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발, 황등행 열차는 20시에 떠나네.(제113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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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면초가에 몰린 유비손을 구해내고 자신도 살기 위한 노삼택의 건수란 그 발상이 이렇게 시작된다. 그것은 송민호 일행이 보안사에 끌려간 그 날 새벽, 강창성이로부터 "알아서 대처하라!"는 전화를 받은 후, 유비손과 노삼택은 그 날 오전 10시경 청와대로 사표를 제출하러 갔으나, 박정희가,
"임자, 그릇이 그거밖에 안 되는 거야! 김대중이 때문에 국제적으로 실추된 내 체면도 살려내고 좀 더 열심히 하라는 자극을 임자한테 주기 위해, 내가 임자의 사조직을 전부 잡아넣으라고 보안사에 명령했어. 그러면 나에게 뭔가 한 건을 또 보여 줄 생각은 안하고 이렇게 사표를 내면 날 보고 어떻게 하라는 거야!? 임자답지 않게 사람이 왜 그렇게 옹졸해!?" 하면서 박정희는 유비손의 등을 다독거리며, 두툼한 하사금까지 쥐어준다. 그리고,
"임자, 또 한 건 잘 해봐, 그럼 임자의 그 사조직을 내가 밀어 줄게." 라고 했다.
여기에 유비손은 감지덕지하며,
"가가가... 각하! 화화화...황공무지로 소이다!" 하고는 일단 사표를 되돌려 받고 노삼택과 남산으로 되돌아오고 있었다. 그 차안에서 유비손의 귀에 계속 맴도는 것이 있었다. 그것은, 박정희가 하사금을 쥐어주며.
-그러면 나에게 뭔가 한 건을 또 보여 줄 생각은 안하고 사표를 내면 날 보고 어떻게 하라는 거야!?-라고 한 소리였다.
유비손은 한숨을 쉬며 그것을 곰곰이 생각해 보았다. "이런 경우가 바로 등치고 간 빼먹겠다는 것인데, 앞으로 정말 큰일이다. 그렇다고 사표를 억지로 던지고 올 용기도 없었고..."
그렇다! 그들은 박정희가 어느 날 갑자기 불러 그만 두라면 둬야되고, 그 반대로 그만두고 싶은 의사표시를 해도 그가 "더 해!" 라고 하면 그 자리를 죽든 살든 지켜야된다. 청와대에 들어가 박정희로부터 사표를 되돌려 받을 때는,
"이제 살았다!" 했는데 앞으로 또 어떻게 무엇을 한 건 해내야만 된단 말인가? 유비손은 그 앞에 시커먼 장막이 턱! 가려지는 암담함을 느꼈다.
노삼택도 운전석 옆에 앉아 그렇게 벙어리 냉가슴을 앓고있는 뒷좌석의 유비손을 룸밀러를 통해 힐끔거리며 보고만 있자니 참으로 못 할 짓이었다. 그래서 궁여지책으로,
"부장님, 너무 걱정하지 마십시오, 제가 각하의 체면도 회복시켜드리고 부장님 입장도 세울 수 있는 세상이 깜짝 놀랄 작전코드가 있습니다."여기에 유비손은 별로 놀라지도 않고 그냥 덤덤한 반응을 보이며,
"그게 뭐뭐뭐...뭔데!?" 하고 물었다.
"있습니다. 그런 것이!" 노삼택은 의기양양하게 답했다. 그러나 유비손은 맥 빠지게,
"그런가? 그렇다면, 난 이쯤해서 내려주고 다섯 시쯤 남산으로 들어 갈 거니까 그때쯤 내 방으로 오게." 하고는 신세계 백화점 앞에서 내렸다. 유비손이 거기서 내린 이유는 그 백화점에서 화랑을 경영하며 대학에 출강도 나가고 있던 김열모를 만나기 위해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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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열모?! 그는 서울대학교 미술대학에서 동양화를 전공하고 미국 워싱턴 대학에서 회화를 전공한 화가다. 유비손이 그를 찾아간 이유는 그가 당시 내 노라 하는 정 재계 인사들에겐 잘 알려져 있는 관상학과 사주의 대가이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그는 인성 적으로 기본이 되어 있지 않은 사람은 당사자가 제아무리 큰 세도가나 재력가라 하더라도 그 관상이나 사주를 봐 주지 않았다. 그러는 그가 5.16직후부터 알게 된 유비손은 어떻게 보았는지 형 동생하며 둘 사이는 친분이 두터웠고 유비손의 앞날을 딱딱 예견해 주었다. 그리고 그것은 정확하게 맞아 들어갔다.
유비손이 군대 내에 문화예술에 소질이 있는 사병들을 중심으로 한 사조직을 키우려 했던 것도 그의 조언 때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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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서 잠깐, 유비손이 자신의 사조직을 키운 그 내력을 훑어보기로 한다. 그러니까 10월 유신 직전에 유비손은 그의 집무실에서 김열모와 바둑을 두다가 김열모가 불쑥,
"형님, 요즘 정규 육사출신 원나회 세력들 때문에 골치가 아프시죠!!?"
"?? 왜!!? 내 어어어...얼굴에 그렇게 쓰여져 있나!!?"사실 그 즈음 유비손은 청와대에 들어가면 원나회 때문에 그 후원자인 경호실장 박종규와 보이지 않는 알력 다툼이 있었다. 그는 그 때문에 스트레스를 적지 않게 받고있었다.
"형님, 장기 알과 바둑돌을 비교 해 보신 적이 있습니까!?"
"??.....!!??"
"장기알은 각기 계급이 있고 맡은 역할이 있습니다. 그러나 바둑돌은 계급도 없고 그 어떤 역할이 정해지지도 않았습니다. 즉, 바둑돌은 군대로 말하면 사병이고 장기 알의 위계질서로 말하면 졸(卒)들입니다. 그러나 그 힘과 그 묘수, 그 술수는 장기판의 그것들과는 비교가 되지 않습니다."
"오호!!" 유비손의 눈이 빛났다.
"형님, 군대 내에 형님의 사조직을 하나 키우시지요."이렇게 단도직입적으로 말하면서 김열모는 유비손의 눈치를 보았다.
"오오오...오호라 무궁 무진한 수를 발휘하고 무무무...무궁무진한 힘을 바바바...발휘 할 수 있는 사병들로 구성 된 나만의 사사사...사조직을 키우란 말인가!?" 눈치 9단인 유비손은 즉시 감을 잡았다.
"그렇습니다. 원나회는 육사인맥이라는 선후배간의 위계질서, 또는 그 계급이 주는 상명하복, 그런 것이 생명의 링처럼 짜여져 있지 않습니까!!?"
"!!....!!"
"그에 비교해서 이 흑백의 바둑돌 같이 그 겉모습이 솔직 담백하고 단순 명료하며 아무것도 아닌 것처럼 보이는 사병들로 구성 된 군대 내의 사조직을 하나 키우는 것입니다. 그러면 그 세력들은 장기판의 그 알들과는 비교 할 수 없는 무서운 세력이 될 것입니다."
"오호라!!" 하면서 유비손을 무릎을 탁 쳤다. 여기에 힘을 받은 김열모는 내친 김에 그 리더로 그의 친조카인 김창민 대위를 천거하며 그에 대한 프로필을 설명했다.
"오호!! 듣고 보니 괜찮은 친구로군. 내내내 내가 각하께 일단 보고를 드리고 그 친구를 그 조조조...조직의 리더로 정 하겠네."
바로 이런 사연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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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유비손은 뭐 골치 아픈 일이 발생하면 그를 찾았다. 유비손이 그의 화랑에 들어서자 마침 김열모는 자리에 있었다.
"김화백 자자자...잘 계셨는가?" 김열모는 반색을 하며,
"아니, 남산의 두목 님께서 연락도 없이 이런 누추한 곳까지 납시었습니까? 만약 제가 없었으면 헛걸음하실 뻔했습니다. 하하하" 하면서 푹신한 소파를 권했다.
"서당개 3년이면 푸푸푸...풍월을 한다고 나도 당일 일진정도는 대충 보보보...볼 줄 안다고... 소소소...손가락을 짚어 보니 김화백이 자리에 있다고 나오더군 하하하 " 김열모는 유비손의 안색을 잠시 살피더니, 엄지를 세우며,
"이곳에 다녀오시는 길이시지요?" 하고 물으며 자신도 건너 편 소파에 마주 앉았다. 여기에 유비손은 그 정도를 알아 맞춘다는 것은 김열모의 평소 기본 실력이기 때문에 별로 놀라지도 않고 고개만 끄덕했다.
"형님, 형님이 키우려고 하셨던 그 사조직은 실패했지요? 저는 이미 그것을 알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형님께 그것을 권한 이유는 그 조직이 싹도 틔우기 전에 비록 실패는 했지만 그래도 형님은 그런 구상을 하신 분이다! 라는 것이 훗날 인구에 회자되기를 바랬기 때문입니다."
"나도 그그그... 그것이 자랑스럽게 생각되네, 고고고...고맙네 그런 좋은 아이디어를 주어서..." 하면서 유비손은 김열모에게 진심을 전했다. 여기에 김열모는 유비손에게 바짝 다가앉아,
"형님, 바둑에서 장고 끝에 악수(惡手) 둔다는 말 아시지요? 유신이 바로 그겁니다. 즉, 그것은 악수 중에 악수입니다. 이것 때문에 이 정부는 반드시 자신들이 만든 호구(虎口)에 빠져들게 될 것입니다. 즉 유신(維新)은 유신((幽神)이 되고 말 것입니다."라고 귓속말로 전했다. 여기에 유비손은 안색이 허옇게 질리며,
"마마마 맞아, 나나나...나도 자꾸만 그런 부부부...불길한 예감이 든다고..." 역시 귓속말이었다. 이어서 김열모는,
"내 년 이 맘 때, 청와대에선 큰 초상이 날것입니다." 팅! 여기에 유비손은 손을 부들부들 떨며,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