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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밥상머리 교육"이라는 말을 들어보셨나요?
여기서 "밥상머리"란? 사전적으로 차려 놓은 밥상의 한쪽 언저리를 의미한다.
그러므로 "밥상머리교육"이란? 가족들이 밥을 먹는 자리에서 이루어지는 인성교육을 의미한다.
지금이야 밥상머리 교육이 행해지기가 매우 어려운 시절이지만, 예전에는 가족들이 밥상에 함께 모여 식사하는 일이 일상이었다.
그 시간동안 부모님은 자녀들에게 아주 실제적인 교훈을 전달하게 됩니다.
오늘 우리가 읽었던 본문은 일종의 예수님의 밥상머리 교육의 일부분이다.
매우 실제적인 교훈을 다룬다.
예수님께서 자신의 죽음을 직감하셨다(13:1) "자기가 세상을 떠나"
그래서 서둘러 제자들과 함께 마지막 저녁 식사 자리를 준비하신다(13:1-3) "저녁 먹는 중"
아주 의미가 있고 뜻깊은 자리였을 것이다.
그 식사자리에서 예수님은 밥상머리교육을 실행하신다.
교육내용이 13장부터 17장까지 소개된다(13:3-18:1)
본문은 밥상머리교육중 초반부에 해당된다.
오늘 설교는 신임서리집사를 위한 조직신학강좌 세 번째 강의에 해당한다.
지난 두 주일에 걸처 "교회론"과 "신론"을 강의했다.
오늘 주제는 기독론이다. "예수님은 어떤 분이신가?"
매우 실제적인 예수님을 묵상한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예수님은 어떤 분이신가?
오늘 본문에는 이 질문에 대한 명확한 대답이 소개되었다(6)
예수님께서 자신을 다음과 같이 소개한다.
"나는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다"
예수님은 자신을 세 가지 단어로 소개하셨다. "길" "진리" "생명"
이 세 가지 단어중 가장 대표적인 단어가 "길"이다.
"길"속에 "진리'와 "생명"이 포함되어 있다.
"진리와 생명"은 "길"을 설명하는 일종의 수식어들이다.
6절 후반부를 보면 그 사실을 알 수 있다.
"길"을 설명하고 있다.
"나를 거치지 않고는 아무도 아버지에게로 갈 수 없다"(공동번역본)
"진리"와 "생명"을 언급하지 않는다.
"진리"와 "생명"의 의미는 "길"속에 포함되어 있기 때문이다.
지금 예수님은 자신이 하나님께로 갈수 있는 유일한 길임을 강조하고 계신다.
그러므로 6절은 이런 의미이다.
"예수님은 진리와 생명의 근원이신 하나님께로 가는 유일한 길이다"
또는 "예수님이 가신 길을 따라가면 영원한 진리를 터득하게 되고 영원한 생명을 누리게 된다"
이렇게 6절은 예수님은 우리 모두의 길 자체임을 설명하고 있다.
비유나 상징이나 은유가 아니다.
자! 그렇다면 예수님께서 우리들의 길 자체가 되신다는 구절의 실제적인 교훈은 무엇인가?
약 2000천여년 전에 제자들에게 남기신 그 말씀이 오늘을 사는 우리에게는 무슨 의미인가?
이 질문이 우리가 풀어야 할 숙제이다.
먼저, 본문의 배경을 살펴본다.
사실 마지막 저녁식사자리는 예수님이 제자들에게 일방적으로 이별을 통보하는 자리였다.
늘 그렇듯이 이별을 통보하는 자리에는 통보하는 사람은 알고 나가고, 통보를 받아야야 할 사람은 모르고 나간다.
예수님은 이별 사실을 알았고 반면에 제자들은 전혀 몰랐다.
드디어 예수님은 저녁밥상머리에서 이별을 통보하신다.
사랑하는 제자들과 헤어져야 하는 예수님의 심정도 무척 괴로웠다(13:21)
"몹시 번민하시어"
예수님은 이제 자신이 제자들로부터 떠나야만 한다고 말씀하신다(13:33)
"나의 사랑하는 제자들아 내가 너희와 같이 있는 것도 이제 잠시 뿐이다 내가 떠나고 난 뒤 너희는 나를 찾아다닐 것이다.."(공동번역본)
그러자 예상했던대로 제자들이 반발한다. 이별을 받아들일 수 없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떠나시면 자신들도 예수님을 따라가겠다고 반응한다.
이 중 베드로의 반말이 제일 극심했다(13:37)
"목숨을 걸고서라도 따라가겠다고 공언했다.
예수님은 한마디 말로 베드로의 반발을 제압하셨다(13:38) "너는 말할 자격도 없는 놈이다"
그리고 본문이 시작된다.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이별로 인해 너무 걱정하지 말것을 당부하신다(1)
걱정하는 대신에 믿음을 요구하신다.
여기서 신앙생활의 팁 하나를 알려드립니다.
걱정거리가 있는가? 걱정거리가 없는 개인과 가정이 있겠는가?
그렇다면 걱정하는 원인이 돈이나 건강때문인가?
그렇다면 이 구절을 반드시 기억하라.
근본적인 원인은 돈이나 건강이 아니다.
믿음 때문이다.
걱정은 믿음과 깊은 관련이 있다. 걱정과 믿음은 반비례한다.
제자들이 걱정을 한다. 한편으로는 이해가 된다
제자들은 모든 것을 버리고 예수님만 믿고 따랐기 때문이다.
예수님께 올인했던 자들이다.
그 기간이 무려 3년이다.
그런데 한 순간에 예수님으로부터 이별을 통보받았다.
그들 입장에서 지금의 이별은 너무나도 잔인한 이별이었다.
또 하나 이들이 걱정하는 이유는? 그 이별이 바로 예수님의 죽음이기 때문이다.
영원히 이별하는 것이다.
이미 예수님은 몇 차례에 걸쳐 제자들에게 자신의 죽음을 예고하셨다.
그래서 예수님도 이런 제자들의 입장을 헤아리신다.
예수님은 제자들의 염려를 해소하기 위해서 자신이 떠나는 연유를 설명하신다(2)
"내가 너희를 위하여 거처를 예비하러 가노니"
예수님은 지금의 이별이 제자들의 거처를 마련하기 위해서라는 사실을 언급하신다.
여기에 아주 중요한 메시지가 있다. 2-3절을 읽어보자.
예수님이 죽으시므로 인해 하늘에 우리의 거처가 생기게 된 것이다(2-3)
예수님 덕분에 천국에 우리 자리가 생기게 되었다는 의미이다.
만일 예수님이 죽지 않으시면 우리의 거처도 생기지 않는다.
예수님이 죽으시므로 인해 우리가 다시 살아날 방도가 생겼다는 것이다.
예수님이 죽지 않으면 우리의 거처도 없다.
예수님이 부활하셨기에 우리에게도 부활이 예정된 것이다.
예수님은 누구신가?
예수님은 우리가 다시 살아날 수 있는 방도가 되시는 분이시다.
다시 살아나고 싶은가? 여러분의 가정을 일으키고 싶은가?
다시 한 번 전성기를 누리고 싶은가?
예수님을 믿고 예수님의 말씀대로 살아야 한다.
예수님은 밥상머리에서 제자들에게 앞으로 이들이 살아갈 방도를 제시하신 것이다.
제자들에게 있어, 예수님과 함께 있을 때에도 예수님이 이들이 살아갈 방도였듯이,
예수님이 죽으신 후에도 예수님이 이들이 살아갈 방도 되심을 강조하신 것이다.
방도? 요즘 잘 사용되지 않는 단어이다.
의미는? 어떤 일이나 문제를 풀어가는 방법을 가리킨다.
주로 사극에서 등장인물들이 사용하는 단어이다.
극 중 인물들이 다음과 같이 말한다.
"내일까지 방도를 마련해 오세요" "방도를 궁리해도 뾰족한 수가 없습니다"
예수님이 우리 모두의 길자체가 되신다는 의미?
예수님은 우리 모두의 살 방도가 되시는 분이시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앞에서도 잠시 언급했듯이 우리에게는 문제가 끊이질 않는다.
우리가 살아있는 한 늘 문제는 우리를 따라다닌다.
문제가 잇다는 말은 우리가 살아있다는 말이다.
문제가 생기면 어떻게 해결하는가?
문제가 풀리지 않을 때에는 방도를 찾아야 한다. 가만히 있으면 안된다.
인간관계가 해결되지 않을 때도 방도를 찾아야만 한다.
궁핍할 때에도 방도를 찾아야 한다. 적극적으로 움직여야 한다.
여러분들은 이런 경우, 방도를 어떻게 찾는가?
예수님이 우리들의 방도가 되신다는 실제적인 의미?
"예수라면 어떻게 하셨을까?"라는 책이 있다. 영문으로 "What would Jesus do?"이다.
미국의 목회자 챨스 먼로 셀던이 쓴 기독교 소설책이다.
이 소설책은 각 나라에서 5천만 부 이상이 판매된 베스트셀러 중 베스트셀러이다.
이 책이 주는 메시지는 아주 간단하고 명확하다.
성도들이 자신이 처한 상황마다 "예수라면 어떻게 하셨을까?"라는 질문을 던진 뒤, 기존의 교리적인 해결책보다는 현실에 맞는 예수님의 방도를 찾게 하는데 목적이 있다고 하겠다.
이 책은 전 세계 21개국에서 번역 출판되었고, 역사상 39번째로 많이 팔린 베스트셀러라고 한다.
아주 오래전 제가 20대 청년 시절에 이 책을 탐독했다.
몇 번을 읽었는지 기억이 나지 않을 정도로 많이 읽었다.
이 책은 저에게 감동을 주었고 그 감동이 주는 교훈을 지금도 생생하게 간직하고 있다.
살아오면서 이 책이 주는 메시지를 단 한 번도 잊은 적이 없었다.
지금도 개인적으로 공동체적으로 문제가 생길 때마다 이 질문을 스스로에게 던진다.
"예수라면 어떻게 하셨을까?"
목회 중에 문제나 고민이 생길 때, 개인적적인 문제가 있을 때, 심지어 물질적으로 궁핍할 때에도
저는 가장 먼저 이 질문을 제 스스로에게 던진다.
"예수라면 어떻게 하셨을까?"
질문을 던진 후에는 기도를 시작한다. 그리고 오랜 시간 고심하고 고민한다.
그리고 방도를 찾아낸다. 그 다음으로는 그 방도대로 실행했다.
저는 지금까지 제 문제를 이런 방식으로 해결해 왔다.
앞으로도 이렇게 살 것이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오늘 본문에서 예수님은 자신을 우리 모두의 길이 되신다고 소개했다.
영어성경에서는 "길"앞에 정관사가 붙었다.
"the way" 유일한 길이다는 의미.
예수님은 저희들의 유일한 방도가 되시는 분이다.
다른 길은 없다.
그래서 예수님이 자신을 믿어야 한다고 말씀하신 것이다(1)
돈 때문에 걱정하는 사람은 돈이 유일한 방도라고 생각하는 유형이다.
사람 때문에 걱정하는 사람은 사람을 유일한 방도라고 여기기 때문이다.
"길"? 에는 두 가지 의미가 있다.
1) 성경적인 의미? 예수님은 우리가 하나님께로 갈 수 있는 유일한 길이다는 의미.
2) 실제적인 의미? 예수님은 우리가 문제를 풀 수 있는 유일한 방도가 되신다는 의미이다.
문제가 생길 때마다 우리는 예수님의 방도를 사용해야 한다.
우리가 예수님의 방도를 쉽게 찾을 수 있는 요령?
"예수라면 어떻게 하셨을까?"라는 질문을 던진 후에는 어떻게 해야 하는가?
몇 해 전 어느 봄에 어느 교회에서 노회가 열렸다.
저는 주로 걸어 다니는 편이라 그날도 지하철을 이용했다.
지하철에서 노회장소까지는 도보로 약 20분 정도 걸어야만 했다. 약 2킬로, 도시철도 정거장 두 개 거리쯤 된다.
그 노회 장소를 잘 알기에 제가 아는 길로 바삐 걸어가던 중이었다.
어떤 백발의 어른이 저에게 길을 물었다. "어느 교회를 찾아가던 중인데 그 교회를 아느냐"라고 물었다.
제가 활짝 웃으면서 저도 그 교회로 가는 중이니 같이 가자고 권유했다.
대화를 나누다 보니 그 어른은 경남 사천에서 목회를 하는 목사님이신데 지인을 만나러 노회장소를 찾아가던 중이었다. 장소를 몰라서 길을 헤맸고 매우 근심했다고 말하는 것이다.
그 목사님은 저와 함께 가게 되어 자신이 가졌던 문제가 풀린 것이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예수님의 방도를 좀 더 쉽게 찾으려면 실생활 속에서 예수님과 동행해야 한다.
예수님처럼 살아야 예수님의 방도를 찾을 수 있다.
이런 기사를 본적이 있다.
뮤지컬에서 안중근 배역을 맡은 연기자는 실생활 속에서 매 순간마다 안중근이라면 어떻게 했을까로 고민했다고 한다.
그래서 그는 뮤지컬 출연 중에는 자신이 안중근이라고 생각하고 살았답니다.
평소에도 안중근처럼 말하고 안중근처럼 행동했다고 한다.
그래서 자신의 연기가 살아있는 연기였다고 자평했다는 기사를 본 적이 있다.
이토 히로부미처럼 살면서 안중근 연기를 할 수 있는가?
예수님의 방도를 찾기 원하는가? 자신이 예수님이라고 생각하며 살아라.
예수님처럼 말하고 예수님처럼 행동하면
예수님의 방도를 좀 더 쉽고 정확하게 찾게 될 것이다.
예수님은 우리 모두의 길이 되신다.
예수님은 모든 문제의 방도가 되신다.
예수님처럼 살면 예수님의 방도가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