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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5.5(주일) 히브리서 4:14~5:10 ’믿는 도리이신 큰 대제사장 예수‘
오늘 본문 말씀을 통해서 ‘믿는 도리이신 큰 대제사장 예수’라는 제목으로 함께 은혜를 나누기를 원합니다. 여러분은 혹시, 내가 이야기 하지도 않았는데, 누군가 먼저 내 마음을 알아줘서 위로를 받은 경험이 있으십니까? 이 시대는 아이들이나, 청년들이나 어른들이나 위로가 필요한 시대입니다. 특별히 5월은 행사가 많은 달이지요, 어린이날, 어버이날, 스승의 날, 성년의 날(20일), 부부의 날(21일) 등이 있습니다. 저와 여러분들 모두가 위로를 받기도 하고 또한 위로를 해주어야 할 위치에 있습니다. 바라기는 주님의 위로와 격려로 마음을 무장하시기를 바랍니다. 우리는 어떤 말을 들을 때 위로를 받게 될까요? ‘곰돌이 천사단’이라고 하는 동화책의 뒷표지에 나와 있는 위로의 말들입니다. “많이 힘들지? 괜찮아 너무 걱정하지마. 별 일 아니니까 안심해. 기분은 좀 나아졌어? 이리와, 안아줄게. 너무 고민하지마. 네 탓이 아니야. 함부로 자신을 깎아 내리면 안돼. 넌 아주 좋은 아이니까. 너무 신경 쓰지마. 혼자 고민하느라 많이 힘들었지”와 같은 말입니다.
우리에게는 우리 연약함을 동정하시는 ‘큰 대제사장 예수님’(14절)이 계십니다. 그 예수님은 하나님의 아들이시면서도 이 땅에서 받으신 고난으로 순종함을 배워서 온전케 되셨습니다. 그러므로 우리 성도는 힘들고 외로운 이 세상에서 나의 롤모델과 같은 사람도 좋지만, 우리의 삶과 신앙의 모델이 되신 예수님을 따라가며 살아가야 합니다. 그럴 때 우리 신앙은 예수님처럼 구원의 애통함을 가지고 다른 사람을 위해 위로하고 눈물흘리며 기도하며 복음을 전하는 구원의 사명을 감당하는 삶이 될 것입니다. 먼저 저는 본문을 통해서 두가지로 큰 대제사장되신 예수님이 어떤 분이신지를 알아보기를 원합니다. 그리고, 그 후에 우리가 그 분을 어떻게 따라 살아갈 지를 살펴보겠습니다.
1. 우리의 연약함을 동정하시는 분(4장 14~16절).
큰 대제사장이신 예수님은 우리의 연약함을 동정하시는 분입니다. 15절에 ‘우리에게 있는 대제사장은 우리의 연약함을 동정하지 못하실 분이 아니요’라고 말씀합니다. 여기서 ‘동정하다’라는 말은 ‘체휼하다’, ‘사정을 알아주다’라는 의미입니다.
연약한 우리를 위해 큰 대제사장이신 예수님이 계신데, 그 분은 부활, 승천하신 분이요, 하나님의 아들이십니다. 또한 그 분은 우리와 똑같이 시험을 받으셨지만, 죄는 없으신 분이십니다. 하나님이신 예수님은 인간의 몸을 입고 이 땅에 오셨으나 죄가 없는 분이십니다. 마귀는 시험을 통하여 예수님으로 하여금 죄를 범하게 할려고 무단히 노력을 합니다. 왜 예수님을 죄짓게 만들려고 하냐면, 죄인이 죄인을 구원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또한 시험을 이기지 못한 자는 다른 이를 시험에서 능히 구원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공관복음서에 보면 주님은 야생 짐승들 밖에 아무도 없는 황량한 벌판에서 40일 밤낮으로 금식하시며 온갖 시험을 받으셨습니다. 주님께서는 40일동안의 시험에서 우리와 똑 같은 연약함을 가지고 온갖 시험을 받으셨습니다. 즉, 죄의 본성을 입고 태어난 자들이 연약함 가운데 받게 될 모든 시험을 하나도 빠짐없이 다 겪으셨습니다. 따라서 우리가 이 땅에서 사는 동안 받는 시험 가운데 받게 될 모든 시험 가운데 주님이 몸소 겪지 않은 시험은 하나도 없습니다. 주님께서는 우리와 똑같이 살과 피를 가지셨기 때문에 우리의 모든 연약함의 감정을 우리와 똑같이 느끼셨습니다. 그 분이 우리에게 긍휼이 많은 큰 대제사장이 되는 이유는 우리와 똑 같은 영과 혼과 몸으로 시험을 받으셨고, 그 시험에서 승리하셨기 때문입니다.
주님께서는 본성 안에 죄가 없으신 분이십니다. 주님은 우리와 똑 같은 연약함을 가지셨지만, 시험이 올 때 죄의 본성이 반응하여 그 시험에 굴복하시는 분이 아니셨습니다. 비록 예수님께서는 하나님의 본체이신 분이 인성을 입고 살과 피에 참여하시면서 우리와 동일한 연약함의 감정을 가지셨지만, 그 분은 본성에서 우리와는 다른 분이십니다.
그러나 주님께서는 우리의 연약함을 외면한 채 섬김만 받으시는 분이 아니시며, 친히 인성 안에서 우리와 동일한 연약함으로 시험을 받으셨습니다. 주님은 우리가 힘들고 약하고 어려울 때 팔짱만 끼고 불쌍한 마음으로 바라만 보시는 분이 아니라, 이 땅에 계실 때 우리와 똑 같은 연약함의 감정을 몸소 느끼셨기 때문에 어떠한 시험에서도 우리에게 피할 길을 주시며, 우리는 능히 구원해주시는 분이 되셨습니다. 그러므로 오늘날 저와 여러분들이 시험을 당하게 될 때, 그 시험이 이미 나의 구주되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와 똑 같은 인성을 입으시고 2000년 전에 겪으시고 승리하신 시험이라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할 것입니다.
적용) 시험 중에도 내가 굳게 붙잡아야 할 믿음의 도리는 무엇입니까? 나는 시험이 없어지기를 기도합니까, 믿는 도리를 굳게 잡을 수 있도록 주의 긍휼과 은혜 주시기를 간구합니까?
2. 영원한 멜기세덱의 반차를 따른 제사장(5장 1~10절).
대제사장은 아론의 후손 중에서 뽑혀 세워졌습니다. 그들은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은 존귀한 자들이지만, 그들 역시 자기 죄를 용서받고자 속죄제를 드려야 했습니다. 그들 스스로 죄의 문제를 해결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아들 예수님은 ‘영원한 멜기세덱의 반차’(계통, order)를 따르는 제사장이십니다. 아론 계열의 제사장은 유한하고 연약하지만, 예수님은 멜기세덱의 반차(계통, order)를 따르는 영원하고 온전하신 대제사장이십니다. ‘멜기세덱’은 ‘의(義)의 왕’이란 뜻으로, 아브라함 당시 예루살렘의 왕이며 하나님의 제사장이십니다. 그는 가나안의 그돌라오멜 왕 연합군과 싸워이기고 돌아온 아브라함을 환대하고 축복했습니다. 이에 아브라함은 그에게 전리품의 십일조를 드렸습니다(창14:18~20). 멜기세덱은 영원한 대제사장이며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의 예표입니다(히6:20). 예수님은 이 대제사장의 직분을 감당하고자 육신을 입고 이 땅에 오셔서 고난을 받으셨습니다. 예수님은 대제사장의 영광을 누리기보다 죄인들을 구원하시려고 고난에 순종하심으로 영원한 구원의 근원이 되어 주셨습니다. 적용) 나는 지금 받는 고난 때문에 하나님을 원망하지는 않습니까? 나의 고난에 순종할 때 하나님이 나를 온전케 하셔서 멜기세덱의 반차를 따르는 제사장으로 세워주실 줄 믿습니까?
3. 큰 대제사장 예수님을 따라가는 삶을 살려면?
우리에게는 큰 대제사장 예수 그리스도가 계십니다. 그 분을 나의 하나님, 나의 구주로 모시고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런 우리는 어떻게 살아가야 할까요?
첫째로 그 분께 담대히 나아가야 합니다(4:16). 이제 우리가 그 은혜의 보좌 앞으로 담대히 나아가기만 하면 때를 따라 돕는 은혜를 경험하게 됩니다. 여기서 ‘은혜의 보좌’란 지성소의 언약궤 뚜껑인 시은좌 혹은 시은소(Mercy seat)를 말합니다. 이는 하나님의 영광, 즉 쉐키나(Shekinah)를 말합니다. 이 은혜의 보좌에서 대제사장이 온 제사장, 왕들과 지도자들, 그리고 백성들의 죄를 대속하는 곳이며 용서받는 곳입니다. 하나님의 영광이 낮에는 구름기둥으로, 밤에는 불기둥으로 임했던 곳이 은혜의 보좌입니다. 예수님의 시신이 있던 예수님의 무덤에 두명의 천사가 하나는 예수님의 머리 부분, 하나님은 다리 부분에 있어던 모습이 은혜의 보좌를 두 천사(그룹)이 날개를 연하여 덮고 있는 모습입니다. 부활의 예수님께서 은혜의 보좌가 되신 것이고, 언약궤가 되신 것입니다. 우리는 힘이 들어 믿는 도리를 놓고 싶을 때 모든 일에 우리와 똑같이 시험과 고통을 받으신 예수님을 바라보아야 합니다. 예수님이 우리의 연약함을 체휼하시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그런 예수께 나아가 믿는 도리를 굳게 잡을 수 있도록 ‘때를 따라 돕는 은혜’를 베풀어주시길 기도해야 합니다. 믿는 도리를 굳게 잡는 성도는 은혜의 보좌 앞에서 안식을 누리게 됩니다. ‘때를 따라 돕는 은혜’라는 원어는 ‘때를 따라 적절한 도움을 위해’라는 뜻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의 은혜와 도움이 필요할 때마다 그의 긍휼과 은혜를 얻기 위해 그 분의 공로를 힘입어 하나님의 은혜의 보좌 앞에 담대하고, 확신을 가지고 나아갈 수 있고, 또 나아가야 할 것입니다.
둘째로, 왕 같은 제사장으로서의 삶을 살아야 합니다(5:1). 저와 여러분은 그리스도 안에서 십자가의 속죄로 구원의 예물을 받게 된 성도는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아 왕 같은 제사장이 된 자입니다. 왕 같은 제사장은 네가지 요소가 있습니다. 왕 같은 제사장의 첫 번째 요소는 성별되고 구별된 자(Consecrated)로 살아야 합니다. 제사장은 그들이 하는 사역을 위해 구별되었고 하나님이 정해주신 거룩한 옷과 기름으로 치장되었습니다. 희생과 정결의식을 통해 하나님께 부르신 사역을 위해 거룩하게 되었습니다. 우리 성도는 왕 같은 제사장으로서 세상에서 구별된 자로 자부심을 갖고 살아야 합니다. 구별된 자로서 적극적으로는 자기 몸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 제물로 영적 예배를 드려야 하고, 소극적으로는 이 세대를 본받지 말고 변화를 받아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이 무엇인지를 분별하도록 해야 합니다. 그리고 왕 같은 제사장의 두 번째 요소는 대표성(Represent)을 가진 자로 살아갑니다. 저와 여러분은 언제 어디서든지 교회를 대표하고 하나님의 이름을 대표한다는 사실을 잊지 말고 행동해야 합니다. 내 말과 행동이 교회를 대표한다. 나는 교회의 얼굴이다. 내가 잘못하면 교회와 하나님의 이름에 먹칠을 한다는 마음으로 살아가야 합니다. 나는 교회와 하나님의 이름을 대신하는 국가대표라는 마음을 가져야 합니다. 그리고 왕 같은 제사장의 세 번째 요소는 정결(Purification)해야 합니다. 제사장은 속죄하는 제사를 드리도록 지명되었으니 정결해야 했습니다. 왕 같은 제사장으로 부름받은 그리스도인이라면 거룩과 정결에 힘써야 합니다. 외적인 행위의 거룩도 중요하지만, 내적인 인품의 거룩도 중요합니다. 그것을 행하는 이유와 동기 그리고 과정과 결과 모두 거룩해야 합니다. 또한 왕 같은 제사장은 주님의 나라와 교회를 위해 기도하는 일을 해야 합니다. 이 일은 누구에게도 맡기지 않은 귀중한 사역입니다. 따라서 ‘왕 같은 제사장’이라는 말은 주의 말씀을 따라 다스려 행하고, 제사장으로서 이러한 사명을 다 하라는 말입니다. 으로서 우리는 다른 사람을 위해 기도할 뿐만 아니라 내 죄 때문에 끊임없이 회개해야 합니다. 여전히 연약함에 쌓여 있는 나의 모습을 보고 애통해하면서 내 옆에 있는 무지하고 연약하고 아픈 자들을 품어주는 것이 하나님께 부르심을 받는 나의 사명임을 깨달아 실천해야 합니다.
셋째로, 고난에 순종하는 예수님을 본받는 자가 되어야 합니다(5:8). 예수님은 대제사장의 직분을 감당하기 위해 육신을 입고 이 땅에 오셔서 고난을 받으셨고, 십자가 지심에 기꺼이 순종하셨습니다. 이처럼 우리도 내가 받은 고난으로 순종함을 배워야 합니다. 그럴 때 하나님이 나를 온전케 하십니다. 내가 예수님처럼 심한 통곡과 눈물 가운데 아버지의 뜻대로 내 십자가를 지고 순종의 길을 가고자 할 때, 하나님이 나를 멜기세덱의 반차를 따르는 제사장으로 세우십니다.
결 론
우리의 믿음의 도리이신 큰 대제사장 예수 그리스도를 본받아 우리도 낮고 비천한 환경에서도 주의 은혜의 보좌 앞으로 담대히 나가게 하시고, 구원을 위해 고난에 순종하신 예수님을 본받아 힘든 지체들을 용납하며 구원의 애통함을 가지고 눈물로 간구하는 성도들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