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양8경을 들먹이지 않더라도 밀양은 둘러 볼 곳이 많은 동네입니다. 다리품을 팔아가며 눈으로라도 한 번씩 훑어 보려면 여름을 밀양에서 보내야 할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갑판장네의 일정상 언양에서 점심을 먹고 바로 부산으로 내려가야 하기에 밀양은 한나절도 아닌 반나절 만에 둘러봐야 합니다. 가고 싶은 곳도 많고 보고 싶은 것도 많은 갑판장은 이럴 때 참 난감합니다. 동선을 간결하게 해서 선택과 집중을 해야 뭐라도 담을 수가 있습니다. 즉흥적으로는 전도연의 실마리를 쫒아 밀양을 탐험해봐도 참 재밌겠습니다만 괜한 눈치가 보입니다.
용평터널(좌)과 월연정 가는 길(우)
밀양을 영남사림(嶺南士林)의 중심이라 해도 허언이 아닙니다. 퇴계와 서애 등을 배출한 안동과 더불어 밀양은 영남 사림학파의 실질적 사조로 일컫는 점필재 김종직 선생을 배출한 곳이니 말입니다. 사림의 자취를 쫒는 것도 의미가 있겠습니다만 인문학적 소양이 미천한 딸아이의 표정이 심상치가 않습니다. 헐, 쩔어, 짱나, 대박 따위의 음절로만 의사소통을 하니 인문학적 소양은 고사하고 일자무식(一字無識)이나 면하길 바랄 뿐입니다. 짱나지만 어쩌겠습니까. 그래도 내새낀데 내가 거두어야지요. 그러다 보면 언젠간 딸아이한테 '아빠 대박 쩔어~'란 말이라도 듣게 될른지도 모르잖습니까.
월연정에서 바라 본 풍경
영남루에서 언양을 향해 동진을 하다보면 밀양강과 동천이 합류하는 곳에 월연정이 꼭꼭 숨어 있습니다. 월연정을 찾아가다 보면 터털입구에서 (반대편에서)차가 안 오는지를 반드시 확인하고 진입해야만 하는 1차선의 용평(백송)터널을 보게 되는데 정우성이 열연했던 곽경택의 영화 '똥개'의 촬영지입니다. 좀 전에 지나 온 영남루는 TV드라마 아랑사또전의 촬영지였습니다.
월연정/밀양 경남
영남의 월연정을 호남의 소쇄원에 견주는 분들이 있습니다. 두 곳 모두 둘러보니 과연 그럴만도 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천연지물을 가급적 적게 훼손하였고, 자연경관을 담안으로 끌어들인 점, 폐쇄적인 환경 등 여러모로 닮았습니다. 하지만 다른 점도 있습니다. 소쇄원은 관광지로 개발된 이후로 많은 관광객들이 찾는 곳이 되어 비라도 흠뻑 내리는 날이 아니고서는 도통 호젓함을 찾을 수 없습니다. 그에 비해 월연정은 대중에겐 거의 알려지지 않았기에 호젓하여 사색을 즐기기엔 딱입니다. 다만 아쉽게도 문이 굳게 잠겨 있어 겉으로만 봐야지 속속들이 둘러 볼 수는 없습니다.
외나무(현재는 콘크리트)다리와 쌍경대
월연정은 외나무(현재는 콘크리트)다리가 놓인 작은 계곡을 경계로 쌍경대와 월연대로 구분이 됩니다.
월연대 입구의 가파른 돌계단
소쇄원에 가보신 분들이라면 아시겠지만 광주호가 내려다 보이는 둔덕에 식영정이 숨겨져 있습니다. 갑판장은 식영정으로 향하는 가파른 돌계단을 오르며 과거에 얼마나 많은 이들이 이 계단에서 고꾸라졌을까 상상했습니다. 본의든 타의든 중앙정치에서 한 발 물러나 낙향한 호남의 사림들이 식영루에 모여 고견을 나누다 종국에는 신세한탄 및 음주가무로 이어졌을 것이라 상상을 해봅니다. 그 상태로 가파른 계단을 내려오다 발을 헛딛기라도 하면 광주호까지 내리 굴러야만 했을겁니다. 월연대는 식영정보단 낮은 지형에 위치하지만 돌계단이 훨씬 험하니 취중에는 절대 내려서면 안 되지 싶습니다.
월연대의 굳게 잠긴 문
잠긴 문틈으로 바라 본 월연대
얼음골케이블카(밀양 경남)
작렬하는 태양
휴가철이지만 목요일 오전 10시를 조금 넘긴 때라 얼음골케이블카를 타러 가는 길에는 도로정체나 교통체증 따위는 없었습니다. 케이블카도 바로 탈 수 있었습니다. 애초 갑판장의 궁리는 케이블카 관람, 시례호박소 탁족, 얼음골 냉풍욕이 하나의 패키지였는데 잠깐의 노출만으로도 살가죽이 익을 지경인 밀양의 무지막지한 더위탓을 하는 아내와 딸아이의 애절한 눈빛을 차마 외면하지를 못했습니다. 오전 8시께에 아침식사를 해서 아직 배는 안 꺼졌지만 에어컨이 빵빵 터지는 곳, 불고기냄새로 가득 찬 곳을 찾아 언양으로 출바알~
한우생회와 언양불고기 그리고 화이트소주
언양하면 불고기가 바로 연상 될 정도로 불고기는 언양의 상징입니다. 서울사람인 갑판장은 구멍이 숭숭 뚫린 투구모양의 황동색 불판에 국물이 흥건한 양념불고기를 구워 먹던 추억만 가득합니다. 구이와 전골을 동시에 즐길 수 있는 황동빛 불판이야말로 서울불고기의 상징과도 같습니다. 간장양념인지 육수인지 정체가 모호한 달짜근한 육수에 반찬으로 나온 파채와 무채 등도 익혀 먹고, 냉면사리나 당면 따위도 불려 먹는 맛은 둘이 먹다가 둘 다 죽어도 모를 지경으로 황홀했습니다. 그러고도 남은 국물엔 밥을 말듯 볶아먹는 맛 또한 일품이었고요. 이에 반해 언양의 불고기는 숯불에 직화로 굽는 석쇠구이입니다. 애시당초 국물을 기대할 수 없는 형태인지라 온전히 고기에만 집중을 할 수 있습니다. 좀 다른 관점에서 보면 이는 서울불고기에 비해 훨씬 많은 비용을 지불해야만 합니다. 하기사 언양불고기를 전국적으로 널리 알린 60년대의 경부고속도로 건설노동자들은 고된 타지생활의 댓가로 주머니가 두둑했으니 그깟 고깃값 쯤이 대수였겠습니까.
언양불고기
세월이 흐르면서 쇠고기에 양념을 발라 즉석에서 석쇠에 구워먹던 언양불고기도 변신을 하여 이제는 담양의 떡갈비마냥 주방에서 미리 조리된 채로 손님상에 오르되 옛날을 추억하기 위해 석쇠에 얹어주는 형식을 취합니다. 개인적으로는 후자가 여러모로 편리하여 좋습니다. 더 좋기로는 조리사가 내 앞에서 직접 석쇠에 구워주는 것이고요.
한우초밥
양재동의 '자인뭉티기'라고 십여년 전에 갑판장이 즐겨 다니던 고깃집이 있습니다. 그 집의 뭉티기(생고기)도 맛났지만 뭉티기초밥도 참 맛났습니다. 지금도 하는지는 모르겠지만 점심메뉴로 육회비빔밥+뭉티기초밥 셋트가 있었던 것으로 기억을 합니다. 양념장의 맛이 오묘해서 집에서 몇 번 흉내를 내봤는데 말 그대로 흉내만 냈었던 기억이 있습니다.
생콩잎절임
한우생회, 한우초밥, 언양불고기, 된장찌개로 이어지는 언양에서의 오찬은 대단히 만족스러울 것으로 예상을 했습니다. 그런데 뜻밖에도 아내와 딸아이의 평가는 갑판장의 기대에 부응하질 않습니다. 도데체 어디서 부터 잘못 되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여자의 마음을 도통 헤아리지도 못하는 우둔한 갑판장은 언감생심 김양이나 이양과의 추억 따위는 꿈도 꾸지 말아야겠습니다. 그냥 밀양과 언양의 추억만 고이 간직하렵니다.
<갑판장>
& 덧붙이는 말씀 : 헐 대박! 생콩잎절임 쩔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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