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날씨
절반만 믿기로 한다
여기까지는 내가 틀렸다고 치고
남은 세월은 부록이라 치고
절반을 완성하는 일이
당신 없는 세상에서 할 수 있는 최선일 것이다
절반을 보고
절반을 듣고
절반을 믿으면서
매일 다른 감정을 밀 것이다
보일러실 앞에 서서 구름을 본다 구름에 누워 보일러실을 내려다보는 것과 무엇이 다른가, 겨울이 가고 봄이 왔지만 구름에겐 계절이 없다 나는 이제 아무 것에도 집중하지 않는다 나는 매일 내 일부를 소비하면서 살지만 나를 구성하고 있는 성분들은 모두 귀찮은 것들이란 것을 안다 삶과 죽음은 비율의 문제지만 오늘도 길 위로 교회 봉고차가 지나갔다 출입구도 없는데 내 육체를 드나드는 온갖 소문과 감정들 그리고 주술들이여, 나는 보일러실 앞에서 서서히 흩어지고 구름은 층계가 없는 계단을 내려온다 어쩌면 현실은 매일 다르게 발견되는 구름의 감정을 닮았을 것이다
사랑하기에 헤어진다는 말과
같은 맥락으로
실패하기 위해 산다는 말은
인생을 더욱 풍요롭게 한다
누구도 인생의 행방을 책임질 수 없다
진지한 표정은 이제 미덕이 되지 못하고
사소한 농담만이 좌표를 가졌다
손톱이 하는 일을 발톱은 모르고
소리가 하는 일을 시선은 모른다
우리는 외로워서 더욱 사소해졌고
시차를 극복하지 못한 여행객의 눈으로
반갑게 인사를 나눈다
실패는 이미 그 전부터 시작 되었다
먼 친척뻘 되는 구름이 몰려왔을 때 난 외면할 수 없었다 내가 무관심했던 날씨의 사춘기와 구름의 노후에 대해 난 다시 생각해 보았다 난 그 동안 흩어져 사는 혈육을 만났던가 슬픔과 이해할 수 없는 분노가 단단해지는 동안 내가 가진 다른 것들은 기형이 돼가거나 대부분 오늘의 날씨를 견디지 못하고 녹았다 나는 좀더 유연하게 걷고 구름의 심리에 대해 주의할 필요가 있었다 사랑은 원래 있었던 것이 아니라 그때그때 모였다가 흩어지는 것이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