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샤론강단-445 제자들에게 가르친 말씀(누가복음6장12-19절)
성경말씀은 누가복음 6장 12절에서 19절까지 봉독합니다.
[누가복음 6장]
12 이 때에 예수께서 기도하시러 산으로 가사 밤이 맟도록 하나님께 기도하시고
13 밝으매 그 제자들을 부르사 그 중에서 열 둘을 택하여 사도라 칭하셨으니
14 곧 베드로라고도 이름 주신 시몬과 및 그 형제 안드레와 및 야고보와 요한과 빌립과 바돌로매와
15 마태와 도마와 및 알패오의 아들 야고보와 및 셀롯이라 하는 시몬과
16 및 야고보의 아들 유다와 및 예수를 파는 자 될 가룟 유다라
17 예수께서 저희와 함께 내려오사 평지에 서시니 그 제자의 허다한 무리와 또 예수의 말씀도 듣고 병 고침을 얻으려고 유대 사방과 예루살렘과 및 두로와 시돈의 해안으로부터 온 많은 백성도 있더라
18 더러운 귀신에게 고난받는 자들도 고침을 얻은지라
19 온 무리가 예수를 만지려고 힘쓰니 이는 능력이 예수께로 나서 모든 사람을 낫게 함이러라
우리 지난 시간에 이어지는 말씀이 6장 첫머리까지 연장이 되었으면 좋을 뻔 했는데, 장 따라서 그냥 마쳤기 때문에, 오늘은 본문을 예수님께서 제자를 선택하시는 장면부터 설정이 되었습니다.
그래서 지난 시간에 했던 것을 다시 보면, 제자들이 조금씩 바리새인들 눈에 거슬리는 그런 행동이 있었을 때에 예수님께서 제자들을 허물할 수 있는데, 제자들을 아주 적극적으로 변호하시는 그런 장면을 보았습니다.
그 연장선상에서 6장 첫머리도 시작되는데,
[누가복음 6장]
1 안식일에 예수께서 밀밭 사이로 지나가실새 제자들이 이삭을 잘라 손으로 비비어 먹으니
이런 것은 요즈음 청소년들은 이게 무슨 말인가 전혀 이해가 안 될텐데, 우리때까지는 밀이삭을 잘라 비벼먹었거든요.
다행히 우리는 바리새인이 안 봤어.
이삭을 잘라 비벼먹는 것은 밀이 완전히 익어서는 맛이 없고, 아주 풋밀일 때는 안 구워도 참 맛이 있어요. 달짝지근하게..
배고플 때 그래도 밀 이삭 잘라먹으면 맛이 있습니다.
그런데 거기 보니까 베드로때부터 시작해서 우리 때까지 한 거야.
우리 이후 세대는 간식이 넘치니까 아예 그런 게 없었고, 학교 갔다 오는 길에 배가 고프니까 무우도 뽑아먹기도 하고, 목화 열매도 이 지역에서는 다래라고 하죠.
그것도 맛이 탑탑한 게 달짝한 게 맛이 있어요.
지금도 나오면 따먹어봤으면 싶을 정도로..
남의 농사에 해를 끼치는 것은 맞는데 그런 것을 가지고 누가 허물하지 않았거든요. 우리 때에도..
그런데 안식일에 걸려가지고 바리새인들의 눈에 띈거야.
그래서 바로,
2 어떤 바리새인들이 말하되 어찌하여 안식일에 하지 못할 일을 하느뇨
그러니까 밀 이삭 비벼먹는 그 자체는 죄가 아닌데, 왜 일을 하느냐?
그 일이 뭐냐 수확을 했다는 거예요.
비벼서 타작을 했다는 거야. ‘후~’ 한 것도 일이고..
일을 많이 했어.
여러분 종교라는 것을 가지고 사람들 이렇게 째째하게 옭아매는 그런 짓을 했다는 거야.
지금도 우리가 자칫하게 되면 별 것도 아닌 무슨 규정이나 이런 것을 가지고 사람을 정죄하거나 옭아매거나 그런 일을 한다는 거야.
보나마나 베드로가 앞장을 섰지 않겠나. 범사에 베드로는 앞장서니까..
그래서 베드로가 잘라먹으면 딴 사람들도 잘라먹죠.
그게 꼭 바리새인들이 볼 때 아무리 배가 고파도 바리새인들이 볼 때 참았으면 될텐데, 베드로는 꼭 그런 데에 남 눈치를 잘 안봐..
어쩌면 그래서 좋은 교훈이 나왔죠.
여러분 때로는 베드로가 실수하거나 도마가 엉뚱한 소리 하는 바람에 진리가 나온다니까..
도마가 ‘우리가 그 길을 알지 못하는데 어떻게 주님 가시는 길을 알겠습니까? 우리는 알지 못합니다.’ 하는 바람에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다.’ 이런 말씀이 나온 거죠.
그 때,
3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다윗이 자기와 및 함께한 자들이 시장할 때에 한 일을 읽지 못하였느냐
4 그가 하나님의 전에 들어가서 다만 제사장 외에는 먹지 못하는 진설병을 집어 먹고 함께한 자들에게도 주지 아니하였느냐
예수님께서 어떻게 이런 것을 가져올 수 있었는지 모르겠어요.
순발력 있게 가져와서..
시장할 때, 시장하다는 것은 배가 고파서 죽을 판이 되었는데, 생명이 우선이야.
원래 제사장 밖에는 먹지 못하는 건데, 어떤 사람이 배가 고파서 죽을 지경이 되면 누구든지 먹을 수 있어요.
여러분 제가 돼지고기 삼겹살 먹는 게 건강에 안 좋다. 자주 하는 얘긴데, 배가 고파 죽을 판이 되면 그냥 먹어요. 먹어.
삼겹살 오겹살 먹고 살아야지 생명이 우선이잖아요..
해병대에 가면 어디서 출발지점과 도착지점만 정해주고 나머지는 자기가 알아서 가야 돼.
뭘 먹든지 알아서 뱀을 잡아먹든지 개구리를 잡아먹든지.. 먹어야 사니까..
우리 여기에도 해병대 나온 분 더러 있죠.
그런 식으로 위기와 극한 상황에 대처할 수 있는 훈련을 할 때는 뭐든지 걸리면 사람이 먹어야 사니까..
그래서 시장할 때 배가 고파서 한 것은 죄가 안 된다.
여러분 배가 고파서 빵 집에 가서 빵을 하나 훔쳐 먹었다.
훔친 것은 죄죠. 죄이지만, 그것을 훔쳐서 장사하거나 그러면 안 되죠.
너무 배가 고파서 그것 하나 훔쳐먹었다. 그러면 오히려 배가 고픈 사람이 있는대도 불구하고 돌보지 못한 빵집 주인이 더 책임을 느끼는 거야.
그 정도로 윤리가 있어야죠.
그래서 어떤 행동 하나만 가지고 법이라는 것으로 기계적으로 판단할 것이 아니고, 기계적으로 판단할 것 같으면 전자계산기로 형량을 딱 때리면 알죠.
정상을 참작하라고 판관이 있는 거죠. 사람이..
우리와 같은 피와 살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 있는 것은 정상을 참작할 수 있다는 거죠.
여러분 하나님의 법이라는 게 무지막지하게 기계적으로 이렇게 적용되는 게 아닌데, 이 바리새인의 종교는 비인격적 종교요 사람을 위할 줄 모르는 종교예요.
자칫하면 사람 잡는 종교.. 더 심하면 하나님 잡는 종교..
끔찍한 얘기죠.
바리새인들이 바로 사람을 잡을 뿐 아니라 하나님을 잡는 종교로 만든 것 아녜요?
그래서 우리도 율법을 공부하되 율법의 근본 정신, 그런 법을 주신 법 정신과 원목적대로 알고 그것을 해석해야지,
그리고 언제나 하나님을 위해서 사람을 위하는 입장으로 해석을 해야 돼요.
사람을 죽이는 종교를 만들면 안 되고 사람을 살리는 종교로 만들어야 되는 거죠.
5 또 가라사대 인자는 안식일의 주인이니라 하시더라
역시 제자들을 변호한 거죠.
결론적으로 딱 다시는 시비하지 못하게 한 것이, 안식일 법을 내신 분도 예수님이 내셨다는 거니까..
법 내신 분이 말 안하는데, 누가 감히 시비할 수 있겠어요?
끝난 거죠.
6 또 다른 안식일에 예수께서 회당에 들어가사 가르치실새 거기 오른손 마른 사람이 있는지라
7 서기관과 바리새인들이 예수를 송사할 빙거를 찾으려 하여 안식일에 병 고치시는가 엿보니
참 못됐죠.
8 예수께서 저희 생각을 아시고,
예수님도 그래요.
예수님도 그렇게 탁 지켜보고 있으면 아무리 병고쳐 주고 싶어도 참지 그래..
그것 못 참아요. 예수님은..
병자를 보면 못 참는 거야. 안식일이고 뭐고 상관 없어.
이번에는 다짐을 딱 받아요. 시비 못하게..
.. 아시고 손 마른 사람에게 이르시되 일어나 한가운데 서라,
서는 것은 죄가 아니거든요. 바리새인도 섰다 앉았다 하니까..
.. 하시니 저가 일어나 서거늘
9 예수께서 저희에게 이르시되 내가 너희에게 묻노니 안식일에 선을 행하는 것과 악을 행하는 것, 생명을 구하는 것과 멸하는 것, 어느 것이 옳으냐 하시며
아무 말도 못하죠.
10 무리를 둘러보시고 그 사람에게 이르시되 네 손을 내밀라 하시니 저가 그리하매 그 손이 회복된지라
손 내미는 것도 죄가 아니거든요. 자기도 손 내미니까..
그런데 그 손이 고쳐져버렸어요. 결론은..
그러면 유대인들의 율법은 어떤 상해를 입었거나 다쳤거나 한 사람들을 응급 처치해서 피가 안 흐르는 것까지는 할 수 있는데, 그것을 위해서 치료하는 행위를 해서는 안 된다.
뭐가 안 되는지 그렇게 되어 있어요.
여기는 예수님께서 아무 약을 갖다댄 것도 없고 무슨 누구처럼 긁어서 피를 낸 것도 없고, 주물러 때린 것도 없고, 말로 ‘손을 내밀라’ 해서 나아버렸단 말이죠.
결론은 나아버렸거든.
나으면 안 되는거야. 이 바리새인의 법은..
여러분 종교가 타락하면 이렇게 타락합니다.
별로 오래가지도 않아서 타락해버려. 그 본 정신은 온데간데 없이..
그래서 예수님께서 전부 다 원 상태로 되돌리는 거야.
원 상태로 회복되는 것을 ‘종교개혁’이라고 해요.
개혁(改革)이라고 하면 자꾸 뜯어고치고 뜯어고치고 하는 우리 개념에는 그런데, 아니고 서양사람들처럼 리포메이션(reformation), 폼이 일그러졌는데 다시 회복(回復)하는 거예요.
원 상태로 원 목적대로 회복하는 것이다.
11절,
11 저희는 분기가 가득하여 예수를 어떻게 처치할 것을 서로 의논하니라
참 못됐죠.
아니 책 잡을 게 없거든..
일어서라. 일어서는 것은 죄가 아니거든요.
손을 내밀라. 내미는 것도 죄가 아닌 거야. 자기들도..
그런데 결론은 나아버렸어.
그런데 예수님을 처치하기는 처치해야 되는데, 딱히 걸고 넘어질 것도 없고 그날 하루 종일 지켜보고 앉았는 것 헛일 했잖아요.
예수님께서 안 걸리게 했으니까..
그래서 분기가 가득해가지고 ‘어떻게 처치할꼬?’
여러분 유대교만 그런 줄 아세요?
우리 기독교도 어떻게 한번 저놈을 찍어넘겨가지고 쫓아내버릴까..
그것을 위해서 밤이 맞도록 수고하고 기도하고 연구하고..
그런 것을 봤어. 직접..
제가 쫓겨나기도 해 봤고..
제가 개척을 해서 14년간 피땀 흘린 교회에서 기어이 쫓아내는 일을 해내고 말더라고..
그래서 여러분 바리새인만 못됐고 오늘날 기독교인은 정통이다 그랬으면 얼마나 좋겠어요?
언제나 우리가 이렇게 잘못될 수 있다는 거예요.
그래서 항상 조심해야 돼요.
여러분 사도바울이 고린도 교회에 그냥 열가지 문제가 뒤엉켜가지고 갈등하고 서로 미워하고 파벌을 가지고 이렇게 할 때, 해결의 교훈을 다 한 다음에 ‘너희 모든 일을 사랑으로 행하라.’ 그렇게 되어 있어요.
아무리 신비한 능력이 나타날지라도 사랑으로 하지 않으면 다 죄가 됩니다.
여러분 삼손이 능력이 대단했지만, 또 기드온 같은 사람도 대단했지만 진리를 모르니까 다 했는데 결론이 안 좋은 거야.
사랑으로 하지 않았을 때는 아무 것도 아녜요.
성경에는 ‘믿음으로 하지 않은 것은 모두 죄’라고 하는데, 믿음으로 뿐 아니라 사랑으로 하지 않은 것도 자칫하면 죄가 될 수 있어요.
그리고 열두 제자를 택하는데, 이것을 보면 여기까지 보면 바리새인들 좀 고쳐가지고는 도저히 뭐가 안 돼.
여러분 어떤 종교를 가지고 딱 굳어버린 사람들은 수정이 안 됩니다.
그래서 제자를 세우는 거죠. 따로..
제자도 내노라하고 굳어진 사람이 아니고, 완전히 갈릴리 어부들 그런 사람들이 무슨 교리나 이런 게 있을 리 없죠.
순수하고 순박한 사람들을 불렀어요.
12 이 때에 예수께서 기도하시러 산으로 가사 밤이 맟도록 하나님께 기도하시고
예수님께서 밤이 맞도록 기도하신 일이 몇번밖에 없는데, 그중에 한번이 제자들을 선택하실 때, 그리고 십자가를 앞에 놓고 이런 경우에 많이 기도하시고 고민하신 것 같은데..
13 밝으매 그 제자들을 부르사 그 중에서 열 둘을 택하여 사도라 칭하셨으니
그러니까 제자들이 상당히 많았고, 많았는데 그 중에서 열 둘을 택하셨다.
그래서 다시 말하면 이렇게 됩니다.
첫째는 예수님을 따라오는 사람들 무리들, 무리중에서도 믿는 사람들이 있죠.
그 믿는 사람들을 신자라고 하죠.
신자중에서 예수님을 좀 더 가까이에서 예수님을 배울려고 하는 사람을 제자.
제자 중에서 열둘을 택해서 사도. 이렇게 택한 거죠.
그러니까 다를 수 있죠?
신자라는 말 제자라는 말이 다르고, 신자는 제자와 사도가 달라요.
그래서 예수님 제자 열두 제자만 있었던 게 아니고, 나중에 누가복음을 자세히 보면 70인 제자도 있었다는 것을 알 수 있어요.
그래서 사도로 칭하셨는데, 이것은 왜냐하면 ‘아포스톨로스’라는 말은 ‘보내심을 받은 자, 예수님 이름으로 가서 예수님이 파송할 수 있는 사람들.’ 이런 사람들로 선택을 했다는 거죠.
우리 교회도 그래요.
우리 교회도 신자에서 머물면 안 되고, 제자..
제자에서 머물면 저 예배당 안에 갇혀 있을 거야.
제가 어디든지 보낼 수 있는 사람들, 어디든지 보내면 갈 수 있는 사람들..
꼭 사도가 아니라도 보낼 수 있는 사람들이 나와야 돼요.
그런데 참 쉽지 않더라고요.
제가 목회를 평생을 하다시피 했는데, 이 사람은 신학을 하거나 말씀을 배워서 보내야 되겠다. 전도사 때부터 그랬어요.
개척교회를 하면서도 10리나 20리 동서남북으로 찻길로 갈 수 있는 곳 10리나 20리 떨어져 있는 곳에 기도처나 방을 얻어가지고 사람을 보냈거든요.
초신자도 있어요. 초신자..
초신자도 열심이 있고 하면 혼자 보내면 힘드니까 둘씩 짝지어서 보내가지고 방을 얻거나 혹은 누에 기르는 잠실을 빌리거나 해가지고 거기에서 모임을 가져서 교회가 다 되었거든요.
한 교회가 지경교회라는 교회이고, 하나는 청현교회이고 하나는 등광교회이고, 하나는 북동교회. 이렇게 네 교회가 생겨난 거죠.
보냈다는 거야.
그런데 거기 사람들이 사실상 전도해서 그래도 될 만한 사람이 별로 있는 것도 아니고, 전부 할머니나 할아버지밖에 없는데 그래도 보내는 거야.
보내어서 처음에 하나 아니면 둘 이렇게 하고 그 당시만 해도 그래도 아이들이 좀 있어가지고 처음에는 어린이 성경학교처럼 하다가 중고등학생 오다가 어른도 모이고 해가지고,
지금도 그 네 교회가 교회라 할 수도 없고 기도처 정도인데, 아마 20명 되는 교회는 없을 겁니다. 네 교회 다 10명에서 15명 정도예요.
그 중에 한 곳은 5명도 채 안 되는 곳도 있어요.
그래도 한분이 거기에 조그맣게 집을 짓고 예배당도 짓고 5명 되어도 전임 사역사가 있어요. 전도사가..
우리 교단이 아니고 고신교단에 넘겨 줬는데..
여러분 그렇게 해서도 그 전도사님이 그 지역에 있는 사람들을 얼마나 섬기는지..
교회에 안 나와도 돌아보고 섬기는 거예요.
그래서 보낼 사람들이 필요하다는 거죠. 예수님도..
그 이름들이,
14 곧 베드로라고도 이름 주신 시몬과 및 그 형제 안드레와 및 야고보와 요한과 빌립과 바돌로매와
15 마태와 도마와 및 알패오의 아들 야고보와 및 셀롯이라 하는 시몬과
16 및 야고보의 아들 유다와 및 예수를 파는 자 될 가룟 유다라
꼭 둘씩 둘씩 짝을 지었죠.
누구와 누구, 누구와 누구.. 이렇게 열둘이죠.
17 예수께서 저희와 함께 내려오사 평지에 서시니,
마태복음에 보면 ‘산에 올라가 앉으시니라’라고 되어 있고, 여기는 ‘평지에 서시니’ 그랬어요. 어떤 분은 ‘산상보훈’이라고 하고 어떤 분은 ‘평지교훈’이라고 말합니다.
그런데 어디쯤인가 확정은 할 수 없지만 갈릴리 호숫가에 가서 보면, 언덕위에 올라간 것이 호숫가에서 보면 산에 올라간 것이고, 산꼭대기에서 보면 평평한데 앉아있으니까 평지에 있는 거죠.
이 말도 맞고 저 말도 맞는 겁니다.
.. 그 제자의 허다한 무리와 또 예수의 말씀도 듣고 병 고침을 얻으려고 유대 사방과,
예수님께서 갈릴리 지방에 계신데, 유대 지방에서 올라왔다 하면, 얼마나 올라왔느냐?
한 2백리 내지 3백리 길을 걸어서 올라온 거야.
여기에서 대전까지 올라간 거죠.
유대 지방에서 갈릴리까지 왔다는 것은 마산에서 대전만큼 올라갔다는 거죠.
.. 예루살렘과 및 두로와 시돈의 해안으로부터 온 많은 백성도 있더라
두로와 시돈에서 왔다 하는 것은 저 호남지방에서 온 것처럼 꽤 먼거리에서 온 거죠.
18 더러운 귀신에게 고난받는 자들도 고침을 얻은지라
19 온 무리가 예수를 만지려고 힘쓰니 이는 능력이 예수께로 나서 모든 사람을 낫게 함이러라
이것은 일반사람에게는 잘 없었는데, 예수님께 그런 일이 있었고, 베드로에게 그런 일이 있었고, 사도바울에게 그런 일이 몇번 있었고, 그 외에는 다른 기록은 남아있지 않습니다.
예수님의 옷가를 만져서 나은 어떤 여인이 있었고, 베드로가 지나가는데 그림자만 스쳐도 나은 사람이 있었어요.
바울의 손수건만 갖다가 병자에게 놓아도 병자가 나은 일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아무나 그런 일이 있었던 게 아니고 몇 번 그런 일이 있었다는 거죠.
20 예수께서 눈을 들어 제자들을 보시고 가라사대 가난한 자는 복이 있나니 하나님의 나라가 너희 것임이요
마태는 거기다가 ‘심령’이라는 것을 덧붙였는데, 누가복음에는 심령을 빼고 그냥 ‘가난한 자가 복이 있다.’
여러분 가난한 사람들은 대개 물질적 재산적으로만 가난한 게 아니라, 대개 가난하다보면 마음도 가난하게 되어 있어요.
그리고 놀랍게도 물질적으로 너무 부요하게 되면 영적으로도 좀 아쉬운 게 없고 좀 다급한 그런 마음이 없어요.
여유만만하고 ‘복이야 주실테면 주시고 마실테면 마시고..’ 이렇게 애타는 게 없죠.
그래서 가난한 자..
우리가 생각할 때 부자가 복 받은 것으로 생각하지만 그렇지 않다는 거예요.
하나님 앞에 갔을 때는 어차피 우리가 먹는 것 하루에 세끼 정도고, 입는 것 옷 하루에 한벌 입는 것이지 하루에 열벌 입는 것도 아니고 매일 갈아 입는 것도 골치아프죠.
그저 어지간히 부끄럽지 않을 정도로 입으면 되는 것이니까..
큰 차이가 없다는 거예요.
그래서 부요한 자는 배불러서 잠이 안 오는데, 가난한 사람 노동자는 잠이라도 잘 온다는 거예요.
그래서 가난한 자가 복이 있다.
.. 하나님의 나라가 너희 것임이요
21 이제 주린 자는 복이 있나니 너희가 배부름을 얻을 것임이요 이제 우는 자는 복이 있나니 너희가 웃을 것임이요
22 인자를 인하여 사람들이 너희를 미워하며 멀리하고 욕하고 너희 이름을 악하다 하여 버릴 때에는 너희에게 복이 있도다
우리가 못된 일 해가지고 버림받으면 안 되고, 우리가 참 바르게 살려고 했는데, 의를 위해서 핍박을 받거나 했을 때 복있는 사람들이다.
23 그 날에 기뻐하고 뛰놀라 하늘에서 너희 상이 큼이라,
나같은 사람이 좀 크다 해봤자 큰지 안 큰지 상대적인데, 예수님이 크다면 좀 크지 않겠어요?
그래서 우리가 진리 때문에 우리가 의롭게 살려고 하는 것 때문에 이런 저런 핍박을 받은 경험이 있더라도 누구 미워하지 말고 하늘에서 우리의 상이 크다하는 말씀을 마음에 새길 수 있기를 바랍니다.
.. 저희 조상들이 선지자들에게 이와 같이 하였느니라
24 그러나 화 있을진저 너희 부요한 자여 너희는 너희의 위로를 이미 받았도다
그러니까 이미 세상에서 좋은 일 하고, 좋은 일 때문에 부자가 되었다. 그러면 땅에서 이미다 받았어요.
그런 사람 많아요.
성실하게 일했고 열심히 일했고 좋은 일도 했는데, 칭찬도 다 받아버렸고 이 땅에서 복도 다 받아버렸고 하면 천국갈 수 있을지 모르지만, 가봤자 받을게 별로 없다면 복이 없는 거예요.
그래서 사도바울이 그런 말을 하죠?
‘내가 지금 복음 전하는 것 가지고는 상을 얻지 못한다. 오히려 내가 전하지 않으면 내게 화가 있을 것이다. 내게 만약에 천국가서 상이 있을려면 내가 있는 권리를 다 주장하지 않은 것 이것이 혹 보상이 될 수 있을지 모르겠다.’
그런 얘기를 합니다.
그래서 어떤 사람들은 땅에서 많이 받았는데, 하늘에서는 많이 받지 못할 사람이 있을 것 같아요.
25 화 있을진저 너희 이제 배부른 자여 너희는 주리리로다 화 있을진저 너희 이제 웃는 자여 너희가 애통하며 울리로다
26 모든 사람이 너희를 칭찬하면 화가 있도다 저희 조상들이 거짓 선지자들에게 이와 같이 하였느니라
모든 사람들이 다 칭송하고 칭찬하고 하는 사람들은 생각을 해봐야 돼요.
여러분 ‘많은 사람’이 예수님을 찬양하지, ‘모든 사람’이 예수님 찬양하지 않습니다.
예수님을 미워하는 사람들은 이를 갈면서 미워했잖아요.
그래서 모든 사람에게 다 칭찬받기는 어렵습니다.
또 그렇게 될 때는 거짓선지자가 그런 수가 있었다는 거죠.
27 그러나 너희 듣는 자에게 내가 이르노니 너희 원수를 사랑하며 너희를 미워하는 자를 선대하며
28 너희를 저주하는 자를 위하여 축복하며 너희를 모욕하는 자를 위하여 기도하라
이것은 ‘원수를 사랑하라’는 말이 ‘원수와 연애하라’는 말이 아닙니다.
이것을 다른 데에 보면 원수가 주리거든 먹이라는 거예요.
그리고 헐벗었거든, 사람이 추위에 얼 정도가 되었으면 그런 사람에게 비단 옷 해입히라 그런 뜻이 아니라, 입을 것을 주라.
아무리 원수라도 목말라 할 때 마실 물을 주고, 미워하든지 싸우든지..
이것은 ‘원수와 결혼하라 연애하라.’ 그런 말이 아닙니다.
그리고,
29 네 이 뺨을 치는 자에게 저 뺨도 돌려 대며 네 겉옷을 빼앗는 자에게 속옷도 금하지 말라
이런 것도 우리가 확대 해석해가지고 ‘김정일이가 경기도로 내려오면 강원도까지 내어주라’ 그런 말이 아닙니다.
조그만한 것.. 확대되지 않게 하라는 거야.
뺨 한대 맞아서 내 뺨이 아프면 자기 손도 아프겠지.
그 때 맞은 것으로 하고 한대 더 맞아도 내가 참을 수 있다. 그런 여유를 가지라는 것이지, 그것을 확대 해석해가지고 잘못 해석하는 수가 많아요.
여러분 사람이라는 것은 꼭 감정의 상승작용이 일어나기 때문에 조그만한 것을 참으면 충분히 거기에서 끝날 수 있는데, 그것을 못 참아서 나중에 살인까지 가는 거야.
우리 어릴 때는 우리 위에 선배들이 참 못됐어요.
두살 세살 위에 애들인데 그렇게 못됐었는지 몰라.
나는 싸울 마음이 없는데, 괜히 내 손을 끌어다가 어떤 사람 때리게 해요.
그 사람도 나와 싸울 마음이 없어.
그런데 그쪽 손으로 내 뺨 때리게 한다니까..
좀 세게 맞으면 아프죠. 그래가지고 나중에 코피나게 싸우는 거야.
감정의 상승작용이 일어나지 않도록 조금 참을 만할 때 참으라.
여러분 뺨 한차례 맞고 못 참는 사람은 그런 인내심 갖고는 큰일 못해요.
항상 뺨 한차례 맞으면 두차례까지 맞을 수 있다. 세차례 맞아도 그 정도 참을 수 있어야 돼요.
그래서 이 세상에서 참아야 할 일이 많다는 거야.
에이브라함 링컨이라는 사람이 젊은 날에 굉장히 호전적이고 아주 조금도 누가 자기 기분나쁘게 하면 딱 결투를 신청하는 그런 사람이었어요.
그러다가 누가 딱 결투를 신청했는데, 주변사람이 뜯어말린 거야.
그 때 안 뜯어말렸으면 미국 16대 대통령 이름이 딴 사람 되었을거야.
그 때 뜨거운 체험을 하고 나서 깊은 교훈을 얻고 일평생 남을 기분나쁘게 하는 말 하지 않을려고 혀를 깨물고 노력했다는 거야.
‘나와 맞서는 모든 사람과 싸웠으면 내 몸이 가루가 되었을 것이다.’ 라는 유명한 말을 남겼는데, 악한 자를 대적하지 말라는 거야.
여러분 제가 영국에 잠깐 2박 3일 있었기 때문에 잘 모르는데, 갔다와서 들어보니까 영국 경찰에게는 총이 없어요.
몽둥이가 있는데, 때려봐야 별로 아프지 않은 거야.
머리 맞으면 곤란하지만..
몽둥이 하나밖에 없어. 아무 것도 없어.
‘왜 경찰이 총을 안 가지고 있습니까?’ 물으니까 ‘경찰이 총을 가지고 있으면 강도는 기관총을 가지고 있을 거요. 우리는 상승작용을 두려워한다.’
영국 경찰은 뛰어가지 않아요. 걸어가요. 아무리 급한 일이 있어도..
왜 뛰지 않느냐 하니까, 경찰이 뛰면 주민이 놀란다는 거야.
조금은 선진국 같죠?
우리는 물대포부터 시작해가지고 바로 최루탄 가져와서 사람을 족치고 하는데,
영국이 그런 것은 우리보다 선진국이야.
그래서 예수님의 교훈이 그런 감정의 상승작용으로 가지 않도록 하라. 조그만한 것을 못 참아서 나중에 더 크게 어렵게 되지 않도록 하라. 그런 얘기입니다.
30 무릇 네게 구하는 자에게 주며 네 것을 가져가는 자에게 다시 달라지 말며
이것도 쉽지 않습니다.
화가 나요. 그런데 조금 있다가 보면 그렇게 안 하는 게 더 후회가 되는 거야.
그렇게 하는 것이 좋습니다.
달라는 자에게 거절하지 말며..
우리 에스라하우스가 아무리 원칙을 만들어도 안 되는 게 있어요.
‘3일 전에 취소 환불 신청하세요’ 하면, 꼭 더 지나서 하는 거야.
안 해준다고 다 해놨거든.
‘주식 부식 반찬 다 사놨기 때문에 안 됩니다.’ ‘그래도 해 주십시오..’ 그렇게 하니까 해줘야 되죠.
아직까지 한번도 거절 못하고 다 해 줬어요.
왜 해줬냐? ‘달라는 자에게 거절하지 말며..’
이것 때문에 손해가 얼마나 되는지..
1년에 수백만원, 천 몇백만원 날아가요. 다 해주거든요.
쓸데없이 음식이 만들어졌는데, 남 입장은 생각 안 하고 자기 입장만 생각해서 무조건 해 달라는 거예요.
그런데 속으로 마음으로 그렇지만, 교육이 안 되거든요.
한국교회가 하나도 산상보훈을 안 배웠기 때문에..
‘달라는 자에게 거절하지 말며’ 하는 말씀 때문에..
한번은 원지에 있을 때, 원지라는 곳이 교통의 요충지가 되어서 가는 사람 오는 사람 원하지 않은데 청하지도 않았는데 많이 들어와요. 사택에..
목사라는 것을 이용해가지고 ‘안 주고는 못 배길거다’ 해가지고 손을 벌리는 거예요.
천원 줘봐. ‘날 거지인줄 아느냐? 말이야.’ ‘니가 거지이지 뭐냐? 그러면 니가 세무서 직원이냐?’
그래서 천원을 주니까 아주 굉장히 기분 나쁘게 나가더라고..
그래가지고 보내놓고 바로 생각이 나는 거예요. 달라는 자에게 거절하지 말며.. 쫓아갔어요.
만원짜리 가지고.. 저 다리까지 가서 만났어.
그런 적도 있었어요. 오래 전 일인데..
어떻든 부당한 것이지만, 여기 보면 ‘억지로 5리를 가자고 하거든 10리까지 같이 가줘라.’
제일 어려울 때가 그런 때입니다.
원지교회라는 교회가 아마 제일 많은 것 같아요.
어떤 사람은 늙은 할아버지인데 평생을 했는가봐.
영 나이가 많아가지고 올라갈 때 들린 것을 모르고 또 들어왔어.
십자가만 보면 들어오는 거야.
그래도 성경 말씀대로 해야 합니다.
30 무릇 네게 구하는 자에게 주며 네 것을 가져가는 자에게 다시 달라지 말며
빌려줄 때 ‘다시 못 받을 줄 알고 빌려준다.’ 이런 마음을 가지고 빌려줘야 돼요.
그런데 사실은 이 말씀 때문에 천국 가면 우리의 상이 있겠지만, 역사가 얼마나 어려운지 몰라요.
성경은 도처에 ‘고리대금업이 잘못된 것이다’ 하기 때문에, 기독교인들은 처음부터 은행업이나 돈놀이 하는 것은 잘못된 것이다 죄악시 했는데, 그 틈에 유대인들이 돈놀이 해가지고 오늘날 자본주의를 만들어버린 거예요.
31 남에게 대접을 받고자 하는 대로 너희도 남을 대접하라
32 너희가 만일 너희를 사랑하는 자를 사랑하면 칭찬받을 것이 무엇이뇨 죄인들도 사랑하는 자를 사랑하느니라
33 너희가 만일 선대하는 자를 선대하면 칭찬받을 것이 무엇이뇨 죄인들도 이렇게 하느니라
34 너희가 받기를 바라고 사람들에게 빌리면 칭찬받을 것이 무엇이뇨 죄인들도 의수히 받고자 하여 죄인에게 빌리느니라
35 오직 너희는 원수를 사랑하고 선대하며 아무것도 바라지 말고 빌리라 그리하면 너희 상이 클 것이요 또 지극히 높으신 이의 아들이 되리니 그는 은혜를 모르는 자와 악한 자에게도 인자로우시니라
인자로우신 것, 자비하시다 하는 건데..
그래서,
36 너희 아버지의 자비하심같이 너희도 자비하라
그런 뜻입니다.
그 다음에, 여기 37절도 오역도 되고 오해도 되는 부분인데,
37 비판치 말라 그리하면 너희가 비판을 받지 않을 것이요 정죄하지 말라 그리하면 너희가 정죄를 받지 않을 것이요 용서하라 그리하면 너희가 용서를 받을 것이요
여기에 ‘비판하지 말라’ 하는 말이 ‘크리노’라는 말인데, 크리노라는 것은 ‘비판하지 말라’가 아니고, ‘정죄하지 말라’고 되어야 하고,
그 다음에 그 뒤에 ‘정죄하지 말라’는 ‘저주하지 말라’라고 되어야 바른 번역이예요.
원어를 보면 앞에 ‘비판하지 말라’는 ‘정죄하지 말라’ 이렇게 번역해야 맞고, 그 뒤에 ‘정죄하지 말라’는 헬라어 원어를 보면 ‘두나컨뎀’ ‘저주하지 말라’고 되어 있습니다.
이것은 오역이기도 하고 오해하는 거죠.
어지간하면 우리가 저주하지 않는 게 좋고, 또 남을 비난하지 않는 게 좋아요.
여러분 성경에는 끝없이 비판이 있습니다.
우상숭배 비판하는 있는 것이고, 거짓선지자 비판하고 있고, 비판 안 하면 ‘거짓선지자도 좋다 너도 좋고 나도 좋다.’ 엉망이 되어 버리거든요.
비판이 아니고 정죄하지 말라고..
뒤에 정죄하지 말라는 것은 저주하지 말라 라고 되어 있어요. 오역이예요. 오역..
그래서 이것 때문에 제가 가끔 정치인들 잘못하는 것이나, 대형교회나 기독교 잘못하는 것을 지적하는 것을 두고 ‘비판하지 말라고 되어 있지 않느냐?’ 그런 식으로 딴지를 거는 사람이 있어요. 성경을 잘 안봐서 그래요.
정죄하지 말라 한 것이고, 뒤에는 정죄하지 말라는 저주하지 말라는 거예요.
.. 그리하면 너희가 정죄를 받지 않을 것이요 용서하라 그리하면 너희가 용서를 받을 것이요
38 주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줄 것이니 곧 후히 되어 누르고 흔들어 넘치도록 하여 너희에게 안겨 주리라 너희의 헤아리는 그 헤아림으로 너희도 헤아림을 도로 받을 것이니라
그래서 너무 따지지 말고 우리가 우리에게 손을 벌려오는 사람들에게 다 타산하고 계산하면 남는 게 아무 것도 없어요.
아무 것도 줄게 없죠.
‘너 얼마나 게을러서 그 모양이냐?’ 이렇게 하면 줄게 없죠.
그런데 진짜 못된 심보를 가지고 일도 안 하고, 멀쩡하게 두손발 가지고도 일 안하고 다니는 사람 있어요.
영국 같으면 안 줍니다.
그런데 우리 그리스도인은 해야 돼요.
어려운 사람들이 일할 능력이 없어서 그렇게 할 때 교회가 손을 펴서 해야 돼요.
개인도 그렇고 교회도 그렇고.. 그런 것 하라고 사회부가 있는 거죠.
너무 헤아리지 말고 너무 타산적으로 그렇게 하지 말고 달라는 자에게 주라는 거죠. 필요한 자에게..
어제 신문에 보니까 우리가 소득의 5%씩을 모아서 나누면 이 지구상에서 절대 빈곤은 완전히 사라진다는 거야. 절대 빈곤이..
우리 기독교는 십일조 아닙니까? 소득의 10%를 내어서 생활을 하면 가난한 자도 없어지고 절대 빈곤은 완전히 사라지게 되겠죠.
그런데 교회가 그것을 안 할려고 하더라고.. 성도는 하는데 교회는 안 할려고 해요.
우리 교회도 우리 예산 결산의 10% 상회비 내라고 하면 전부 다 싫어할텐데..
그런데 시골 교회는 다 하자고 하는데, 도시 큰 교회는 안 할려고 하는 거야.
총회에서 재정정책 위원회가 모여가지고 우리가 어떻게 하면 공무원들처럼 목회자로 정식으로 임직된 사람에게 생활비 평준화를 하자.
활동비는 차등을 주더라도 호봉대로 공무원처럼 만들자 해가지고, 하는 방법은 다른 방법은 없고 재원 확보를 해서 성도들에게 십일조 하면 복받는다고 했으니까 교회도 십일조를 내자.
그렇게 하면 모든 목회자 시골에 있는 사람들까지 똑같이 할 수 있다.
틀림없이 나오는 거야. 충분해요. 해보니까.. 그것을 누가 다 빼왔더라고..
군인 장교 한분이 심혈을 기울여서 대기업과 공무원과 목회자 생활비를 대조해보니까 교회가 제일 엉망이야.
기업들도 상당히 잘 하고 있고, 공무원도 산골짜기에 있는 면직원도 봉급 작지 않습니다.
교사도 학생수가 10명밖에 안된다고 해가지고 봉급 작지 않습니다.
그래서 세상도 이 정도 합리적으로 하는데 교회가 이게 뭐하는 거냐?
말은 맞대. 현실로 돌아가면 교회에서 통과 안 된다는 거야.
누가 안 하느냐? 부자 교회가 안 할려고 해요.
부자 교회는 금액이 많거든요.
그래서 절대 빈곤 문제를 해결할려면 5%만 내어도 충분하답니다. 우리 세상이..
39 또 비유로 말씀하시되 소경이 소경을 인도할 수 있느냐 둘이 다 구덩이에 빠지지 아니하겠느냐
이런 말씀들은 예수님 이전에 유대인들 속담에도 이런 말이 있었다고 해요.
40 제자가 그 선생보다 높지 못하나 무릇 온전케 된 자는 그 선생과 같으리라
41 어찌하여 형제의 눈 속에 있는 티는 보고 네 눈 속에 있는 들보는 깨닫지 못하느냐
42 너는 네 눈 속에 있는 들보를 보지 못하면서 어찌하여 형제에게 말하기를 형제여 나로 네 눈 속에 있는 티를 빼게 하라 할 수 있느냐 외식하는 자여 먼저 네 눈 속에서 들보를 빼어라 그 후에야 네가 밝히 보고 형제의 눈 속에 있는 티를 빼리라
43 못된 열매 맺는 좋은 나무가 없고 또 좋은 열매 맺는 못된 나무가 없느니라
그런데 이 말씀은 진리인데, 지금은 비진리에다 진리 비슷하게 포장을 해요.
언제 시간이 나면 오늘 이 지구상에서 기독교를 없애기 위해서 어떠한 노력들을 하는지, 지금 파상공세를 해 오고 있는지 한번 같이 볼 동영상이 몇개가 있는데, 정신을 안 차리면 어느 귀신에게 물려갈지 모를 정도로 어려운 시대를 맞이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의 신성을 부정하는 동정녀 탄생이나 부활이나 이런 것 다 부정하면서 동영상을 만들어서 유투브(YouTube)를 통해서 온 세상에 퍼뜨리는 거예요.
그런데 보면 굉장히 옳은 소리를 많이 합니다.
그래서 옳은 진리에다가 비진리를 섞어서 퍼뜨리는 사람도 있고, 비진리에다가 광명의 천사같은 옷을 덧입혀서 퍼뜨리기 때문에 일반사람들은 100% 속게 되었고, 믿는 사람들은 믿음이 조금만 흔들리면 다 흔들리게끔 그 정도로 역사자료 신화자료를 동원하기 때문에, 지금처럼 공부를 안 하는 사람들은 역사에 대해서 성경에 대해서 모르면 백발백중 넘어가는 그런 일들이 계속 파상공세로 들어옵니다.
또 가짜가 가짜를 고발하면서 신뢰를 얻어가지고 진짜까지 고발하는..
자기 집에 불을 질러놓고 옆집 사람을 잡아 족치는..
그런 일들이 일어나는데, 그런 것을 다 영상으로 만들어서, 예를 들면 자기 집에 불을 질러놓고 옆집 사람 잡는 게 네로죠. 네로..
로마시내에 불 질러놓고 기독교인 잡는 거야.
여러분 월드 트레이드 빌딩이라는 쌍둥이 빌딩을 부셔놓고는 자기가 잡고 싶은 사람 마음대로 잡는 거죠.
그것을 고발하면서 이것이 다 조작되고 날조된 것처럼 기독교도 날조된 것이다. 이렇게 나오는 거예요.
그러면 젊은 청소년들이 ‘아 그랬구나 아무 것도 몰랐다.’
이런 식으로 사람들을 혼란시켜가지고 ‘이것이 진짜인지 저것이 진짜인지 모르겠다’ 해가지고 나중에 ‘믿을 놈 하나도 없다.’ 이렇게 만드는 거예요.
이게 인터넷 시대에 동영상 시대에 아주 효과적인데, 그런 동영상들이 하도 떠들고 있기 때문에 정신 안 차리면, 다시 말해서 영원불변의 진리와 역사적 사실과 그 어둠의 자식들이 하는 일들을 정확하게 분별 못하면 어느 새 어디에 휘말릴지 모르는 굉장히 어려운 시대를 맞이하고 있습니다.
오래전에 제가 썼던 성경강좌 안내문 속에 ‘홍수가 넘쳐흐르면 물은 많은데 마실 물이 없다.’ 그런 말이 있어요.
대홍수가 온 세상을 휩쓸면 홍수가 샘물 근원을 다 막아버려서 마실 물이 없는 거야.
지금은 그야말로 정보의 홍수시대같은 그런 시대입니다.
그래서 성경을 옳게 분별 못하고 역사를 분별하지 못하면 우리가 어느 물결에 어떤 선동에 휘말릴지 모르기 때문에 정신을 바짝 차려야 돼요.
44 나무는 각각 그 열매로 아나니 가시나무에서 무화과를, 또는 찔레에서 포도를 따지 못하느니라
45 선한 사람은 마음의 쌓은 선에서 선을 내고 악한 자는 그 쌓은 악에서 악을 내나니 이는 마음의 가득한 것을 입으로 말함이니라
46 너희는 나를 불러 주여 주여 하면서도 어찌하여 나의 말하는 것을 행치 아니하느냐
그러니까 예수님께 배우고도 그것을 행하지 아니하는 사람들이죠.,
47 내게 나아와 내 말을 듣고 행하는 자마다 누구와 같은 것을 너희에게 보이리라
48 집을 짓되 깊이 파고 주초를 반석 위에 놓은 사람과 같으니 큰 물이 나서 탁류가,
마태복음에는 ‘비가 오고 창수가 나고 바람이 불어서,’
.. 그 집에 부딪히되 잘 지은 연고로 능히 요동케 못하였거니와
49 듣고 행치 아니하는 자는 주초 없이 흙 위에 집 지은 사람과 같으니 탁류가 부딪히매 집이 곧 무너져 파괴됨이 심하니라 하시니라
이런 말도 요즈음 사람들에게 이야기 하면 ‘집을 반석에 지으면 지진나면 다 무너져요.’ 그러면서..
요즈음 집은 반석에 짓지 않고 모래밭에 지어야 돼요.
모래나 뻘 밭에 파일을 깊이 박아서, 그 파일이 마치 이빨 뿌리처럼 박혀 있어야 덜 흔들린다는 거야.
그래서 잘 안맞는 시대가 되었어. 이제는..
저는 건축을 해서 알기 때문에 돌 위에 지은 집은 지진 나면 다 무너지는 거야. 정말..
그런데 시궁창이나 뻘 구덩이에 깊이 파일을 몇개 박아서 거기에 집을 지으면 안 무너진다니까..
그러나 예수님 말씀의 뜻은 그런 굉장한 집 말고, 모래 위에다 집을 지으면 그냥 집을 짓는 거예요.
집을 지으면 모래가 스르르 무너지면 다 무너지는 거죠.
그래서 예수님 말씀의 제일 기초가 뭐냐 하면 윤리적 기초가 안 되었다는 거예요.
윤리와 진리의 기초가 안 되어서 어설프게 그냥 집을 지었다.
인격의 기초가 다 무너지면 함께 다 무너지는 거예요.
그래서 예수님께서 제자를 택한 다음에 제일 먼저 가치관을 바로 세울려고 하신 것이고, 그리고 윤리, 욕심에 근거하지 않은 윤리를 가르치고 있습니다.
그리고 조그만한 감정을 다스리지 못해서 큰 것을 상실하는 그런 우를 범치 말 것을 가르치고 있는 거죠.
그 때 제자들이나 오늘 우리가 항상 명심해야 될 말씀이죠.
일단 조그만한 행동 하나하나, 바리새인들도 행동은 번지르하게 하죠.
그런데 그것이 아니고, 그 생각의 뿌리 속에 가치관이 먼저 바르게 서야 돼요.
그 다음에 특히 우리가 감정의 노예가 되지 않도록..
조그만한 감정 때문에 큰일을 그르치지 않도록..
그리고 우리가 다 저나 여러분이나 똑같이 아담의 자손이고, 우리가 원죄로 말미암은 죄를 예수님이 속죄하셨다고 하지만, 우리 지체 속에 여전히 우리의 욕심과 또 시기와 질투와 그런 쓴 뿌리는 아직 남아 있습니다.
그것을 다스리지 못해 가지고 결국 노예가 되어버리면 어려워져요.
그래서 조그만한 감정으로 상처를 입으면 그만 폭발해서 참지 못하는..
그런 우리가 살인 하거나 그런 것은 안 하지만, 감정의 상승작용이 났을 때는 무슨 일이 벌어질지 모르는 거야.
작은 일일 때 충분히 참고, 이 산상보훈의 말씀을 항상 묵상해서..
여러분 우리가 마하트마 간디라는 사람 있잖아요.
간디는 죽을 때까지 힌두교 자기 종교를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그렇지만, 이른바 기독교 나라라고 하는 영국을 상대해서 싸울 때 그는 이 산상보훈을 항상 주야로 묵상하면서 이 정신을 가지고 영국과 싸워서 영국이 잘못된 것으로 만들어버렸어요.
침략자 영국이 손들고 도망가게..
이 산상보훈의 윤리의 힘이라는 거죠.
우리 모두가 마지막이 다가올수록 기본에 충실하고 하나님 말씀 그 교훈에 성실한 우리 모두가 될 수 있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기도>
하나님 아버지,
오늘도 주께서 제자를 택하시고 가까이 오게 하사 천국 시민의 그런 생활 헌장이 어떠해야 됨을 우리에게 가르쳐 주시고, 참선지자와 거짓선지자가 어떻게 일 하는지도 우리에게 알려 주셨습니다.
바른 삶을 살기 위해서 산상보훈을 잘 배우고 주께서 평지에서 말씀하셨으나 이 말씀이 온 세계 땅끝까지 이르러서 심령마다 심어져야 할 텐데, 오늘날 기독교가 지나치게 신비주의로 아니면 기복종교로 세속주의에 빠져서 추구하지 말아야 할 것을 지나치게 추구하면서 점점 변질되어가는 그런 모습을 저희들이 보고 있습니다.
자비로우신 하나님 아버지,
다시 한번 우리가 예수님 말씀에 귀를 기울이고, 우리가 어떠한 마음가짐을 가지고 어떠한 세계관이나 어떠한 역사관이나 어떠한 가치관을 가지고 살아야 할지를 다시 배우게 하시고,
기본에 충실하고 난세일수록 우리가 정석으로 돌아가는 우리 모두가 되게 하여 주옵소서.
이 시대를 옳게 분별하고 파상공세로 하나님의 교회를 뒤흔드는 마귀의 모든 궤계를 물리치고 마지막에 주님 앞에 설 수 있는 우리 모두가 되게 하여 주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하옵나이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