줄거리
가정부인 옥자밖에 없는 집에 막무가내로 들어온 국정은 트렁크를
안고 있던 정가에게 내일 방문하라고 이른다. 외출에서 돌아온 집주인
준상과 아내 이순은 국정을 보고 놀란다. 오히려 당당한 국정은
준상에게 반말을 하며 여기서 며칠 동안 머물겠다고 말한다. 준상은
트렁크를 담보로 버티는 국정에게 꼼짝하지 못하고 그를 머무르도록
한다.
국정이 집에 머무르는 것을 싫어하는 이순은 준상에게 불평을
토로한다. 준상은 국정과 트렁크의 값을 흥정하려 하고 국정은 트렁크와
이순을 교환하자고 제안한다. 준상은 이순에게 국정과의 옛일을 묻고,
이순은 그가 자신을 팔았다고 말하며 병원에 입원했던 일들을
고통스럽게 회상해 낸다. 이순을 위해 양귀비를 구한 준상은 양귀비가
든 트렁크의 행방을 알지 못해 고민하다가 준상을 찾은 정가를 만나고
정가로부터 국정이 마약반일 거라는 얘기를 듣는다.
국정이 가지고 온 베드로라 불리는 닭의 울음 소리가 들린다. 준상이
탕에 들어가 있는 동안 이순은 국정에게 사랑을 요구하며 다시 옛날
일을 원망한다. 수면제로 삶을 연명하는 아내의 치료를 위해 국정과
협상을 시작한 준상은 이순을 요구하는 국정의 말에 따르기로 한다.
그러나 사태가 이 지경에 이르자 뜻밖에도 국정은 발을 빼려 하고
준상도 책임을 국정에게 전가시키려 한다. 병원에 연락한 준상은
병원에서 다시 이순을 데려가기 전에 빨리 조치하라고 국정에게
제촉한다. 베드로를 죽인 피로 그녀가 자살한 것으로 꾸미려 한 국정은
베드로의 목을 비틀어 그 피를 그녀에게 뿌리고 연극을 꾸미려 하지만
그녀가 잘 따르지 않는다. 닭의 목을 조르던 손으로 이순을 조르는
국정. 마침내 닭 울음소리가 울린다. 국정은 베드로가 부활했다며
기뻐하며 준상과 잔을 부딪친다.
[제목] 유다여 닭이 울기 전에
[페이지] F01
유다여
닭이울기전에
오태석
[페이지] F02
(인물)
준상
이순
국정
정가
옥자
[페이지] 001
(황혼)
2층으로 오르는 층계가 보인다
[옥자] 어마 안돼요. 어마. 어마. (국정이 문으로 들어선다) 아즘마 곧 오신다구요. 안돼요.
[정가] 잠간이면 돼.
(옥자가 몸을 빼 국정을 본다. 정가는 한쪽에 놓였던 트렁크 품에 안는다)
[옥자] 누구세요. 아무도 안계신데.
[국정] 저건 뭐야?
[정가] 저는 아닙니다. 심부름이죠. 아무것도 모릅니다.
[페이지] 002
[국정] 애를 덮치라고 심부름을 보내던가.
[옥자] 방금 들어왔는데요. 뭐. 이제 방금.
[정가] 정말입니다. 서울역에 내리자 곧장.
[국정] 그거 이리 주게.
[정가] 네? 저는 아무것도 모릅니다. 그저.
[국정] 안녕 이리 내란말야. 얼굴좀 보자구. (안경을 건네 받는다. 눈에 대보고 독한 냄새라도
피하듯 찡그리고) 그 눈으로 내 서있는게 보이나? 그 가슴에 있는 것하고 안경하고 어느 것이 더
중요한가? 안경인가. 그렇겠지. 눈이 이래서야 이것없이 밤낮이나 가리겠나 어디. 그럼 이것 자네가
하고, 그거 내가 하세.
[정가] 저는 단지 심부름으로.
[국정] 그것 뺏겼다가는 당장 천정에 목이라도 매겠네. 끔직한 일이군. 안그런가. 하는수 없지. 내가
이걸 갖세. 마져 뺐기기 전에 그만 가지.
[페이지] 003
[정가] 네?
[국정] (옥자를 가리키며) 자네가 점잖은 양반이라면 내가 순서를 기다려야겠지만, 피자파장이니
새치기 용납하고, 자네는 내일 방문하도록 해.
[정가] 내일이오?
[국정] 갔다가 내일 아무때나 이 애 혼자 있을 때 오란말야.
[정가] 예, 알았습니다. (급히 나간다)
[국정] 잠간, 자네가 어디서 오는 길이라고?
[정가] 부산에서요. 막 오던 참입니다.
[국정] 그럼 갔다가 다시 오게. 잊지마. 내일이야. (안경을 써본다) 이건 횡잰데. 뜻밖이야. 자네
봤지. 목숨보다 귀한건 트렁크라네. 목숨보다 못한 건 사랑이지.
[페이지] 004
[옥자] 누구신지 모르지만 집에 아무도 안계신 만큼은,
[국정] 전혀 이럴 작정은 아니었네만 오늘 일진이 좀 우습게 되었네. 방문객으로 마땅한 시작이라고
할 수 없네만, 자네하고 내가 달리 뭔 일을 하겠나. 내게 죄가 있다면 남 흉내를 잘 낸다는거야. 이건
유전이지. 이층이 아늑하겠군. 앞서게.
[옥자] 네? 왜요?
[국정] 변이순. 이집 마님 방은 어딘가?
[옥자] 방은 왜요?
[국정] 앞에 서.
[옥자] 안돼요. 조금 있으면 주인 어른들 오실거에요. 기다렸다가. (국정이 밀듯이 올라간다) 나는
몰라요. 안돼요. 나는. (문 여닫히는 소리, 변이순이 장바구니 들고 들어온다)
[이순] 옥자, 어딜 갔나? 옥자. (전화벨 울린다, 받는다)
[페이지] 005
네, 그렀읍니다. 네, 아직은, 이삼일 뒤에 다시 걸어봐주실래요. 네, (수화기를 놓고, 위를 벗으며
층계를 오르려다가 흠칫 멈춰선다. 귀 기울인다. 급히 부엌쪽으로 숨듯이 들어간다. 수도물 쏟아지는
소리, 문 여닫히는 소리 들리고 옥자가 옷매무새 바로 잡으며 층계 내려오다가 수돗물 소리 듣고 선다.
이순 나온다)
[옥자] 몰라요.
[이순] 몰라?
[옥자] 기다리라는데 자꾸만.
(초인종 소리)
[이순] 내가 나갈께 들어가 있어. (현관문 쪽으로 나간다. 층계에 국정이 보인다. 담배 피워 문다.
이순, 준상 들어온다. 이순이 멈칫 선다.)
[국정] 남 집도 아니고. 앉지들.
[페이지] 006
[준상] (이순을 본다) 누구?
[국정] 식모한테 물어보도록 해, 일러뒀으니까.
[준상] 정신이 없는가? 남 집에 들어왔거든 신분을 밝혀야지.
[국정] 안사람은 가 수돗물 잠그고, 애 좀 씻겨주도록 해. 냄새가 너무 나.
[준상] 파출소로 전활 걸어요.
(이순 수화기를 든다)
[국정] 이제부턴 내 말을 듣는 쪽이 이로울 거야. 피차. (준상에게) 당신은 앉고, (이순, 다이알을
돌린다) 배신의 딸이라 어쩔수 없는가본데 (재떨이를 잡는다. 준상이 기겁을 하고 국정의 손을 잡는다)
[준상] 부엌에 가 있어요. (이순, 부엌으로 간다. 수돗물 소리 그친다) 나는 도무지. 당신 뭐요?
[페이지] 007
[국정] 그전에. 이젠 당신도 말을 놓도록 하는게 어때. 남 같아서 거북한데.
[준상] 남이 아니오?
[국정] 따지기를 좋아하는 성미구만. 세상 살아가면서 애 좀 먹겠어, 당신.
[준상] 대체 뭐요, 당신?
[국정] 우선 말을 놓도록해. 나는 그 거북한게 많은 사람이야. 그래서 까다롭다는 소리도 듣지만,
말을 놓기만하면 나처럼 무난한 사람도 없지. 일기를 쓰나?
[준상] 일기?
[국정] 알고 있겠지만 배의 선장은 그 항해일지라는 걸 쓰게 돼 있어. 선원 두놈이 싸움을 했다. 그
두놈 갖다 목을 매달았다거나 수장을 시켜버렸다거나 무인도에 떨쳐 놨다거나 다 기록하게 돼 있고,
그걸 기록해 놓지 않았다간 자신의 목이 간단 말이거든. 오늘부터 자네도 그 일기를 쓰도록 해. 그
첫대가리는 이러고
[페이지] 008
시작하지, 우리 두 사람은 말을 놓기로 했다. 되겠지?
[준상] 일기라니. 자네 도대체 뭔가?
[국정] 요 며칠간을 기록에 남기고 싶단 말이야. 역사를 기록 하라는데 뭐가 어려워. 일기 쓰라고.
[준상] 그러지.
[국정] 좋아. 내가 매일 검사를 할테니까 노력해보라구.
[준상] 매일. 매일이라니?
[국정] 여기서 지낼거야. 며칠이 될지, 그건 자네게 달렸고. 자네하고 나 사이에 금액이 결정되고,
금액이 주머니 속으로 들어오면 나가지.
[준상] 금액이라니?
[국정] (안에 대고) 거기 좀 나와줘야겠어.
[준상] 내말 안들리나. 금액이 뭔가 묻지 않아.
[페이지] 009
[국정] (이순에게 명함 내준다) 전화좀 돌려봐줘.
[이순] (다이알을 돌린다. 수화기 놓는다) 안 받는데요.
[국정] 여기 앉지. 오늘 당신이 집을 나간 시간이?
[이순] 세시쯤이요.
[국정] 골목을 나가 택시를 잡았지. 계속해.
[이순] 왜요?
[국정] 그 말은 이 사람한테 물어보고.
[이순] 미도파, 친구가 경영하는 양품점엘 갔죠. 링스틱을 하나 샀어요.
[국정] 계속.
[이순] 그 친구, 요 밑에 가서 빵 하고 가라, 내 팔을 잡았죠. 층계를 내려오다가 그친구 그만 발을
삐끗하는 바람에 나뒹굴뻔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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힐 뒤꿈치가 부러졌어요. 구둣방에 힐을 맡기고 흰 운동화를 얻어 신었죠. 처음엔 왼쪽 바른쪽을 바꿔
신었다가 바로 신었죠. 옛날 엄마 구두 신던 생각나네, 계속해?> 나 전화좀 걸고 하고 집으로 전화를
했죠. 그때 저애 말이 무슨 일 없었다고 했으니 그땐 당신 여기 없었던가보죠?
[국정] 당신 그 넥타이말인데, 아까도 말했지만 난 거북한게 많아. 그 넥타이 여간 거북한 게
아닌데.
[준상] 푸르지.
[국정] 아주 갈아입는게 어때. 어디 나갈 것도 아니고.
[준상] 그럴까, 그런 다음 어쩌면 되는가?
[국정] 아까 그 금액에 관한 얘길 계속하지. (준상 층계를 오른다. 문 여닫히는 소리) 당신 이 집에
들어와 갖고 한대로 해보지. 저 현관에서부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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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순] 문이 열려 있더군요. (문 열고 닫는다) 당신 많이 변했군요. 당신이 입을 열지 않았더라면
몰랐을 걸요. 말 소리 들으니, 소름이 끼쳤어요. 전처럼. 뭔 일이지요? 남의 집에서 주인행세고,
저분은 쩔쩔매고, 나도 그렇고.
[국정] 서툴러져버렸어. 당신을 보자 잡쳤지. 몇가지 볼 일이 있어서 우선 저애한테 일이 있었고, 그
다음은 연구중이야. 뭐 서둘것도 없지, 바로 떠날것도 아니니까.
[이순] 여기 있는단 말에요, 그럼?
[국정] 당분간은.
[이순] 왜, 뭣때문에?
[국정] 당신들은 두번씩 말을해야 알아듣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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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순] 당신이 여기서 지낸다구?
[국정] 언젠가 그랬지, 나도 한번 살아보자고. 저 애도 말 잘 듣고 집도 이만하면 됐고, 당신 부부가
말동무 돼 줄테고, 내가 과히 성가시게 굴지 않을테니까, 그래, 한번 살아보겠다는거야.
[이순] 왜 여기서- 모를 소리에요. 허튼 소리에요. 뭐에요. 왜 찾아와서 뭘 어쩌겠다는 거에요. 대체
당신 뭐죠? 왜 와가지고 이래요. 꼴 같잖게. 지긋지긋해. 들었어요, 견딜 수가 없다구요. 이렇게 보고
듣고. 싫어.
[국정] 마찬가지야.
[이순] 그런데 왜 찾아와서 이래.
[국정] 거래가 있어. 뭐 간단한 건데, 경우에 따라 좀 시일이 걸리지.
[이순] 경우?
[국정] 안됐지만 당신은 알려구해선 안돼. 명심하라고. 모르는게 약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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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준상이 실내복 차림으로 등장)
[준상] 물 좀 받아주겠어. (이순 나간다) 퇴근하는 길로 집에 왔다 자기집인 줄 알고 들어왔더니
집주인 되는 사람이 따로 있더라. 말하자면 지금 내 처지가 그런 꼴일세. 방에 들어가 이것저것
뒤져보니 분명 내 살림이야. 이것만해도 지난 봄에 어디서 들어온 것이네. 처만 해도 여기가 자기
집이니까 있는 것이겠고, 그러니 내 집이 분명하단 말야. 그런데 왜 내가 남의 꼴로 있어야 되나.
금액이란 건 또 뭔가?
[국정] 내 직무상 일주일에 두번 경부선 특급으로 오락가락하게 돼 있어. 그런데 오늘 식당차에서
커피를 들고 앉았는데 한 마흔이나 났을까한 사내가 내 앞자리에 와서 머리를 끄덕하고 앉았는데,
처음엔 그 사내가 화장을 하는 줄 알았다니까. 차창을 쳐다보면서 흰 손수건을 꺼내들고 오른쪽 눈을
훔쳤다가 왼쪽 눈을 훔치고, 왼쪽 눈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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훔쳤다가 오른쪽 눈을 훔치고, 양쪽 볼을 분 바르듯 찍어누르고 그럴때 마다 안경이 콧등에 방아를
찧고, 딱하더군. 그래, 그 안경이나 벗고 우시구려, 그랬더니 냉큼 그 안경을 벗어 내 손에 쥐어주면서
제발 그 안경 거절 말아 달라, 이것 없이 못살분 같은데 맡기는 사연이 뭐요. 아내라는 거야. 식당차엘
오다 보니 아내가 다른놈하고 앉아 있더라지. 비극은 거기서 끝나지 않았네. 그 사람이 바람을 쐬마고
승강구로 나갔는데, 그러구 나서 전신주가 스믈 네개 지나고 다섯번째 지나가는데 보니 전신주가
아니고 사람이더군.
[준상] 사람, 그 사람?
[국정] 꺼꾸로 떠서 날아가더군. 그런데 나중에 보니 탁자 위에 수화물표가 놓여 있질 않겠나. 그
사람이 슬적 내게 심부름을 부탁해논 것이라, 그게. 그래. 서울역에 와서 수화물을 찾았는데, 뭐 그냥
들고 다녀도 될 트렁크야. 다행이 수화물 꼬리표에 주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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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혔더군. 그래서 이렇게.
[준상] 그 주소가 이집이더란 말인가?
[국정] (품속에서 안경을 꺼내 탁자에 놓는다) 그 사람 안경이네. 보든 것인가? 하긴 심부름꾼
안경을 못 알아볼 수도 있겠지. 뒀다가 뒤에 그사람 보거든 주게.
[준상] 그 사람 죽었다면서. 그 사람이 누군가?
[국정] 아니. 이만큼 얘길했으면 알아들어야지 더 하란 소리야.
[준상] (안경을 짚고 본다) 이거 우리 정과정껀가. 정과장, 이사람이 지금 어딨나. 어딨어.
[이순] 여보.
[준상] 가지.
[국정] 아. 자네가 쓰기로 한 일기말인데, 저 애하고 내가 동침했다는 사실도 첨기해두도록하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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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준상] 뭘 어쨌다고?
[국정] 자세한 건 부인께 물어보도록.
(준상 나간다)
[이순] 일기라니요?
[국정] 당신 알바 아니야. 알려구해서도 안돼. 이점 명심하도록
(F.O)
(밤)
준상. 다이알을 돌린다. 저쪽이 통화중이다. 이순, 층계를 내려온다.
[이순] 나 차 한잔 줬으면, (부엌쪽에서 대답 소리) 어디 갔어요?
[준상] 전화좀 걸고 오마고. 공중전화래야 되겠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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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순] 두분 다 전화통에 매달렸군요.
[준상] 오기로 한 전화가 안와서.
[이순] 바쁜 일이 생겼나보죠. 내가 알아서는 안돼는 일이고.
[준상] 심부름을 하나 시킨 것이 있는데. 조심하느라고 했는데, 좀 복잡해진 모양이야.
[이순] 그런데 그일, 그 사람이 이집에 있어야 돼요?
[준상] 그편이 이로울 것같아. 당신 좀 거북하겠지만, 뭐 며칠 걸리지 않을테니까, 상대를 마주 보고
있다는 게 유리해. 전적으로. (옥자가 커피잔을 탁자에 놓는다) 손님방 손좀 보도록 해. (옥자,
나간다)
[이순] 저애가 난처하게 됐어요.
[준상] 일 끝나는대로 잘해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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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순] 집사람한테 그런 짓을 했는대도 당신은 그저.
[준상] 허세야. 저쪽이 약한거지.
[이순] 저, 그 사람 알고 있어요.
[준상] 뭐?
[이순] 그래서 이번 일 제가 도와드릴 수 있을지도 몰라요. 그저 안다는 정도로 아세요.
[준상] 당신이 어떻게 그자를.
[이순] 제가 알아서 안될 일이라면 제가 다른데 가 있구요.
[준상] 아니, 그런게 아니고. 빌어먹을 이쪽이 쥐고 있는 패가 너무 나빠. 정과장이라고 내 잔일
봐주는 사람 있지. 트렁크 하나 가져오기로 돼 있었는데 도중에 잘못된 모냥이야.
[이순] 트렁크요?
[준상] 뭐 그런 것이 있어. 말하는 투가 끌려간 모양이야. 그래 거래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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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보자. 그보다 문제는 그 트렁큰데. 그게. 그저 정과장이 불었다면, 아니 아직은 몰라. 모르고 있는
거야. 그래 여기서 날자를 끌어볼 속셈인가본데, 나빠. 아주 고약하게 걸렸어.
[이순] 제가 사정을 해볼까요?
[준상] 뭘해?
[이순] 곤란한 일이라면.
(초인종 소리. 준상이 문 연다. 국정이, 과일 봉지, 맥주를 한아름 안았다)
[준상] 이건 뭐야. 집에도 있는데.
[국정] 폐 끼칠 건 없지. 전화 한통화. 그러니 자네도 날 괴롭히지 않는게 좋을거야. 하루 이틀은
참을 수 있겠지만 그 넘어라면 예의라고 할 수 없지, 안 그런가. (이순에게 모두 건넨다) 저 전축
돌아가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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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준상] 틀까?
[국정] 삼천포 아가씨란게 있나 (이순, 나간다)
[준상] 삼천포?
[국정] 비내리는 삼천포에 부산배는 떠나간다. 어린 나를 울려놓고, 술맛나지.
[준상] 글쎄, 이건 아내 소관이라서.
[국정] 전활 걸어봤더니 그 정과장이란 친구가 입이 무거운 모양이야. 아무래도 자네가 노래를 하는
편이 빠르겠어.
[준상] 얼마나 바래나. 그 금액말인데.
[국정] 그건 자네가 알지. 솔직한 얘기가 난 아는게 없네. 딱 하나. 그 물건이 목숨만한 가치가
된다는 거. 그 물건이 뭔가?
[준상] 그저 간단한 원료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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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정] 간단한 물건 간단히 해보세.
[준상] 두 장 내지.
[국정] 두 장?
[준상] 현찰로.
[국정] 내가 알고 싶은 건 그 물건의 제목이야.
[준상] 원료라잖는가.
[국정] 그 안에 있는 사람 - 저긴 귀가 어둡군.
[준상] 아내말인데, 자네하고 구면이라더군. 자네가 이집에 온 것이 트렁크 때문이라면 아내를
가지고 이러구 저러구 말아. 지금 이집 주부야.
[국정] 그 소리 아내가 하라던가. 세월이란 말이지, 한때는 그런 사이가 아니었든. 자네 알고 있겠지
그런 사이가 어떤건지?
[준상] 더 말 못하게했네.
[국정] 자네 가롯유다란 말 들어봤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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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준상] 성경에 나온다는 사람인가?
[국정] 유다라하는 자가 앞에 와서 랍비여하고 예수께 입을 맞추려고 가까히하는지라. 이르시되,
유다야 네가 입맞춤으로 임자를 팔려 왔느냐하시더라. 은돈 30냥을 받았다네. 나중에 미쳐가지고
대들보에 목을 맸어. 그런데 보게 내 목은 말짱해.
[준상] 자네도 예수를 팔았나?
[국정] 여자, 자네 아내가 돼 있네만. 알겠나. 지금 자네 아내를 괴롭힐 입장은 천만 아니란 말일세.
거듭 자네 아내를 데려다 팔았다간, 목을 매고도 안돼. 게다가, 자네가 아내를 내게 맡기기나 한다면,
그 트렁크 대신 맡긴다면.
[준상] 이건 또 무슨 소리야, 내 말은. 지나간 일은 어쨌든 지금은 내 아내이니만큼.
[국정] 그럼 자넨 아내를 파는거나 마찬가지가 돼. 그렇게 되면 자네는 두번째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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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는 입장이 돼고, 첫번째보다 두번째가 더 중한 벌을 받게 돼 있고, 두번째보다 세번째가 더 중하고-
알겠나, 우리 피차간에 저 여잘 가지고 어쩔 입장이 아니란 말야. 그러니 대들보에 목 맬 작정이
아니거든, 부탁이네, 이번 일에 자네 아내를 끌어들이지 말게.
[준상] 아내 있는데서 그런 소리 말아. 팔다니, 아내를 건드리지 말아. 다시.
[국정] 나는 또 자네가 같은 생각을 할 줄로. 개눈에 뭐라고. 개는 나지 (개 짖는 시늉) 나는 개네.
[준상] 해야 될 일이 트렁크란 소리지.
[국정] 그게 뭔가?
[준상] 원료.
(이순이 과일과 안주를 채려 놓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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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정] 그 판이 있는지 모르겠군.
[준상] 아, 그게 뭐랬지?
[국정] 삼천포.
[이순] 옥자. 옥자.
[옥자] 네?
[이순] 우리집에, 뭐요?
[국정] 삼천포.
[이순] 우리집에 삼천포란 거 있어?
[옥자] 그게 뭔데요?
[국정] 아. 그게 마른 안준데.
[옥자] 여기가 술집인 줄 아세요.
[국정] 내 맹세하지만. 당초 스케줄에는 저 애가 끼어있지를 않았지. 그런데 저러고 쏘아대니 내가
생불이 아닌바에, 여자한테는 어차피 남자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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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서 닿기 마련이라데. 그저 빨리 오는냐 늦느냐, 뭐 그런 차이가 있긴 있다더만. 빌어먹을, 그놈의
치이란거 또 뭐겠나. 맞을 매는 빨리. 건강에도 좋고. 우리들의 건강 그리고 가롯유다를 위해.
[준상] 그 사람도 술 좋아했나?
[국정] 포도주, 잘 먹었지.
[준상] 술값 없어 팔았군.
[국정] 이건 내 생각인데, 사제간에 사랑 문제가 게재 됐던게 아닌가. 마리아가 향유를 예수발에
붓고 제 머릿카락으로 씻었겠다. 유다가, 왜 그 비싼 향유를 허비하느냐 꾸짖으니, 예수가 여자 편을
들어 역정을 냈겠다. 유다, 그달음으로 뛰었지.
[이순] 교회 나가세요?
[국정] 매일 성경을 읽지. 자네도 보게. 좋은 책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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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순] 옥자 말이 아까 제 방에 들리셨다구요. 앞으로도 제 방 들리실거라면 몇가지 정리하구요.
없어진 게 없지 않거든요.
[준상] 없어져?
[이순] (팔지를 보여주며) 이걸 갖다 옥자한테 선심하셨다구요.
[국정] 그 멍텅구리. 그래 뭐 더 없어진건?
[이순] 정리해봐야, 알겠어요. 그리고 그 일기에서 옥자 얘기를 빼세요. 이걸 주면서 그런 것처럼
행세하라고 이르더래요.
[준상] (부식간에 몸을 세워 국정의 멱살을 잡는다) 죽일테다. 네놈 노는 꼴 더 못본다 죽여. 이놈,
뭐야. 왜 이래, 일이 있으면 나하고 해. 나. 뭐야, 네놈이 사내야. 개만도 못한 것. 왜 이래. 뭐야,
어쩌자는거야. 이 새끼. (획 밀어던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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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정] (사레가 걸렸다) 나도 서툴지만 자네도 지지 않는군. 아무래도 잘 만났어. 자네하고 나.
여기까지는 피장파장, 앞으로 이랬다간 그땐 자네가 당하네. 아, 말을 하지. 일어설 것 없어. 자네가
내 입장이 돼서 이 집에 들어왔다고 치고, 자네가 해야될 최우선의 일이 무었이겠나? 자네를 제한
식구들 성분을 알아보는 것이네. 다 자네 편인가. 이쪽으로 유도가 가능한가, 이집에 자네를 제한
식구가 저 부엌에 있는 애하고 이 사람. 내가 우선 내편으로 해야될 인물이 저 부엌 애지. 불행하게도
실패, 다음이 이 사람인데, 방금전에 철두철미로판명됐고. 이상의 작업을 자네 허락을 받고 할 수는
없는 일 아닌가. 그러나 사죄할 건 해야지. 백배. 이집 물건에 손대지 말아. 다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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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정] 이제부터 진짜구만. (초인종 소리) 아, 우리 베드로가 온 모양이네. 내가 나가지. (나간다)
[준상] 누구라고?
[이순] 베드로.
(소리 들린다. '그래. 3시쯤 연락주도록 해. 수고했어')
[국정] (가슴에 날개 퍼득이는 닭을 안았다) 그 빌어먹을 놈의 닭이, 흰지 빨간지 노란지, 성경에는
써 있질 않단말야. 그저 짐작으로 그놈이 까만 놈이려니하는데, 뭐 색갈이 까맣다고 울지 않는 건
아니니까 별 상관 없겠지.
[준상] 그걸루 서튼짓 했다간 목을 비틀어버려.
[국정] 쉬. 나는 새벽마다 이 베드로가 통곡하는 소릴 듣고 눈을 뜬다네. 버릇이지. 잠든새 내 목은
비틀어도 이 베드로만은 손 대지 말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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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준상] 베드로라니?
[국정] 배신자로, 닭이 우는 소릴 들으면 머릴 쥐어 뜯으면서 통곡을 했다네. 그래서 가끔 나도 그놈
흉내를 내지. 어디 뒤에다 매놓고 오지. 아하, 요놈이. (부엌쪽으로 나간다)
[이순] 저 사람 이상해요. 저러지 안했는데.
(부엌에서 국정, 옥자 키득거린다. 부산하다. 문 여닫히고 잠잠)
[준상] 수작을 부리고 있어. 보통 놈이 아냐.
[이순] 저 사람한테 세상 일이 좋게 돌아가주질 않는가 봐요.
[준상] 지금은 잘 돌아가고 있어. 보라구.
[이순] 전하고 틀려요.
[준상] 전에, 무슨 일이 있었지?
[이순] 제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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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준상] 간단히.
[이순] 저를 팔았어요.
[준상] 같은 소릴 하던데, 그게 뭐요?
[이순] 그때 저 가끔 가출을 했어요. 스물 네살 때죠. 친구집 외박은 싫고, 그래 밤새 기차로 내려
갔다가 이튿날 올라오는 정도였는데 한번은 한보름 들어가지 않은 적이 있어요. 저 사람을 만난거죠.
집에선 난리가 나고. 그때 제 몸이, 왜 있죠 신경쇠약 같은 거. 그래서 신문에 돈을 걸고 나를
찾았어요. 그 신문을 저 사람이 봤구요. 영화를 보고 차를 마시자고해서 다방에 들어갔더니 어머니가
구석 자리에서 일어서요. 말이, 그전날 저 사람이 찾아왔더래요. 돈 달라고.
[준상] 다음?
[이순] 이튿날로 전 병원 들어갔다 넉달 뒤에 나왔죠. 고만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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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준상] 다음?
[이순] 병원에서 나오고 며칠 뒤. 비가 오는 날인데 저 사람이 우산속으로 성큼 들어서요. 대뜸,
병원이 산부인관 아니지? 그러지 않아도 당신 찾았어요 했더니 하얗게 돼서, 안되겠어. 나하고 얘길 좀
해. 이애 낳아서 팔까해요. 어디 좋은데 알아보세요. 당신 잘하지않아요왜. 이거봐, 어디 들어가지.
말좀 해. 알소리 모를 소리 중얼거리면서 끌려오더니 집이 보이니까 사라지더군요. 그 이후로 보지
못했어요.
[준상] 그럼 저 사람 그때 그애 난 걸루 알고 있는거 아냐.
[이순] 저 사람 바보가 아니에요. 내 말 믿질 않아요. 내 신경쇠약도 믿질 않았어요. 나를 집으로
보내지 마시요. 병원에 가 미쳐 죽느니 당신 손에 죽겠다. 죽여 보내라. 사랑한다. 사랑한다.
살고싶다. 살려다오. 울고불고 소용없이 돈 받고 넘겨버렸잖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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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명한 사람. 덕분에 당신을 만났죠. 다행히. (흠칫) 무슨 소리하다가 이렇게 됐나. 괸한 소리
했나봐요. 많이 언짢으세요?
[준상] 됐어. 그 애야.
[이순] 애라니요?
[준상] 그때 당신은 저 사람 애를 난 거야. 낳아서 양자로 보냈어.
[이순] 뭐라구요? 당신.
[준상] 그게 사실이야.
[이순] 미쳤어요. 내 말은.
[준상] 아니면 그런 척하라고 그래서 사실로 만들어. 그걸루 저놈 숨통을 쥐라구. 꼭 쥐라고. 내
저놈 등판을 후려칠테니. 단숨에, 알겠지. 단숨에 해치우지 않았다간.
[이순] 아니에요. 안돼요. 사실은, 사실은 제가 거짓말 했어요. 그렇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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된게 아니고, 제가 저 사람을 갖다가.
[준상] (이순을 부엌쪽으로 난폭하게 밀어부친다) 지나간 건 사실이 아냐. 사실은 저기 있어. 저
뒷마당에 계집을 발라먹고 있어. 그 다음엔 당신, 그다음엔- 이사람 철창이야. 왜 내가 두 눈 멀쩡해
가지고 당신 뺐기고 철창 가고. 어림없다고.
[이순] 철창이요?
[준상] 저놈이 그걸 가지고 있어.
[이순] 그거라니요?
[준상] 수면제보다 독한거. 그래 꽃, 양귀비.
[이순] 약?
[준상] 하루같이 수면제로 잠만 자니, 그 꼴 더 두고 볼 수가 없어 그래. 그 잡 깨워줄 것이라고.
구해오랬지, 그 잠 깨라고. 잠. 그저 잠만 자고. 그러다가, 그래, 그러다 영 깨지않을거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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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게 무서워서. 알겠어. 살려보겠다고. 무슨 수든 쓰자. 그런데 날 철창에 집어 넣겠다고. 내가 왜.
몰라. 난 그런거 몰라. 당신 물건이니 당신이 가져 오랬다고 해. 가라구. 가서 치마를 벗던가 저놈
죽이던가 알아서 해. 이제 난 손 떼겠어. 들었지, 지긋지긋해. 잠을 자든, 자다 죽든 나하고 무관이다.
(이순이 층계를 오른다. 준상, 올려본다) 여보, 여보, 내가. 내 말은.
[이순] 제가 그 소리 해드렸던가. 제가 두 살때 어머님이 아버지 몰래 맹장을 떼 주셨대요. 뒤에
아버님이 아시고 어머님을 광에 가두고 나흘동안 굶기시더래요. 재미없어요?
[준상] 여보.
[이순] 저 잠간 누었으면 해요. 아니 저혼자. (사라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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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준상] 끝난단 말이지. 이모냥으로. (층계에 앉는다. 정가가 문 열고 들어선다. 트렁크 가슴에
안았다)
[정가] 그 사람 갔읍니까?
[준상] 자네, 가져왔군. 빠져나왔나 어떻게. 수고했네. 어디 상한덴 없나?
[정가] 갔읍니까?
[준상] 됐어. 이제 문제 없어. 우선 한잔 하고 있게. 내 이것부터.
[정가] 그럼 마약반 사람이 아닙니까?
[준상] 마약반?
[정가] 난 또. 글쎄 아까는 제가 여기 막 와 앉아 채 숨이나 돌렸나. 턱 따라 들어서는 거동이 꼭.
[준상] 자네가 여기 왔었다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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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가] 그러믄요. 역에서 내리자 곧장.
[준상] 어디 갔다 이제 오는거야.
[정가] 도망쳐야지 그럼 이걸 내줍니까?
[준상] 놈이 마약반이란 말이지.
[정가] 보십시요. 제 눈은 못 속입니다.
[준상] 가게, 어서.
[정가] 예?
[준상] 그것 가지고 없어지란 말야.
[정가] 예. 내일 오죠. 내일. (나간다)
[준상] 여보. 당신 운수가 뭐가 이렇지. 어디 이럴 수가 있나.
(F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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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
2층에서 수선스레 뛰는 소리. 닭 울음 소리.
[소리] 이리 와. 베드로, 이리 와.
(닭 울음 소리. 부딛히는 소리)
[소리] 새벽같이 왠 법석이냐. 남 자는데 와서.
[소리] 그쪽에서 모세요. 이리와 베드로야. 오지 못해.
(국정이 타올로 얼굴 문지르며 나온다)
[소리] 이쪽으로 모세요.
[소리] 왜 이건 여기까지 가지고 올라왔어.
[소리] 가져오긴 누가 가져와요. 층계 타고 지가 올라왔지. 잡았다.
(준상이 층계를 내려온다. 옥자가 가슴에 닭을 안고 뒤내려온다)
[국정] 아니. 베드로가 왜 거기서 내려오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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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준상이 욕탕으로 질러 들어간다)
[옥자] 사방에 똥이에요. 이거 언제 잡아먹을 거에요?
[국정] 복날.
[옥자] 복이 언젠데요?
[국정] (손가락 꼽는다)
[옥자] 나 못해요. 나 이짓 못해요.
[국정] 점을 쳐봤더니 새까만 닭을 사서 키우라잖아. 사서 복날까지 곁에 두고 키우래. 그러면 요놈
주둥아리가 지네를 쪼듯이 내게로 기어오는 액운을 콕콕 쫘은다는구만. 알겠나. 죽을 사자가 지척에
널렸다는 게야. 복날을 넘기지 못하고 이닭 잃거나 죽였다간, 선 자리에서 숫제 장작개비가 돼
쓰러진다는거야.
[옥자] 지네한테 물려 죽는데요? 그럼 지네가 나와요. 이 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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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정] (끄덕) 그놈이 나와서 나만 물라는 법도 없고, 이래저래. 소홀히 할 입장이 아니라구. 우리
모두.
[옥자] 알았어요. 복날이 언제라구요?
[국정] (손가락을 꼽는다) 자축인묘진사오미신유.
(초인종 소리. 옥자가 나간다. 이순 들어선다. 옥자가 장바구니 들고 부엌으로 든다)
[이순] 아저씨는?
[옥자] 탕에요.
[이순] 여기 차 갖다줘.
[옥자] 네.
[이순] (탁자 위에 있는 담배 개비 들어본다) 기억하세요. 당신 이거 제게 가르쳐주시느라고 애 많이
쓰셨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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못배우고 말았지만. 해볼까요. 그전처럼. (국정, 불 댕겨준다. 한 모금 넘기다 심하게 토해낸다.
눈물을 훔친다) 안돼요. 애초 이거 나하고는 - 왜 그러구 봐요. 안고싶어요? 올라갈까요. 저 사람
들어가면 한 시간 잘 걸려요. 그만 시간으로 해봐요. 옥자한테 일러두죠. 층계 서 있다가 저 사람
나오거든 먼저 손님이 들었으니 기다리게 하라고. 돼죠. 안돼요? 그럼 이렇게하죠. 내가 탕 문을
잠그고. 옥자 시켜 불 때고. 말귀를 못 알아 듣는가본데. 올라가 자자구요. 알아요. 내 입술이 색정을
부를만큼 기묘하지 못하다구요. 그래도 여잔 걸 어쩝니까. (안고) 절 버리지 마세요. 당신이 절
버리면, 아세요, 저 사람이 날 가둔답니다. 병원이 어떤덴지 아시죠. 거기로 절 보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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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세요. 거기 가면 저 미쳐야돼요. 미치면 어떻게 돼는지 아세요. 당신은 날 사랑해야 돼요. 날 저기로
보내면 안돼요. 내가 미쳤다는거에요. 방 열쇠 구녕을 종이로 막았어요. 옷장은 채워뒀어요. 휴지통은
늘 비워있었죠. 책상 위엔 아무것도 놔두질 않았어요. 그랬더니 미쳤다는 거에요. 치료를 받아야
된데요. 그래서 당신을 사랑한거에요. 당신은 미쳤단 말 안했죠. 그땐 참 잘해줬어요. 당신, 아시죠.
당신을 만나자 내겐 처음 생기는 일이 갑자기 많아졌죠. 그래요. 제 인생, 모든게 막 시작하려는데
당신이, 벼란간 날.
[국정] 이봐. 정신차려.
[이순] 이봐. 이봐. 애를 바라세요. 낳아드리죠. 자 일어나세요. 이러구 시간 끌다간 (국정의 가슴을
친다) 왜 또 왔어요. 나를 어쩌겠다는거죠. 왜 왔어요. 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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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몸을 세우고) 뭘 우물쭈물 하고 있죠? 저를 보러 왔으면, 저한테 얘기가 있어서 왔으면 보구 하면
돼잖아요. 뭘 기다리죠? 할 시간이 없었어요. 잘됐어요. 하세요. 싫어요. 더 두고 볼 수 없어요. 한
구석에 굉이처럼 쭈구리고서 눈만 새까매갖고, 이러지 않나, 저러지 않나, 엉뚱한 소리나 주워대고,
쳐다보고, 정말 더 두고 볼 수가 없어요. 뒤집혀요. 속이 뒤집힌단 말에요. 설마, 이런 소리 듣자고 온
건 아닐테죠. 아닐거에요. 그러니 어서 하세요. 그래 할 말이 뭐죠?
[국정] 내 그러지 않습디까, 저 사람하고 일이 있다고. 당신한텐 안된 소리지만 한눈을 팔 겨를이
내겐.
[이순] 제가 남자고 당신이 나라면 벌써 뺨을 올려부쳤을 거에요. 그래요. 왜 말 못하죠. 왜 못해요.
그래, 니가 날 팔아먹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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갔겠다. 어디, 어디까지 뛰나 보자. 뛰어라, 뛰어라. 그러고 사낭개처럼 쫓아왔지요. 쫓아왔으니
해보세요. 무슨 짓이든 해요. 난 꼼작 않겠어요. 그래요, 당신 입에 물렸어요, 꽉. 버둥거릴 수도
없어요. 숨도 못 쉬겠어. 맘대로 하세요. 삼키든 찢어발기든 내키는대로 해. 들었어요. 숨을 쉴 수가
없어요. 숨.
[국정] 당신 기억하나? 그 신문, 집에서 돈을 걸고 나를 찾는다는 기사가 실린 그신문 당신한테 갖다
준 사람은 바로 나야. 그래, 난 그말을 할 수가 없었던거지. 이제 당신하고 고만 둬야겠다. 집에
가봐야되겠단 소리 할 수가 없었어. 그때, 당신 입장이 말이 아니었지. 나하고 지내느라 일 쉬었고,
통장은 바닥 났고 - 라면 끓이다 방바닥에 둘이 맞절하듯 엎디어 게우던 일 생각나나. 라면으로만
사흘을 살았지. 그런 판국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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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혼자 집에 가겠다고 - 이틀동안 궁리를 했지. 궁리 끝에 집으로 전활 건거야. 내가 송장이 돼서
들어가는 꼴 안보려거든 신문에 증명 사진하고 돈 십만원부쳐 나를 찾으시오. 이튿날, 내가 신문
갖다주어 당신은 더 잡을 수 없었지. 집에 갔더니 당신한테 돈이 갔다더군. 그래서 우리는 끝났지.
알겠나. 당신이 날 판게 아냐.
[이순] 그 소리 할려고 여기 왔어요? 꼭 해야되겠어서. 하지 않았다간 죄가 돼서, 그래요. 당신 정말
(웃는다)
[국정] 사실은 돈이 좀 필요했지. 소문에 남자를 잘 맞났다더군. 집 꼴이 엉망이 돼버렸거든. 그런데
요행 당신 남편이 내놓겠데. 듣고 있는거야. 어떻게 그렇게 됐어. 아주 잘됐어.
[이순] 그 트렁크. 당신이 가지고 있는 그 속에 든 게 뭔지 아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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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정] 이제 그만 돌려줘야겠어. 귀찮아죽겠어.
[이순] 그걸 열어보셨냐구요.
[국정] 남 트렁크 속은 뒤져서 뭘해. 거기 뭐가 들었게? (이순, 눈 감는다)
[소리] 아주머니 오셨니?
[소리] 녜. 어마, 열면 안돼요. 열면 비린내 나요.
[소리] 뭔데?
[소리] 콩나물이오.
[준상] (보인다) 요새 콩나물은 바닷물로 기르는 모양이지. 콩나물에 비늘도 달리고 꼬리도 달려서
비리다느만. 나도 차 다고.
[소리] 기다리세요.
[준상] 차 달라고. 차.
[이순] 제가 가 보죠. 물 끓여야 되나봐요. (부엌으로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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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준상] 탕속에 들어앉아 생각해봤는데, 자네가 앞으로 여기 한닷새 버믈러 있는다고 치세. 그렇다
치면 자네한테 끼치는 손실이, 그거 현찰로 환산해서 얼마나 되겠나?
[국정] 자네한테 목 졸릴 경우도 가산이 돼나?
[준상] 가산하면.
[국정] 내 목이야, 이거 얼마 나가는지 어디 값을 매길 수 있나.
[준상] 교통사고로 치고.
[국정] 그거 요새 얼만가?
[준상] 백 잡고.
[국정] 자넨 어쨌는지 모르네만. 내게 여자가 생겼다하면 그거 내가 제일 고약한 처지에 있는
때로구나 봐서 틀림없이 없었네. 그런때 세상 다시 못만날 것같은 여자가 나타나거든. 자네 아내도
그중 하나. 그래 결국 돈받고 넘기고 말았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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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이제 꺼꾸로가 됐네. 셈이 좀 피었단 소리지. 그래서 얘긴데, 이건 사정이라고 들어도 좋겠내.
자네 아낼 넘겨줄 수 없겠나.
[준상] 넘기다니. 팔란 말인가?
[국정] 사정이라지 않나. 트렁크하고 맞바꾸는거야. 여기서.
[준상] 트렁크라고.
[국정] 아, 소리가 너무 커. 들리잖나.
[준상] 그래 아낼 데려가서 어쩔테냐.
[국정] 내 그러지 않았나. 셈이 피었다고.
[준상] 내 일 때문에 별 놈 다 만나봤다만, 너같이 못된 놈도 또 처음이다. 그래 네놈은 나보다 더
못됐다. 고만이다. 그래 고만이야.
[국정] 아내를 줘버리지않으면 안되게 되었을 때, 나만한 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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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나기도 쉽지 않을거야. 아내하고는 전혀 남도 아닌데다, 우습게, 내가 빠져 있으니, 뭐 더할나위
있나.
[준상] 날 죽일 재간 있거든 데려가거라. 그전에는 안된다. 이제 고만이다. 네놈 맘대로 해. 네놈이
무엇이 됐든 고만이다.
[국정] (잠시) 이렇게 끝나는가. (침묵. 국정, 몸을 세워 준상과 마주서더니 문쪽으로 간다)
[준상] 어딜가나?
[국정] 퇴장할 때가 됐네. 코를 싸쥐고 사라지는 거지.
[준상] 역이 바뀌었어. 끝난 건 자네가 아니고 내쪽이야. 지난밤, 자네가 뒷마당에서 베드로 두다리
잡고 있는동안 그렇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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됐어. 이건 자네도 알겠지만 아내는 단념을 쉽게하는 여자지. 쉽게 하지만 그걸 변경하는 경우가 없는
여자. 밤새 생각하고 결론했네. 방금 자네가 용케도 옮긴 그대로야. 아내를 줘버리지 않으면 안되게
됐을 때 자네만한 경우도 쉽지 않지.
[국정] 꿈 꿔서 해몽하고 있나?
[준상] 불한당한테 아내를 넘겨줬다는 후회 남기고싶지 않은게 내 심정이야. 그러니 잘 들어. 먼저,
네놈이 여기 온 동기 영 치사해. 그 조그만 주둥아리로 새 나오는 상소리 영 아니고, 한가지. 거짓말
썩 잘한다는 점 이거 빼고 어디 한군데 돼 있질 않은 작자야. 너란 놈. 그런데, 지금 아내를 살려낼
처방이라면 그 속임수뿐이야.
[국정] 속임수라니. 뭘 속였단 말인가?
[준상] 수면제로 잠이 드네. 두세알이 아냐. 치사량에 가차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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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원에서 습관이 돼 버렸던가본데, 저대로 두었다간 - 도루 병원으로 보내던가, 그럴 수 없지. 본인이
바로 죽는 걸로 알고 있고 - 알겠나. 자네 그 거짓말 가지고 뭘 어째야 되는지. 세상은 살만한 곳이고,
살맛난다고.-
[국정] 그게 자네가 해야 될 일 아닌가, 바로.
[준상] 그래 약까지 구해보지 않았나. 달리 해본다고.- 그래서 끝장 났으니만큼. 자네 그 세치 혀
갖고 해보라고.
[국정] 약, 약이라니?
[준상] 나한테 속임수 쓰란 게 아냐.
[국정] 약이 뭔가?
[준상] 누가 네놈 마약반인 줄 모른다더냐. 왜 사람 언성을 돋과.
[국정] 마약을, 변이순이가. 트렁크 속에 그것이 들어있었나?
[준상] 대체 어떻게 된거야. 네놈 뭐냐. 신분을 밝혀. 뭐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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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정의 멱살을 잡는다) 말해, 말. 죽여버릴테다. 어서.
[국정] 보구싶었네. 변이순이를 보고싶어서, 몇마디 <<밤>><<밝>>혀줘야 될 것도 있고 - 트렁크 가진
놈이 도망치고. 그러자 당신들이 들어왔고, 내킨 발길이라, 트렁크 가지고 몇마디 건넸더니, 자네도
쩔쩔매고.
[준상] 잘도, 잘 지꺼리는구나. 그래 네놈 그 내킨 발걸음에, 아내하고 나는.- 송장이 돼 나가기
전에, 어서 가.
[국정] 이보게 그 약을 쓰지는 않겠지.
[준상] 죽일테야. 죽여! (문밖으로 던진다. 쭈구리고 앉는다) 이 녀석, 가서 마약반 몰고 온다? (문
밖으로 나간다. 이순, 찻잔을 날러온다. 준상 들어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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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준상] 그놈 잡아 가두는 걸 그랬잖아. 보다보다, 내 참.
[이순] 잘 안돼요?
[준상] 당신 내 놓으래. 트렁크 갖다 주마고 내래.
[이순] 전 어떻게 돼죠. 어떻게 돼요. (끄러잡고) 전 당신 없으면 안 돼요. 당신이 잘 아시잖아요.
저 버리는 거 아니죠. 그 사람은 모르고 있어요. 제가 이 모냥으로- 빨간 수면제로 제가- 아니에요.
이대로 있게 해줘요. 당신 없이 안돼요. 믿어두 돼죠.
[준상] 원망할지 모르지만.- 내가 뭘 할수 있겠소.
[이순] 여태 잘 해오지 않았어요. 우리.
[준상] 당신한테 약을 쓸 수는 없소. 그래 저 사람을 보낸것같소. 약 못 쓰게.
[이순] (끌어안는다) 나 잡아줘요.
(F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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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
부엌쪽에서 망치 두들기는 소리. 트렁크 가슴에 안은 정가 들어선다. 빈 방 기웃거린다. 부엌쪽으로
간다.
[정가] 옥자.
[옥자] 누구에요? (망치 들고 나온다) 어마. 오셨어요.
[정가] 그 사람 갔나?
[옥자] 아침 나절에 나갔어요.
[정가] 우선 뭐 좀 먹을 수 있겠나. 어저께부터 내리 공쳤어. 어지럽구만. 손도 좀 씻고.
[옥자] 오세요. 탕에서 씻어요. (들어간다)
(이순, 층계를 내려온다. 잠결인듯 싶다. 망치 소리.)
[이순] 누구, 뭐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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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리] 네, 부르셨어요?
[이순] 뭘해?
[소리] 베드로 집이요.
[이순] 누구?
[소리] 닭집이요. 다 됐어요.
(망치 소리. 문 열리고 국정이 들어온다)
[이순] 오다 주인어른 못뵤어요? 당신 종일 기다리다 마중 나가마고. 조금 전에.
[국정] 기다렸다.
[이순] 날 찾이하기로 됐다구요. 다행이에요. 저 여기서 영 헤어나지 못하는가 했어요. 저두 한잔
주세요. 아니에요. 사실은 지금 내 머릿속에 유성기가 돌아가고 있어요. 어저께, 저기 서 있는 당신
봤을 때 이렇게 될 줄로 알았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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되지 않았으면 제가 되게 만들었을 거구. 한가지 부탁이 있어요. (담배 들고) 이거 저보구 피워보란
말씀 마세요. (안고) 저 버리지 않겠죠. 무슨 일이 있어도. 저 당신하고 헤어지고 그만 이상해지고
말았어요. 처음엔 신경쇠약 정돈 줄 알았는데.-아니, 모두 잊어버리고 싶었어요. 그래서 머릿속을
뜯어버린다고 병원엘- 저 무서웠어요. 병원에서 하마터면 저 영영 나오지 못할뻔했어요. 캬슐.
딱정벌래같은 수면제 세알이 늘 내 손바닥을 파먹고 있었어요. 그것들이 파 들어가 보이지 않으면
세알을 또 쥐워줬어요. 그러면 또 파먹고. 그것이 나를 재웠어요. 그러면 또 세알이 내 머리로
기어올라왔어요. 내 머리 속을 파먹었어요. 깨보면 그 빨간 것들이 배가 퉁퉁 불어가지고 손바닥에서
딩굴고 놀아요. 그래 손바닥이 저려오면 또 잠이 들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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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면 머리 속으로 기어올라와서 파먹고. 내 머리 속은 개미집처럼 뚫렸어요. 그 빨간 딱정벌레들이.-
당신, 당신 아니었더라면 저 그냥 그것들한테 당하고 말았을거에요. 당신이 거리 걸어가는 모습 뒤쫓다
잠들고, 잠들고 했어요. 그러면서 차츰 병원 사람들이 드나드는 시간 재 뒀어요. 조금씩 차이가
나대요. 그 차이를 빌려 뛰었어요. 어디를 어떻게 뛰었는지 몰라요. 뛰다보니- 무서워요. 나 버리지
않겠죠. 내 말은,- 여기두 마찬가지에요. 저 여기서도 그것 먹어요. 그 빨간 딱정벌레를 하루 세알씩
먹고 있어요. 그러면 잠이 오죠. 잠 오면,
[국정] 세알이 아니지.
[이순] 녜?
[국정] 세알이 아냐. 그것도 모잘라서 이제 달리 약을 구해오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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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순] 어떻게 해. 이제, 난. (쓰러진다)
[국정] 내가 오질 않았소. 당신 데려갈려고.
[이순] 데려가? 철창 속에 가둘려고.
[국정] 내가 왜?
[이순] (잔에 술 부어 국정에게) 병원에서 나오자 저 그냥 지탱해낼 수가 없었어요. 생각해보세요.
넉달이에요. 넉달동안 매일 수면제로 열다섯시간씩 잠을 자야 했어요. 반을 미쳐 있었어요. 몸이 말을
듣지 않았어요.- 저. 여기서 이렇게 살아가는 것보다 병원이 나아요. 거기서는 단념이 됐죠. 빨간 것
먹고 잠만자면- 그런데 여긴, 여기서는 매번 약 먹을 때마다 다시 깨지 못할 것이라고- 사실이
어저께부터 나 당신한테 매달리고 있었어요. 살려달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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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서 끌어내달라고. 그런데 이젠-.
[국정] 그러니까 나하고 같이 가잔 것 아니오.
[이순] 그걸 꿈이라고 하죠.
[국정] 내가 손에 쥐고 있는 그 트렁크 속에 뭐가 들어있는지 아나. 바로 약이야. 그걸 두
사람분으로 돌리면 몇달 살만하지.
[이순] 뭐라구요. 두 사람? 어쩌면 당신, 당신 그렇게 용케도. (웃음) 아, 정말 상상도 할 수
없는분이에요. 당신. 좋아요. 어차피 그렇게 돼 있는걸요. 이제 약으로, 본격적으로 가보잔 말이죠.-
내 인생이란 거 돌려볼려고 많이 애써봤어요. 그런데 그게 안돼는군요. 저도 트렁크 하나면 돼요. 곧
챙기죠. 꿈이에요. (층계를 올라간다. 모습 사라지자 좀전에 들어와 있던 준상이 나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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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준상] 트렁크를 챙긴다. 신행길인가. 서둘게. 나하고는 어저께 끝난 여자야. 그런데 자네까지
도망쳐버렸으니 저 여자가 갈 곳이, 좀전에 병원으로 전활 걸었네. 곧 차가 올걸세. 변이순, 좋은
여자야. 그럭저럭 삼년 됐군. 그런데 아직 풀리지않는 의문이 있네. 저 여자가 내 이름 석자 알고
있느냐. 요 얼마전, 사의 친구가 나를 찾아왔는데 저 여자 문 열어줬지. 여기서 들으니 그 친구 분명
내 이름 대는데 저 여자 그런 사람 없다고 그러데. 잠결도 아니고-. 이따금 죽어있는 줄 알고 흔들어
깨본다네. 혼자 놔두면 죽는 것같아서.- 자. 그럼 자리를 피하지. 잘 가게.
[국정] 가다니.
[준상] 어딜 간다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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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정] 가긴 어딜 간단 말인가. 지금 내겐 아무 것도 없네. 도망갈 집도 없어. 돈 쥐어주고
도망칠래야 줄 돈도 없어.
[준상] (멱을 잡는다) 꿈이라지 않더냐. 달리 살아볼려고 나서는 마당에,- 이봐. 데리고 가.
병원에서 곧 온다고. 병원에 가면 죽어. 저여자.
[국정] 자네지. 자네가 불렀어. 자네 여자야.
[준상] 끝났다고. 나하고 끝났어.
[국정] 먼저 끝낸 사람은 날세.
(멈칫, 두 사람 마주본다. 귀 기울인다)
[국정] 뭔가?
[준상] 아니군. 사이렌 소리 난 것같아서.
[국정] (이층을 가리킨다) 약을 먹는건 아니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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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준상] 올라가보게.
[국정] 자네 여자야.
[준상] 끝났다고.
[국정] 어딜 가나?
[준상] 병원에서 곧 온다고. 난 그꼴 못봐.
[국정] (잡는다) 저 여잘 보낼 셈인가, 정말.
[준상] 별 수없어. 도리없다고.
[국정] 보내면 죽는다면서. 보낼 거 뭐 있나, 여기서 그냥 죽이지.
[준상] 죽여?
[국정] 저대로 보낼 순 없잖나.
[준상] 저 여자가 죽으면, 그게 어떻게 돼나?
[국정] 마찬가지네. 이집에서 저 여자가 있고, 자네가 있고, 내가 있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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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저께, 오늘, 마찬가지야.
[준상] 자네 정말 저 여자를.
[국정] 성경에 보면 아브라함이란 믿음의 조상이 있는데, 하나님께서 만녀에 얻은 그의 외아들
이삭을 제물로 바치라하시니, 이에 아브라함이 이삭을 데려다 나뭇단 위에 뉘고 칼로 찌르려하니
하늘에서, 아브라함아, 아브라함아, 그 아이에게 네 손을 대지 말라. 아무짓도 그애게 하지말라. 네가
네 아들, 네 독자라도 아끼지 아니하였으니 이제 네가 하나님을 경외하는 줄을 내가 아노라. 그래
주위를 둘러보니 숫양 한마리가 가시덤불에 뿔이 걸려서 버둥거리더라지. 그 숫양의 피를 뿌리고
제사지내 제아들 이삭을 구했네.
[준상] 숫양이 어딨나?
[국정] 베드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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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준상] 저닭?
[국정] 그 피를 저여자 몸에 뿌리네. 시간이 없어. 서둘러야 해. 내 가서 우리 베드로를 잡을테니.
자네는 올라가서 사실대로 말하고 동기야 어째됐든 지금 경황이 몹시 급하니, 철창신세가 되지
않으려거든 두말말고 죽은듯이 누어있으라고 하게. 그러면 내 피가지고 올라가 뿌리고. 병원사람들
오면, 손의 동맥 끊고 자살했다고 이르면 끝나네. 자, 어서.
[준상] 그 복잡하니 자네가 올라가 그렇게 말하고 베드로는 내가 잡지.
[국정] 저 여자는 자네 여자고 베드로는 내 베드로야. (부엌으로 들어간다)
[소리] 칼 어딨나?
[소리] 칼은 왜요?
[소리] 우리 베드로 어딨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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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리] 목욕탕에요. 지금 들어가면 안돼요. 내가 내올께요.
[소리] 비켜. 급해.
[소리] 어마, 안돼요. (나와 발구른다) 저를 어째요. 아저씨 저를 어째요.
[준상] (층계를 오르다가) 왜 그래. 뭐야?
[옥자] 저기, 저를 어째. (들어간다)
(닭 울음 소리. 이순, 트렁크 들고 내려온다
[이순] 무슨 소리에요?
[준상] 그 사람인데.
[이순] 저기서 뭘하고 있어요?
[준상] 제사를 지내자고.
[이순] 뭘 지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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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급한 소리 가운데 신음소리 비치고 갑자기 침묵. 국정이 흡사 외줄 타듯 걸어나온다. 두 손이
피투성이다. 멀리 사이렌 소리 들리기 시작한다)
[국정] 옴이 오르면 닭의 피를 바르지.
[이순] 왜 내게.
[국정] (이순의 목을 살피듯이 더듬으며 피를 바른다. 목을 죈다. 사이렌소리 가차워온다) 옴이
올랐어. 당신.
[이순] 누가 옮겼나. 당신?
[국정] 죽은듯이 누어 있으라구. 무슨 일이 있어도 일어나지 말고.
[이순] 무슨일이요?
[국정] 집. 불이나도.
(사이렌 소리 가찹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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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순] 저거 무슨 소리에요. 뭐가 왔어요.
[국정] 누어 있어. 누어. (목을 죈다. 이순의 몸이 꺾인다. 늘어진다. 눕힌다. 사이렌 소리 물어
뜯듯 달겨들더니 그친다. 침묵, 부엌에서 닭울음 소리가 치솟는다)
[준상] 저거 무슨 소린가?
[국정] 부활했네. 우리 베드로가 다시 살아났어. (잔에 술부어 준상에게 건네고 잔 부딛친다)
베드로의 부활을.
(초인종 소리. 두 사람 잔잔히 웃기 시작한다)
(F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