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명희의 그래도] 기도 응답 없을지라도… 신뢰·순종·기다림이 소명의 길
이명희2026. 10. 21. 03:09
<30> 내 뜻대로 안 될 때
게티이미지뱅크
하나님은 우리에게 밤을 주신 것이 아니라
밤을 통해서 새벽의 빛을 주신 것이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홍수를 주신 것이 아니라
홍수로 인해 아름다운 무지개를 주신 것이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죽음을 주신 것이 아니라
죽음으로 하여 아름다워지는 생명을 주신 것이다
태양은 흑점의 어둠이 있어 빛나는 것이다
- 고 이어령 박사의 시집 ‘어느 무신론자의 기도’에 수록된 ‘어느 개인 날’ 중
아기가 태어나 명확한 자아를 확립하는 시기는 보통 생후 18개월에서 24개월 사이라고 한다. 자아는 어느 한 순간 갑자기 생기기보다 여러 발달 단계를 거치며 서서히 형성된다. 생후 24~36개월이 되면 “내거야” “내가 할래” 같은 단어를 자주 쓰기 시작한다.
자신의 욕구와 타인의 요구를 구분하며 자율성과 소유권 개념이 명확해지는 시기이다. 이 시기부터 아기들은 ‘나’라는 주체성을 얻게 되며 고집이 세지거나 제1의 사춘기라 할 수 있는 ‘자아 형성기의 떼쓰기’ 행동이 본격적으로 나타난다. 살아가면서 자기 의지와 부모나 회사 동료 등 타인의 의지가 충돌하는 경우가 많다.
자기 뜻대로 안 될 때 아기들은 투정을 부리고 떼를 쓴다. 그러나 아이가 위험한 물건을 만지려 하거나 잘못된 길로 갈 때 부모는 아이의 뜻을 꺾을 수밖에 없다. 마찬가지로 하나님도 우리가 잘못된 길로 가려 하거나 세상 기준을 따라 휩쓸려 갈 때, 아직 때가 아니라고 생각될 때, 우리 뜻대로 이뤄주시지 않고 단련시키고 고통을 주시기도 한다. 하나님께 기도하고 매달려도 들어주시지 않을 때 진정한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지 묵상하며 기다려보자.
김다위 선한목자교회 목사는 몇 달 전 ‘깨어진 꿈, 숨어계신 하나님’이란 제목의 설교를 통해 우리가 어떻게 대처해야 할지 제시했다. “우리가 살아가며 기대했던 꿈이 깨지거나 삶의 어려움을 겪을 때 마치 하나님이 멀리 계시거나 숨어계신 것처럼 느낄 때가 있다. 그러나 우리의 깨어진 꿈 뒤편에서 하나님은 여전히 일하고 계시며 그 고난과 기다림의 시간을 통해 우리를 더 깊은 믿음과 은혜의 자리로 인도하신다.” 허요환 안산제일교회 목사도 “하나님의 뜻은 거대하다”며 “작은 순종을 통해 하나님의 뜻을 드러낸다”고 했다.
이어령 전 문화부 장관은 저서 ‘의문은 지성을 낳고 믿음은 영성을 낳는다’에서 ‘비록~ 할지라도’란 단어야말로 하나님 나라로 가는 천국의 열쇠라고 말했다. 많은 사람들이 이 말을 모르기 때문에 ‘기브 앤 테이크(give and take)’를 신과의 관계로 생각한다. 하지만 그건 신앙이 아니라는 것이다. 나를 일상의 어려움에서 구해주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을 믿고 사랑하고 섬기는 게 ‘비록~ 할지라도’의 진짜 사랑이라고 강조한다. 그분의 힘을 믿고 고난을 견디는 것, 그것이 곧 하나님이 계시다는 사실을 알려주고 있다고 말한다.
무신론자였던 이 전 장관은 딸 이민아 교수의 전도로 하나님을 믿게 됐다. 그는 암투병하는 딸을 지켜보며 그 딸이 임종의 순간에도 하나님을 끝까지 사랑하는 것을 지켜보며 하나님의 존재를 확신하게 됐다.
하나님의 선하심을 신뢰해야
20세기의 뛰어난 목사이자 교사였던 오스왈드 챔버스의 강의와 설교를 모은 묵상집 ‘주님은 나의 최고봉’엔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지 분별하기 힘들 때 우리가 어떻게 해야 하는지 권면한다. 충동적인 감정에 의해 행동하지 말고 하나님께서 모든 것을 원만하게 드러낼 때까지 기다리라는 것이다. 그렇게 하면 주께서 우리의 마음 상함이나 후회가 전혀 없도록 친히 역사하실 것이라고 확언한다. 그는 또 하나님을 위한 일꾼으로서 하나님께서 원하시는대로 하시도록 우리 삶을 양보하라고 권한다.
그는 고집과 자기 주장은 언제나 예수 그리스도를 밀쳐내고 예수의 마음을 아프게 한다고 했다. 또 자기 권리를 주장하며 자신의 의도를 관철시키려고 할 때마다 우리는 예수를 핍박하는 것이라고 했다. 회심 전 사울(바울)처럼 지식만이 우리 마음에 자리잡을 때 우리는 반드시 예수를 핍박하게 된다고 했다. 그러면서 그는 영적으로 낙심에 빠지지 않도록 주의하라고 당부한다. 만일 마음이 우울하거나 무거워지면 내게 문제가 있는 것이지, 하나님을 책망하거나 다른 사람을 책망할 일은 아니라는 것이다.
존 F 케네디 대통령이 인생의 전성기에 성공을 구가하다 암살을 당했을 때 경건한 가톨릭교인이었던 아내 재키는 당혹함과 슬픔 속에 전율하면서 친구에게 이렇게 물었다. “사랑의 하나님이 어떻게 이런 끔찍한 일이 벌어지도록 묵인하실 수 있어?”
신실한 기독교인도 대답 없는 하나님 앞에서 당황하며 좌절하고 절규한다. 질병이나 고통 속에서 애타게 하나님을 부르짖을 때 하나님은 듣고 계시지 않는 듯 느껴진다. 인간의 고통을 즐기시는 냉혹한 하나님인가 의심이 일어나기도 한다. 세상 사람들이 “네가 믿는 신이 너를 구원하는지, 너를 고통 속에서 구하는지 보겠노라” 하며 조롱할 때도 하나님은 외면하시는 것 같다.
그러나 내 뜻대로 안 될지라도 낙심하지 말자. 저명한 기독교 상담가이자 뉴웨이 미니스트리 창립자인 래리 크랩은 ‘하나님을 신뢰한다는 것’에서 “하나님의 길을 이해할 수 없을 때 하박국처럼 전율하고 그분의 선하심을 신뢰하라”고 말한다. 하박국은 악한 바벨론이 자기보다 덜 악한 이스라엘을 심판할 것이라고 들었다. 도저히 이해할 수 없었다. 그래도 그는 혼동과 두려움 속에 전율하면서 “나는 여호와로 말미암아 즐거워하며 나의 구원의 하나님으로 말미암아 기뻐하리로다”(합 3:18)고 한없는 신뢰를 보냈다.
래리 크랩은 “하나님의 생각과 길이 당신의 생각이나 길보다 훨씬 높아서 종종 이해할 수 없을 때 하나님 앞에서 전율하라. 하지만 영원히 심판 받아야 했을 그때, 당신을 위해 돌아가신 하나님이 선한 것을 성취하고 계신다고 신뢰하라. 그분은 언제나 선한 이야기를 들려주신다. 하나님은 결코 그보다 못한 것을 이루지 않으신다”고 했다.
하나님은 왜 사랑하는 사람들의 뜻대로 들어주지 않으시고 그들의 삶에 끔찍한 고통을 허락하실까. 그는 두 가지 이유를 든다.
첫째는 우리가 천국에서 예수님과 함께 영원히 누릴 고통 없는 삶을 기쁜 마음으로 기대하며 간절히 기다리도록 촉구하기 위해서다.
둘째는 삶의 형편이나 영혼의 상태가 어떻든 예수님처럼 사랑하고 이로써 하나님의 놀라운 은혜의 이야기를 전하는 성령의 능력을 발견하기 위해서라고 했다. 그는 “기도가 응답되지 않더라도 하나님이 선을 행하고 계신다고 신뢰하며 기도하지 못한다면 나는 하나님이 원하시는 모습의 피조물이 될 기회를 놓치는 것”이라고 했다.
성경 속 이해할 수 없는 하나님의 뜻
살다보면 인생은 우리가 계획한 대로 흘러가지 않을 때가 많다. 성경은 내 뜻이나 의지와 상관 없이 고통을 당하거나 시험에 빠질 때 기쁨으로 여기라고 권면한다. “너희가 여러 가지 시험을 당하거든 온전히 기쁘게 여기라.”(약 1:2) 당장 이해할 수는 없지만 내 뜻보다 하나님의 뜻이 더 크고 깊다는 것도 주지시킨다. “이는 내 생각이 너희의 생각과 다르며 내 길은 너희의 길과 다름이니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이는 하늘이 땅보다 높음같이 내 길은 너희의 길보다 높으며 내 생각은 너희의 생각보다 높음이니라.”(사 55:8~9)
성경 속에도 하나님의 뜻을 이해하지 못한 사례가 많이 나온다. 요나는 하나님이 의로운 분노로 니느웨를 파멸시켜 이스라엘이 대적의 위험에서 벗어나 온전히 복을 누릴 수 있다면 훨씬 더 낫지 않을까 생각한다. 그러나 하나님은 니느웨로 가서 회개할 기회를 주라고 하셨다.
그리스도인을 핍박했던 사울(바울)은 자신의 편견에 맞춰 하나님의 메시지를 왜곡했다. 선하신 하나님은 자기 백성에게 선을 행하셔서 이스라엘이 유일한 참 백성임을 만천하에 보여주실 것이다. 진짜 메시아가 비천한 환경에서 태어나 성장하고 그 후에 저주받은 나무에 달려 나약하게 죽을 것이라는 생각은 사울의 신념을 넘어선 것이었다. 멸시받는 메시아가 이방인을 사랑하고 그들을 유대인 가족의 형제와 자매로 맞아들인다는 사실은 생각조차 할 수 없었다. 하나님의 뜻을 이해할 수 없었다.
디트리히 본회퍼를 비롯한 신학자들은 하나님을 믿고 따르면 필요한 모든 것을 허락하실 것이라고 믿는 ‘값싼 은혜’에 대해 경고한다. 그래서 예수도 하나님의 선하심을 신뢰하면서 “내 뜻대로 되게 하지 마시고 아버지의 뜻대로 되게 하소서”라고 기도했다. 아우구스티누스는 “주님이 바라시는 것을 명하소서. 그리고 주님이 명하신 것을 주소서”라고 기도했다.
이명희 논설위원 mheel@kmib.co.kr,mheel@kmib.co.kr
자료출처 : https://v.daum.net/v/2026102103092008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