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종우 야고보 신부님
연중 제22주간 금요일
루카 5,33-39
새 포도주는 새 부대에
저는 제 삶에 있어서 중대한 일을 한 가지 시작했는데, 바로 헬스장 트레이닝입니다.
공부를 하느라 오랜시간 신경 쓰지 못했던 건강을 비로소 챙기기로 마음먹은 셈입니다.
그래서 어제 처음으로 헬스장에 가서 트레이너를 만나 함께 운동을 하는데,
10분도 채 되지 않아 땀이 비오듯 흘렀고, 이어서 후회가 밀려 들기 시작했습니다.
도대체 왜 사람들은 돈을 주고 사서 고생을 하는지,
나는 또 무슨 생각으로 덜컥 등록을 한 건지 후회되기 시작했습니다.
운동이 끝나면 그래도 좀 홀가분할 줄 알았는데, 힘든 건 마찬가지였습니다.
집에 와서 씻을 새도 없이 바닥에 누워 숨을 몰아쉬는데,
내일 당장 환불 처리를 해야 하나 고민이 될 정도였습니다.
몸에 느껴지는 근육의 통증과 힘겨움. 이러한 것들은 그동안 제 몸이 익숙하지 않은 운동을
했기 때문일 것입니다.
책상에만 앉아 있다가 갑자기 뛰고 움직이니 근육도 놀라고 저도 놀라고.
평소답지 않은 행동에 제 몸이 이상 반응을 한 셈입니다.
하지만 아시다시피 건강을 위해서는 반드시 이러한 과정이 필요합니다.
익숙하지 않은 움직임을 받아들이고 그에 대한 통증을 참아낼 때 비로소
한 단계 나아갈 수 있기 때문입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변화를 받아들이지 않고 익숙한 것들에 안주하려는
바리사이들과 율법학자들을 질책하십니다.
이 말씀 속에는 바리사이들의 형식적인 단식 행위에 대한 비판이 담겨있습니다.
세례자 요한의 제자들은 스승의 고행을 본받아 자주 단식을 했습니다.
그리고 바리사이파 사람들은 매주 두 번 월요일과 목요일에 단식을 행했습니다.
한편 예수님의 제자들은 예수님의 생전에는 1년에 한 번 돌아오는 속죄의 날을 제외하고는
단식하지 않았습니다.
이러한 모습이 평소에 자주 단식을 행하는 사람들의 눈에 곱게 보일리 없습니다.
그러나 그들의 단식은 외적으로 자신의 행동을 드러내려하는 행위였습니다.
즉 그것은 자신의 믿음만을 옳은 것이라 생각하고 그것을 지키지 않는 이들을
비난하는 교만의 자세였습니다.
이러한 교만에 빠져 자기 안에 갇혀있는 그들은 예수님이라는 새 포도주를 알아보지 못합니다.
그렇기에 새로운 메시아를 받아들이지 못하고 지금까지 그들이 지켜왔던
헌 부대와 같은 신심행위만을 강조합니다.
이 교만은 종종 우리를 괴롭히는 죄이기도 합니다.
특히 신앙에 있어서 그렇습니다.
나는 이토록 열심히 살고 있는데 세상일이 제대로 이뤄지지는 않으므로 하느님을 원망하는 생각,
혹은 나는 누구보다 하느님을 잘 알고 있다는 생각,
그분은 내가 이해하는 방식대로 모든 일을 좋게 풀어지게 도와주시는 분이라는 생각은
우리가 쉽게 빠지는 교만입니다.
이런 시선 속에서 우리는 자기만족이나 의심에 빠지게 되어
그리스도의 사랑의 의미를 되새기지 못합니다.
그리하여 새신랑과 함께하는 혼인잔치의 기쁨을 느끼지 못하게 되는 것입니다.
하지만, 기도를 통한 주님과의 만남에 있어서 중요한 것은,
자신을 드러내는 것이 아니라 하느님의 뜻을 언제나 새롭게 받아들이는 것입니다.
오늘 독서에서 바오로 사도가 이야기 하듯,
주님께서는 모든 만물에 앞서 계시고 만물은 그분 안에서 존속하기 때문입니다.
오늘 복음과 독서말씀을 기억하며 우리는 매일 새로운 포도주로 다가오시는 예수님을
올바로 맞아들이고 있는지 우리 자신을 돌이켜 봐야 하겠습니다.
새 부대의 마음으로 겸손하게 하느님을 따르지 않는다면 우리 존재는 그 의미를 잃게 됩니다.
우리가 익숙한 것들에만 안주한다면 더 이상 발전이 없는 것처럼 말입니다.
“새 포도주는 새 부대에 담아야 한다.
묵은 포도주를 마시던 사람은 새 포도주를 원하지 않는다”. 아멘.
서울대교구 방종우 야고보 신부님
가톨릭사랑방 catholicsb
첫댓글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