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배역을 흡수해 ‘송강호만의 것’으로 표현해내는 ‘괴물배우’…연극판에서 ‘눈물 젖은 빵’ 견뎌내고 한국영화의 대들보로 성장
배우 송강호(47) 주연의 영화 <변호인>이 천만 관객을 동원한 역대 한국영화 리스트에 이름을 올렸다. 송강호 자신이 주연을 맡았던 영화 <괴물>이 기록한 한국 영화 최다 관객수(1301만 명)를 따라잡을 기세다. 지난해 여름 성수기에 빙하기 지구의 <설국열차>에 올라탄 배우 송강호는 가을에는 조선시대로 날아가 사극 <관상>으로 이름을 날리더니 세밑에는 80년대를 다룬 영화 <변호인>의 주인공으로 열연했다. 3개의 작품에 무려 2천만 명을 넘는 관객을 불러모았다. 명실상부한 ‘충무로 블루칩’의 진가를 보여준 배우 송강호, 그의 연기의 아우라는 어디서 나오는 것일까?
주연을 맡은 개봉작마다 흥행몰이에 성공해 ‘3연타석 홈런’을 기록한 송강호는 2013년 대종상 영화제 남우주연상, 한국영화평론가협회상 남자연기자상을 휩쓸었다. 연말에 그는 몸이 열 개라도 모자랄 정도로 바빴다. 지난해 12월 27일 서울 롯데호텔 2층 그랜드볼룸에서 한국영화배우협회가 주최한 ‘영화배우 송년의 밤’ 현장.
2013년 한국영화 관객수 2억 명 돌파를 자축하는 이날 행사의 하이라이트는 ‘2013을 빛낸 톱스타상’을 수상할 배우 송강호의 등장이었다. 각 부문의 수상자가 호명될 때마다 웅성대던 객석이 일순 조용해지더니 곧이어 아쉬움의 탄성이 터져나왔다. 수상자 송강호가 연이은 팬미팅과 행사 참여로 인한 감기몸살로 병원에 입원해 시상식에 불참하게 됐다는 소식이 전해졌기 때문이다.
시상자로 단상에 섰던 배우 안성기 씨도 못내 아쉬웠던 모양이다. 안씨는 송강호가 소속된 기획사 관계자에게 대신 상을 전달하면서 “송강호 씨는 진짜로 연기를 잘하는 것 같다. 어제 밤에 박중훈 씨가 전화를 걸어와 ‘예전에는 제가 함부로 대했던 후배인데 영화를 보고 놀랐습니다. 한마디로 존경하게 됐습니다’고 말했다”며 배우 송강호의 연기력을 칭찬했다.
안씨는 신성일·남궁원 등 한국 영화계의 기라성 같은 원로들이 앉아 있는 자리에서 “송강호 씨가 오래오래 우리 영화계를 이끌어가는 배우가 됐으면 한다”는 바람을 전했다. 1997년 영화 <넘버3>의 조연으로 영화계에 이름을 알린 배우 송강호가 16년 만에 흥행배우로서만이 아니라, 연기력을 갖춘 특급 배우로서 입지를 굳히는 순간이었다.
‘청문회스타’ 노무현을 법정으로 옮기다
자타가 공인하는 송강호의 힘은 어디에서 나오는 것일까? 영화계 관계자들은 배우로서 송강호의 탁월함은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본능적인 연기력에다 어떤 배역이라도 송강호 만의 것으로 표현해내는 독특한 능력에 있다고 말한다. 한마디로 타고난 연기의 달인으로 어느 배역도 그에게 가면 송강호만의 캐릭터가 되어버린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보자. 영화 <변호인>의 주인공인 ‘송변’(송우석 변호사)은 전 국민이 다 아는 고 노무현 대통령이다. 하지만 송강호는 노 전 대통령과 제대로 대화 한 번 해본 적이 없다고 한다.
‘하늘 같은’ 고향선배(송강호는 경남 김해출신으로 김해고등학교를 졸업했다)이긴 하지만 그는 노 전 대통령과 친분이 거의 없었다. 이창동 감독 등과 함께 한 자리에서 인사를 나누는 등 모두 세 차례 만나 인사한 기억은 있지만 제대로 밀도 있는 대화를 나눈 기억은 없다고 했다. 하지만 송강호의 인생에서 노무현은 생생하게 살아 있었다. 바로 국회 5공비리 청문회장에서 강렬하게 재벌회장을 질타하던 국회의원 노무현의 모습이었다.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보자. 1988년 11월 9일. 국회의 5공비리 청문회 중 일해재단과 관련된 증인 청문회장. 당시 통일민주당 초선의원 노무현은 전두환 대통령이 설립한 일해재단에 돈을 낸 증인(당시 유모 풍산금속 회장)을 몰아붙인다.
“풍산금속은 재벌순위 50위쯤 되는 기업인데 무슨 돈을 그렇게 많이 냈는가? 절대 권력을 가지고 있는 권부에는 5년 동안 34억5천만 원을 가져다주면서 내 공장에서 내 돈 벌어 주려고 일하다가 죽은 노동자에 대해서는 4천만 원, 8천만원 가지고 그렇게 싸워야 했느냐? 그것이 도덕인가? 그것이 기업이 할 일인가?”
청문회장에서 노무현 의원은 격앙된 목소리로 재벌에 비판적인 국민 감정을 자극하며 증인을 매섭게 질타한다. 노 의원은 변호사 출신답게 예리한 논리로 증인의 논리를 반박하며 TV 생중계를 통해 시청하던 국민들에게 강한 인상을 남긴다. 송강호는 <변호인>에서 당시 ‘청문회장의 노무현’을 그대로 법정으로 옮긴 뒤 ‘송강호만의 색깔’을 입혀 ‘송변’을 표현해냈다. 영화에 빠져든 관객들이 법정 장면을 보고 청문회를 보는 듯한 카타르시스를 느낀 것은 이 때문이다.
영화계 인사들은 영화 <변호인>에 송강호가 없었다면 지금 같은 흥행이 어려웠을 것으로 본다. 영화를 연출한 양우석(45) 감독이 처음에 주인공으로 염두에 둔 배우는 <7번방의 선물> 에 등장한 배우 류승룡이었다고 한다. 하지만 부산 사투리 구사에서 막혔다.
우여곡절 끝에 송강호와 연결됐지만 송강호 역시 처음에는 거절했다. 제작 발표회 당시 송강호의 말에 따르면 “과연 한 사람의 인생, 한 단면을 그 사람에게 누를 끼치지 않고 자신 있게 표현할 수 있을지 겁이 좀 났다”는 것이 이유다. 아무래도 대통령이었던 고인의 이야기를 다룬다는 부담이 컸던 것이다.
하지만 <변호인>의 출연 계약서에 도장을 찍자마자 송강호는 엄청난 집중력을 발휘하기 시작했다. 원래 충무로에서 송강호는 연습하지 않고 대사를 하는 배우로 알려져 있다. 그는 감독의 ‘액션’ 사인이 떨어지면 동물적인 몸의 반응에 의지하며 대사를 소화해낸다. 즉석에서 구사하는 애드립도 뛰어나다. 영화 <관상>에서 송강호와 함께 연기한 것이 행운이었다는 배우 이종석은 “송강호 선배는 대사를 가지고 논다고 말할 정도로 대사의 톤이나 억양을 자유자재로 구사한다”고 말한 바 있다.
그런 송강호도 이번에는 촬영 전에 지독한 대사 연습을 거쳤다. 송강호는 영화 개봉 전 제작발표회에서 “연기한 이래 대사 연습은 처음이었다. 촬영 4~5일 전에 먼저 세트장에 가서 혼자 연습을 했던 적도 많았다”고 털어놓았다.
실제 <변호인> 촬영장에서 송강호는 ‘송 랩퍼’라는 별명을 얻었다. 법정 속 변호인으로서 대사의 양도 많은데다 어려운 법정 용어를 쓰면서도 속사포처럼 부산 사투리를 내뱉어야 했기 때문이다. 촬영 때마다 스텝진을 압도한다는 배우 송강호가 가진 특유의 카리스마가 이번에는 110% 발휘됐다는 후문이다.
<변호인>은 “노무현 아닌 송강호의 영화”
영화 <변호인>이 가진 영웅탄생의 드라마 문법, 영화적인 재미는 배우 송강호의 연기에 거의 전적으로 의지하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송강호는 초짜 국회의원 노무현의 당시 국회 청문회 장면을 떠올리며 이를 영화 속 법정으로 옮겨 누구도 대체할 수 없는 ‘송강호만의 노무현’을 만들어냈다.
1988년 당시 국회의원 노무현은 세련된 여의도 정치와는 거리가 멀었다. 겁 없는 이 ‘초짜 의원’은 재벌회장인 증인이 퇴장하자 증언대를 향해 자신의 이름이 씌어진 명패를 집어던질 정도로 자기 감정에 충실했다. 그는 나중에 자신의 국회의원으로서 ‘품위 잃은 행동’을 사과했지만 이런 명언을 남겼다.
“증언의 내용과 (명패를 던진) 저의 행위 중 어느 것이 더 비난받아야 하는지요?” 그리고는 “힘을 가진 자는 결코 스스로 물러서지 않는다. 결단과 행동을 주저하는 사람들의 행동을 촉구하고 집단적 힘을 모으기 위해 선동은 필요하다”는 자신의 철학을 벼랑 끝까지 밀어붙여 국회의원도 되고, 장관도 되고, 대통령까지 된다.
배우 송강호는 극중의 송우석 배역을 위해 서투르지만 의협심에 불탔던 당시의 ‘청문회 스타’ 노무현을 기억해내고는 온몸의 털끝이 곤두설 정도의 긴박감 있는 상황을 만들어내는데 성공했다. 여기에 송강호도 놀랄 정도로 동물적인 연기력을 갖췄다는 후배 곽도원(40)이 상대역인 고문경찰 차동영으로 등장해 불꽃 튀는 문제의 장면이 만들어졌다.
이런 과정을 거쳐 다음과 같은 극중 송강호의 명대사가 탄생한다. “이것은 서울대에서 추천하고 있는 서적들입니다. 대한민국 최고 교육기관이 불온집단입니까? 그럼 서울대 나온 판사님, 검사님도 불온집단 출신이시네요?” “많은 사람들이 모여 한 국가가 생기는 것입니다. 대한민국 주권은 국민에게 있고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 국가란 국민입니다”
영화계에서는 <설국열차>와 <관상>이 ‘충무로의 블루칩’이라는 송강호의 이름값을 증명했다면, <변호인>은 송강호의 연기인생에서 분수령을 이루는, 질적 변화를 보여주고 있다는 평을 내놓고 있다. 그동안 영화 속에서 캐릭터를 연기하는 송강호의 자세는 다소 절제되고 냉정한 편이었다는 게 평론가들의 대체적인 시각이다. 그러나 <변호인>에서 송강호는 금방이라도 폭발할 듯한 뜨거운 에너지를 분출한다.
극중 송우석은 송강호의 성씨에 양우석 감독의 이름을 합해 만든 인물이다. 그러고 보면 ‘송변’은 다름 아닌 송강호 자신이나 다름없다. 그래서였을까? 그는 <변호인>에서 송우석이라는 캐릭터를 극단으로 밀어붙인다. 영화 속 마지막 공판에서 그의 목소리는 갈라지고, 얼굴은 분노로 흥분돼 금세 붉어진다. 평소 송강호의 스타일과는 다르다. 한 영화 마니아는 이를 두고 “송우석이 되기 위해 송강호를 내던졌다”고 표현하기도 했다. 이로 인해 극중의 법정장면은 등장인물들이 칼 끝에 서 있는 듯한 극도의 긴장감을 만들어냈다.
송우석으로 열연한 그의 연기력에 대해 송강호와 일해 본 감독들은 칭찬 일색이다. <공동경비구역 JSA>에서 호흡을 맞췄던 박찬욱 감독은 “지금까지 수많은 영화에서 송강호의 명연기를 봐왔지만, 앞으로 송강호는 <변호인>의 배우로 기억되리라 믿는다”고 극찬했다. <괴물>과 <설국열차>를 통해 누구보다 배우 송강호를 잘 아는 인물로 통하는 봉준호 감독은 “충격과 감동을 받았다. 지난 오랜 세월 우리는 송강호라는 배우를 스크린에서 봐왔지만 변호인에서 놀랍고 새로운 송강호의 모습을 보게 됐다”고 말했다. 이쯤 되면 대배우의 탄생이다.
<변호인> 영화를 본 관객 박모(44) 씨는 “마지막 롱테이크로 찍은 장면이 뇌리에서 떠나지를 않는다. 자신을 위해 변호인으로 나서준 부산지역 변호사들의 이름이 호명돼 일어설 때마다 법정에 피고인으로 앉아 있는 송우석의 눈에 눈물이 떨어지지 않아도 송우석은 이미 울고 있다. 그걸 지켜보는 관객들은 더 처연해질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대부분의 관객에게 깊은 울림을 준 명장면이기도 하다.
송강호는 자타가 공인하는 충무로의 블루칩이지만 처음부터 그 자리에 오른 것은 아니었다. 송강호 하면 생각나는 것은 <넘버 3>에 등장했던 3류건달 ‘조철’처럼 말을 더듬거리고 약간은 ‘희극적’으로 보이는 덜떨어진 캐릭터다. 허름한 잠바를 걸친 채 ‘논두렁깡패’인지 ‘형사’인지 구별이 안 갈 정도로 촌스럽게 등장하는 <살인의 추억>의 경찰 ‘두만’, <놈놈놈>에서 만주벌판을 내달리는 우스꽝스런 건달 ‘윤태구’, 금쪽같은 외아들의 죽음을 끝내 막지 못한 못난 관상가 아버지 ‘내경’ <관상> 등 송강호는 왠지 엘리트보다는 서민 스타일에 어울린다.
서민형 배우로 대중에 친근감
동료 배우들에 따르면, 송강호는 ‘눈물 젖은 빵’을 베어 먹는 고난의 세월을 살았던 사람이다. 동료 연극배우로서 송강호가 어려웠던 시절인 1995년 11월 아무 것도 없던 송강호와 결혼한 황장숙 씨가 말한 대로 송강호는 “성공과 실패, 산전수전을 다 겪은 사람”이다.
1967년생인 송강호는 김해고등학교를 졸업한 뒤 연극판에 뛰어들어 1991년 연극 <동승>으로 데뷔했다. 지금도 그렇지만 연극판은 배고프다.
영화 <넘버3>에 함께 출연한 배우이자 송강호가 활동했던 극단 ‘연우’의 선배인 배우 안석환(55)은 “저래서 어찌 살까 걱정될 정도로 힘들었던 때도 있었다”고 말했다.
영화 <변호인>에서 국밥집 아주머니(김영애)에게 진 빚을 갚는 극중 송변의 모습이 자연스러웠던 것은 송강호가 이처럼 눈물 젖은 빵을 먹어본 세월이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송강호는 영화계에 들어서면서부터 연기력을 인정받아 살림이 펴기 시작한다. 그는 1997년 그는 <넘버 3>에서 삼류건달로 일약 주목을 받으며 그해 대종상 신인남우상과 청룡영화제 남우조연상을 수상했다. 이후 <쉬리> <공동경비구역 JSA> <반칙왕> 등을 통해 송강호만이 소화할 수 있는 캐릭터를 창조하며 연기파 배우로서 입지를 굳히게 된다.
이어 박찬호 감독의 <복수는 나의 것>과 <친절한 금자씨>, 봉준호 감독의 <살인의 추억> <괴물> <설국열차> 등에 출연하면서 연기력과 흥행력을 겸비한 충무로 최고의 배우로 올라선다. 어렵게 살아온 세월이 있어서 그런지 송강호의 영화 속에서 가장 강렬한 장면 중 하나는 바로 ‘먹는 신(Scene)’이다.
<공동경비구역 JSA>에서 북한군 장교로 등장해 초코파이를 먹는 장면이나 <살인의 추억>에서 게걸스럽게 짜장면을 먹는 장면, 영화 <변호인>에서 돼지국밥을 먹는 장면이 전혀 어색하지 않다. 실제의 송강호는 닭백숙이나 돼지국밥 등 국물에 들어있는 고기는 좋아하지 않지만 영화 속에서는 관객들도 눈치채지 못하게 기가 막히게 소화해 낸다.
송강호의 연기력은 타고났다는 것이 영화계의 대체적인 평가다. 영화저널리스트 박혜은은 “한마디로 ‘송강호는 송강호다’ 이렇게 표현할 수밖에 없다. 그는 수많은 ‘대표작’ 속에서 언제나 ‘가장 송강호다운 연기’로 대중과 평단의 열렬한 지지를 이끌어낸다”고 말한다.
박씨는 송강호의 초기작인 2003년 <살인의 추억>의 명대사인 “밥은 먹고 다니냐?”는 대사를 그 대표적인 사례로 거론한다. 이 평범한 대사는 서울에서 내려온 형사를 측은하게 바라보는 시골형사 송강호의 특유한 말투와 억양이 키포인트다. 미세하게 떨리는 안면 근육, 건들거리며 정돈되지 못한 그의 눈동자와 맞물려 감정의 클라이맥스를 이룬다. 그 장면에 딱 어울릴 만한 배우라는 느낌을 갖게 한다.
배우로서 송강호는 학습이 아니라 본능적으로 연기하는 배우로 알려져 있다. 오죽하면 배우 최민식으로부터 “감각이 아니라 상황을 몸으로 만들어내는 본능적 감각”이 있다는 말까지 들었다고 한다. 송강호는 극중 대사를 즉흥적으로 만들어내는 애드리브에도 능할뿐더러 촬영현장에서는 선후배와 동료들을 챙기는 인간미까지 보여주는 배우로 알려져 있다.
송강호의 장점은 매번 다른 배역을 능청스럽게 잘 소화해낸다는 것이다. 영화 속 송강호는 매번 다르게 등장한다. 그는 과거의 캐릭터를 반복하는 것이 아니라, 본능적으로 자신만의 것으로 새롭게 캐릭터를 만들어낸다. 연기자로서 그는 능수능란하고 능소능대하다. 그는 <설국열차>나 <박쥐> 같은 실험적인 영화도 찍지만 <놈놈놈>이나 <관상> 같은 대중영화도 마다하지 않는다. 워낙 독보적인 연기를 선보이기 때문에 대체 불가능한 배우라는 찬사를 받기도 한다.
송강호 “연기는 묘사가 아닌 모사”
송강호만의 연기철학은 뭘까? 그는 자신의 연기에 대해 이렇게 말한 적이 있다. “탁자 위의 페트병이 있다고 칩시다. 내가 이 병을 그려야 해요. 만약 묘사를 한다면, 이 페트병 그대로 그리는 거잖아요. 그러면 똑같은 것 이상도 이하도 아닌 거죠. 저는 연기는 묘사(描寫)가 아니라 모사(模寫)가 돼야 한다고 생각해요. 나만이 그린 페트병, ‘송강호만의 페트병’의 모습이 있어야 하는 거죠.
모사라는 것은 페트병의 본질이 무엇인지 찾아내서, 그걸 표현하는 거예요. 실물이랑 똑같이 그리면 “잘했네. 똑같아, 오케이” 그러고 끝이에요. 그 이상의 감동은 없죠. 그런데 페트병의 본질을 찾아내서 송강호의 색을 입혀서 그려내면 “진짜 페트병보다 더 진짜 같은 페트병!”이라는 느낌을 끌어내는 거죠. 그게 연기의 본질이 아닐까 생각해요” 관객들이 송강호 연기를 이해할 수 있는 중요한 단서인 셈이다.
영화는 ‘변형하거나 가공한 현실’이다. 따라서 영화 <변호인>은 송강호 영화인생의 분수령이 됐지만 영화 속에서 중요하게 등장하는 ‘부림사건’은 신중하게 평가돼야 한다는 여론이다. 전두환 정권 초기인 1981년 발생한 ‘부림사건’은 공안 당국이 사회과학 독서 모임을 하던 학생과 교사, 회사원 등 22명을 영장 없이 체포해 불법 감금하고 고문해 기소한 사건이다. 당시 공안 당국이 용공조작한 대표적 사건인 서울대 학림사건에 빗대어 ‘부산판 학림사건’이라고 부르던 데서 붙여졌다.
법원은 현재까지 부림사건 관련자들의 계엄법 위반에 대해서만 재심을 거쳐 무죄를 선고했을 뿐, 국가보안법 위반 등 주요 혐의에 대해선 유죄 판결을 유지하고 있다. 부림사건은 김대중 정부 때 과거사 진상규명 사건에 포함되기도 했지만 결국은 진상규명 대상에서 빠졌다. “민주화운동이 아니라 실제 공산주의 운동이었다”는 반론도 만만치 않기 때문이다.
1980년대 초중반에 실제 공산주의 서적이 국내에 은밀히 유통되고 있었던 것은 사실이기도 하다. 게다가 부림사건은 노무현 정부 출범 이후 집중 부각됐다는 특징이 있다. 영화에서와 달리 실제 부림사건에서는 노무현 변호사가 당시 부산의 인권변호사였던 김광일 변호사의 부탁에 따라 변론을 맡게 된다.
‘노변’은 부림사건 피고인들을 변호한 다수의 변호인 중 한 명이긴 했으나 실제 극중에서처럼 온 몸을 던져 변호한 것은 아니었다는 게 당시 관련자들의 증언이다. 영화에서는 피고인들이 2년 후에 가석방된다는 대사가 나오지만 실제로는 피고인들에게 5~7년의 중형이 선고됐다. 영화에 나오는 군의관의 결정적 증언도 드라마적 요소를 극대화하기 위한 허구적 장치다.
때문에 <변호인>은 노 전 대통령의 인생에서 모티브를 얻긴 했지만 노 대통령의 전기 영화는 아니다. 노 전 대통령을 추모하는 ‘정치영화’ 라기보다는 돈이 전부였다가 세상의 부조리를 확인하고 자기 성찰을 통해 인권에 눈을 뜨게 되는 과정을 그린 ‘성장영화’로 보는 것이 맞다.
송강호는 영화 개봉전 제작발표회에서 “이 영화는 정치적 잣대로 평가받으려 출발하지 않았다. 대중영화라는 출발점에서 그 시대에 우리 주변사람들을 통해 현재의 사람들에게 많은 ‘느낌’을 주려 했다”고 말했다. 영화의 흥행결과로만 놓고 본다면 100% 송강호의 의도를 달성한 셈이다. 어느 배역이든 그만의 것으로 만들어버리는 이 괴물배우에게 우리 국민들은 또 한 번 기분 좋게 당했다.
나권일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