 보도될 때마다 우리가 모두 가슴 아픈 동질감을 느끼게 된다.
한편 정부와 담당 공무원 입장에서는 법과 원칙에 따라 처리해야 옮음에도 여론에 밀려 심판대에 오르는 심정을 모르는 바는 아니다. 하물며 작은 정부를 주장하는 소위 보수언론에서 매사를 정부가 나서서 챙겨야 한다고 공격하니 '어느 장단에 맞춰 춤을 춰야 하나'라는 하소연이 나올 수도 있다.
문제는 동아일보 자신이다. 일제 강점기에 손기정 옹의 가슴에 걸린 일장기를 지운 자긍심이 지금도 엿보인다. 1면의 제호 옆에 '민족의 표현기관으로 자임함'은 그 예이다. 그러나 실상은 그렇지 못하다. 사실과 배경을 생략하고 정부만 씹으면 정론지가 된다고 착각한다. 동아일보는 현실과 역사적 배경은 외면하는 '자아도취'성 사오정 증후군 환자다.
부끄럽지만 부정하지 못하는 현대사가 있다. 친일하면 3대가 떵떵거리고 독립운동하면 3대가 거지 신세를 면치 못했다. 정부수립 이전 1947년 남조선과도입법의원이 제정한 '민족반역자 부일협력자 전범 간상배에 대한 특별법'은 부일세력이 협력자인 관계로 미군정이 거부한다. 정부수립 후 48년 제헌의회는 '반민족행위처벌법(반민법)을 제정하고 이에 따라 반민특위가 구성됐다. 그러나 오히려 간첩협의로 주도세력이 체포되었고 법안도 폐기되었다. 결국 반민족 부역 행위의 법적 역사적 평가는 실패했다.
반면에 학봉 선생 후손 김용환은 일제의 눈을 피해 노름꾼에 파락호로 매도되면서 현재가치 2백억 원을 독립운동에 헌사 하였다. 후손조차 이 사실을 몰랐고, 50년이 지난 1995년에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 받고서야 가족과 세상에 알려지게 되었다. 실상 독립운동가들의 활동상은 증언과 방증에 의할 뿐 알 수 없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그나마 김용환 선생은 안동의 이름난 가문의 종손이었기에 해방 후에도 명맥을 이을 수 있었다.
중국과 만주, 러시아 일대의 독립운동가 후손 가문은 2대 3대를 훌쩍 지나온 경우가 대다수다. 조상이 쓰던 우리말마저 잃어가는 분들에게 80년 전의 조상의 독립운동 내역과 혈족임을 증명하기란 사실상 불가능하다.
잘못 낀 단추란 이때 쓰는 말이다. 때는 역대 정권이 놓치고 매는 참여정부가 맞고 있다. 정신대에 강제징용된 할머니들도 엄연한 피해자였지만 어물쩍 넘어갔다. 미국을 제외한 해외에서 독립운동에 헌신한 분들의 경우는 더 심각하다. 혹 '적성국가'였다는 핑계를 댄다면 변명거리에 불과하다. 올해로 중국과 수교 15주년이다.
동아일보는 여기에 한 술 더 뜬다. '간첩 사건 연루자나 좌익 폭동 가담 의혹 세력'은 추앙하고 보상하면서 '국권 회복과 자유민주주의' 기여한 분들에게는 소홀하다는 주장이다. 빼놓을 수 없는 독립운동가 몽양 여운형 선생에게 건국훈장 '대통령장'을 추서한 해는 불과 2년 전(2005년)이다. 동아일보는 독립운동가에게마저도 사상 검증의 잣대를 들이댄다.
동아일보는 내뱉기식 사설은 자아도취와 면피용으로는 적당할지 모른다. 그러나 분명한 점은 제호 왼쪽에 새겨진 '민족의 표현기관으로 자임함'이란 문구는 동아일보가 스스로 새겼다. 문구에 부끄럽지 않은 행동을 해야 한다. 독립운동가 후손의 열악한 현실은 현대사의 비극과 역대 정권의 무관심이 녹아있는 우리 시대의 아픔이다.
정부에 '네 탓'이라고 발뺌하고, 대통령을 '남 탓'하는 인물의 전형으로 만들기 전에 동아일보 자신부터 과거의 영화(?)에서 벗어나길 권한다. 해방 후 자사의 보도행태부터 반성하고 순국선열과 애국지사 혹은 드러나지 못했던 독립운동가와 후손이 합당한 예우를 받도록 스스로 잘못 낀 단추부터 정갈하게 고치시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