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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지경을 설해 주시다.
일지경 一紙經【2-4】
1. 자경문(自警文)
三日修心千載寶 百年貪物一朝塵
삼일수심천재보 백년탐물일조진
삼일간 닦은 마음은 천년의 보배요,
백년간 탐한 재산은 하루 아침의 먼지로다.
2. 법성게(法性偈)
雨寶益生滿虛空 衆生隨器得利益
우보익생만허공 중생수기득이익
금은보화를 허공 가득 비내려 중생들을 이익하게 하는데
중생들은 그릇 따라 이익을 얻는다.
3. 신심명(信心銘)
夢幻空華 何勞把捉 得失是非 一時放却
몽환공화 하로파착 득실시비 일시방각
꿈이요 환영이요 헛꽃인 것을 얻었다 잃었다 옳다 그르다를
일시에 놓아버려라.
4. 전법게(傳法偈)
假使頂戴經塵劫 身爲床座遍三千
가사정대경진겁 신위상좌편삼천
若不傳法度衆生 畢竟無能報恩者
약불전법도중생 필경무능보은자
가령 부처님을 머리에 이고 수억 만년을 지내거나
이 몸이 넓고 넓은 평상이 되어 부처님을 모신다 하더라도
만약 불법을 전하여 사람들을 제도하지 못한다면
끝끝내 부처님의 은혜를 갚을 길이 없으리라.
지난 겨울 AI를 엔간히 졸업했다고 하신 큰스님의 다음 행보가 궁금했다.
<다음카페 염화실>에는 화엄전을 방문하는 분들의 사진이 올라오는데 큰스님과 함께 다같이 일지경을 들고 읽으시는 모습이 자주 눈에 띄었다.
첫 번째 장대교망 녹인천지어가 나오는 프린트 말고 두 번째 삼일수심이 들어간 일지경을 이번에 받았다.
“이거 한 번 읽어봐. 삼일수심 이거는 내 출가동기.”
“삼일수심천재보 백년탐물일조진”
대선스님이 또박또박 읽으시고 “해석도 읽을까예?” 하셨는데 큰스님께서
“아냐, 우린 유식한 사람끼리 모였으니까.” 하면서 2번으로 넘어가라고 하셨다.
“우보익생만허공 중생수기득이익”
대선스님이 읽으셨다.
“2번 이거 가지고는 우리 인생사, 불법, 모든 것을 나는 여기서 다 해석해, 우보(雨寶) 하늘에서 다이아몬드가 그냥 비 쏟아지듯이 쏟아지는 것이 뭐냐, 우리가 사람으로 태어났다고 하는 사실이야. 안 그래? 이 세상에 생명체가 얼마나 많아. 그런데 우린 사람으로 태어났잖아? 와, 이거는 하늘에서 다이아몬드가 비 쏟아지듯이 쏟아진다는 비유가 그거 밖에 없어서 그렇지. 그거보다 훨씬 더 가치 있는 거야. 그렇게 해서 허공 가득히 쏟아져서 우리들에게 다 쏟아붓는데 전부 왜 다르게 사느냐! 다르게 사는 게 정신적으로도 다르게 살고, 종교적으로도 다르게 살고, 그다음에 뭐 주식적으로도 다르게 살고 물질적으로도 다르게 살고 전부 그 사람의 마음씀씀이 그릇 따라서 이익을 얻는다. 이건 몇날며칠 이 구절 하나만 가지고 설명해도 설명 다 못하는 거라. 인생으로 태어난 것도 마찬가지일 것이고, 거기서 불법 만난 것도 역시 우보익생만허공이야. 거기서 화엄경 만난 것은 더욱 우보익생만허공이야.”
*
“몽환공화 하로파착 득실시비 일시방각”
대선스님이 읽으셨다.
“참 좋은 말이야. 신심명에 있는 것, 우리 인생사 세상사 무슨 대통령 하느니 장관을 하느니 무슨 큰 그룹을 경영하느니 하는 게 우리가 이렇게도 생각할 수 있어야 돼. 몽환공화다. 거기에 나 돈 좀 벌었다, 주가 좀 올랐다 어떻다 하는 게 득실시비야. 그걸 일시방각하라.”
“한 순간에 놓아 버려라.”
“아, 이거 멋진 말이야. 신심명 좋아하는 것 중에 이걸 아주 좋아해. 사실 몽환공화거든. 그 다음에.”
“가사정대경진겁 신위상좌편삼천 약불전법도중생 필경무능보은자”
“이것도 대선스님 같은 법사는 익숙해야 돼. 우리가 부처님을 가령 머리에 이고 수억만 년을 지낸다. 부처님을 위한답시고, 또 이 몸이 넓고 넓은 평상이 되어서 부처님을 모신다라고도 할 수 있어. 신위상좌편삼천. 그렇게 이 몸이 가루가 되도록 부처님을 위해서 한다 하더라도 약불전법도중생이면 필경무능보은자라. 만약에 법을 전하여서 중생을 제도하지 못한다면 끝내 부처님의 은혜 갚을 길이 없다. 내가 어제 아주 내 마음에 딱 드는 스님을 찾았어. 직지사 선원장이라. 그 스님이 그전에도 법문을 많이 했거든? 금강경도 잘하고. 잘해. 유마경도 했지? 그 스님이 아주 전통파 불교인이라. 불자가 맨 먼저 경을 공부해야지 어떤 보살이 어떤 논문을 잘 써 가지고 설명해 놓고 한다더라도 전부 경전을 가지고 재해석한 거지, 설사 뜻이 가슴에 확 다가오지 못한다 하더라도 그래도 줄기차게 한 구절이라도 더 읽어라. 의성스님이라고. 내내 그 소리 하더라고. 그런 생각이 나하고 아주 많이 똑같애.”
*
며칠 뒤에 강릉 어느 절에서 신도들 한 40명을 데리고 오면 이 일지경을 한 장씩 주고 설명해주실거라고 했다.
녹음을 해달라고 부탁드렸는데 “누가 녹음하노?” 하셨다.
한달이나 지나 들어보니 그날 일지경 한 장을 다 설명해주셨다는 걸 알았다.
요즘 큰스님께서 즐겨 드시는 과자라고 하시면서 낱개로 포장된 한과를 주셨는데 법문을 설해주시는 줄도 모르고 포시락 거리면서 과자를 먹는 소리도 같이 녹음되었다.
*
법회 끝나고 집에 돌아오자마자 일지경을 노래로 만들어서 <다음카페 염화실 감사메모방>에도 올렸는데 ‘삼일수심 노래가 매우 뛰어나네요. 감사합니다.’라고 큰스님께서 답글도 남겨주셨다.
*
2월에는 이세간품 7권의 서문을 노래로 만들어 놓고 계속해서 들었다고 말씀드렸다.
‘보살은 연꽃과 같아서 자비는 뿌리가 되고 편안함은 줄기가 되며 지혜는 꽃술이요 계율은 편안한 향기로다’로 시작되는 서문도 경전에 다 나온 글이라고 하셨다.
그 전에 ‘내가 마땅히 일체 중생을 위하여 집이 되리니 모든 괴로운 일을 면하게 하려는 연고이니라’라는 가사가 나오는 십회향품 서문을 노래로 만들었을 때 큰스님께서 다음날 “노래가 좋다.”라고 전화를 주셨다.
집이란 모든 괴로운 일을 면하게 하는 곳이구나, ‘집’이라는 말이 문득문득 생각이 났다.
오늘 다시 들어보니 ‘내가 마땅히 일체 중생을 위하여 등불이 되리니 끝까지 청정한 곳에 머물게 하려는 연고이니라’ 할 때, ‘끝까지’라는 말에서 마음이 환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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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날 대선스님이 유튜브를 틀으셔서 다 같이 화엄전에서 이세간품 서문 노래를 들었다.
“이거 만들기 쉬워?”
하고 큰스님께서 물으셨다.
“네.”
“자꾸만 만들어 올려.” 하셨다.
이윽고 상강례
법회의 시작
오늘이 정월 열나흘 날이다. 내일 보름 준비한다고 상당히 바쁘셨을텐데, 피치 못해 못 오시는 분들도 계시다. 여가가 나지 않는데도 또 일기도 불순한데 억지로 참기름 짜내듯이 시간을 내서 신심과 원력으로 이렇게 장거리, 먼 거리를 오셨다. ‘무엇보다 자기 자신에게 가장 좋은 일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해본다.
여기 젊으신 스님들도 많지만 연로하신 노장님들이 상당히 많으시다. 제가 늘 배우는 바가 많고 가슴에 울리는 바가 많다. 몸도 편찮으신데, 서로 꼭 말을 해야 되는 건 아니고 너무 감사하다. 노장님들 실어 나르신다고 기사 노릇 하시는 분들도 애쓰신다.
우리가 이세간품 일곱 권을 몇년 차에 걸쳐서 하고 있다. 지금 여섯 권째 마무리 단계로 넘어가고 있다.
어른스님께서 항상 제일 좋아하시는 품이 이세간품이다. 왜 그런가 하면 이세간품이 바로 보현행원, 화엄경을 그대로 구현하는 품이기 때문이다.
이세간(離世間), 세속적인 자리이타의 욕심을 떠나서 보현보살이 불화장엄삼매 불화엄삼매에 들어가서 설법하는 것이 이 이세간품이다.
오늘 매화꽃이 저렇게 많이 피었지만 꽃으로서 벚꽃처럼 피었다가 그냥 아무 맥락없이 져버리면 그걸 속일 광(誑)자 광화(誑花)라고 한다.
꽃이 피면 한결같이 꽃 속에는 꿀이 담긴다. 그래서 반드시 달콤한 열매를 맺는다. 그 열매 과육 속에 또 다른 씨앗을 야무지게 잉태해 나간다. 결실 결과를 추구하는 것이다.
그런 결과 증득은 반드시 행을 통해 이루어진다. 신해만 가지고는 안 된다. 신해행증(信解行證)을 해야 된다.
그런 것을 화엄경에는 5주 4분설이라고 한다.
이 5주에 대해서 분명한 이해가 있어야 된다.
법화경은 3주 설법이라고 하고, 화엄경은 5주설법이라고 한다.
大方廣佛華嚴經 卷第五十八
離世間品 第三十八之六
四. 普賢菩薩의 二千答
6. 四十七問의 等覺位答
(20) 菩薩의 十種求法
佛子야 菩薩摩訶薩이 有十種求法하니 何等이 爲十고 所謂直心求法이니 無有諂誑故며 精進求法이니 遠離懈慢故며 一向求法이니 不惜身命故며 爲除一切衆生煩惱求法이니不爲名利恭敬故며爲饒益自他一切衆生求法이니 不但自利故며爲入智慧求法이니 不樂文字故며爲出生死求法이니 不貪世樂故며 爲度衆生求法이니 發菩提心故며爲斷一切衆生疑求法이니 令無猶豫故며爲滿足佛法求法이니 不樂餘乘故라 是爲十이니 若諸菩薩이 安住此法하면 則得不由他敎一切佛法大智慧니라
“불자여, 보살마하살은 열 가지 법을 구함이 있으니, 무엇이 열인가. 이른바 곧은 마음으로 법을 구함이니, 속이는 일이 없는 연고며, 정진하여 법을 구함이니 게으름과 교만을 멀리 여읜 연고며, 한결같이 법을 구함이니 신명을 아끼지 않는 연고이니라. 일체 중생의 번뇌를 없애기 위하여 법을 구함이니 명예와 이익과 공경함을 위하지 않는 연고며, 나와 남의 모든 중생을 이익하게 하기 위하여 법을 구함이니 자기의 이익만이 아닌 연고며, 지혜에 들어가려고 법을 구함이니 문자를 좋아하지 않는 연고며, 생사에서 벗어나기 위하여 법을 구함이니, 세간의 낙(樂)을 탐하지 않는 연고이니라.
중생을 제도하기 위하여 법을 구함이니 보리심을 내는 연고며, 모든 중생의 의심을 끊기 위하여 법을 구함이니 망설임이 없게 하려는 연고며, 불법을 만족하기 위하여 법을 구함이니 다른 승(乘)을 좋아하지 않는 연고이니라.
이것이 열이니, 만일 모든 보살이 이 법에 편안히 머물면 다른 이의 가르침을 의지하지 않고 모든 불법의 큰 지혜를 얻느니라.”
*
보살(菩薩)의 십종구법(十種求法)
*
법화경은 3주 설법인데 1주 설법에서 알아듣는 사람은 사리불 한 분 뿐이다. 오직 일대사 인연을 일불승으로 법으로 반드시 해결해야 된다는 것을 사리불만 이해를 한다.
3승을 가지고는 안 된다. 오직 일불승이다.
법화경 1주설법이 한 번 끝나고 난 뒤에 2주설법에서는 4대
제자, 아주 뛰어난 제자들이 알아듣는다.
4대 제자가 누구인가? ‘가가목수가’ 한번 따라해 보시기 바란다. 이러면 안 까먹는다. 한 방에 기억한다.
가는 누구인가? 가섭존자. 마하가섭.
두번째 가는 마하가전연, 가섭존자는 광명(光明)여래가 될 것이다.
가전연존자는 그 광명을 논리로 펴는 것, 금광(金光), 금빛의 여래가 될 것이다. 논리를 잘 쓰는 건 금빛과 같다 하잖는가?
가가목수가?
목수의 목은 누구인가? 목건련이다.
그러면 안 까먹는다. 가가목수가?
목건련 존자는 전단향(栴檀香)여래가 된다, 그러잖는가.
목수의 수는 누구겠는가?
수보리, 수보리는 명상(名相)여래가 될 것이다. 이름과 모양, 명상이 다 공하다는 걸 수보리는 알잖는가?
이것이 2주설법이다.
용수보살이 대지도론에서 뭐라고 했는가?
나무를 흔들면 익은 것이 먼저 떨어진다. 덜 익은 것은 뒤에 와서 한 번 더 흔들어서 떨어지고 또 덜 익은 것은 다시 뒤에 온다. 매실도 찌찌부리하게 제일 안 익은 것이 제일 늦게 떨어진다. 잘 익은 건 빨리 떨어지고 살구도 그렇다. 빨리 익은 건 빨리 떨어지잖는가. 감도 홍시가 빨리 익어서 빨리 떨어지는 것을 조홍이라고 한다.
육조스님 같이 빨리 한 방에 알아듣고 끝난 분들은 조홍이다. 두드려 패서 막 알아듣는 저 뒤의 찌끄레기들은 이삭줍기를 해가는 사람들이다.
그래서 법화경은 3주설법이다.
첫째 법을 설해서 지혜제일 사리불이 알아듣고 안 되니까 비유를 해서 나중에 궁자유 같은 비유를 쭉 하잖는가. 비유를 설법해서 알아듣는 사람들은 가섭존자, 가전연존자, 목건련 존자, 수보리 존자다.
거기서 조금 더 밀려서 못 알아 듣는 사람들은 ‘전생에 대통지승여래부터 너희가 인연이 있어서 금생에 불교 공부를 열심히 해서 다음생에 언젠가는 너희가 성불할 것이다’라고 한다.
부루나존자는 성불하면 법명이 무슨 여래가 된다고 했는가? 설법을 잘하니까 법명(法明)여래가 될 것이다라고 했다.
그러니까 법화경도 이름을 쫙 보면 그 사람이 수행하는 특징을 알 수가 있다.
부루나존자는 법을 잘 설하니까 법명여래가 될 것이다. 그리고 나중에 교진여라든지 모두 싹 다 천이백, 오백 제자 수기품에 보면 오백이 오백이 아니라 5만떼만 제자들이, 모든 천이백 제자, 이천 제자, 육천 제자 이렇게 다 성불을 하게 된다.
화엄경에도 그렇게 해놨다.
입법계품에 가면 오백여 동남, 오백여 동녀, 오백여 우바새, 오백여 우바이가 나오는데 오백명,이천명을 지칭하는 것이 아니고 몇 명이겠는가? 오만 모든 우바새 모든 우바이 모든 동남 모든 동녀가 다 모였다, 이렇게 되는 것이다.
법수(法數)가 주는 의미들을 우리가 잘 파악해야 된다.
8만4천 경전 이러니까 8만4천 숫자를 세는 사람도 있다.
그런 건 아니다.
부루나존자는 법명여래가 된다 했는데 교진여는 오비구 중의 한 분인데 성불을 하면 나중에 무슨 여래가 되는가? 보명(普明) 넓을 보(普)자. 보명여래가 될 것이다.
모든 사람이 보명여래, 우리도 보명여래 싹 다 보명여래가 될 것이다. 이렇게 해 놨잖은가.
동명동호 대자대비 아등도사 금색여래 아미타불. 이것은 화엄경에서도 계속 나오고 법화경 속에서도 계속 그렇게 동명동호를 따진다.
왜 그러냐?
이 법이라고 하는 것은 천차만별로 너와 내가 사(事)의 입장에서 다 달라질 수가 있지만, 심성이라는 입장에서는 불성은 서로가 다를 수가 없다는 것이다. 심성에서는 정과 사가 없다. 심성에서는 생사와 열반이 있을 수 없다. 요런 것들이 화엄경이나 법화경, 일승동교나 일승별교에서 주장하는 것이다. 그러면 지금 우리가 하고 있는 이세간품은 어디까지 와 있느냐? 법화경에서는 3주설법이라 한다. 한 그물을 던져서 다 안 걸려들면 두 번째 그물을 던지고, 두 번째 그물에 안 걸리면 세 번째 그물을 던진다.
그물 크기도 조그맣게 던졌다가 크게 던졌다가 마지막에는 장대교망녹인천지어(張大敎網 漉人天之魚)라. 제석천의 그물을 온 시방삼세에 다 던져서 모든 인천지어가 자타일시성불도 원공법계제중생(願共法界諸衆生) 동입미타대원해(同入彌陀大願海)가 될 때까지 그물을 던진다.
그러면 우리가 공부하는 이세간품은 어디까지 와있겠는가?
화엄경 5주설법 중에 1주설법은 부처님의 의보와 정보에 대해서 설법을 하는데 여기에서 알아듣는 사람은 대단하다.
1회차 설법 여섯 개 있잖은가.
이것을 소신인과주(所信因果周)라고 한다. 지정각세간(智正覺世間)에 대한 확실한 깨달음에 이른 사람, 우리가 믿어야 될 부처님의 의보가 무엇이고, 부처님의 정보가 무엇인가가 나온다. 그러니까 세주묘엄품은 굉장히 아름답다. 세주묘엄품의 신중 이름도 아름답고 천룡팔부중도 아름답다.
각각의 신중 이름들이 나오면서 열 명을 대비하는데 그때의 열 명은 열 명이 아니다. 열 명이라 해 놓고 ‘이와 같은 족행신, 이와 같은 주야신, 이와 같은 주주신, 이와 같은 주해신 무량무수가 있다’ 라는 식으로 세주묘엄품에 해 놨다.
그 대목을 흔히 소신인과주(所信因果周)라 한다. 주(周)라고 하는 것은 1주기 2주기 하듯이 한 주, 한 바탕이다. 주변법계 (周遍法界)라 하지 않는가. 가득하고 충전하는 것이다. 한 번 메주를 삶을 때 한 솥 삶아 내고 또 한 솥 삶아 낸다고 하잖는가. 1주는 뭔가? 1기생 2기생, 이 말이다.
1회차에서 못 알아들으면 다시 2주차에서 십신설법을 한다.
2회차에서 시작해서 7회차까지에는 2주법문인 차별인과주(差別因果周)법문이 나온다. 7회차 제일 마지막 보현행품 여래출현품은 3주법문인 평등인과주다.
십신 십주 십행 십회향 십지 등각 묘각까지 차별인(差別因)을 한 번 설하고 그다음 묘각에서 불부사의법품, 여래십신상해품 여래수호광명공덕품은 차별과(差別果)에 속한다.
그 뒤에 ‘무상심심미묘법’ 하는 것이 여래출현품이잖은가. 52권에 나온다. 여래출현이 다 되면 ‘이와 같은 무상심심미묘법을 백천만겁난조우’ 그것이 묘각에 해당하는 부분이고 평등인과주(平等因果周)라고 한다.
소신인과주, 차별인과주, 차별에서 평등까지 갔잖은가. 보현행품, 여래출현품까지 갔다.
그다음 단계가 우리가 지금 하고 있는 4주인과인 성행인과주(成行因果周)다. 행이 완성된 인과, 보현행원의 인과가 지금 하고 있는 이세간품의 법문이다.
4주인과 성행인과주 중에서도 우리가 뭘 하고 있는가? 등각 부분을 하고 있다. 지난 시간까지는 실제적으로 자분행(自分行) 등각 부분에서 반드시 이수해야 될 대목을 했다.
어렵게 해서 죄송하다. 아무도 알아듣지 못하고 쓸데 없는 소리를 하는 것 같다.
문수선원에서 오래도록 강의를 들으시는 처사님들이나 보살님들이 여기 자리를 꽉 채워서 백 명 이백 명이 모여서 듣는데 “어떤 스님이 강의하는 것 약찬게는 굉장히 듣기 쉽고 알아듣기 쉬운데 스님 거는 너무 어렵습니다.”라고 한다.
맞는 말씀이지만 “어려운데 우짜겠노.” 알아듣게 강의하는 그 스님은 나보다 한 백만 배는 낫다. 난 천 명이 본다면 그 스님은 한 백만 명, 오육십만 명이 보는 스님이다. 뛰어나다.
나보다 말재주도 좋고 서울말도 쓰고 인물도 낫다.
“낫긴 나은데 우짜노. 그 쉽게 설명하는 스님이 어차피 내한테 배워야 된다. 내한테 배워서 하는 건데 그래도 그 스님 거 열심히 듣고 이해간다면 그거 해라.”그랬다.
이렇게 어렵게 해서 죄송하다.
하여튼 이세간품에서 지금 우리가 하고 있는 대목은 등각 중에서 자분행이 있고 승진행(勝進行)이 있다.
승진은 예비 대학생, 논산 훈련소 가서 훈련병 정도가 승진이다. 다음에 자대배치 받는 정도가 된다.
자분행은 중학교 1학년 2학년 3학년이고, 승진행은 3학년중에서도 반 학기 남은 사람들 있잖은가. 대학교도 4학년을 다 마치고 마지막에 2학기째 논문학기쯤 되는 것이다. 그게 승진행이다. 졸업시험을 앞둔 사람들 있잖은가.
지금 오늘 할 대목이 등각의 자분행이 끝나고 승진행으로 넘어가는 부분이다.
여기서 상당히 재미가 있다.
명심해야 될 것은 법화경을 볼 때도 이 3주인과에 입각해서 경전을 보는 게 좋다는 것이다. 나한테 오는 신도나 다른 사람들을 가르칠 때도 그렇다.
이 3주인과에 입각에서 크게 가르쳐야 될 사람이 있고, 그렇지 않은 사람이 있다. 큰 종소리로 가르칠 사람이 있고, 작은 요령 소리를 가지고 가르쳐야 될 사람도 있다. 대놓고 법화경에 대해서 가르치는 것 가지고는 될 일이 아니다.
젓가락을 써야 될 때가 있고, 숟가락을 써야 될 때가 있다.
“국 한 그릇 주세요.” 하는데 조그만 종지에 국을 담아 주면 안 된다. 간장 달라는데 국사발에 이만큼 담아 줘서도 안 되는 것이다. 쓰는 그릇이 다르잖은가.
오늘 범어사도 방장스님을 모시고 해제 법문을 했다.
‘차경심심의(此經甚深意)’ 하는 대목들이 경전에 나오는 대목들이다. 그 의식 안에도 그대로 화엄경에 나오는 의식 요대로 한다.
‘유원대법사(唯願大法師) 광위중생설(廣爲衆生說)’ 그 근거는 어디인가? 그 근거는 정확하게 화엄경 십지품이다.
십지품에 다섯 번 머리를 조아리고 “우리 대중은 정말 갈앙하면서 이 법문을 듣기를 원합니다. 제발 법문 좀 설해주십시오.” 이러잖는가. 다섯 번 한다.
다섯 번인데 딱 잘라서 세 번 금강장보살에게 해탈월보살이 법문을 청한다. 금강장은 근본 지혜, 해탈월의 해탈은 번뇌로부터 벗어난다는 말이고, 월(月)은 캄캄한 밤중에 달이 뜨니까 모든 캄캄한 무명으로부터 벗어난 사람을 뜻한다. 이런 사람이 질문을 한다. 해탈월은 후득지를 이야기한다.
그러니까 금강장이라고 하는 것은 생밀가루 원재료 같은 것이고 해탈월 이름이 딱 주어지면 ‘어? 십지보살은 장(藏)자로 다 나가는데 허공장(虛空藏) 연화장(蓮華藏) 지장(地藏) 일장(日藏) 월장(月藏) 소리야장(蘇利耶藏) 구소마덕장(俱蘇摩德藏) 이렇게 나가야 되는데 왜 장(藏)자를 안 쓰고 월(月)자를 썼을까? 이 사람이 왜 질문을 할까?’
이것은 일상생활에 이런 이치, 법리, 법의 진리를 현실화시켜서 ‘사실적으로 사건 사물로 형상화시켜서 내가 번뇌로부터 벗어나겠다’ 이래서 해탈월이 그 질문을 하는 것이다.
그런 해탈월의 질문이라든지 대중 전체가 질문하고 절하고 하는 것들의 구체적인 의식이 화엄경 십지품에 보면 자세하게 나온다. 그것이 우리 해제 법문, 결제 법문, 대중 법문을 청하는 데에도 나온다.
오늘 5주인과 중에 제일 마지막은 무엇인가?
입법계품 그 앞의 것이다.
입법계품은 무슨 인과인가?
증입인과(證入因果)다.
소신인과주 차별인과주 평등인과주 성행인과주 증입인과주, 증입이라고 하는 것은 선재동자가 돈오돈수하는 것이다. 선재동자가 그대로 돈오돈수다. 금생성불, 즉신성불, 이것이 선재동자가 뜻하는 것이다.
화엄경의 전반적인 흐름은 돈오돈수지만 선재동자가 금생에 해결해 버렸다. 여기서 돈오돈수를 항상 뜻하는 것이다.
등각의 자분행 끝나고 묘각으로 나아갈 준비 단계 이세간품 오늘 들어가도록 하겠다.
여기서 승진행. 드디어 등각에서 묘각으로 나아가는 기반을
다지는 행들이 쭉 나온다.
오늘은 58권을 끝내야 되기 때문에 빨리 진도 나가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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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자(佛子)야 : 불자야
보살마하살(菩薩摩訶薩)이 : 보살마하살이
유십종구법(有十種求法)하니: 열 가지 법을 구함이 있으니
하등(何等)이:무엇이
위십(爲十)고:열 가지냐?
소위직심구법(所謂直心求法)이니: 이른바 곧은 마음으로 직심으로 구법이라. 직심이라고 하는 것은 진여법. 오직 진여법이라고 하는 건 생사열반상공화(生死涅槃常共和) 이사명연무분별(理事冥然無分別) 종체기용섭용귀체(從體起用攝用歸體) 체용이 둘이 아니요 성상이 무상이고 무성인 걸 아는 것, 진여법을 구현하는 것을 직심이라고 한다.
직심으로 법을 구하는 것이니
무유첨광고(無有諂誑故)며:속이는 일이 없는 것이고 처음 일으킨 이 초발심시가 오직 곧다. 아주 당장 정직하라, 하는 것이다. 직심이 바로 나중에 아뇩다라삼먁삼보리로 갈 수 있는 첫걸음이다.
정진구법(精進求法)이니: 정진하여 법을 구하는 것이니
원리해만고(遠離懈慢故)며: 게으름을 여의는 고니라.
처음에도 사람이 정직하다 보니, 중간에 멈추는 것도 없고, 마지막 결승선까지도 끝까지 게으르지 않고 마라톤 선수가 완주하는 것 같은 정진구법이라.
정진이란 말 속에는 참제업장이라, 모든 업장이 다 녹아 떨어져 버린다는 뜻이 있다.
정진이라는 말속에는 뭐가 나오는가?
예경을 잘하고 참회를 잘하고 수희동참을 잘하고 권청을 잘하고 회향을 잘하는 것이 정진이다, 이렇게 들어가는 것이다.
다른 말로는 ‘모든 선법을 구한다’ 해도 되겠다.
일향구법(一向求法)이니: 한결같이 법을 구하는 것이니
불석신명고(不惜身命故)며: 불석신명이라 법화경이나 화엄경에 나오는 말 중에 가장 우리가 실천할 수 없는 말씀이 이 말씀이다. ‘몸과 목숨을 아끼지 않는다’ 그런데 비 오면 빠져버리고 보름이라 빠져버리고.
불석신명고(不惜身命故)라. 신명을 아끼지 않는다.
안쪽으로 내 몸과 목숨을 돌보지 않는다. 그럼 바깥쪽으로는 어떻게 되느냐? 바깥으로는 명예와 이익을 구하지 않는다.
위제일체중생번뇌구법(爲除一切衆生煩惱求法)이니: 일체 중생의 번뇌를 없애기 위하여 법을 구하는 것이다. 이것을 광대심이라고 한다. 내자신을 다독거려서 좋은 일 하는 것도 있고, 그다음에 이것은
불위명리공경고(不爲名利恭敬故)며: 명예와 이익과 공명을 위하는 것이 아니다. 밖으로 내 이익을 명리를 위해서 추구하면서 그럴싸하게 하는 것을 기신론 같은 데서는 외도삼매라고 해 놓았다. 외도삼매.
그러면 명리를 구하지 않고 오직 진여삼매로 가는 것을 육조 단경(六祖壇經)에서는 또 일행삼매라 해 놓고 기신론은 진여삼매라 해 놓았다.
위요익자타일체중생구법(爲饒益自他一切衆生求法)이니: 나와 남의 모든 중생을 이익되게 하기 위하여 법을 구하는 것이니 부단자리고(不但自利故)며:자기의 이익만이 아니다. 자기 이익과 남의 이익을 함께 원만히 이루기 때문에 그렇다는 것이다.
위입지혜구법(爲入智慧求法)이니: 지혜에 들어가려고 법을 구하는 것이니
불요문자고(不樂文字故)며:문자를 좋아하지 않는 것이다. 뜻을 얻어 버린 사람의 입장에서는 말이 필요 없는 것이다.
말이라고 하는 것은 제가 발음하듯이 “말,이,라,고,하,는,것,은” 소리다.
말소리, 언어는 내 안쪽에 있는 뜻을 표현하자는 것이다.
영어로 쓰든지 한국말로 쓰든지 이 글자라고 하는 것도 한문이 됐든지 한글이 됐든지 뭘 표현하는 것인가? 뜻을 표현하는 것이다. 마치 이 전등에 전기가 흐르는 것처럼.
뜻을 얻어서 아는 사람 입장에서는 말이 필요 없다.
꽃을 한 송이 딱 들어도 알아버리고 자리를 슬쩍 비껴도 다자탑(多子塔)의 분반좌(分半座) 염화시중(拈花示衆) 거염화( 擧拈花) 연꽃 한 송이 딱 들어버리면 빙긋이 웃어 버리고, 뭐 그런 거 있잖은가.
이게 ‘뜻을 얻어버린 사람의 입장에서는 문자나 말에 집착하지 않기 때문에’ 이렇게 해놨다.
지혜에 들어가려고 법을 구하는 건데 문자를 좋아하지 않는다. 우리 같은 문자법사나 강사나 이게 제일 위험한 소리다.
아유일권경(我有一卷經)이나, 나한테 하나의 경이 있는데, 불인지묵성(不因紙墨成)이라, 종이나 글자로 된 게 아니다.
전개무일자(展開無一字)라, 펼치면 한 글자도 없는데 상방대광명(常放大光明)이라, 항상 광명이 나온다. 목소리도 광명이고 눈으로 보는 것도 광명이 있어야 보고, 귀가 들리는 것도 광명이 있어야 들린다.
그 광명을 우리는 반야바라밀이라 하는 것이다.
일체법이 공(空)인데 그것을 아는 것은 반야바라밀이 있어야 알 수 있잖은가.
관자재보살이 행심반야바라밀, 깊은 반야바라밀을 행할 때라야 비로소 조견(照見)하여 오온개공임을 안다.
행이 깊은 반야바라밀일 때 반야바라밀이 깊어야만, 오온개공을 알 수 있잖은가. 두려움도 없어지고, 그런 뜻이다.
반야바라밀이 무슨 문자겠는가?
“문자 맞던데요? 봤냐 못 봤냐 바라밀.”
그게 아니다. 그냥 할 수 없어서 갈 길이 없어서 글로 온 것이고, 갈 길이 없어서 말로 온 것이다.
말과 글로써, 생각으로써는 갈 수 없다고 해서 ‘불가사의다’하잖는가? 부사의법품. 불부사의법품(佛不思議法品) 부처님은 부사의법이라. 부사의라.
생각이나 말로써 갈 수 있으면 부처님이라 안 할 것이다.
위출생사구법(爲出生死求法)이니: 생사를 벗어나기 위해서 출생사, 생사를 벗어나기 위해서 법을 구하는 것이니
불탐세락고(不貪世樂故)며: 세속에서 낙을 구하지 않는 것이다. 우리 치문 배울 때 뭐라 했는가.
불구명리 하는 것도 동산 양개화상 서장에서 배운 바가 있다.
일기진락(一期趁樂)이여 부지낙시고인(不知樂是苦因)이라.
치문할 때 그래놨다.
일기진락 쫓을 진(趂)자, 한번 즐거움을 쫓아가 봐라. 달콤한 거 맛있는 거 한번 쫓아가 봐라. 부지, 알지 못하는 것이다. 낙시고인이라. 그 꿀 쫄쫄 빨아먹다가 낙시고인이라. 고통의 지옥 가는 원인이 되는 줄 네가 알지 못하는구나. 일기진락이요, 부지낙시고인이로다.
낭겁순진(曩劫徇塵)하야 미상반성(未嘗返省)일새 시광(時光)이 엄몰(淹沒)하고 세월(歲月)이 차타(蹉跎)는 수용은번(受用殷繁) 시리농후(施利濃厚)하야 동경년재(動經年載)하대 불의기리(不擬棄離) 적취자다(積聚滋多) 보지환질(保持幻質)이로다. 도사유칙(導師有勅) 계욱비구(戒勗比丘)하사대 진도엄신(進道嚴身)하되 삼상(三常)이 부족(不足)하다 하시어늘 인다어차(人多於此) 탐미불휴(貪味不休) 일왕월래(日往月來)에 삽연백수(颯然白首)로다.
그거 쫄쫄 빨아먹다 우리가 지금 머리 희고 허리 꼬부라지고 쪼글쪼글 쪼글탱이 할매 할배 다 됐잖은가.
치문의 그 구절을 다 외우실 것이다.
못 외우는 사람들이 이상한 분들이다. 외우지는 못했는데 들으니까 기억은 나잖는가.
그러니까 외운 것은 다 가슴속에서 자라는 것이다.
그런 것들이 오랫동안 우리 가슴속에 있어야 된다.
세간의 낙을 탐하지 않는 연고다.
아주 내가 눈앞의 이익에 대해서 예민하지 않다는 것이다.
위도중생구법(爲度衆生求法)이니: 중생을 제도하기 위해서 법을 구하는 것이니
발보리심고(發菩提心故)며:보리심을 내는 연고다. 중생을 제도하기 위해서 보리심을 낸다. 그런데 우리는 중생제도가 아니고 중생제압하기 위해서 법을 구한다.
인연은 반드시 그 결과가 이루어지게 되어 있다.
위단일체중생혹구법(爲斷一切衆生疑求法)이니: 모든 중생의 의심을 끊으려고 법을 구하는 것이니
영무유예고(令無猶豫故)며: 망설임이 없게 하려는 연고이고
위만족불법구법(爲滿足佛法求法)이니: 불법을 만족하려고 법을 구하는 것이니
불락여승고(不樂餘乘故)라: 다른 승을 좋아하지 않는 것이다.
오직 뭐라 했는가? 불승이다.
다른 승이라고 하는 것, 불락여승이라 했지 않는가.
여기는 오직 일승뿐이다. 일승을 불승이라고 한다.
꽃도 매화가 있으면 붉은 매화도 있고, 핑크빛도 있고 흰 매화도 있지만, 청매, 흰 것이 매화 중에는 제일 갑이다.
연꽃 중에서도 파드메 홍련도 있고 노란 쿠무다도 있고 청련도 있지만 법화경은 분다리카 무슨 꽃인가? 백련.
백련이 제일이다.
소는 황소도 있고 젖소도 있고 오만 소가 다 있지만 소 중에는 백우가 제일이다.
흰색이라고 하는 것은 무위법을 상징한다.
무위법 뒤에 가면 요대목이 나온다.
“유위법 무위법이 둘이 아닌 줄 알게 된다.” 이렇게 나온다.
이세간품에도, 종경록에도 그 대목이 나오는 것을 보면, 다시 가만히 보게 된다. 평소에 그렇게 생각하고 있다가 그런 대목이 경전에 한번 나오면 굉장히 기쁘다.
자기가 바다에 진주조개를 하나 구하다가 그거 하나 얻으면 굉장히 기분 좋잖은가.
마치 경전의 바다에서, 누가 증명해 줄 수도 없고, 맨날 남한테 이론 틀렸다 듣다가 ‘유위법 무위법 다르다’ 말싸움 하다가 지쳐 있는데, 내가 평소에 생각했던 대로 경전에 딱 나오면 그 이상 응원 얻을 바가 없는 것이다.
“아, 맞네.” 이러면서.
시위십(是爲十)이니: 이것이 열 가지이니
약제보살(若諸菩薩)이: 만일 보살이
안주차법(安住此法)하면: 이 법에 편안히 안주하면
즉득불유타교일체불법대지혜(則得不由他敎一切佛法大智慧)니라 : 다른 이의 가르침을 얻지 않고 모든 불법의 큰 지혜를 얻느니라. 여기서 얘기하는 이 열 가지 외에 벗어나서 다른 것을 구한다면 모든 것이 삿된 것이 될 것이다.
정도(正道)가 아니다, 이런 뜻이다.
(21) 菩薩의 十種明了法
佛子야 菩薩摩訶薩이 有十種明了法하니 何等이 爲十고 所謂隨順世俗하야 生長善根이 是童蒙凡夫의 明了法이요 得無礙不壞信하야 覺法自性이 是隨信行人의 明了法이요 勤修習法하야 隨順法住가 是隨法行人의 明了法이요 遠離八邪하고 向八正道가 是第八人의 明了法이요 除滅衆結하야 斷生死漏하고 見眞實諦가 是須陀洹人의 明了法이요 觀味是患하야 知無往來가 是斯陀含人의 明了法이요 不樂三界하고 求盡有漏하야 於受生法에 乃至一念도 不生愛着이 是阿那含人의 明了法이요 獲六神通하고 得八解脫하야 九定四辯을 悉皆成就가 是阿羅漢人의 明了法이요 性樂觀察一味緣起호대 心常寂靜하야 知足少事하며 解因自得하고 悟不由他하야 成就種種神通智慧가 是辟支佛人의 明了法이요智慧廣大하고 諸根明利하야 常樂度脫一切衆生하며 勤修福智助道之法하며 如來所有十力無畏와 一切功德을 具足圓滿이 是菩薩人의 明了法이라
是爲十이니 若諸菩薩이 安住此法하면 則得如來無上大智明了法이니라
“불자여, 보살마하살은 열 가지 밝게 아는 법이 있으니 무엇이 열인가. 이른바 세속을 따라서 착한 뿌리를 생장함이니, 어린아이인 범부의 밝게 아는 법이니라. 걸림이 없고 깨뜨릴 수 없는 신심을 얻어 법의 자체 성품을 깨달음이니 신심을 따라 행하는 사람의 밝게 아는 법이니라.
부지런히 법을 닦고 법을 따라 머무름이니, 법을 따라 행하는 사람의 밝게 아는 법이니라. 여덟 가지 삿됨을 멀리 여의고 여덟 가지 바른 도를 향함이니 여덟째 아는 이의 밝게 아는 법이니라. 여러 결박을 없애고 생사의 번뇌를 끊고 참된 이치를 보는 것이니, 수다원 사람의 밝게 아는 법이니라.
맛들임이 우환이 됨을 보고 가고 옴이 없음을 아나니, 사다함 사람의 밝게 아는 법이니라. 삼계를 좋아하지 않고 번뇌[有漏]가 다함을 구하여 태어나는 일에는 잠깐도 애착하지 않나니 아나함 사람의 밝게 아는 법이니라. 여섯 가지 신통을 얻고 여덟 해탈을 얻어 아홉 선정과 네 가지 변재를 다 성취하나니 아라한 사람의 밝게 아는 법이니라.
성품이 한결같이 연기(緣起)하는 법을 관찰하기를 좋아하여 마음이 항상 고요하고 만족할 줄 알아 일이 없으며, 아는 것을 스스로 얻음을 인하고 다른 이를 말미암지 않고 깨달아서 갖가지 신통과 지혜를 성취하나니, 벽지불 사람의 밝게 아는 법이니라.
지혜가 광대하고 모든 감관[根]이 총명하여 일체 중생을 제도하기를 항상 좋아하며 복덕과 지혜의 도를 돕는 법을 부지런히 닦아서 여래의 열 가지 힘과 두려움 없음과 모든 공덕을 원만히 구족하니, 보살들의 밝게 아는 법이니라.
이것이 열이니, 만일 모든 보살들이 이 법에 편안히 머물면 여래의 위없는 큰 지혜로 밝게 아는 법을 얻느니라.”
*
보살(菩薩)의 십종명료법(十種明了法)
*
불자(佛子)야:불자야
보살마하살(菩薩摩訶薩)이:보살마하살이
유십종명료법(有十種明了法)하니: 열 가지의 명료한, 밝게, 환하게, 완벽하게 아는 법이 있으니
하등(何等)이:무엇이
위십(爲十)고: 열 가지냐? 뭘 얻었는데도 제대로 비추지 못한다면 구한들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명료하다고 하는 것은 돈이 있으면 돈에 대해서 가치를 충분히 알고, 붓을 잡았으면 붓의 가치에 대해서 충분히 아는 것이다. 인생으로 태어났으면 인생의 가치에 대해서 명료하게 안다는 말이다. ‘어물쩡하게’가 아니다.
오늘 문수선원에 왔으면 문수선원에 내가 뭐 때문에 왔는지 온 뜻을 분명히 안다는 것이다.
오늘 뭐 하러 오셨는가?
“보현의 수승한 지혜를 내 것으로 만들기 위해서, 이세간품 배우려고.” 입만 떼면 거짓말이다.
그러니까 삼승이 뭔지, 범부가 뭔지, 성인이 뭔지, 내 인생의 가치가 어디쯤에 와 있는지 이런 것에 대해서 명료하게 안다 는 것이다.
*
소위수순세속(所謂隨順世俗)하야: 이른바 수순세속하야 항순 중생하여
생장선근(生長善根)이: 선근을 증장하는 것이니
시동몽범부(是童蒙凡夫)의: 아주 아이처럼 어리석은 범부의
명료법(明了法)이요: 밝게 아는 법이고
득무애불괴신(得無礙不壞信)하야: 걸림없고 깨뜨릴 수 없는 신심을 얻어서
각법자성(覺法自性)이: 법의 성품을 깨달은 것이니
시수신행인(是隨信行人)의 : 이것은 신심을 따라 행하는 사람의
명료법(明了法)이요: 밝게 아는 법이고
근수습법(勤修習法)하야: 부지런히 법을 닦고
수순법주(隨順法住)가: 법을 따라 머무름이니
시수법행인(是隨法行人)의: 법을 따라 행하는 사람의
명료법(明了法)이요: 밝게 아는 법이며
원리팔사(遠離八邪)하고: 여덟 가지 삿됨을 여의고
향팔정도(向八正道)가: 팔정도를 향하는 것이다.
법화경 화성유품 같은 데 보면 대승지통여래의 아들이 열여섯 명이지 않은가? 그 중 열 여섯번째 아들이 누구인가. 석가모니다. 왜 열여섯 번째 아들인가? 이 사바세계에는 팔사도가 있고 팔정도가 있다.
우리 마음에는 정사가 없으나 생각으로 나올 때는 삿되기도 하고, 올바르기도 한데, 그것을 다 섭수해서 성불시키기 때문에, 삿된 사람까지 다 성불시키기 때문에 일승이라고 한다고 하였다.
시제팔인(是第八人)의: 여덟 번째 제8인의
명료법(明了法)이요: 명료법이다. 그냥 막 넘어간다.
*
제멸중결(除滅衆結)하야:여러 중결, 결이라 해도 되고 ‘사용하다, 부리다’ 할 때의 사(使)자로 해도 되고, 얽을 전(纏)자로 해도 된다. 한문으로 번역한 것이니까 전부 번뇌의 다른 이름이다. 여러 번뇌의
단생사루(斷生死漏)하고: 결박을 없애고 생사의 번뇌를 끊고 누(漏)라 해도 번뇌다. 누, 결, 사, 전부 다 번뇌를 뜻하는 언어다. 똑같은 말인데 단어의 반복을 피했을 뿐이다.
고라 해도 그냥 번뇌의 결과물이라. 인과로 볼 때 번뇌는 인의 입장이고 고는 과의 입장이다.
견진실제(見眞實諦)가: 참된 이치를 보는 것이
시수다원인(是須陀洹人)의: 수다원 사람의
명료법(明了法)이요: 밝게 아는 법이며
*
관미시환(觀味是患)하야: 맛들임의 걱정임을 보고
지무왕래(知無往來)가: 가고 옴이 없음을 아나니
시사다함인(是斯陀含人)의: 사다함인의
명료법(明了法)이요: 밝게 아는 법이니라.
*
불락삼계(不樂三界)하고: 삼계를 좋아하지 않고
구진유루(求盡有漏)하야 : 생사가 다함을 구하여
어수생법(於受生法)에: 태어나는 법에
내지일념(乃至一念)도: 잠깐도
불생애착(不生愛着)이: 애착하지 않나니
시아나함인(是阿那含人)의:이것은 아나함인의
명료법(明了法)이요: 밝게 아는 법이고, 명료법이 되는 것이고
*
획육신통(獲六神通)하고: 여섯 신통을 얻고
득팔해탈(得八解脫)하야: 여덟 해탈을 얻어서
구정사변(九定四辯)을: 아홉 선정과 네 가지 변재를
실개성취(悉皆成就)가: 다 성취하나니
시아라한인(是阿羅漢人)의: 아라한인의
명료법(明了法)이요: 밝게 아는 법이다.
*
성락관찰일미연기(性樂觀察一味緣起)호대:아홉 번째 한결같은 연기하는 법을 관찰하기를 좋아하여
심상적정(心常寂靜)하야:마음이 항상 고요하고 심상적정하고
지족소사(知足少事)하며: 족할 줄 알아서 지족은 현재 일을 만족하는 것을 흔히 지족이라고 하고 미래에 대한 욕심이 없는 것을 소욕이라고 한다.
지족소욕, 소욕지족. 지족 현재 만족하는 걸 지족이라 한다.
해인자득(解因自得)하고: 해인자득하고 아는 것을 해인자득하고
오불유타(悟不由他)하야:오불유타라. 스스로 얻었다고 다른 이를 말미암지 않았으며
성취종종신통지혜(成就種種神通智慧)가: 갖가지 신통과 지혜를 성취하나니
시벽지불인(是辟支佛人)의: 이 벽지불인의
명료법(明了法)이요: 명료법이고
*
지혜광대(智慧廣大)하고: 열 번째, 열 번째면 무엇인가? 보살 아니면 여래다.
수다원 사다함 아나함 아라한 벽지불까지 나왔잖은가?
성문 연각 나왔으면 누가 나오겠는가? 보살이 나온다.
제근명리(諸根明利)하야:제근이 명리하여 지혜가 광대하고 근성이 총명하여
상락도탈일체중생(常樂度脫一切衆生)하며: 항상 일체중생을 제도하기를 좋아한다. 일체중생을 외면하는 사람은 보살이 안 될 것이다. 일체중생을 도탈(度脫)하기를 좋아하고
근수복지조도지법(勤修福智助道之法)하며: 복과 지혜를 돕는 조도법을 부지런히 닦는다. 그래서 우리가 부처님께 ‘귀의불 양족존’이라 한다. 복과 지혜가 원만하신 부처님이라 한다.
복과 지혜. 복이라 하면 이타라 하고, 지라 하면 스스로 자리라고도 이야기한다.
*
여래소유십력무외(如來所有十力無畏)와: 여래께서 열 가지 힘과 두려움이 없음과, 언제 두려움이 없어지느냐? 일체개공이 된 줄 알아야, 분별심이 사라져야 두려움이 없어진다.
“그럼 나는 왜 두려움이 많습니까?”
분별심이 있는데 당연히 두려움 있다.
“난 겁이 없습니다.”
자기가 그런 환희지, 십지 초지 보살이다, 그러면 분별심이 없는 것이다.
분별심 없으면 경전에서 나타나는 여러가지 행들이 수반되고 환희롭다. 환희로우면 몸이 홀가분해진다.
안쪽에 아만 덩어리도 많이 벗겨지고 없다.
그러니까 대놓고 ‘나는 겁이 없다’그것은 거짓말이다.
무유공포 원리전도몽상이 되어야 겁이 없는 것이다. 전도몽상으로 꽉 차놓고 겁이 없다는 건 거짓말이다. 안 그렇겠는가?
원리전도몽상, 전도라고 하는 것은 안쪽에 아집덩어리가 꽉 있는 것이고 몽상이라고 하는 것은 눈코입귀가 제대로 분별하지 못하는 것이고 헛것에 사로잡힌 것이다.
심무가애(心無罫碍) 무가애(無罫碍) 무유공포(無有恐怖) 원리전도몽상(遠離顚倒夢想) 구경열반(究竟涅槃) 순서대로, 경전대로만 이야기하면 된다.
‘내가 깨쳤냐 못 깨쳤냐, 아느냐 모르느냐, 내가 자비롭냐 안 자비롭냐’ 이것도 경전에 근거하면 분명하다.
남한테 물을 필요가 뭐 있겠는가.
경전에 근거하면 경전은 계량컵 같다. 몇밀리미터인지 몇 센티미터인지 다 나와 있다.
그러니까 “나이가 비슷하니까 지도 알고 나도 알겠다. 법랍이 비슷하니까 지도 알고 나도 알겠다.” 천만의 말씀이다.
제가 한 번씩 이창호 국수를 이야기하지 않는가.
지금 이창호 국수는 9단이다.
“내가 이창호 국수 태어나기 전부터 바둑 두는데 내가 더 잘
두겠다.” 말도 안 되는 소리다.
어떤 분은 “너 태어나기 전에 출가했다, 스님이다.” 하는데 그거 비슷한 이야기다.
부처님도 마찬가지다. 당신보다 훨씬 선배들이 많았잖은가.
그래서 이 문 중에는 누가 어른이고 누가 어린아이냐.
이오위칙(以悟爲則)이라. 자기의 깨달은 소견이 넓으냐 좁으냐에 따라서 정해지는 것이다.
우리 같은 사람은 택도 없는 것이다.
저는 한 번씩 이야기하지만 강사가 아니고 여기서 중강 겸 있는 것이다. 버금 중(仲)자. 대표자 선서 있잖은가.
그거 비슷하게 하는 것이다.
그러니까 제가 이렇게 함으로해서 여러분들한테 강의하는 게 있지만 제 스스로 배우는 게 더 많다.
하다 하다 보면 ‘아, 이거 나 모르는구나’ 절실히 알아진다. 그러니까 경전이 좋기도 하다.
일체공덕(一切功德)을:일체공덕을
구족원만(具足圓滿)이: 원만히 구족하니
시보살인(是菩薩人)의:시보살인의
명료법(明了法)이라 : 명료법이다. ‘아, 모든 공덕을 원만히 구족한 사람들을 보살이라 하는구나. 함부로 입 떼면 안 되겠네’
시위십(是爲十)이니:이것이 열 가지니
약제보살(若諸菩薩)이: 만약에 보살들이
안주차법(安住此法)하면:이 법에 편안히 머물면
즉득여래무상대지명료법(則得如來無上大智明了法)이니라 :
즉득 여래의 위 없는 큰 지혜로 밝게 아는 법을 얻느니라.
(22) 菩薩의 十種修行法
佛子야 菩薩摩訶薩이有十種修行法하니 何等이 爲十고所謂恭敬尊重諸善知識修行法과常爲諸天之所覺悟修行法과於諸佛所에 常懷慚愧修行法과 哀愍衆生하야 不捨生死修行法과 事必究竟하야 心無變動修行法과 專念隨逐發大乘心諸菩薩衆하야 精勤修學修行法과 遠離邪見하고 勤求正道修行法과 摧破諸魔와 及煩惱業修行法과知諸衆生의 根性勝劣하야 而爲說法하야 令住佛地修行法과 安住無邊廣大法界하야 除滅煩惱하야 令身淸淨修行法이니라 是爲十이니 若諸菩薩이 安住其中하면 則得如來無上修行法이니라
“불자여, 보살마하살은 열 가지 수행법이 있으니 무엇이 열인가. 이른바 모든 선지식을 공경하고 존중하는 수행법과, 항상 모든 천신들의 각오(覺悟)하는 바가 되는 수행법과, 모든 부처님 처소에서 항상 부끄러운 마음을 가지는 수행법이니라.
중생을 애민하게 여기어 생사를 버리지 않는 수행법과, 일은 반드시 끝까지 이르고 마음에 변동이 없는 수행법과, 대승의 마음을 낸 모든 보살 대중을 전념으로 따라다니며 부지런히 배우는 수행법과 삿된 소견을 멀리 여의고 바른 도를 부지런히 구하는 수행법이니라.
모든 마군과 번뇌의 업을 꺾어 버리는 수행법과 모든 중생의 근성이 수승하고 하열함을 알고 법을 설하여 부처님의 지위에 머물게 하는 수행법과, 그지없이 광대한 법계에 머물러 번뇌를 소멸하고 몸을 청정케 하는 수행법이니라.
이것이 열이니, 만일 모든 보살이 이 가운데 편안히 머물면 여래의 위없는 수행법을 얻느니라.”
*
보살(菩薩)의 십종수행법(十種修行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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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자(佛子)야 :불자야
보살마하살(菩薩摩訶薩)이 :보살 마살이
유십종수행법(有十種修行法)하니:또 십종 수행법이 있는데
하등(何等)이:무엇이
위십(爲十)고 :열 가지냐? 십종 수행법이라고 하는 건 ‘말해진 그대로 수행하면 비로소 불법을 얻는다’ 이런 뜻이다.
경전에 의해서 분명히 수행하라, 이런 뜻이다.
그 밖의 조작해서 닦는 것은 수행이 아니다. 경전에 이렇게 딱 써놓은 대로 닦아야 된다.
소위공경존중제선지식수행법(所謂恭敬尊重諸善知識修行法)과:
이른바 모든 선지식을 공경하고 존중하는 수행법과
상위제천지소각오수행법(常爲諸天之所覺悟修行法)과: 여러 하늘의 각오하기 위한 바 상위제천지, 소초 같은 데는 이 위자를 ‘여기서는 거성으로 읽어야 된다’라고 해놓았다.
거성으로 읽을 때는 ‘위하다’ 이런 뜻이 있는데, 평성으로 읽게 되면 ‘뭐뭐 하다, 만들다’ 이런 뜻으로 해석된다는 것이다.
위하는 것과 만든다는 것은 다르잖은가.
그러니까 경전을 보다 보면 할 위(爲)자를 써 놓고 옆에 석삼자를 써 놓을 때가 있다.
옛날에 어른들은 그것을 석독구결(釋讀口訣)이라고 한다.
석독 아, 이때는 ‘뭐뭐로 삼다’로 번역해라, 해석해라 이런 뜻이다. 하(下)자로 써놓으면 아, 이건 ‘하다’로 번역해라 이런 뜻이고 위 상(上)자를 써 넣으면 그때는 위하다로 이때는 거성으로 읽어야 된다, 평성으로 읽어야 된다. 경전은 읽는 게 다 다르다. 여기 나온 상위(常爲)는 위할 위자로 거성으로 높은 소리로 측성으로 해야 되고, 평성으로 낮은 소리로 하면 안 된다. 이렇게 청량국사는 소초에 딱 기록해 놨다.
옛날 분들은 경전 한 글자에 대해서도 그 뜻을 굉장히 세밀하게 살폈다는 것이다. 그래서 ‘항상 된다’ 이런 뜻이 아니고, 항상 제천을 ‘위하여’ 이런 말이다. ‘위한다’ 이런 말이다. 별 걸 다 했다.각오하기 위해 위하는 바 수행법과 또
어제불소(於諸佛所)에: 부처님 처소에서
상회참괴수행법(常懷慚愧修行法)과: 부끄러움을 참괴, 상회 품는다. 항상 참괴 부끄러운 마음을 가지는 수행법과
애민중생(哀愍衆生)하야: 중생을 애민히 여겨서
불사생사수행법(不捨生死修行法)과: 생사를 버리지 않는 수행법과
사필구경(事必究竟)하야: 이 일은 반드시 끝까지 완벽하게 해서
심무변동수행법(心無變動修行法)과: 마음에 흔들림이 없는 수행법과.
어디에 흔들림이 없는가? 이익과 손해, 칭찬과 헐뜯음에 변동하지 않는다. 변동하지 않는다. 부동이라고 얘기를 하는 것이다. 괴로움과 즐거움에 흔들리지 않는다. 무변동.
전념수축발대승심제보살중(專念隨逐發大乘心諸菩薩衆)하야: 전념 오로지 한 생각으로, 오로지 전심전력해서 대승심을 발하는 것을 수축한다. 모든 보살 대중을 진심전력으로 따라다니면서 선지식을, 보살대중을 수축한다.
제일 뛰어난 사람들이 부처님 10대 제자들이지 않은가. 그 10대 제자들을 능가하는 사람이 이 지구상에는 없는데 화엄경이나 법화경에서는 그 10대 제자를 능가하는 사람들이 나타난다.
그 사람들이 누구인가? 타방에서 온 보살 대중들이다.
안 그런가? 잘 생각 안 해 보셨는가?
안 해 보셨을 것이다.
보살이 있으니까 ‘있다’ 이렇게 했지만, 부처님 10대 제자들은 부처님으로부터 직접 가르침을 받았던 굉장히 뛰어난 제자들이다. 그 제자들을 제압하기 위해서, 그 사람들을 눌러버리기 위해서 타방에서 보살들이 모이게 된다.
그것이 주는 의미가 무엇이겠는가?
반드시 그대들은 일불승으로 가라, 아무리 뛰어난 부처님의 제자들이 계신다 할지라도 그것을 능가하는 보살 수행이 있다, 일불승으로 가는 길이다. 그것을 화엄, 법화에서 제시하고 있는 것이다.
그런 원대한 것을 우리가 지금 ‘야, 이런 것들이 석가모니 부처님께서 설하시던 근본 사상의 맥락이 이 먼 훗날에 3천년 뒤에 우리 앞에 눈앞에 펼쳐져 있다는 것이 무슨 인연인가’ 신기하고 신기하고 신기할 때가 많다.
자다 깨봐도 신기하다.
‘야, 어떻게 이런 글이 나한테 왔지?’
우리가 보는 이 책은 좀 덜 신심이 난다.
제가 가지고 있는 한 700년 500년 300년 400년 된 옛 목판본 책은 그걸 가만히 이렇게 만지면 신기하다.
어제도 제가 세주묘엄품 다 낡은 책, 장갑 끼고 만져야 될 부스러질 것 같은 그 책을 법화경 화엄경 이렇게 꺼내 놓고 가만히 보면서 어른스님한테 물려받은 강본들을 이렇게 보면서 ‘야, 이 옛날 고본이 수백 년 전에 강사들이 쓰던 책들이 어떻게 나한테 이렇게 와 있지. 무슨 인연일까?’
신기하고 신기했다.
그때 먹을 갈았던 사람, 책을 맸던 사람, 가끔씩 약간 맛이 간 미친 생각도 한다.
‘아마 내가 전생에 맸을 거야. 보면 내 솜씨네’
밀납 칠한 그 책을 다음 시간에 여기 한 번 갖다 놓겠다.
여러분들 당신 것 같으면 보시면서 눈물이 뚝뚝 떨어질 것이다. ‘이거 내 건데’ 이러면서 가져가시면 안된다.
그런 책을 보면 요즘은 인쇄술도 발달됐지만 그때는 온 국력을 다해서 어떻게 조각칼로 새기고 새겨서, 기차도 없고 콘테이너도 없는데 그걸 어깨에 짊어지고, 또 외워서 자기 머릿속에 넣어서 그 불볕의 사막을 건너고 건너서 우리에게 전하려고 한 마음이 느껴진다. 그 좋은 게 여기까지 와 있다.
이것은 논문거리도 아니고 가십거리도 아니다.
우리 인생을 싣고 갈 뗏목이다.
우리 인생을 완전히 찬란하게 꽃피울 뗏목과 같은 것이다.
우리가 은해사에서 어른스님 모시고 공부하면, 꽃이 환하게 필 때는 어른스님도 굉장히 낭만이 있는 분이다.
요즘은 꽃나무에 꽃이 너무 많지만, 옛날에는 꽃나무가 별로 없잖은가.
꽃이 피면 아무 주인도 없는 자두밭에 찌짐 사갖고 가서 아무 재미도 없는데 대학원생들인 우리끼리 낄낄거리고 어른스님 모시고 앉아서 사이다 한잔씩 마시면서 놀았다.
옛날 사람들은 좌화취월(坐花醉月)이라. 꽃이 피면 꽃 위에 앉아서, 달빛에 취해서 밤을 새워 친구들을 불러서 그 꽃밤을 즐겼다.
내일이 보름 아닌가.
2월 보름에는 매화가 만발한다고 해서 화조(花朝) 꽃의 아침이 열리는 날이다. 3월 보름이면 이화(梨花)에 월백(月白)하는 날이다.
정근수학수행법(精勤修學修行法)과: 보살대중의 부지런히 배우는 수행과
원리사견(遠離邪見)하고: 삿된 소견을 멀리하고 원리사견하고
근구정도수행법(勤求正道修行法)과: 바른 도를 부지런히 수행하는 법과
최파제마(摧破諸魔)와: 여러 마와
급번뇌업수행법(及煩惱業修行法)과: 번뇌업을 꺾어 버리는 수행법과
지제중생(知諸衆生)의: 중생들의
근성승열(根性勝劣)하야: 근성이 수승하고 낮고 근성승열을 잘 알아서 잘났는지 못났는지 수승한지 우열한지 하열한지 잘 알아서
이위설법(而爲說法)하야: 법을 말해서
영주불지수행법(令住佛地修行法)과 :부처의 지위에 머물게 하는 수행법과
안주무변광대법계(安住無邊廣大法界)하야: 그지없는 광대한 법계에 머물러서
제멸번뇌(除滅煩惱)하야: 번뇌를 멸하고
영신청정수행법(令身淸淨修行法)이니라: 몸을 청정케 하는 수행법이니라.
시위십(是爲十)이니:이것이 열가지니
약제보살(若諸菩薩)이:만일 이 보살들이
안주기중(安住其中)하면:이 가운데 편안히 머물면
즉득여래무상수행법(則得如來無上修行法)이니라 : 여래의 위없는 수행법을 얻나니라.
(23) 菩薩의 十種魔
佛子야菩薩摩訶薩이有十種魔하니 何等이 爲十고所謂蘊魔니生諸取故며煩惱魔니恒雜染故며業魔니能障礙故며心魔니起高慢故며死魔니捨生處故며天魔니自憍縱故며善根魔니恒執取故며三昧魔니久耽味故며善知識魔니起着心故며菩提法智魔니不願捨離故라是爲十이니 菩薩摩訶薩이應作方便하야 速求遠離니라
“불자여, 보살마하살은 열 가지 마가 있으니, 무엇이 열인가. 이른바 오온(五蘊)의 마(魔)이니, 여러 가지 집착을 내는 연고며, 번뇌의 마이니, 항상 물드는 연고며, 업(業)의 마이니 능히 장애하는 연고며, 마음의 마이니, 교만을 일으키는 연고며, 죽음의 마이니, 난 곳을 버리는 연고이니라. 하늘의 마이니, 스스로 교만하고 방종(放縱)하는 연고며, 착한 뿌리의 마이니 항상 집착하는 연고며, 삼매의 마이니 오래 맛을 들이는 연고며, 선지식의 마이니, 집착하는 마음을 내는 연고며, 보리법(菩提法)을 아는 지혜의 마이니 버리려 하지 않는 연고이니라. 이것이 열이니, 보살마하살이 응당 방편을 지어 빨리 여의기를 구해야 하느니라.”
*
보살(菩薩)의 십종마(十種魔)
*
보살은 열 가지 마가 있다. 뭐가 마가 끼었는가?
*
불자(佛子)야 : 불자여
보살마하살(菩薩摩訶薩)이 :보살마하살은
유십종마(有十種魔)하니: 열 가지 마가 있으니
하등(何等)이:무엇이
위십(爲十)고:열 가지냐? 장애를 떠나 여기서는 열 가지 마에 그 열 가지 이제 장애 떠나는 수행을 밝힌다.
그러니까 앞에 다섯 가지는 장애를 떠나서 수행이 성취됨을 밝히고 뒤에는 장애를 떠나 가피가 더해지는 것을 밝히는 것이다. 자, 생략하고 넘어간다.
처음 두 문은 뭐냐?
소위온마(所謂蘊魔)니: 이른바 오온의 마이며
생제취고(生諸取故)며: 여러 가지 집착을 내는 연고이고
번뇌마(煩惱魔)니: 번뇌의 마이니
항잡염고(恒雜染故)며: 항상 물드는 연고이고
업마(業魔)니: 업의 마이니
능장애고(能障礙故)며: 능히 덮는 장애하는 연고이고
심마(心魔)니: 마음의 마, 마음에
기고만고(起高慢故)며: 교만을 일으키는 연고이고
사마(死魔)니:죽음의 마이니
사생처고(捨生處故)며: 난 곳을 버리는 연고이고
천마(天魔)니: 하늘의 마인 천마는
자교종고(自憍縱故)며: 자만하고 방종하는 연고이고
선근마(善根魔)니: 선근의 마이니
항집취고(恒執取故)며: 항상 집착하는 연고이다.
너무 잘하려고 하면 안 된다. 너무 잘하려고 하는 것도 전부 마장이다. 너무 잘하려 하는 사람들은 아만이 많다.
그래서 저는 신도님들에게 ‘제발 잘 할라하지 마라. 너무 잘하려 하지 마라. 해 놓고 빨리 잊어버려라’라고 한다.
“스님 저번에 티 하나 사 줬던 거 괜찮던가요?” 만날 때마다 묻는다. 오늘도 입고 왔다.
삼매마(三昧魔)니: 삼매의 마이니
구탐미고(久耽味故)며: 오래 맛들이는 연고이다.
선지식마(善知識魔)니:선지식의 마이니
기착심고(起着心故)며: 기착심고니라. 선지식은 집착하는 마음을 내는 게 아니다.
좋다고 엎어지고 싫다고 자빠지고 이것이 아니라는 것을 이세간품에 확 다 써놨다.
그것이 생사열반상공화다.
좋고 싫고, 자체가 없는데 무슨 색깔이 있는가.
보리법지마(菩提法智魔)니: 보리법을 아는 지혜의 마이니
불원사리고(不願捨離故)라: 버리려고 하지 않는 연고이니라.
시위십(是爲十)이니: 이것이 열 가지이다. 가다가다 안 되니보리법, 보리법지마까지 되어 버렸다.
그러니까 어떤 것도 본래무일물에 대해서는, 금가루도 탈이 난다는 것이다.
보살마하살(菩薩摩訶薩)이: 보살마하살이
응작방편(應作方便)하야: 방편을 내어
속구원리(速求遠離)니라: 빨리 원리를 구하느니라. 마의 체성을 잘 나타냈다.
(24) 菩薩의 十種魔業
佛子야 菩薩摩訶薩이 有十種魔業하니 何等이 爲十고 所謂忘失菩提心하고 修諸善根이 是爲魔業이요 惡心布施하고 瞋心持戒하며 捨惡性人하고 遠懈怠者하며 輕慢亂意하고 譏嫌惡慧가 是爲魔業이요 於甚深法에 心生慳悋하야 有堪化者라도 而不爲說하고 若得財利恭敬供養하면 雖非法器나 而强爲說이 是爲魔業이요 不樂聽聞諸波羅蜜하고 假使聞說이라도 而不修行하며 雖亦修行이나 多生懈怠하며 以懈怠故로 志意狹劣하야 不求無上大菩提法이 是爲魔業이요 遠善知識하고 近惡知識하며 樂求二乘하야 不樂受生하며 志尙涅槃하야 離欲寂靜이 是爲魔業이요 於菩薩所에 起瞋恚心하야 惡眼視之하야 求其罪釁하며 說其過惡하야 斷彼所有財利供養이 是爲魔業이요 誹謗正法하야 不樂聽聞하고 假使得聞이라도 便生毁呰하며 見人說法에 不生尊重하야 言自說是하고 餘說悉非가 是爲魔業이요 樂學世論하야 巧述文詞하며 開闡二乘하야 隱覆深法하며 或以妙義로 授非其人하며 遠離菩提하고 住於邪道가 是爲魔業이요 已得解脫하야 已安隱者는 常樂親近하야 而供養之하고 未得解脫하야 未安隱者는 不肯親近하며 亦不敎化가 是爲魔業이요 增長我慢하야 無有恭敬하며 於諸衆生에 多行惱害하며 不求正法眞實智慧하고 其心弊惡하야 難可開悟가 是爲魔業이라 是爲十이니 菩薩摩訶薩이 應速遠離하고 勤求佛業이니라
“불자여, 보살마하살은 열 가지 마의 업[魔業]이 있으니 무엇이 열인가. 이른바 보리심을 망실하고 모든 선근을 닦음이 마의 업이니라. 나쁜 마음으로 보시하고 성난 마음으로 계율을 지니며, 나쁜 성품을 가진 사람을 버리고 게으른 이를 멀리 하며, 산란한 뜻을 업신여기고 나쁜 지혜 있는 이를 싫어함이 마의 업이니라. 깊고 깊은 법에 대하여 인색한 마음을 내어 교화를 받을 만한 사람에게도 법을 말하지 않으며, 만약 재물과 이익으로 공경하고 공양 받으면 비록 법의 그릇이 아니라도 억지로 법을 말함이 마의 업이니라.
모든 바라밀다를 즐겨 들으려 하지 않고 가령 듣더라도 수행하지 않으며, 비록 수행하더라도 게으름을 많이 내고 게으른 까닭에 뜻이 용렬하여 위없는 큰 보리심의 법을 구하지 아니함이 마의 업이니라.
선지식을 멀리하고 악지식을 가까이하며, 이승(二乘)을 좋아하여 태어나기를 즐기지 않고, 열반을 숭상하여 욕심을 여의고 고요하려 함이 마의 업이니라.
보살들이 사는 곳에 와서 성내는 마음을 내어 나쁜 눈으로 흘겨보고, 허물을 찾아내어 잘못을 말하며, 그들에게 재물로 공양함을 못하게 함이 마의 업이니라.
바른 법을 비방하여 듣기를 좋아하지 않으며, 비록 듣더라도 문득 훼방하며, 법을 말하는 사람을 보고 존중한 마음을 내지 않으며, 제 말이 옳고 다른 말은 그르다 함이 마의 업이니라.
세상의 언론을 배워 글짓기를 좋아하며, 이승(二乘)을 선전하고 깊은 법은 덮어 두며, 혹은 미묘한 이치를 자격이 없는 이[非其人]에게 일러 주며, 보리를 멀리 떠나고 삿된 길에 머무름이 마의 업이니라.
해탈을 얻어 이미 편안하게 된 이를 항상 가까이하여 공양하고, 아직 해탈을 얻지 못하여 편안하지 못한 이는 가까이하지도 않고 또한 교화하지도 아니함이 마의 업이니라.
교만이 늘어서 공경하는 마음이 없고 모든 중생들을 늘 시끄럽게 하며, 바른 법과 진실한 지혜를 구하지 않고, 그 마음이 악하여 깨우치기 어려운 것이 마의 업이니라.
이것이 열이니, 보살마하살은 마땅히 하루빨리 멀리 여의고 부처님의 업을 부지런히 구해야 하느니라.”
*
보살(菩薩)의 십종마업(十種魔業)
*
불자(佛子)야: 불자야
보살마하살(菩薩摩訶薩)이:보살마하살에게는
유십종마업(有十種魔業)하니:열 가지 마업이 있다. 마가 있고 마업이 있고 이렇게 나온다.
저 앞에 우리 범행품에서 몸[身]이 있고 말이 있고 말의 업이 있고 생각이 있고 생각의 업이 있고 하듯이
하등(何等)이: 무엇을
위십(爲十)고:그 마업의 열 가지라 하느냐?
소위망실보리심(所謂忘失菩提心)하고: 여기에 마업을 행하면 모든 착한 걸 다 그르치게 되고 천마를 불러들이기 때문에 업이라고 하는 것이다.
화엄경도 잘 모르는 사람이 “내가 화엄경 가르쳐 줄게.”이랬다면서 “스님 누가 화엄경 가르쳐 준다는데요?” “응, 가르치는 거는 괜찮은데 그르칠까 겁난다 하소.” 가르치면 다행인데 그르치면 골치 아픈 것이다.
이를테면 보리심을 잊어버린 채 선근을 닦는 것이 마업이다. 그러니까 이걸 뭐라 했는가?
제가 ‘보빼시’라 했다.
보리심 빼면 시체다. 보리심을 잊어버린 채 보리심이 없으면서 온갖 것 좋은 일을, 아무리 좋은
수제선근(修諸善根)이:수제선근을 한다 하더라도
시위마업(是爲魔業)이요:이것은 마업이다. 마업. 보리심을 망실하면, 보리심을 잃어버리면 근본을 잃어버린 것이다.
콤파스 중심이 흔들린 것이고, 건물을 지으면서 기초가 튼튼하지 않은 것이라. 사상누각이라.
악심보시(惡心布施)하고: 악심으로 보시하고
진심지계(瞋心持戒)하며:진심으로 지계하며 남한테 잘 베풀어 주는데 ‘먹고 떨어져 버려라’ 하고 악한 마음으로 보시를 하고, 성내는 마음으로 계를 아무리 지켜본들 안 된다는 것이다. 이 두 가지는 ‘잘못된 바라밀은 평등하지 않기 때문에 안 된다’는 것이다. 잘못과 함께 바라밀을 아무리 행해 봤자 그런 것은 되도 않는다는 것이다. 너덜너덜한 보시, 너덜너덜한 지계, 너덜너덜한 인욕, 너덜너덜한 아무 쓸데 없는 거지 깡통 같은 보시다. 그 같은 것들이 악심 보시 아닌가.
사악성인(捨惡性人)하고: 성품이 나쁜 사람을 버리고
원해태자(遠懈怠者)하며: 게으른 이를 멀리하고
경만난의(輕慢亂意)하고: 산란한 마음을 가볍게 여기고
기혐악혜(譏嫌惡慧)가: 어리석은 지혜를 있는 사람들을 업신 여기는
시위마업(是爲魔業)이요: 이것이 마업이다.
성품이 나쁜 사람도 수용해야 된다. 게으른 사람도 그렇다.
우리는 멀리하고 싶잖은가. 나부터라도 성품이 나쁜 사람하고 헛말하고 이런 사람들을 멀리 하고 전화번호 차단한다.
그 산란하는 사람들을 아주 낮춰보고 우리가 교만해서 정신적으로 흔들리고 이런 사람들을 자기보다 많이 낮춰 보잖는가. 또 지혜없이 잘 모르고 이러면 막 뭐라 하는데 이런 것이 다 마업이다. 소초에 보면 그렇게 해놓았다.
참된 도라고 하는 것은, 베풀지도 않고 인색하지도 않고 내가
베풀었는데 베푼 줄도 모르고 인색한 줄도 모르고 그런 게 아니다. 불시불간(不施不慳)이여 불계불범(不戒不犯)이라.
계를 지키지도 않고 범하지도 않고 불인불에(不忍不恚)라. 참지도 않고 화내지도 않고 정진하지도 않고 게으르지도 않고, 아예 없다는 것이다.
이 대목은 잘 보시려면 지공화상의 14과송(十四科頌)을 보면 된다.
14가지 결과물 과송에 ‘산란과 고요가 둘이 아니고 중생과 부처가 둘이 아니고’ 그 대목이 있다.
여러분들이 받은 책 중에 대승찬과 직지강설 어른스님이 써 놓으신 책 있잖은가. 직지강설 뒤편에 보면 지공화상의 14과송이 있다.
그 14과송하고 대승찬(大乘讚)이 선불교의 기준 텍스트다. 거기에서 파송된 것이 신심명, 증도가다. 원류는 대승찬과 14과송이다.
지공화상은 어느 정도 급이냐? 달마스님하고 동급이다.
달마스님은 그렇게 자세하게 해 놓은 것은 없다.
선어록 제일 뒤에 지공화상의 대승찬과 14과송이 우리가 공부하는 데 많은 도움을 준다.
특히 그 게송을 선어록을 읽었는데 화엄경이 쑥 풀려 버린다. 14과송 여러분들이 그 책을 몇 권씩 가지고 있다. 어른스님이 번역을 다 해서 나눠 드렸다.
혹시 못 받으신 분들은 사서 보시기 바란다.
선정에 들지도 않고 어지럽지도 않고 부지불우(不智不愚)하고 지혜롭지도 않고 어리석지도 않고 남이 아무리 집어뜯어도 남이 혐오하고 싫어하고 미워하는 데 참지 못한다면 어찌 인욕바라밀이 이루어질 수 있겠는가? 남이 헐뜯든지 지지고 볶든지 고락에 대해서 민감하지 않다는 것이다.
그 정도 해놓고
어심심법(於甚深法)에: 아주 깊은 법에 대해서
심생간인(心生慳悋)하야: 마음의 인색함을 내어서 심생간인하야
유심화자(有堪化者)라도: 비록 교만한 사람이 있어도
이불위설(而不爲說)하고: 그에게 법을 설하지 않는 것이다. 법에 인색해서 해 줄 만한데도 법을 설하지 않고
약득재리공경공양(若得財利恭敬供養)하면: 재물과 공경과 공양을 얻으면, 나한테 떡 사 주고 밥 사 주고 돈 주고 봉투 하나 가득하게 주면
수비법기(雖非法器)나:비록 법을 담을 그릇이 아닌데, 법기도 아닌데
이강위설(而强爲說)이: 그 사람한테 화엄경을 있는 대로 막 설한다. 굳이 억지로 설하는 것이
시위마업(是爲魔業)이요:이것이 마업이다.
좀 찔린다. 나한테 잘 안 해 준다고 해서 그 사람한테 안 설해주고, 곤지암 옆에 어딘가? 햇살 복숭아 그거 막 갖다 준다해서 화엄경 막 설해주고, 거창에서 고로쇠물 막 뽑아 준다 고 해서 설해주고, 뉴질랜드 갔다 오셔서 진한 그 아주 좋은 꿀 있잖은가. 마누카 꿀 막 뿌린다고 화엄경 설해준다.
마누카 꿀하고 화엄경은 절대 비교할 수가 없는데도 그렇다.
금강경에 보면 칠보로 보시하는 것이 사구게를 위타연설하는 것을 미치지 못한다고 나오는데 이것은 뭔가?
잘난 사람이나 못난 사람이나 법성은 원융하다 그 말씀이다.
법성원융무이상.
정사가 어디 있고 사도가 어디 있는가. 전부 다 싹 다 가치가 인인이 전부 다 분이 있다는 말이다.
불락청문제바라밀(不樂聽聞諸波羅蜜)하고: 여러 바라밀을 듣는 것을 즐기지 않고
가사문설(假使聞說)이라도:설법을 듣는데도
이불수행(而不修行)하며:실천하지도 않고
수역수행(雖亦修行)이나:비록 실천한다 해도
다생해태(多生懈怠)하며:게으름이 많아서. 결석 잘하는 누구 같다.
이해태고(以懈怠故)로:그 게으름을 말미암아 뜻과 마음이 좁고 게으른 사람들은 여기 써놨다. 마음의 뜻이 좁고. ‘좁다’를 뭐라고 그러는가 ‘비좁다’ 해야 되나?
지의협열(志意狹劣)하야:마음이 비좁고 열등해서
불구무상대보리법(不求無上大菩提法)이:위없는 큰 보리의 법을 구하지 않는 것
시위마업(是爲魔業)이요:이것이 마업이다.
‘아, 내가 게을러지면 마업이이구나’
원선지식(遠善知識)하고:선지식을 멀리하고
근악지식(近惡知識)하며:악지식을 가까이 하고
약구이승(樂求二乘)하야: 이승을 즐겨 구하고
불락수생(不樂受生)하며:중생으로 태어나는 것을 기뻐하지 않으며
지상열반(志尙涅槃)하야:열반을 뜻으로 삼아서
이욕적성(離欲寂靜)이:욕망을 떠난 고요함에 내 혼자만 그냥
편안한 데 머무는 것
시위마업(是爲魔業)이요:이것이 마업이다.
참선만 하는 사람들, 어른스님이 굉장히 싫어하는 대목이다.
어보살소(於菩薩所)에: 보살의 처소에
기진에심(起瞋恚心)하야: 성낸 마음을 일으켜서
악안시지(惡眼視之)하야: 눈을 꼴쳐보고 흘쳐보고 험한 눈으로 째려보고 험한 눈으로 악안으로 시지하고
구기죄흔(求其罪釁)하며: 그 허물을 어쩌든지 찾아내려고 하는 것, 그 뒤에 자는 피바를 흔(釁)자다.
그 허물을 ‘뭐 이렇게 흔적이 있는가’ 싶어서 탈탈 털어내는 것, 구기죄흔이라. 아주 어려운 자다. 피바를 흔자.
설기과오(說其過惡)하야: 그 잘못을 말해서 꼭 집어서
단피소유재리공양(斷彼所有財利供養)이:그가 받는 재물과 공양을 끊게 하는 것
시위마업(是爲魔業)이요: 이것이 마업이다.
바깥에 누가 좀 잘못했다 그러면 그 사람을 완전히 탈탈 털어서 쫄딱 망하게 하잖는가. 요즘 뉴스에 보면 그렇다. 그런데 그것은 다 마업이라.
비방정업(誹謗正法)하야: 정법을 비방하여
불락청문(不樂聽聞)하고:듣기를 즐기지도 않는다.
오늘은 여러분들 귀찮고 힘들더라도 계속 간다.
가사득문(假使得聞)이라도:가사득문이라도 각명스님 힘드신가? 모자 쓰고 있는 거 보면 아픈 것 같다. 우짜겠는가. 오늘 해야 된다. 춥고 아프고 해도 할 수 없다. 아프면 거기서 딱 주무시기 바란다. 머리 숫자만 채우고.
설령 듣게 되더라도
변생훼자(便生毁呰)하며:아이고 그게 무슨 불교가 헐뜯는 마음을 내고
견인설법(見人說法)에: 사람이 법을 설하는 것을 보고도
불생존중(不生尊重)하야: 존중하는 마음을 내지 않고
언자설시(言自說是)하고: 스스로 말하기를
여설실비(餘說悉非)가: 내 말만 옳고 여설은 실비라 다른 것은 다 그르다 하는
시위마업(是爲魔業)이요: 이것이 마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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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학세론(樂學世論)하야: 세속의 이론을 배우는 것을 즐기고
교술문사(巧述文詞)하며: 문장을 교묘히 꾸미고, 말장난한다는 것이다. 글자를 쓰고 하는 것은 도하고 아무 상관없다는 것이다.
개천이승(開闡二乘)하야: 이승의 가르침을 드러내어 말하고
은부심법(隱覆深法)하며: 깊은 법은 심법은 은부하고 덮어 버리고 숨기고
혹이묘의(或以妙義)로: 아주 미묘한 뜻을
수비기인(授非其人)하며: 그릇되지 않은 사람에게 전하지도 않고 잘, 제대로 비기인하고
원리보리(遠離菩提)하고: 보리를 멀리하여
주어사도(住於邪道)가: 삿된 길에 머무는 것
시위마업(是爲魔業)이요: 이것이 마업이다.
이득해탈(已得解脫)하야 :이미 해탈을 얻고
이안은자(已安隱者)는: 이미 편안한 이들은
상락친근(常樂親近)하야: 늘 가까이
이공양지(而供養之)하고: 공양하지만, 해탈을 얻고 큰스님들한테는 잘한다.
미득해탈(未得解脫)하야: 아직 해탈하지 못하고
미안은자(未安隱者)는: 편안하지 못한 사람들은
불긍친근(不肯親近)하며: 가까이 하려고 하지도 않고 깜냥도 안 된다고 사람 무시하는 것이다.
아주 훌륭한 큰스님들한테 잘하고 작은 스님들한테는 못 한다. 그런 것을 뭐라고 하는가?
‘큰스님한테 잘 못 하면 큰일 나고 작은 스님한테 못 하면 작살나고’ 이렇게 얘기한다.
역불교화(亦不敎化)가: 가르쳐 교화하지도 않는 것
시위마업(是爲魔業)이요:이것이 마업이다. 너무 지칠까 싶어서 한 마디하는데도 진짜 농담하는 것도 지친다.
증장아만(增長我慢)하야: 아만을 탱천하게 키워서
무유공경(無有恭敬)하며: 공경하는 마음이 없다.
아만스러운 사람한테 공경을 요구하는 자체가 어긋났다.
어제중생(於諸衆生)에: 모든 중생에게
다행뇌해(多行惱害)하며: 다행뇌해하야. 괴로움을 막 모든 중생에게. 미꾸라지 한 마리가 여러 사람에게 폐를 끼친다.
불구정법진실지혜(不求正法眞實智慧)하고: 바른 법과 참된 지혜를 구하지 아니하고
기심폐악(其心弊惡)하야: 마음이 아주 폐악스럽다.
해지고 다 헤쳐지고 질질이 갈가리 찢겨서 악해서 마음이라 할 것도 없다. 넝마같이 쓰레기 같은 마음을 가지고
난가개오(難可開悟)가: 깨우쳐 주기 어려운 것
시위마업(是爲魔業)이라: 이것이 마업이다. 뭔가 수습하려고 해도 안 된다. 폐차해 버려야 된다.
시위십(是爲十)이니: 이것이 열이니
보살마하살(菩薩摩訶薩)이: 보살마하살이
응속원리(應速遠離)하고: 마땅히 멀리 여의고
근구불업(勤求佛業)이니라 :부처님의 업을 부지런히 구해야 하느니라.
(25) 菩薩의 十種捨離魔業
佛子야 菩薩摩訶薩이 有十種捨離魔業하니 何等이 爲十고 所謂近善知識하야 恭敬供養하야 捨離魔業하며 不自尊擧하고 不自讚歎하야 捨離魔業하며 於佛深法에 信解不謗하야 捨離魔業하며 未曾忘失一切智心하야 捨離魔業하며 勤修妙行하야 恒不放逸하야 捨離魔業하며 常求一切菩薩藏法하야 捨離魔業하며恒演說法호대 心無疲倦하야 捨離魔業하며 歸依十方一切諸佛하야 起救護想하야 捨離魔業하며 信受憶念一切諸佛의 神力加持하야 捨離魔業하며 與一切菩薩로 同種善根하야 平等無二하야 捨離魔業이 是爲十이니 若諸菩薩이 安住此法하면 則能出離一切魔道니라
“불자여, 보살마하살은 열 가지 마의 업을 버림이 있으니 무엇이 열인가. 이른바 선지식을 가까이 모시고 공경하고 공양함이 마의 업을 버림이니라. 스스로 높은 체하지 않고 스스로를 칭찬하지 않음이 마의 업을 버림이니라. 부처님의 깊은 법을 믿고 이해하여 비방하지 않음이 마의 업을 버림이니라. 일체 지혜의 마음을 잠깐도 잊지 아니함이 마의 업을 버림이니라. 묘한 행을 부지런히 닦고 항상 방일하지 아니함이 마의 업을 버림이니라. 모든 보살장(藏)의 법을 항상 구함이 마의 업을 버림이니라. 항상 법을 연설하여도 마음에 고달파하지 아니함이 마의 업을 버림이니라. 시방의 일체 모든 부처님께 귀의하여 구호하려는 생각을 일으킴이 마의 업을 버림이니라.
일체 모든 부처님이 신통한 힘으로 가지(加持)하심을 믿고 생각함이 마의 업을 버림이니라. 모든 보살과 착한 뿌리를 함께 심어 평등하고 둘이 없음이 마의 업을 버림이니라. 이것이 열이니, 만일 모든 보살이 이 법에 편안히 머물면 능히 모든 마의 길에서 벗어나느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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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살(菩薩)의 십종사리마업(十種捨離魔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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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살은 열 가지 마의 업을 버림이 있다. 여기서부터는 아주 제정신 차리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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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자(佛子)야:불자야
보살마하살(菩薩摩訶薩)이: 보살마하살은
유십종사리마업(有十種捨離魔業)하니:열 가지 마의 업을 버림이 있으니
하등(何等)이:무엇이
위십(爲十)고: 열 가지냐
소위근선지식(所謂近善知識)하야:이른바 선지식을 가까이 모시고
공경공양(恭敬供養)하야: 공경 공양함이
사리마업(捨離魔業)하며: 마의 업을 버리는 것이고, 게으름이 사라지게 될 것이다.
부자존거(不自尊擧)하고: 스스로 높은 체하지 않고
부자찬탄(不自讚歎)하야: 스스로 칭찬하지 않은 것이
사리마업(捨離魔業)하며: 마의 업과 멀리하는 것이다.
우리 같은 사람은 자기 자랑을 얼마나 많이 하는가? 그러면 이게 마구니다. 남에게 잘난 척 안 하고 자기 칭찬 안 하면 겸손하고 교양이 있어지는 것이다.
어불심법(於佛深法)에: 부처님의 깊은 법을 믿고
신해불방(信解不謗)하야: 비방하지 않음이
사리마업(捨離魔業)하며: 마업을 버리는 것이다.
정법에 대해서 싫증을 내는 것이 없다.
미증망실일체지심(未曾忘失一切智心)하야: 온갖 지혜의 미증망실 온갖 지혜의 일체지심을, 지혜의 마음을 잠깐도 잊지 아니함이
사리마업(捨離魔業)하며: 마업을 버리는 것이다.
일체지심을 얻으려면 선지식을 존중해야 된다.
근수묘행(勤修妙行)하야: 묘한 행을 부지런히 닦고
항불방일(恒不放逸)하야: 방일하지 않는 것이
사리마업(捨離魔業)하며: 마의 업을 버리는 것이다.
마의 업을 버리려면 묘한 행을 부지런히 닦고 방일하지 않은 것, 똥물 같은 그 지혜를 피해 다녀야 한다.
상구일체보살장법(常求一切菩薩藏法)하야: 모든 보살에 들어가 있는 장법을 항상 구함이
사리마업(捨離魔業)하며:마의 업을 버리는 것이다. 영원히 보살행을 하겠다.
항연설법(恒演說法)호대: 항상 법을 연설하여도
심무피권(心無疲倦)하야: 고달파하지 아니함이
사리마업(捨離魔業)하며 :마의 업을 버리는 것이고
귀의시방일체제불(歸依十方一切諸佛)하야: 시방의 모든 부처님께 귀의하여
기구호상(起救護想)하야: 구호의 생각 기구호상이라 하야
사리마업(捨離魔業)하며 : 이것이 마업을 버리는 것이다.
부처님의 가피력을 신봉해야 된다.
삼매에 들면 가피력이 있다. 앞에 나온 심무피권, 고달파하지 않는 것은 정법을 신봉하는 태도다. 법을 신봉하는 태도이고 밑에는 부처님의 가피력을 신봉하는 태도이다.
신수억념일체제불(信受憶念一切諸佛)의: 모든 부처님이 신통한 힘으로
신력가지(神力加持)하야 : 가지하심을 믿고 생각함이
사리마업(捨離魔業)하며: 마의 업을 버리는 것이다. ‘부처님하고 똑같은 동일한 선근을 심겠다’는 것이다.
부처님의 가피를 얻게 되면 저절로 모든 폐악이 덮혀서 다 쉬어진다고 한다.
백겁적집죄(百劫積集罪) 일념돈탕진(一念頓蕩盡) 여화분고초(如火焚枯草) 멸진무유여(滅盡無有餘)
그것도 여래출현품에 자세하게 나오는 게송이다.
여일체보살(與一切菩薩)로: 일체 모든 보살로
동종선근(同種善根)하야: 모든 관세음보살이나 지장보살과 같은 똑같은 선근을 내가 심는다. 그러면 똑같이 될 것이다.
평등무이(平等無二)하야: 평등하고 둘이 없으니
사리마업(捨離魔業)이: 마업을 버리는 것이다.
모든 보살행을 반드시 실천하겠다. 같은 하나의 선근인데 어찌 우리라고 악을 구하겠는가. 똑같이 해야 한다.
시위십(是爲十)이니:이것이 열 가지이니
약제보살(若諸菩薩)이: 만약 보살이
안주차법(安住此法)하면: 이 법에 편안히 머물면
즉능출이일체마도(則能出離一切魔道)니라 : 능히 마의 길에서
뛰어나느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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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신위상좌[편]삼천
분반[자]
불자존거(不自尊擧)하고: 스스로 높은 체하지 않고
부자찬탄(不自讚歎)하야: 스스로 칭찬하지 않은 것이
@연기의 도리와 인생을 알고자 감사합니다. 편은 일지경에 나온 그대로 두었습니다.
나무대방광불화엄경 나무대방광불화엄경 나무대방광불화엄경... 고맙습니다. _()()()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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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맙습니다._()()()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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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무 대방광불화엄경
화엄경 아름다운 글,
언제나 감동!
누구라도 읽을 수 있기를...
글과 같이
함께 나아가기를...
_()()()_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