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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광주대교구 꾸르실리스따 원문보기 글쓴이: 이선정스테파노
2025년 12월 20일 토요일
[(자) 12월 20일]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말씀의 초대
예루살렘이 적군에 포위되었을 때 이사야 예언자는 한 아기의 탄생을 예고하며 하느님을 신뢰하라고 촉구한다(제1독서). 가브리엘 천사는 나자렛에 있는 처녀, 마리아에게 나타나 한 아기의 탄생을 예고한다. 마리아는 주님의 뜻에 순종한다(복음).
제1독서
<보십시오, 젊은 여인이 잉태할 것입니다.>
▥ 이사야서의 말씀입니다. 7,10-14
그 무렵 10 주님께서 아하즈에게 이르셨다.
11 “너는 주 너의 하느님께 너를 위하여 표징을 청하여라.
저 저승 깊은 곳에 있는 것이든,
저 위 높은 곳에 있는 것이든 아무것이나 청하여라.”
12 아하즈가 대답하였다.
“저는 청하지 않겠습니다. 그리고 주님을 시험하지 않으렵니다.”
13 그러자 이사야가 말하였다.
“다윗 왕실은 잘 들으십시오!
여러분은 사람들을 성가시게 하는 것으로는 부족하여
나의 하느님까지 성가시게 하려 합니까?
14 그러므로 주님께서 몸소 여러분에게 표징을 주실 것입니다.
보십시오, 젊은 여인이 잉태하여 아들을 낳고
그 이름을 임마누엘이라 할 것입니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하느님, 감사합니다.
복 음
<보라, 이제 네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을 것이다.>
✠ 루카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1,26-38
26 여섯째 달에 하느님께서는
가브리엘 천사를 갈릴래아 지방 나자렛이라는 고을로 보내시어,
27 다윗 집안의 요셉이라는 사람과 약혼한 처녀를 찾아가게 하셨다.
그 처녀의 이름은 마리아였다.
28 천사가 마리아의 집으로 들어가 말하였다.
“은총이 가득한 이여, 기뻐하여라. 주님께서 너와 함께 계시다.”
29 이 말에 마리아는 몹시 놀랐다.
그리고 이 인사말이 무슨 뜻인가 하고 곰곰이 생각하였다.
30 천사가 다시 마리아에게 말하였다.
“두려워하지 마라, 마리아야. 너는 하느님의 총애를 받았다.
31 보라, 이제 네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을 터이니 그 이름을 예수라 하여라.
32 그분께서는 큰 인물이 되시고 지극히 높으신 분의 아드님이라 불리실 것이다.
주 하느님께서 그분의 조상 다윗의 왕좌를 그분께 주시어,
33 그분께서 야곱 집안을 영원히 다스리시리니 그분의 나라는 끝이 없을 것이다.”
34 마리아가 천사에게, “저는 남자를 알지 못하는데,
어떻게 그런 일이 있을 수 있겠습니까?” 하고 말하자,
35 천사가 마리아에게 대답하였다.
“성령께서 너에게 내려오시고 지극히 높으신 분의 힘이 너를 덮을 것이다.
그러므로 태어날 아기는 거룩하신 분, 하느님의 아드님이라고 불릴 것이다.
36 네 친척 엘리사벳을 보아라. 그 늙은 나이에도 아들을 잉태하였다.
아이를 못낳는 여자라고 불리던 그가 임신한 지 여섯 달이 되었다.
37 하느님께는 불가능한 일이 없다.”
38 마리아가 말하였다. “보십시오, 저는 주님의 종입니다.
말씀하신 대로 저에게 이루어지기를 바랍니다.”
그러자 천사는 마리아에게서 떠나갔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오늘의 묵상
오늘 복음은 임신한 지 여섯 달째인 엘리사벳의 이야기를 배경으로, 천사와 마리아의 만남을 전합니다. 사제인 즈카르야에게는 성전에서 천사가 나타났는데 마리아에게는 그의 집에서 나타납니다. 천사는 수도인 예루살렘이 아니라 변방의 나자렛에서, 성전이 아니라 보통 사람의 집에서, 사제가 아니라 평범한 시골 처녀에게 말합니다. “은총이 가득한 이여, 기뻐하여라. 주님께서 너와 함께 계시다”(루카 1,28). 마리아가 기뻐할 이유는 바로 ‘주님께서 그와 함께 계시기’ 때문입니다. 어떤 상황에서라도 주님께서 함께 계시다는 것은 우리가 기뻐할 이유입니다.
“두려워하지 마라, 마리아야.”(1,30)라는 말에 이어 천사는 마리아에게서 태어날 아들을 통하여 다윗에게 약속된 하느님 나라가 실현되리라는 위대한 약속을 합니다. 마리아는 자신이 받게 될 중요한 사명을 깨닫지만, 남자를 알지 못하는 자기에게 어떻게 그런 일이 있을 수 있는지 단순하게 궁금하여 묻습니다. 불신이 아니라 믿기 위한 마리아의 물음에 천사는 성령께서 오실 것임을 설명합니다. 그리고 마리아는 곧 겸손하게 받아들입니다. “보십시오, 저는 주님의 종입니다. 말씀하신 대로 저에게 이루어지기를 바랍니다”(1,38).
하느님께서는 우리에게도 찾아오십니다. 특히 성경 말씀을 통하여 우리에게 찾아오십니다. 때로는 평범한 일상에서 사소한 일들과 친근한 사람들 안에서 찾아오시기에 우리는 그분을 잘 알아뵙지 못할 때도 있습니다. 그렇게 찾아오시는 하느님께 우리도 이렇게 말씀드리면 좋겠습니다.
“보십시오, 저는 주님의 종입니다. 말씀하신 대로 저에게 이루어지기를 바랍니다.”(국춘심 방그라시아 수녀)
작지만 위대한 마리아의 Fiat!
양승국 스테파노 신부님
천사의 전언 앞에 두 사람의 반응은 천지 차이였습니다. 사제이자 세례자 요한의 아버지였던 즈카르야는 불신과 의구심으로 흔들렸지만, 마리아는 있는 그대로 받아들였습니다.
뿐만 아니라 마리아는 특별한 표징을 요구하지도 않았습니다. 인간의 지성으로는 도저히 믿기지 않는 하느님의 구원 계획이었지만, ‘봉황의 뜻을 뱁새가 어찌 알리요’ 하는 마음으로 겸손하게 수용하였습니다.
또한 마리아는 은혜롭게도 하느님의 총애를 받았습니다. “너는 하느님의 총애를 받았다.”(루카 1,30) 하느님은 마리아를 그냥 사랑한 것이 아니라 ‘총애’(寵愛)하셨습니다.
‘총애’란 말은 ‘특별히’ ‘유난히’ 사랑한다는 말입니다. 하느님께서는 마리아의 그 작음과 겸손함, 순수함과 소박함을 각별히 사랑하신 것입니다. 그 결과 그녀를 당신 구원사 안에서 둘째가라면 서러워할 도구로 선택하신 것입니다.
뿐만아니라 마리아는 순명의 모델입니다. 그녀는 하느님 뜻에 전적으로 순명하는 가운데 자신의 미래를 그분 손에 온전히 내맡깁니다. 천사 가브리엘과 주고받던 대화의 결론은 ‘예!’였습니다. “보십시오, 저는 주님의 종입니다. 말씀하신 대로 저에게 이루어지기를 바랍니다.”(루카 1,38)
하느님께서 우리 인간에게 구원을 베푸실 때는 언제나 순명을 요구하십니다. 성조 아브라함은 아들 이사악 조차도 번제물로 바칠 정도로 순명하였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세상에 오신 것은 아버지께 대한 순명으로 인한 것이었고, 이 세상을 떠나신 것 역시 순명으로 인한 것이었습니다. 인간은 하느님께 기쁘게 순명할 때만 참된 구원을 얻을 수 있습니다.
단순하고 겸손 가득한 마리아의 순명에 대한 하느님의 상급은 놀라운 것이었습니다. 마리아는 하느님께서 그 안에 거처하시는 새로운 도읍 예루살렘 성전이 됩니다. 마리아는 하느님께서 그 안에 끊임없이 살아계시는 계약의 궤로 재탄생합니다.
참으로 오묘하고 신비로운 초대, 모든 것이 베일에 가려져 있던 하느님의 초대였지만, 기꺼이 응답한 마리아로 인해 하느님의 인류 구원 사업은 본격화되기 시작합니다.
“그분께서는 큰 인물이 되시고 지극히 높으신 분의 아드님이라 불리실 것이다. 그분께서 야곱 집안을 영원히 다스리시리니 그분의 나라는 끝이 없을 것이다.”(루카 1, 32-33)
가브리엘 천사의 말은 지극히 간단한 선언같지만, 단어 한 마디 한 마디가 지닌 포스가 엄청납니다. 마치 작열하는 태양이나 산더미처럼 높은 파도같이 장엄합니다.
마리아의 적극적인 동의와 협조로 인해 이제부터는 또 다른 형태의 통치가 이루어지는 또 다른 형태의 왕국이 건설될 것입니다. 시공을 초월하시는 하느님께서 인간의 시간 안으로 들어오시어, 그 시간을 끝없이 연장시키실 것입니다.
이제부터 건설될 왕국은 종래의 지상 왕국과는 비교조차 안되는 영원한 왕국, 불멸의 왕국이며, 그 왕국의 장엄한 광채 앞에 지상의 왕권은 빛을 바랠 것입니다. 새롭게 왕좌에 좌정하실 왕은 만왕의 왕이 되실 것이며, 그분의 나라는 끝이 없을 것입니다. 그분께서 지니실 통치권은 한계도 끝도 없을 것입니다.
이토록 위대하고 장엄한 인류 구원 사업의 첫 출발점은 바로 마리아의 ‘Fiat’이었습니다.
조재형 가브리엘 신부님
지난 11월 15일 ‘본당 걷기대회’가 있었습니다. 걷기대회는 아름다운 숲길 8킬로를 걷는 코스였습니다. 걷는 중에 3가지 행사가 있었습니다. 가족들과 사진 찍는 장소, 말씀 카드를 받는 장소, 반환점을 돌면서 인증 도장을 받는 장소가 있었습니다. 저는 걷기대회의 인사말로 두 가지를 묵상하자고 했습니다. 하나는 환희의 신비 2단에 나오는 ‘마리아 엘리사벳을 방문함을 묵상합시다.’입니다. 마리아는 천사 가브리엘에게 친척 엘리사벳의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엘리사벳은 나이가 많았지만, 아이를 잉태하였고, 어느덧 6개월이 되었습니다. 이제 막 아이를 잉태한 마리아는 나자렛에서 아인카렘까지 길을 떠났습니다. 이렇게 구약의 마지막 예언자인 요한과 하느님의 아들 예수님이 만났습니다. 걷기대회가 단순히 걷는 것으로 끝나지 않고 마리아가 가졌던 ‘순명’을 생각하며, 우리들 또한 하느님의 말씀에 순명하는 순례의 여정이 되면 좋겠다고 했습니다.
다른 하나는 ‘엠마오로 가던 제자’를 묵상하자고 했습니다. 엠마오로 가던 제자들은 상심이 컸습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돌아가셨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의 죽음으로 예수님께서 선포하셨던 ‘하느님 나라’도 끝났다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그렇게 길을 가던 제자들은 예수님을 만났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사람의 아들이 십자가를 지고 죽어야 했던 이유를 구약의 성서 말씀을 통해서 설명해 주었습니다. 제자들은 엠마오에서 예수님을 초대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제자들과 함께 빵을 나누었습니다. 그때 제자들은 마음이 열렸습니다. 예수님께서 다시 살아나셨음을 보았습니다. 예수님께서 선포하신 하느님 나라는 아직 끝나지 않았음을 알았습니다. 제자들은 기쁜 마음으로 예루살렘으로 달려갔습니다. 그리고 예수님께서 부활하셨음을 알렸습니다. 걷기대회가 단순히 걷은 것으로 끝나지 않고 엠마오의 제자들이 예수님을 만났던 것처럼 우리들 또한 예수님을 만나는 순례의 여정이 되면 좋겠다고 했습니다.
하느님께서는 ‘예언자’를 보내 주셨습니다. 예언자는 철학, 사상, 문학, 예술, 종교를 통해서 정의와 공정을 말하고 있습니다. 예언자는 앞날을 이야기하는 사람이 아닙니다. 예언자는 우리가 지구별에 왔으면 무엇을 해야 하는지 성찰하게 해 줍니다. 무엇을 해야 하는지 알았다면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를 말해 줍니다. 처음부터 길이 있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예언자들의 뒤를 따라가니 길이 되었습니다. 아직 해는 뜨지 않았지만 조금씩 동이 트는 걸 알 수 있습니다. 어스름하지만 칠흑 같은 밤은 지나가고, 여명이 시작되는 걸 알 수 있습니다. 예언자들이 새벽을 밝히는 여명이었다면, 하느님께서는 새로운 이정표를 약속하십니다. 오늘 제1독서에서 이사야 예언자는 하느님의 뜻을 전하고 있습니다. “젊은 여인이 잉태하여 아들을 낳고 그 이름을 임마누엘이라 할 것입니다.” 임마누엘은 ‘주님께서 우리와 함께 계시다.’라는 뜻입니다. 이젠 이정표가 아니라, 주님이 우리와 함께하실 거라 말하고 있습니다. 여명은 사라지고, 붉은 태양이 떠오르면 천지 만물이 환하게 보입니다. 하느님 나라는 어느 시간과 장소가 아닙니다. 주님께서 우리와 함께하는 지금 이곳이 하느님 나라가 되는 겁니다. 드디어 복음(福音)의 시대가 열립니다. 주님께서 우리와 함께하시는 것이 바로 복음입니다. 참된 자유, 참된 평화, 참된 행복이 시작됩니다.
오늘 복음은 주님이 우리와 함께하시는 기쁜 소식을 전하고 있습니다. 그 기쁜 소식은 마리아의 응답으로 현실이 됩니다. “보십시오, 저는 주님의 종입니다. 말씀하신 대로 저에게 이루어지기를 바랍니다.” 능력, 업적, 재능, 권력, 재물, 명예와는 상관이 없습니다. 그저 마리아처럼 우리가 응답하면 주님께서 우리와 함께 계십니다. 새 하늘과 새 땅이 시작됩니다. “모든 예언자는 그리스도께서 오실 것을 미리 알려 주었고 동정 성모님께서는 극진한 사랑으로 그분을 품어 주셨으며 요한은 오실 분을 미리 알려 주고 이미 와 계신 그분을 알려 주었나이다. 그리스도께서는 저희가 깨어 기도하고 기쁘게 찬미의 노래를 부르면서 성탄 축제를 준비하고 기다리게 하셨나이다.”
<하느님 나 서로 함께>
상지종 베르나르도 신부님
“은총이 가득한 이여, 기뻐하여라. 주님께서 너와 함께 계시다.”(루카 1,28)
하느님께서 나와 함께 계시니
기뻐할 수 있기에
하느님과 함께 있는 나는
기뻐합니다
하느님께서 나와 함께 계시니
믿을 수 있기에
하느님과 함께 있는 나는
믿습니다
하느님께서 나와 함께 계시니
희망할 수 있기에
하느님과 함께 있는 나는
희망합니다
하느님께서 나와 함께 계시니
사랑할 수 있기에
하느님과 함께 있는 나는
사랑합니다
하느님께서 나와 함께 계시니
자유로울 수 있기에
하느님과 함께 있는 나는
자유롭습니다
하느님께서 나와 함께 계시니
진실할 수 있기에
하느님과 함께 있는 나는
진실합니다
하느님께서 나와 함께 계시니
용서할 수 있기에
하느님과 함께 있는 나는
용서합니다
하느님께서 나와 함께 계시니
부드러울 수 있기에
하느님과 함께 있는 나는
부드럽습니다
하느님께서 나와 함께 계시니
보듬을 수 있기에
하느님과 함께 있는 나는
보듬습니다
하느님께서 나와 함께 계시니
내어줄 수 있기에
하느님과 함께 있는 나는
내어줍니다
하느님께서 나와 함께 계시니
섬길 수 있기에
하느님과 함께 있는 나는
섬깁니다
하느님께서 나와 함께 계시니
살릴 수 있기에
하느님과 함께 있는 나는
살립니다
오늘의 성인
성 도미니코 (Dominic)
신분 : 수도원장
활동지역 : 실로스(Silos)
활동연도 : +1073년
같은이름 : 도미니꼬, 도미니꾸스, 도미니쿠스, 도미니크, 도미닉, 도밍고(하느님께 속하다,하느님께 봉헌하다)
그는 피레네 산맥의 스페인 방향에 있는 나바레의 카냐스에서 태어났는데, 이곳 주민들은 모두가 농부였다.
그러므로 그도 얼마동안은 주민들의 습관에 따라 아버지의 양떼를 돌보는 등의 일을 하였으나,점차적으로 독수생활에 대한 매력에 이끌려서 산 밀란의 수도원에 입회하여 수도자가 되었다.
그는 수도생활에 큰 발전을 이루었고, 수도회의 개혁사업에도 관여하게 되자, 곧 그곳의 원장이 되었다.
이 직책을 수행하던 중에 그는 수도원을 징발하려는 국왕 가르시아 3세와 갈등이 생겨서 그곳을 떠났다.
그는 실로스의 성 세바스챤 수도원으로 갔는데, 이곳에서 원장이 되었다.
이 수도원은 한적한 곳에 있었지만, 부르고스 교구의 중심지로 인정 받을 만큼 영적 은총이 충만하였다.
이 모두가 도미니꼬의 높은 성덕 때문이라고 한다.
그당시, 그에게 기도하여 은혜를 받지 못한 사람이 없고, 또 치유받지 못한 사람이 없을 정도로 그의 무덤은 유명하였다고 한다.
복자 빈첸시오 로마노 (Vincent Romano)
활동년도 : 1751-1831년
신분 : 신부
지역:
같은 이름 : 뱅상, 빈센트, 빈첸시우스, 빈첸티오, 빈첸티우스, 빈켄티오, 빈켄티우스, 원선시오
이탈리아의 나폴리(Napoli) 근방의 토레 델 그레코(Torre del Greco)에서 태어난 빈첸시오 로마노(Vincentius Romano)는 본당사제로서 단순한 삶과 고아들에 대한 지극한 사랑으로 기억되고 있다. 1831년 12월 20일 자신의 고향에서 선종한 그는 1963년 교황 바오로 6세(Paulus VI)에 의해 복자품에 올랐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