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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윗과 요나단의 만남 18:1~5
1 다윗이 사울에게 말하기를 마치매 요나단의 마음이 다윗의 마음과 하나가 되어 요나단이 그를 자기 생명같이 사랑하니라
2 그날에 사울은 다윗을 머무르게 하고 그의 아버지의 집으로 다시 돌아가기를 허락하지 아니하였고
3 요나단은 다윗을 자기 생명같이 사랑하여 더불어 언약을 맺었으며
4 요나단이 자기가 입었던 겉옷을 벗어 다윗에게 주었고 자기의 군복과 칼과 활과 띠도 그리하였더라
5 다윗은 사울이 보내는 곳마다 가서 지혜롭게 행하매 사울이 그를 군대의 장으로 삼았더니 온 백성이 합당히 여겼고 사울의 신하들도 합당히 여겼더라
다윗을 칭송하는 백성 18:6~9
6 무리가 돌아올 때 곧 다윗이 블레셋 사람을 죽이고 돌아올 때에 여인들이 이스라엘 모든 성읍에서 나와서 노래하며 춤추며 소고와 경쇠를 가지고 왕 사울을 환영하는데
7 여인들이 뛰놀며 노래하여 이르되 사울이 죽인 자는 천천이요 다윗은 만만이로다 한지라
8 사울이 그 말에 불쾌하여 심히 노하여 이르되 다윗에게는 만만을 돌리고 내게는 천천만 돌리니 그가 더 얻을 것이 나라 말고 무엇이냐 하고
9 그날 후로 사울이 다윗을 주목하였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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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말씀 요약]
요나단이 다윗을 자기 생명같이 사랑해 언약을 맺고 자기 겉옷과 군복과 칼을 줍니다. 다윗은 지혜롭게 행해 사울의 군대장이 됩니다. 다윗이 블레셋 사람을 죽이고 돌아올 때 “사울이 죽인 자는 천천이요 다윗은 만만이로다”라고 여인들이 노래합니다. 사울이 불쾌해하며 그 후로 다윗을 주목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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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사울의 시기심
이스라엘의 첫 번째 왕이었던 사울 역시 시기와 질투심으로 망한 사람이 되고 말았습니다. 사울은 두려움으로 인하여 골리앗과의 싸움에 직접 나서지 못하였습니다. 그러나 다윗은 만군의 여호와의 이름을 의지하여 믿음으로 골리앗과 대결을 벌였고 승리하였습니다. 다윗의 승리를 보고 들었던 이스라엘 백성들은 그를 칭찬하고 노래하고 사랑하기 시작하였습니다. 심지어 사울 왕의 아들인 요나단마저 다윗을 생명처럼 사랑합니다. 그리고 약속의 증거품까지 다윗에게 주었습니다.
사무엘 상 18:4, 요나단이 자기가 입었던 겉옷을 벗어 다윗에게 주었고 자기의 군복과 칼과 활과 띠도 그리하였더라
자신의 겉옷이나 무기를 누군가에게 준다는 것은, 상대방을 친구로 여기고 전쟁터에서 생사고락을 함께 하는 전우로 생각한다는 뜻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과 여인들, 그리고 아들 요나단마저 다윗을 사랑하자, 시기심으로 가득하여 다윗을 죽이려고 창을 던집니다. 사울은 시기와 질투에 사로잡혀 다윗을 죽이는 일에만 몰두하고, 하나님을 등한시하며 이스라엘 백성들을 돌보는 일은 전혀 하지 못하게 됩니다. 결국 시기심으로 가득한 사울은 하나님께 버림을 받고 비참한 최후를 맞이하고 말았습니다.
2. 예수님을 시기한 사람들
예수님께서 복음을 전하실 때도 많은 사람들이 예수님을 시기하였습니다. 바리새인이나 사두개인들이 예수님을 시기하였으며, 대제사장들이 예수님께 유대인들이 관심을 가지자 시기하고 질투하여 예수님을 죽이려 하였습니다.
마가복음 15:10, 이는 그가 대제사장들이 시기로 예수를 넘겨준 줄 앎이러라
결국, 예수님을 시기했던 대제사장들과 종교지도자들은 구원자이신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는 어리석은 행동을 하고 말았습니다.
3. 시기심을 극복하려면
시기와 질투는 결국 우리의 생명과 영혼을 파괴시키고 맙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나보다 앞선 사람들을 경쟁자로 생각하기보다는, 각자의 달란트를 통하여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동역자"로 생각해야만 합니다. 다른 이들과 감정적인 경쟁을 하기보다는, 협력하여 하나님의 나라를 이루어 가는 복음의 동역자로 생각할 때 시기심을 극복할 수가 있습니다.
시기가 아니라 동역입니다
성도 여러분! 우리 주변에 나보다 앞서가는 것처럼 보이는 사람이 있습니까? 나보다 조금 더 많이 가진 것 같고 일도 잘하는 것 같은 사람이 있습니까? 그들을 시기하는 마음이 생기진 않습니까? 오늘 우리는 경쟁이나 시기의 마음이 아닌 동역의 마음으로 가족이나 성도나 직장 동료들을 대합시다. 협력하고 동역할 때 하나님은 우리를 통하여 하나님의 나라를 확장시켜 나가실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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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윗을 사랑한 요나단(1-5)
“골리앗이 살해된 후 사울은 다윗을 그와 함께 있게 하고 그의 아버지의 집으로 돌아가도록 허락지 않았다. 그 동안에 “요나단의 마음이 다윗의 마음과 연락되어 요나단이 그를 자기 생명같이 사랑하니라.” 요나단과 다윗은 의형제의 언약을 맺었다. 왕의 아들 요나단은 “자기의 입었던 겉옷을 벗어 다윗에게 주었고 그 군복과 칼과 활과 띠도 그리하였더라.” 다윗은 중요한 책임을 맡았으나 겸손함을 잃지 않았고 왕의 가족 뿐만 아니라 백성들의 사랑도 받았다.
“다윗이 사울의 보내는 곳마다 가서 지혜롭게 행하매 사울이 그로 군대의 장을 삼았더”라. 다윗은 사려 깊고 충성스러웠으며, 그것은 하나님의 축복이 그와 함께 하신다는 증거였다. 사울은 가끔 자기 자신이 이스라엘을 다스리기에 부적합하다는 것을 깨달았고 여호와의 지도를 받은 사람이 그와 함께 있다면 나라가 더 안전할 것이라고 생각했다. 또한 사울은 그가 다윗과 교통하는 것은 자신에게도 방벽이 되리라고 믿었다. 다윗이 여호와의 총애와 보호를 받는 한 사울이 그로 더불어 전쟁에 나간다면 사울에게 방벽이 될 수 있을 것이었다.
다윗이 사울과 관계를 갖게 된 것은 하나님의 섭리하신 바였다. 다윗이 궁정에서 직분을 맡게 된 것이 그로 하여금 국사에 대한 지식을 얻게 하고 장차 그가 위대하게 될 때를 위한 준비를 갖추게 해주었다. 이것은 그로 국민의 신임을 얻을 수 있게 했고 사단의 적의를 통하여 그에게 닥치는 파란 곡절과 고난은 그로 하나님을 의지하고 전적으로 신뢰하게 해주었다. 다윗에 대한 요나단의 우정도 역시 장래의 이스라엘의 통치자의 생명을 보존하기 위한 하나님의 섭리였다. 이 모든 일로 하나님께서는 다윗과 이스라엘 양편을 위한 당신의 은혜로우신 목적을 이루고 계셨다(부조, 649)
다윗을 경계하는 사울(6-16)
“그렇지만 다윗에 대한 사울의 친절은 오래 가지 못했다. 사울과 다윗이 블레셋 사람과의 전쟁에서 돌아올 때에 “여인들이 이스라엘 모든 성에서 나와서 노래하며 춤추며 소고와 경쇠를 가지고 왕 사울을 환영하”였다. 한 무리가 “사울이 죽인 자는 천천이요”라고 노래할 때에 다른 무리가 그 노래를 받아서 “다윗은 만만이로다”라고 화답하였다. 왕의 마음에 질투심이 일어났다. 왕은 이스라엘 여인들의 노래에서 다윗이 자기보다 더 높임을 받은 까닭에 분노하였다. 그는 이 질투의 감정을 억제하는 대신에 그의 품성의 약점을 드러내어 “다윗에게는 만만을 돌리고 내게는 천천을 돌리니 그의 더 얻을 것이 이 나라밖에 무엇이냐”고 부르짖었다.
사울의 품성의 큰 결점은 칭찬받기를 좋아하는 것이었다. 이 특성은 그의 행동과 사상에 지배적인 영향을 미쳐서 모든 일을 칭찬과 자기를 높이려는 욕망으로 행하였다. 옮은 일과 그릇된 일에 대한 사울의 표준은 사람들의 칭찬에 좌우되는 저급한 표준이었다. 먼저 하나님의 칭찬을 받으려고 노력하지 아니하고 사람들을 기쁘게 하려고 애쓰는 자들은 아무도 안전하지 못하다. 사람들의 판단에서 첫째가 되는 것이 사울의 야망이었다. 이 찬양의 노래를 듣고 있는 동안에 왕의 마음에는 다윗이 백성의 인심을 얻어 자기를 대신하여 왕위에 오를 것이라는 생각이 굳어져 갔다...
적용
1. 나와 경쟁을 하는 사람을 나의 생명같이 사랑하는 요나단과 같은 넓은 마음을 갖자.
2. 나보다 인기가 있는 자를 질투하는 마음이 생기지 않도록 늘 겸손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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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게주시는교훈은무엇입니까?
1-5절 궁중을 드나드는 음악가였던 다윗이 골리앗을 무너뜨리고 블레셋과의 전쟁을 승리로 이끌자, 사울은 다윗을 군대를 지휘하는 장군으로 승격하고 궁중에 머물게 합니다. 사무엘이 예언한, 사울의 나라를 길지 못하게 할 ‘여호와의 마음에 맞는 사람’(13:14), 사울의 나라를 넘겨줄 ‘왕보다 나은 왕의 이웃’(15:28)이 등장한 것입니다. 그러나 아버지 사울과 함께 왕위를 빼앗길지도 모르는 요나단은 도리어 마음과 생명을 다해 다윗과 연합합니다. 왕권을 상징하는 의복과 무기마저 다윗에게 넘겨주며 다윗을 찬탈자가 아닌 계승자로 인정합니다. 요나단은 하나님 나라의 진전을 위해 스스럼없이 낮아지고 기꺼이 자기 권리를 포기할 줄 알았습니다. 꼭 나를 통해서만 하나님의 계획이 이루어질 거라는, ‘비전’을 빙자한 교만을 버립시다.
6-9절 요나단과 달리 사울은 신경쇠약적인 시기심에 사로잡힙니다. 히브리 시에서 ‘천천’과 ‘만만’은 비교의 의미가 아닌, 평행을 이루는 동의적 표현입니다. ‘사울과 다윗이 수많은 적을 섬멸했다’는 여인들의 찬사일 뿐이지만, 사울은 이 노래를 정치적 메시지로 받아들이고 다윗을 자신을 위협하는 정적으로 보기 시작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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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나단의 사랑(18:1~4)
다윗의 열정과 믿음의 행동을 지켜본 요나단은 다윗을 진심으로 사랑하고 존경하게 됩니다.
이에 다윗을 자기 생명같이 여기며 그와 언약을 맺고 자신이 입고 있던 겉옷뿐 아니라 군복과 칼과 활과
띠도 줍니다. 요나단은 사울의 뒤를 이어 왕위에 오를 왕자로서, 겉옷은 그러한 신분을 상징합니다.
요나단은 다윗 안에 있는 가능성을 보았기에 그를 귀하게 여겼으며, 다윗이 하나님의 사람인 것을 알았기에
자신의 지위나 권리에 연연하지 않고 그를 높여 주었습니다. 자신보다 남을 낫게 여길 줄 아는
요나단을 통해 다윗을 왕으로 세우시려는 하나님의 뜻이 완성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뜻을 귀하게 여기는
성도라면, 자신보다 나은 사람을 인정하고 누구나 품을 수 있어야 합니다.
성도는 모두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한 가족이기 때문입니다.
- 묵상 질문: 요나단이 자신의 겉옷을 벗어 주고 무기까지 준 것은 무엇을 의미하나요?
- 적용 질문: 하나님의 뜻을 이루기 위해 나보다 높여 주고 섬겨야 할 지체는 누구인가요?
사울의 질투(18:5~9)
다윗은 사울이 보내는 곳마다 지혜롭게 행해 항상 좋은 성과를 거둡니다. 다윗이 블레셋과 싸워서 이기고
돌아올 때 환영하는 여인들이 사울보다 다윗을 더 높여 노래합니다. 이 말을 들은 사울 왕은 분노하며
다윗에 대한 시기심을 품습니다. 자기보다 인기 있는 다윗을 바라보며 상대적으로 왕인 자신의 권위가
떨어졌다고 여겼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선택으로 왕이 되었으면서도 자신에 대한 확신이 없었던 것입니다.
그날 이후로 사울은 다윗을 질투와 의심의 눈으로 보기 시작합니다. 남을 시기하는 것은 오히려
자신의 뼈를 썩게 합니다(잠 14:30). 하나님의 사람은 다른 이들이 잘되는 것을 보며 함께 기뻐해야 합니다.
- 묵상 질문: 가장 높은 위치에 있는 사울이 왜 길거리 노랫소리에 신경을 쓴 것일까요?
- 적용 질문: 가진 것에 감사하지 않고 남과 비교하면서 더 욕심을 내고 있는 것은 무엇인가요?
오늘의 기도
자신의 지위와 명예를 내려놓고 오직 다윗의 믿음을 보고 사랑했던 요나단의 안목을 저 역시 갖기 원합니다.
타인과 자신을 비교하며 우월감과 열등감 사이를 오가는 모습을 버리게 하시고,
각자 그 모습 그대로 인정하게 하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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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1~9 사랑은 사람을 품고 질투는 분을 품습니다.
말씀요약:
사울의 아들 요나단이 다윗에게 마음이 끌려 다윗을 자기 목숨처럼 사랑하게 되었다.
요나단은 다윗을 자기 목숨처럼 깊이 사랑했기 때문에 둘은 의형제를 맺었다.
요나단은 자기의 겉옷과 군복과 활과 칼과 허리띠까지 다윗에게 주었다.
다윗이 블레셋 사람을 죽이고 올 때에 여인들이 노래하며 춤을 추며 사울왕을 맞이한다.
사울이 죽인자는 천천이요 다윗이 죽인자는 만만이라고 노래한다.
그때부터 사울이 다윗을 시기하고 질투하기 시작해서 다윗을 주목했다.
말씀묵상:
아버지 이새의 심부름으로 전쟁 대치중인 형들에게 음식을 전해 주러갔다가
이스라엘 군대를 모욕하는 태산같은 골리앗을 돌멩이 하나로 무너뜨렸다.
베들레헴 시골 동네의 양치기 소년에서 일약 국민적인 스타로 탄생되는 순간이 였다.
사울 왕 앞에 불려가서 누구의 아들이냐라고 왕이 물을 만큼
국가적 영웅으로 등장하게 되었다.
갑작스런 유명세는 다윗에게 기회이기도 하지만 위기이기도 하다.
다윗과 사울의 면담이 끝났다.(1)
요나단이 다윗에게 마음이 끌려 다윗을 자기 목숨처럼 사랑하게 되었다.(1)
다윗은 다시 베들레험 아버지의 집으로 돌아가는 것도 허락이 안되었다.(2)
요나단은 다윗을 자기 목숨처럼 깊이 사랑했기 때문에 둘은 의형제를 맺었다.(3)
요나단은 자기의 겉옷과 군복과 활과 칼과 허리띠까지 다윗에게 주었다.(4)
요나단이라는 사람 참 신비스런 인물이다.
요나단도 얼마전에 블레셋과의 전투에서 자기 병기를 든 소년 한명과 함께
믹마스의 가파른 협곡을 기어 올라가서 블레셋 군사 20여명을 죽였다.(삼상14:12~25)
이 일을 계기로해서 이스라엘이 블레셋에 큰 승리를 한 적이 있었다.
그 때 사울이 전 군에 금식하라는 명령을 내렸을 때 그것도 모르고 꿀을 먹었다가
아버지 사울에게 죽임을 당할뻔도 했지만 백성들의 탄원으로 살아 난 적이 있었다.
이런 것으로 볼때에 요나단은 용감한 장군임에 틀림이 없다.
또 이스라엘의 차세대 지도자로 전혀 손색이 없는 인물이다.
더구나 자기 아버지가 현직 이스라엘의 초대 왕이다.
자연스럽게 차기 강력한 대권주자이고 황태자이다.
이런 요나단이 너는 칼과 창과 단창으로 내게 나오지만
나는 만군의 여호와 즉 네가 모욕하는 이스라엘 군대의 하나님 이름으로 네게 간다고
외쳤던 다윗이 눈에 번쩍하고 들어 왔던 것 같다.
요나단도 블레셋과 싸울 때
여호와의 구원은 사람의 많고 적음에 달리지 아니하였느니라(삼상14:6)라고
하나님의 능력에 철저히 의지하는 믿음을 보였던 요나단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기 자신과 비교해 보았을 때 다윗은
자신과는 차원이 다른 믿음의 소유자라는 것을 한 눈에 알아 보았을 것이다.
영웅이 영웅을 알아보고 믿음이 믿음을 알아보기 때문일 것이다.
요나단은 믿음의 증표로 왕자의 신분과 같은 겉옷과 갑옷과 칼과 활과 허리띠도 준다.
요나단이 다윗을 자기 생명처럼 사랑했다고 2번이나 말씀하신다.
다른 성경에는 그대가 나를 사랑함이 기이하여 여인의 사랑보다 승하였도다(상하1:26)고
고백했다. 이들의 사랑이 예수님의 사랑인 것 처럼 느껴진다.
나이로나 신분으로나 혈통으로나 하늘같은 선배인 요나단이 새까만 후배인 다윗에게
이렇게 파격적인 제안을 할 수 있는 이유는 무엇일까?
나는 후배가 나 보다 먼저 진급만 해도 속이 상하고,
후배가 상사가 된다면 아마 사표쓸 사람들도 참 많을텐데 ..........
이 세상에서 이런 친구 한명이라도 있으면 참 행복한 사람일 것 같다.
요나단과 너무나 대조되는 한 인물이 있다. 사울왕이다.
다윗이 블레셋 사람을 죽이고 돌아 올 때에 여인들이 노래하며 춤추며 사울 왕을 환영한다.(6)
사울이 죽인자는 천천이요 다윗이 죽인자는 만만이라고 노래한다.(7)
사울은 이 노랫소리를 듣고 화가 치밀었다.(8)
그때부터 사울이 다윗을 시기하고 질투하기 시작해서 다윗을 주목했다(9)
사울은 왕의 위치에 있는 자이다. 더 이상 올라갈 자리도 없는 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인들의 노래 소리에 화가 났다.
왜 화가 났을까? 왜 불쾌하게 여겼을까? 왜 시기하고 질투했을까?
첫째는 가진 것에 감사하지 못했기 때문이요.
둘째는 남과 비교했기 때문이요.
세째는 더 많은 욕심과 탐욕에 사로잡혀 있기 때문이다.
즐거워하는 자들과 함께 즐거워하고 우는 자들과 함께 슬퍼하는 것은 어려운 일인가?
아들 요나단과는 너무나 비교가 되는 사울 왕의 모습이다.
결론은 성령의 기름부으심이 있으냐 없느냐의 차이인 것 같다.
성령의 사람은 믿음으로 반응한다.
성령이 떠나간 사람은 세속적인 욕심과 탐욕과 비교로 반응한다.
하나님의 임재가 떠나 영적 능력을 상실한 껍데기 뿐인 왕의 모습을 본다.
능력은 떠나버렸는데 자리만 차지하고 있는 비참한 리더를 보는 것 같다.
하나님의 임재가 떠나면 아무리 화려한 타이틀도 다 헛것이구나.
적용:
따뜻하고 깊은 우정을 나눌 친구가 필요합니다.
군중 속에 있으나 고독한 현대의 바쁜 일상 속에서
진정으로 내 마음을 털어 놓을 수 있는 친구 그런 친구가 필요합니다.
하나님 아버지
다윗과 요나단 우정을 봅니다.
당신의 임재가 떠나버린 타이틀 뿐인 사울왕의 모습을 봅니다.
요나단이 그랬던 것 처럼 믿음을 믿음의 눈으로 볼 수 있는 통찰력을 주옵소서.
영웅을 영웅으로 볼 수 있는 안목이 있기를 원합니다.
나의 생명처럼 사랑 할 수 있는 친구들이 있기를 원합니다.
내 마음을 털어 놓을 수 있는 친구들이 있기를 원하고
내가 그런 친구되길 원합니다.
영원한 친구되시는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