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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남도 배드민턴클럽 원문보기 글쓴이: 박상은
동호인구 300만, 한국인은 왜 배드민턴에 미치나 감미로운 긴장감, 터질듯한 충만감, 새와 검객 숨가쁜 변주곡 <<신동아에 발표된 내용을 퍼왔습니다>> 운전대 옆에서 잔소리 하는 아내가 예뻐 보여야 배드민턴 복식을 칠 자격이 있다. 중년 사내들은 외로워서 검을 든다. 나이 먹어가는 여자들은 ‘지는 꽃’이 서러워 라켓을 든다. 그리하여 세월을 이긴다. 벌새는 1초에 90번이나 제 몸을 쳐서 날개를 지우고 공중에 부동자세로 선다. 윙윙, 날개는 소리 속에 있다 벌새가 대롱 꽃의 中心(중심)에 기다란 부리를 꽂고 무아지경 꿀을 빠는 동안 꼴깍, 세계는 그만 침 넘어간다. 햐아, 꽃과 새가 서로의 몸과 마음을 황홀하게 드나드는 저 눈부신 교감! (후략) [김선태(1961~) ‘벌새’] 그렇다. 배드민턴 쳐 본 사람은 안다. 그 시간 가는 줄 모르는 재미에 꼴깍…, 그만 침이 넘어간다. 밥 먹는 것도 잊는다. 무아경. 셔틀콕은 새다. 날개가 있다. 새는 바람을 따라 난다. 어디로 갈지, 어디에 잠시 내려앉을지 아무도 모른다. 때로는 쏜살같이 바람을 가르고, 때로는 눈송이처럼 하늘하늘 춤을 춘다. 라켓(100g)은 그물이다. 그물은 수도 없이 새를 덮친다. 그러나 웬걸. 새는 빙그르르 잘도 빠져 나간다. 빠르다. ‘눈 깜짝할 새’(1초)에 88.8m를 날아간다. 순간 최고속도 시속 320km. 라켓은 검이다. 그러나 이 세상에서 아무리 빠른 검이라도 ‘눈 깜짝할 새’(셔틀콕)는 잡을 수 없다. 배드민턴 코트는 13.4×6.1m(복식). 가장 빠른 강스매시 공은 0.1초에 8.8m를 날아간다. 이론상으로는 셔틀콕이 코트 끝에서 끝으로 날아가는 데 약 0.152초 걸리는 셈이다. 하지만 코트 끝에서 끝으로 날리는 강스매시는 거의 없다. 대부분 코트 중후반에서 상대 코트 중간 앞쪽으로 날린다. 길어야 8.8m를 넘지 않는다. 0.1초 안에 받아내야 한다는 말이다. 그러나 인간의 반응시간은 0.1초가 한계다. 세계적인 남자 100m 달리기 선수의 출발 반응시간도 빨라야 0.13 ~0.16초다. 출발반응시간이 0.1초 이내면 부정출발로 간주된다. 결국 반사신경으로 쳐야 한다. 냄새로 새의 발자취를 좇아야 한다. 바람보다 빨리 움직여 바람보다 빨리 검을 휘둘러야 한다. 야구 마운드의 투수판에서 홈 플레이트까지의 거리는 18.44m. 투수가 시속 150km의 공을 던졌다면 그 공이 포수 미트에 꽂힐 때까지 0.44초가 걸린다. 타자는 적어도 0.3초 안에 구질과 코스에 대한 판단을 끝내고 반응시간을 고려해 나머지 0.14초 안에 방망이를 휘둘러야 한다. 하지만 그런 강속구라면 헛스윙하기 일쑤다. 그뿐인가. 빠른 볼을 기다리는 데 느린 변화구가 들어오거나 느린 커브볼을 기다리는 데 빠른 볼이 들어오면 꼼짝없이 당한다. 추락하는 것엔 날개가 없다 배드민턴 셔틀콕엔 날개가 있다. 머리는 코르크지만 몸통은 16개의 거위 깃털이다. 섬광처럼 날다가도 홀연히 속도를 지운다. 벌새처럼 공중에 부동자세로 선다. 속도는 날개 속에 숨어 있다. 그러다가 뚝 떨어져 수직으로 낙하한다. 추락하는 것엔 날개가 없다. 셔틀콕은 생물이다. 때론 총알처럼 직선으로, 때론 피그르르 맥없이 네트 앞에 떨어진다. 눈 밝은 검객은 결코 셔틀콕과 속도를 다투지 않는다. 새가 다니는 길목을 지킬 뿐이다. 그 길목은 네트다. 네트를 점령하면 아무리 빠른 새라도 단칼에 날아간다. 취모검(吹毛劍)이다. 누가 먼저 네트를 점령하는가. 새인가, 아니면 검객인가. 햐아, 인간과 새가 저 네트 앞에서 서로의 몸과 마음을 탐하고 있구나. 꼴깍 또 침이 넘어간다. 배드민턴은 탁구와 테니스를 합해놓은 것과 같다. 경기장은 탁구보다 넓고 테니스보다 좁다. 탁구공(2.5g)이나 테니스공(2온스·6.7g)은 둥글지만 셔틀콕(4.74~5.5g)은 마치 우주선 같다. 테니스공은 통통 잘도 튀지만 셔틀콕은 땅에 한번 몸을 눕히면 꼼짝도 하지 않는다. 배드민턴은 손목을 80~90% 이상 사용하지만 테니스나 탁구는 어깨를 많이 쓴다. 그러나 빠른 순발력과 강한 체력, 뛰어난 반사 신경을 요구하는 점에서는 똑같다. 배드민턴은 눈(머리)-발-손목의 삼위일체 운동이다. 눈이 밝아야 상대의 빈 곳을 잘 볼 수 있다. 머리가 좋아야 길을 읽을 수 있다. 발이 빨라야 총알 같은 셔틀콕을 받아낼 수 있다. 손목의 힘이 강하고 부드러워야 셔틀콕이 바닥에 닿기 2~3cm 전에도 강하고 빠르게 상대 코트 후방으로 깊숙이 쳐 보낼 수 있다. 또한 아무리 강한 상대의 셔틀콕이라도 살짝 죽여(헤어 핀) 네트 위에 걸쳐 넘길 수가 있다. 눈은 하루아침에 좋아지지 않는다. 상대 셔틀콕을 보고 움직이면 이미 늦다. 이미지 트레이닝으로 수없이 분석하고 연구해야 상대 셔틀콕이 다니는 길이 보인다. 많이 깨져봐야 ‘눈 푸른 납자(衲子)’가 된다. 깨지고 또 깨져 밑바닥에 떨어져봐야 비로소 그 길이 보이는 것이다. ‘셔틀콕의 황제’ 박주봉은 머리가 좋은 선수로 유명하다. 지능지수(IQ)가 아니라 두뇌 플레이가 빼어나다는 말이다. 그는 경기 전 이미 상대 셔틀콕의 길을 훤히 꿰뚫는다. 경기 전 최소 30분 이상 이미지 트레이닝을 통해 상대와 숨 막히는 ‘가상경기’를 펼치는 것이다. 상대가 후위에서 강한 스매시를 할 땐 짧게 네트 앞에 떨어뜨려주고 상대가 강하고 빠른 드라이브를 걸어올 땐 맞드라이브보다는 강약을 적절히 조절해 상대의 리듬을 끊는 등 머릿속으로 이미 한판 승부를 끝내고 코트에 들어선다. 박주봉은 말한다. “경기 전 눈을 감고 머릿속으로 싸울 상대와 실제 경기하는 것처럼 온갖 수비와 공격을 해본다. 그러면 상대 선수의 움직임이 한눈에 들어오고 여기저기 빈 곳이 보인다.” 조훈현의 바둑처럼 빠르고 경쾌하게 박주봉(40)은 1996년 ‘배드민턴의 노벨상’ 허버트 스칠 트로피를 받았다. 이 상은 1934년 국제배드민턴협회(IBF) 창립 이래 11명에게만 주어진 최고의 상. 2001년엔 ‘명예의 전당’에도 올랐다(그의 짝인 김문수도 2002년에 오름). 1992년 바르셀로나올림픽 남자복식(김문수) 금메달, 1996년 애틀랜타올림픽 혼합복식(나경민) 은메달, 세계선수권대회 5회 우승, 국제대회 71회 우승, 86아시아경기 3관왕…. 우승을 밥 먹듯이 해 기네스북에까지 올랐다. 도대체 박주봉은 뭐가 그리 뛰어날까. 우선 팔 다리가 긴 데다 182cm 67kg의 체격 조건이 배드민턴에 안성맞춤이다. 두뇌회전이 빨라 상대에 따라 유연하게 작전을 바꾼다. 그는 복싱선수의 쇼트 펀치처럼 힘 안들이고 짧게 툭툭 끊어 친다. 그의 스트로크는 예리한 단검이다. 소리 없이 상대 옆구리를 파고든다. 강스매시를 자주 날리지는 않지만 때론 전광석화 같은 드라이브를 속사포처럼 쏘아대기도 하고, 때론 봄바람처럼 살랑거리는 드롭 샷을 하늘거린다. 그러다가 상대 몸쪽으로 섬광 같은 푸시를 날린다. 네트를 타고 흐르는 헤어핀(네트 인)을 섞는다. 그의 배드민턴은 변화무쌍하다. 수천수만의 꽃송이가 일제히 피어났다가도 갑자기 일진광풍의 돌개바람이 자욱한 먼지를 날린다. 조훈현의 바둑처럼 재빠르고 경쾌하다. 제비처럼 날렵해 아무도 예측할 수 없다. 그가 네트 앞에 서 있으면 상대는 그 자체로 주눅이 든다. 1980년부터 1992년 바르셀로나올림픽 때까지 그는 그렇게 세계 남자복식을 휩쓸었다. 처음엔 이은구 성한국 이상복 안재창과 호흡을 맞추다가 1983년부터 김문수와 짝을 이뤄 10년 동안 강호를 주름잡았다. 180cm 75kg의 김문수는 박주봉을 전위에 놓고 후위에서 마음껏 강스매시를 날렸다. 더구나 그는 왼손잡이라 더욱 유리했다. 당시 세계 배드민턴 남자복식 4강은 박주봉-김문수 조, 리융보-티안빙이 조(중국), 구나완-하루토노 조(인도네시아), 라지프 시덱-잘라니 시덱 형제 조(말레이시아). 이중에서도 가장 껄끄러운 상대는 중국선수들이었다. 이들은 공격력이 강한 데다 스피드가 엄청나게 빨랐다. “이들은 빨랐다. 특히 드라이브는 너무나 빠른 데다 강력해서 랠리가 되면 무척 힘들었다. 이들은 우리가 스매시 공격을 하면 드라이브로 반격하고 우리가 드라이브를 하면 더욱 강력한 드라이브로 맞받아쳤다. 드라이브는 빠르고 짧게 되돌아오는 스트로크라 한번에 큰 동작으로 강한 드라이브를 치면 다음 준비자세에서 빈틈을 보이게 마련이다. 그런데도 그들은 짧고 간결한 스윙동작에 강한 손목 힘으로 전광석화 같은 드라이브를 해왔다. 우리는 이들의 드라이브에 맞서 빠름과 느림, 강함과 약함을 적절히 섞어 타이밍을 뺏어 이기곤 했다.” 박주봉의 회고다. “주봉버거 있어요~” 말레이시아의 시덱 형제는 박주봉-김문수 조의 대표적 희생양이었다. 이들은 말레이시아에서 하늘을 찌를 듯한 인기를 누렸지만 고비마다 박주봉-김문수 조에 가로막혔다. 시덱 5형제는 모두 말레이시아 국가대표. 맏형 미스번 시덱(43)은 1982년 전영오픈 남자단식 준우승을 차지하는 등 1977년부터 13년 동안 국가대표로 활약했다. 둘째와 셋째가 바로 라지프(41)-잘라니(40) 복식조. 이들은 바르셀로나올림픽 준결승에서 박주봉 조에 2-0(15-11, 15-13)으로 또다시 무릎을 꿇고 3위에 머물렀다. 넷째가 또 다른 남자복식 대표인 라만 시덱(38). 막내 라시드 시덱(35)은 단식 국가대표로 애틀랜타올림픽 남자 단식 3위를 차지했다. 시덱 형제는 세계적인 수비전문 복식조로 유명했다. 손목 힘이 강해 상대가 아무리 강한 스매시를 해와도 계속해서 높게 쳐 올렸다. 이러다가 상대가 지치면 서서히 공격을 시도해 이기곤 했다. 하지만 박주봉에게는 이들의 약점이 보였다. “정말 대단한 선수들이었지만 상대 공격을 단순하게 높이 받아 올리기만 하는 수비 스타일이었기 때문에 번번이 우승 문턱에서 밀려났다. 그냥 받아만 넘길 게 아니라 빠른 드라이브 등으로 공격적인 수비를 했었다면 좋은 성적을 거뒀을 것이다. 또 하나, 이들 형제는 서브가 불안했다. 복식 서브는 쇼트 서브인지 롱 서브인지 알아챌 수 없는 백핸드서브를 넣어야 하는 데, 이들은 불안한 포핸드서브를 넣었다. 이들은 결국 바르셀로나올림픽 때 백핸드서브로 바꿨지만 그 때는 이미 너무 늦었다.” 말레이시아나 인도네시아 사람들은 한국의 대통령 이름은 몰라도 ‘박주봉’에 대해선 달달 꿸 정도로 열광한다. 요즘도 배드민턴 대회가 열리는 곳에선 상인들이 “주봉버거 있어요~” 혹은 “주봉아이스크림(주봉주스) 있어요~”라고 외치고 다닐 정도다. 무슨 상표가 아니라 말로라도 ‘여기 박주봉이 좋아하는 햄버거(주스, 아이스크림)가 있다’고 해야 잘 팔린다는 것이다. 배드민턴 복식은 자리싸움이다. 가령 박주봉-김문수 조에서 김문수가 앞에 서고 박주봉이 뒤에 서서 플레이했다면 어땠을까. 아마도 좋은 성적을 내기는 힘들었을 것이다. 가령 혼합복식에서 김동문이 앞에 서고 나경민이 후위에 선다면 또 어떻게 될까. 박주봉은 네트플레이에서 세계 최고다. 게다가 중간볼을 잡아채는 능력이 탁월하다. 이에 비해 왼손잡이 김문수는 후위에서 높은 점프를 이용한 강력한 스매시가 일품이다. 둘의 장점을 살리려면 어떤 상황에서든 박주봉이 전위에 서고 김문수가 후위에 서야 한다. 그러나 상대는 반대로 김문수를 앞으로 끌어내고 박주봉을 후위로 밀어내려고 애를 쓴다. 박주봉과 김문수가 볼을 다투도록 둘 사이의 어중간한 지점에 강하고 빠른 드라이브를 하는 것 등이 좋은 예다. 박주봉은 말한다. “나와 김문수의 물같이 자연스러운 로테이션은 수많은 반복훈련을 통해 이뤄졌다. 어느 상황에서든 내가 앞으로 움직이고 김문수가 뒤로 빠져야 한다는 것을 말하지 않아도 서로의 느낌만으로 알 수 있었다. 이런 매끄러운 로테이션은 곧바로 정확한 공격과 수비로 이어졌다. 로테이션을 잘하려면 무엇보다 자신이 잘 치려고 하기보다 파트너의 위치와 특징을 눈여겨보면서 경기를 운영하는 것이 중요하다.” 여자단식 3인방의 ‘6년 전쟁’ 배드민턴은 1992년 바르셀로나올림픽 때 처음 정식종목으로 채택됐다. 한국은 이때 4개 종목에서 금메달 2개(박주봉-김문수 남자복식, 황혜영-정소영 여자복식), 은메달 1개(방수현 여자단식), 동메달 1개(길영아-심은정 여자복식)를 따냈다. 1996년 애틀랜타올림픽(혼합복식 추가 5개 종목)에서도 금메달 2개(방수현 여자단식, 김동문-길영아 혼합복식), 은메달 2개(박주봉-나경민 혼합복식, 길영아-장혜옥 여자복식)를 따냈다. 그러나 2000년 시드니올림픽에선 은메달 1개(이동수-유용성 남자복식), 동메달 1개(김동문-하태권 남자복식)에 그쳤다. 이어 2004아테네올림픽에선 금메달 1개(김동문-하태권 남자복식), 은메달 2개(이동수-유용성 남자복식, 손승모 남자단식), 동메달 1개(나경민-이경원 여자복식)를 따냈다. 등록선수 80만명에 동호인 4000만 명을 자랑하는 중국과 배드민턴이 국기(國技)나 다름없는 말레이시아 인도네시아의 틈바구니에서 이러한 성적은 대단한 것이다. 한국은 초중고 일반 등록선수를 다 합해도 1500명에 불과하다. 박주봉-방수현 같은 천재가 있었기에 가능했던 일이다. 바르셀로나올림픽을 2년 앞둔 1990년부터 1996년 애틀랜타올림픽 때까지 벌어진 세계여자단식 3인방의 피 튀기는 ‘6년 전쟁’도 전설처럼 내려온다. 수산티(인도네시아)-예자오잉(중국)-방수현(한국)이 바로 그들이다. 이중에서도 수산티는 단연 발군이었다. 키는 161cm로 작았지만 아무리 공격하고 또 공격해도 받아내고 또 받아내는 정말 징그러운 ‘수비 머신’이었다. 결국 상대는 공격하다 제풀에 주저앉고 수산티는 무표정한 얼굴로 코트를 빠져 나갔다. ‘코트의 여우’답게 그의 끈질긴 수비는 정확하고 한치의 빈틈도 없었다. 8세 때부터 라켓을 잡아 16세 때 이미 세계 정상에 오를 정도로 그의 실력은 뛰어났다. 언젠가 그의 손을 본 국내 한 감독은 “작은 손바닥이 온통 굳은살이더라”며 혀를 내둘렀다. 체력이라면 방수현도 결코 밀리지 않았다. 또한 170cm의 큰 키에서 나오는 헤어핀과 스냅을 이용한 네트 플레이도 일품이었다. 공격이면 공격, 수비면 수비, 어디 하나 부족한 데가 없이 고루 잘했다. 그런데도 방수현은 수산티에게 늘 막혔다. 1992년 바르셀로나올림픽에서도 수산티에게 져 은메달에 머물렀다. 첫 판을 11-5로 이겨 앞서 나갔지만 두 번째 판에서 수산티의 끈질긴 수비에 말려들어 5-11로 내줬고 마지막 판도 3-11로 무너졌다. 1995년 1월 일본오픈 결승전에선 수산티와 3세트에서만 50분 동안 사투를 펼친 적도 있었다. 특히 9-9 상황에서 랠리만 50~60회 오간 것은 지금도 유명한 일화다. 결국 여기에서도 힘이 빠진 방수현이 공격 범실로 무너졌다. 찰거머리같이 질긴 수산티의 승리. 두 선수는 탈진하여 그대로 코트에 주저앉았고 관중들은 기립박수를 보냈다. 그러나 1996년 애틀랜타올림픽 때는 달랐다. 예전의 방수현이 아니었다. 방수현은 수산티에 1991년 이후 5승19패의 절대 열세를 보이고 있었지만 무수히 깨지면서 수산티의 약점을 알아챘다. “서두르면 항상 졌다” 수산티를 준결승전에서 만난 방수현은 침착했다. 조금도 서두르지 않았다. 1세트 한때 5-7로 뒤졌지만 수산티를 백코트 깊숙이 하이클리어로 집중공략 했다. 11-9로 승리. 방수현은 2세트에서도 정확한 하이클리어로 수산티를 뒤로 몰아넣은 뒤 강력한 스매시로 점수를 따냈다. 11-8로 이겨 세트 스코어 2-0 승리. 방수현은 경기가 끝난 후 “수산티와의 경기에서 서두르면 반드시 졌다. 오늘은 침착하게 맞받아치자고 작정했다. 수산티가 체력이 많이 떨어져 수비 정확도가 예전같지 않았다. 비디오를 통해 수산티의 경기를 철저히 분석한 게 힘이 됐다. 난 수중훈련 등 강도 높은 훈련을 해왔기 때문에 체력에는 자신이 있었다”고 말했다. 방수현은 결승에서 당시 17세의 인도네시아 배드민턴 천재 미아 아우디나를 2-0으로 가볍게 꺾고 금메달을 목에 걸었다. 아우디나는 2004년 아테네올림픽 땐 네덜란드 대표로 출전해 또다시 우승 문턱에서 중국 선수에 져 은메달에 머물렀다. 애틀랜타올림픽 당시 세계여자단식 랭킹 1위는 패션모델 뺨칠 정도의 미모로 한국 남자배드민턴 선수 김학균과 염문을 뿌렸던 중국의 예자오잉이었다. 그녀가 175cm의 장신에서 내려 꽂는 강스매시는 남자 선수에 버금갈 정도로 강했다. 그러나 예자오잉은 8강전에서 한국의 김지현에게 무릎을 꿇었다. 김지현은 온 몸을 던지는 끈질긴 수비로 예자오잉을 2-0(11-5, 12-11)으로 무너뜨렸다. 김지현이 방수현의 껄끄러운 상대 예자오잉을 제거해버린 것이다. 배드민턴은 대표적인 ‘약수터(공원) 운동’이다. 1960년대 초창기 배드민턴 대표선수들은 휴일이면 약수터와 공원을 찾아다니며 배드민턴을 보급했다. 2~3명이 조를 짜 서울 장충단공원, 남산약수터, 인왕산, 효창공원, 덕수궁 앞은 물론이고 심지어 창경원에서도 강습을 벌여 동호인 수를 늘렸다. 여름엔 한 달 동안 반바지 차림으로 전국을 순회하기도 했다. 이런 노력으로 1970년 전국 처음으로 당시 사회 유명인사가 많았던 서울 장충단공원 동호인이 모여 장충클럽이 창립됐다. 1971년엔 YMCA클럽 부산클럽 충주클럽이 탄생했고 1972년엔 개운산클럽 광주클럽 서귀포클럽이 뒤를 이었다. 마침내 1978년엔 한국사회인배드민턴연맹이 창설됐고 이는 새마을배드민턴 중앙연합회(1981년)-한국사회인배드민턴 중앙연합회(1986)-국민생활체육 전국배드민턴연합회(1991)로 이름을 바꿔가며 오늘에 이르렀다. 전국 5000여 클럽에 동호인 300만명이 즐기는 국민스포츠로 자리잡은 것이다. 그러나 한국 배드민턴 수준이 오늘날과 같이 높아진 것은 20여년에 불과하다. 1934년 세계배드민턴연맹이 창립됐지만 대한배드민턴협회는 1957년에야 창립됐으며 1962년에 이르러서야 대한체육회 가맹 경기단체가 됐다. 1962년 자카르타아시아경기대회 땐 선수까지 선발했지만 망신만 당한다며 파견을 취소했다. 1966년 방콕아시아경기 때는 남녀 각각 2명씩만 참가해 단체전(4명) 때는 단장과 임원이 선수로 등록해 뛰었을 정도다. 1970년 세계남녀 선수권대회인 토마스컵과 우버컵 극동지역 예선에서는 일본에 0-9, 0-7로 패해 대망신을 당하기도 했다. 1978년 방콕아시아경기에서는 한국이 19개 전 종목 중 18개 종목에서 고루 메달을 따내 일본 중국에 이어 3위를 차지했는데 유일하게 배드민턴에서만 메달이 1개도 없었다. 한국 배드민턴은 ‘새마을운동’이다. 새마을운동이 없었더라면 결코 오늘과 같은 생활스포츠로 자리잡지 못했을 것이다. 1981년 전두환 대통령의 동생 전경환 당시 새마을운동중앙본부 사무총장은 전국 산하조직에 배드민턴 보급을 지시했다. 배드민턴이야말로 도시 새마을운동을 성공적으로 이끌 생활스포츠라고 판단한 것. 1981년 3월29일 황선애의 전영오픈 배드민턴 여자단식 우승이 결정적인 계기가 됐다. 황선애의 깜짝우승은 당시 세계 배드민턴 변방이었던 한국을 일약 배드민턴 강국으로 만드는 전환점이 됐다. 여론의 집중적인 조명을 받으면서 전국적으로 배드민턴 붐을 불러일으켰다. 전경환씨는 자신이 앞장서 배드민턴을 배웠다. 동호인이 많이 모이는 체육관 약수터 공원 등을 찾아 그들과 직접 게임을 하기도 했다. 도지사 경찰서장 기관장들에겐 라켓을 선물로 주며 해당 단체나 직장에 배드민턴부 설치를 권유하기도 했다. 배드민턴이 전국에 급속도로 퍼진 것도 바로 이 무렵이었다. ‘셔틀콕에 미친 사나이’ 김학석 물론 ‘셔틀콕에 미친 사나이’ 김학석(55·대한배드민턴협회 부회장 겸 전무이사)씨의 헌신도 빼놓을 수 없다. 그는 1974년 대한배드민턴협회 경기이사로 참여한 이래 30년 동안 한국 배드민턴에 모든 것을 바쳤다. 사업도 가정도 돈도 인생도 모든 것을 바쳤다. 경기 이천의 부잣집 아들로 태어난 그는 배드민턴을 위해서라면 아낌없이 돈을 썼다. 1974년 협회가 재정적으로 어려움에 처하자 아버지에게 부회장을 맡도록 설득해 돈을 쓰게 했고 자신은 대대로 내려온 양조장을 팔아 대표팀 경비로 썼다. 또한 자신의 잘 나가던 사업도 배드민턴을 위해 과감하게 정리했다. 당시 배드민턴 관계자들은 “김학석이 아버지 재산의 반을 배드민턴에 쏟아 부었다”고 말했다. 오죽하면 ‘한국 배드민턴은 김학석 부자가 키웠다’는 말까지 나왔을까. 1974년 김학석씨는 당시 세계 최강이던 일본 배드민턴 관계자들을 만날 때마다 “10년만 기다려라. 너희들을 무참하게 꺾어줄 테니…”라고 큰소리쳤다. 그리고 틈만 나면 전국을 돌아다니며 쓸 만한 꿈나무들을 발굴해 아낌없이 지원했다. 마침내 7년 만인 1981년 1월 황선애가 그의 꿈을 이뤘다. 일본 오픈에서 세계 최강이던 도쿠다 야스코를 2-1로 누르고 우승을 차지한 데 이어 3월엔 영국 오픈까지 휩쓸어버린 것. 이런 김학석씨가 2000년 9월 시드니올림픽이 한창일 때 쓰러졌다. 병명은 심장판막 이상과 동맥경화로 인한 심장혈관 이상. 즉시 중환자실로 옮겨져 수술 준비에 들어갔다. 그러나 김씨는 고개를 흔들었다. “내가 지금까지 살아온 것은 배드민턴 때문이다. 사흘 후면 그 중요한 시드니올림픽 배드민턴 결승이 열린다. 우리 선수들이 뛰는 걸 보고 수술하고 싶다. 사흘만 늦춰달라”고 말했다. 의사는 물론 가족들도 기가 막혔다. “도대체 뭐 이런 사람이 다 있느냐”며 할말을 잊었다. 결국 그는 결승전을 보지 못하고 20시간이나 걸린 대수술을 받았지만 그의 배드민턴에 대한 열정 하나만은 아무도 말릴 수 없었다. 고수는 고수대로, 풋내기는 풋내기대로 강호에 바람이 분다. 손바닥이 근질거린다. 심장이 뛴다. 얼마나 닦아왔던 비기(秘器)던가. 한판 겨뤄보고 싶다. 신새벽. ‘민턴 마니아’들은 마침내 검을 차고 집을 나선다. 경기는 보통 셔틀콕을 던져 셔틀콕 코르크가 향하는 쪽이 첫 서브권이나 코트 중에서 하나를 선택한다. 근육이 팽팽히 당겨지고 숨이 막힌다. 감미로운 긴장감. 터질 듯한 충만감. 라켓을 잡은 손바닥이 싱그럽다. 라켓은 검이다. 알루미늄 검, 그라파이트(아연) 검, 티타늄 검. 풋검객들은 겨루다가 곧잘 검끼리 엇갈린다. 한순간에 검이 뎅강 부러진다. 가끔 다른 코트에서 새(셔틀콕)들이 날아든다. 또 다른 옆 코트에서도 새들이 어지럽게 날고… 사람들은 새떼를 쫓는다. 수지니 날찐이 해동청 보라매 떴다 저 종달새…. 가끔 새들은 까르르 까르르 장난치다 제 머리를 하늘(천장)에 부딪힌다. 강호는 넓고 고수는 많다. 이제 갓 검을 잡은 풋검객부터 수십년 내공을 쌓은 눈빛 형형한 고수에 이르기까지 천차만별이다. 한때 무림지존을 꿈꾸다 부상으로 그 꿈을 접은 고수도 부지기수다. 하지만 배드민턴 위에 사람 없고 배드민턴 아래 사람 없다. 배드민턴은 누구에게나 열려 있다. 고수는 고수대로 풋내기는 풋내기대로 똑같이 존중 받는다. 노무현 대통령과 권양숙 여사가 아테네올림픽에서 열심히 싸워줄 것을 당부하며 어설프게 셔틀콕을 톡톡 쳤다고 해서(1월12일 태릉선수촌 김동문-나경민조와 함께) ‘실력 없다’고 시비 걸 필요는 없다. 노 대통령이 청와대로 가기 전 살던 명륜동 뒷산을 찾아 주민들과 가볍게 배드민턴으로 수담을 나눴다고 해서(2003년 6월) ‘정치 쇼’라고 비난할 필요도 없다. 그만큼 배드민턴은 쉬운 운동이다. 나이가 많으면 많은 대로 적으면 적은 대로 각자 눈높이에 맞춰 하면 된다. 김영삼 전 대통령이 ‘탁구 똑딱 볼’ 수준으로 셔틀콕을 제자리에서 톡톡 치며 “참 쉬운 운동”이라고 큰소리 친 것도 고개가 끄덕여진다. 지금도 매주 일요일 집 근처 외국인학교 체육관에서 스매시를 내려 꽂는 전두환 전 대통령의 놀라운 실력도 그의 친동생 전경환씨에는 못미친다. 가수 겸 탤런트 장나라씨는 말한다. “난 힘이 없어서 스매시 같은 파워풀한 공격은 잘 못합니다. 그냥 살짝살짝 넘기는 헤어핀이 제격이지요. 하지만 아테네올림픽 때 우리 선수들이 높이 점프해서 강력한 스매시 공격을 할 때면 어찌나 멋있고 부럽던지…. 정말 나도 언젠간 꼭 제대로 된 스매시를 날리고 싶어요. 그래서 나중에 실력이 늘면 이문세 아저씨에게 한번 도전 신청이나 해볼까요?” 과연 십여 년 동안 갈고 닦은 숨은 고수 이문세 아저씨한테 상대가 될까? 얼마 전 이문세 아저씨는 산악인 엄홍길씨와 함께 그 험하다는 히말라야까지(전지훈련?) 갔다 왔는데…. 차라리 김창환 아저씨라면 어떨까? 또 탤런트 연규진, 개그우먼 박경림, 영화배우 이경영 같은 선수들은 어떨까. 그러나 이들 모두에게 도전 신청을 내더라도 씨름선수 출신 이만기 교수에겐 내지 말아야 할 것이다. 천둥 같은 스매시, 표범 같은 순발력, 고양이 같은 경쾌한 발로 강호에 소문이 자자하니까. 어깨에 힘이 빠지는 나이 300만 동호인 중엔 40대를 넘어선 이가 많다. 그만큼 배드민턴은 부드럽다. 그물에 걸리는 셔틀콕 코르크의 새콤달콤한 감각을 느끼려면 나이가 좀 들어야 한다. 젊은 피는 배드민턴을 힘으로 치려 한다. ‘어깨가 빠져라’ 라켓을 휘두른다. 그러다간 정말 어깨가 빠질지도 모른다. 마흔을 넘어서니 노여움만 늘어간다/ 얻어 탄 자가용에서 시내버스로 갈아타면/ 오른쪽 고관절부터 시큰거리더니/ 오늘은 귓구멍까지 윙윙거려 매사가 불안하다/ 백밀러를 힐끗 훔쳐보면 속알머리부터 하나씩 틈새 벌어지는데/ 동갑내기들은 이미 술자리 끊은 지 오래고/ 그나마 후배들까지 손가락 사이로 빠져 나간다// 벽장 속의 아내여/ 기대러 가면 받아줄 것인가 [강병철의 ‘퇴근길’] 내 가슴에 손가락질하고 가는 사람이 있었다/ 내 가슴에 못질하고 가는 사람이 있었다/ 내 가슴에 비를 뿌리고 가는 사람이 있었다/ 한평생 그들을 미워하며 사는 일이 괴로웠으나/ 이제는 내 가슴에/ 똥을 누고 가는 저 새들이/ 그 얼마나 아름다우냐 [정호승 ‘내 가슴에’] 노여움만 늘어가는 나이, 후배들마저 손가락 사이로 빠져 나가는 시절, 마침내 어깨에 힘이 빠지기 시작한다. 배드민턴을 치기에 ‘딱’인 연배가 된 것이다. 내 가슴에 똥을 누고 가는 새가 한없이 고맙고, 그저 아름답기만 한 중늙은이가 된 것이다. 하지만 기본 자세를 배우는 게 만만치 않다. 그냥 대충 배우고 게임부터 하고 싶다. 언뜻 보면 그 폼이 그 폼인 것 같다. ‘꼭 교과서 같은 자세를 익혀서까지 셔틀콕을 쳐야 하나. 내가 선수 할 것도 아니고….’ 몸은 안 따라 주고 별의별 생각이 다 난다. 고수들은 오며가며 한마디씩 툭툭 던진다. ‘한 살 버릇 여든까지 가는 거야’ ‘처음에 자세를 잘못 배우면 두고두고 땅을 치게 되지’ ‘야구 투수가 공을 던지듯이 어깨가 자연스럽게 돌아가도록 스윙해야 돼’ ‘손으로 치는 게 아니라 발로 치는 거야’ ‘손목 스냅이 안 되면 거의 밖으로 나가 아웃이야’ ‘준비운동과 정리운동을 철저히 하지 않으면 부상당하기 쉽지’ ‘처음 한달 스윙 폼이 죽을 때까지 가는 법이지’ ‘무조건 게임부터 하지 말고 폼부터 익혀라.’ 라켓으로 농구대 그물망을 치기 시작한다. 하나 둘 셋 스윙, 그리고 손목 스냅…. 싫증날 때마다 코트에서 게임을 하는 고수들의 경기를 훔쳐본다. 햐아, 정말 잘한다. 난 언제나 저렇게 칠 수 있으려나. 언제부터인가 밥상에서 숟가락 젓가락을 라켓 삼아 손목 스냅 연습을 시작한다. 하나 둘, 하나 둘…. 굽혔다아~ 폈다아~. 연필 볼펜 아령 맥주병 술병도 손에 잡히기만 하면 스냅이다. 아내가 “애들 다 버려놓는다”며 도끼눈을 뜨고 회사 동료들은 “약간 돌았다”며 고개를 흔들어도 귀에 들어오지 않는다. 산에 갈 때 드는 지팡이도 스냅연습엔 안성맞춤. 마침내 라켓 커버를 씌운 요넥스 채가 통째로 스냅에 따라 부드럽게 굽혔다 펴진다. 셔틀콕을 칠 때 가장 중요한 것이 손목 스냅이라면 치기 전까지 가장 중요한 것은 발놀림이다. 말레이시아 인도네시아 선수들은 풋워크가 물 흐르듯 자연스럽다. 연체동물처럼 유연하다. 별로 움직이는 것 같지도 않은데 구석에 송곳처럼 꽂히는 상대 강스매시를 고양이처럼 사뿐히 다가가 잘도 받아낸다. 덴마크 영국선수들은 어떤가. 쿵쾅쿵쾅 우당탕탕 난리 블루스다. 개구쟁이들처럼 뛰어다닌다. 랠리가 계속되다보면 얼음판 위의 노인들처럼 몸의 균형이 위태위태하다. 한국선수들은 투박하다. 왠지 발놀림에 힘이 많이 들어가고 매끄럽지 못하다. 박주봉은 10kg이나 나가는 납 조끼를 발목에 두르고 풋워크 연습을 했다. 푹푹 빠지는 모래사장에서 입에서 단내가 나도록 훈련을 했다. 황제는 결코 타고나는 것이 아니다. “진정한 헤어핀은 네트인” 배드민턴 풋워크는 많아야 3스텝이다. 90% 이상은 1~2스텝이면 그만이다. 대신 전후좌우 360도 사방으로 끊임없이 방향을 바꾸어가며 움직여야 한다. 바로 여기에서 고수와 하수의 차이가 난다. 고수들은 많이 움직이지 않는다. 아니 전혀 움직이지 않는 것 같다. 땀도 나지 않는다. 그런데 하수들은 전후좌우 받아내기 바쁘다. 땀을 비 오듯 흘린다. 고수들은 표정 변화도 없다. 가운데 홈 포지션에서 헉헉거리는 하수를 무심히 바라볼 뿐이다. 어쩌다 하수가 고수쪽 백 바운더리 쪽에 회심의 강스매시를 날리고 잘라먹기 위해 네트 쪽으로 득달같이 달려들어가도 어느새 셔틀콕은 하수의 머리를 넘어 뒤쪽으로 훨훨 날아간다. 맙소사. 고수는 손목 힘도 강하고 발도 빠르고 눈도 빠르니 당해낼 수가 없다. 그러나 전혀 수가 없는 것은 아니다. 계속해서 셔틀콕이 네트를 타고 넘어가게(네트 인) 하면 된다. 네트 끝을 맞고 그대로 맥없이 떨어지는 셔틀콕은 대표선수라도 쉽게 받지 못한다. 하지만 하수에게 그게 될 법한 일인가. 대표선수들은 상대 기를 죽이기 위해 일부러 간혹 ‘네트 인’을 시도해서 성공한다. 박주봉은 “진정한 헤어핀은 네트인”이라고 단언한다. 결국 하수는 안 된다는 얘기다. 젠장. 현대 배드민턴은 스피드와 파워다. 스트로크는 드라이브와 스매시 헤어핀이 주다. 선제 속공만이 살길이다. 상대 코트에 낮게 셔틀콕을 보내야 한다. 상대가 치기 좋게 올려 주면 망한다. 쇼트 서브가 들어오면 서브를 넣은 사람을 향해 드라이브를 하거나 푸시를 해야 한다. 복식에선 두 선수의 중간지대를 집중 공략하고 혼합복식일 때는 여자 쪽을 집요하게 노려야 한다. 비겁하다고? 그건 이긴 뒤에 따져도 늦지 않다. 서브를 넣을 때는 상대가 낮게 공격하지 못하도록 타이밍을 빼앗아야 한다. 상대의 리시브 타이밍에 맞춰주면 꼼짝없이 당하게 돼 있다. 신장 190㎝가 넘는 유럽 선수들이 네트 앞에 바짝 붙어 잔뜩 웅크린 채 받아치려 한다고 해서 겁낼 것은 없다. 무심하게 네트 끝을 보고 손목으로 툭 밀어넣으면 된다. 클리어-스매시-드롭샷은 형제다. 폼이 똑같다. 임팩트 순간 스피드의 차이와 손목 각도에 따라 달라질 뿐이다. 검객은 손목과 스피드 조절로 칼춤을 춘다. 때로는 강스매시를 날리다가 때로는 힘을 반쯤만 넣은 스매시(하프 스매시)를 날려 상대의 김을 뺀다. 때로는 상대 머리 뒤로 빠르게 떨어지는 클리어(드리븐 클리어)를 날리다가 곧바로 허리 쪽으로 짧게 비수 같은 드라이브를 꽂는다. 아내를 네트 앞에 세우고 요즘 세계 일류선수들의 남자복식 경기를 보면 눈이 아프다. 너무 빨라 어지럽다. 투욱 툭 짧은 비수만 교환한다. 무형검(無形劍)이다. 이래서 세계랭킹 1위에서 10위까지의 실력은 종이 한 장 차이다. 한번 삐끗하면 천길 낭떠러지다. 영원한 강자도 영원한 패자도 없다. 혼합복식 김동문-나경민조가 세계 1위라고 해서 항상 이기는 것은 아니다. 이들도 한번 꼬이기 시작하면 랭킹 10위 팀에도 얼마든지 질 수 있다. 손승모가 아테네올림픽에서 은메달을 따낸 것도 몸을 던지는 투지와 끈기, 그리고 이를 받쳐준 체력이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먼 산 부엉새 소리에도 잠 깨어 뒤척이는데 지겨워라 집사람 코고는 소리 몹시도 성가시더니 오랜만에 친정 길 옷 투정하며 훌쩍 떠나버린 빈 자리 코고는 소리 없어 잠 오지 않는다 한평생 살 맞대고 살면 미움도 쌓여 결 고운 사랑 되는가 문득 텅 빈 방 귀뚜라미 소리 늦가을 벌판처럼 텅 비었다 [이재금의 ‘코고는 아내’] 아내가 훌쩍 떠나버린 빈자리. 잠이 오지 않는가. 그럼 일어나 배드민턴 라켓을 들어라. 배드민턴에 대해 전혀 아는 게 없다면 여기저기 인터넷을 뒤져봐라. 그리하여 아내가 돌아오면 함께 게임을 즐겨라. 복식은 배드민턴의 꽃이다. 호흡이 안 맞으면 아무리 고수들이라도 하수 팀에 질 수 있다. 아내는 네트 앞에 세우고 자신은 뒤에 서라. 아내는 네트 앞에서 잘라먹고 남편은 뒤에서 맹공을 퍼부어라. 그러다 아내가 실수하더라도 제발 지청구일랑은 하지 말라. 아내가 잔소리 할지라도 노여워하지 말라. 운전대 옆에서 잔소리하는 아내가 예뻐 보여야 배드민턴 복식을 칠 자격이 있다. 중년 사내들은 외로워서 검을 든다. 나이 먹어가는 여자들은 ‘지는 꽃’이 서러워 라켓을 든다. 그리하여 세월을 이긴다. 신 새벽. 배드민턴 치는 부부는 정녕 왕이로소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