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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8. 공산폭포에서 진불암<芝山>
어제도 비가 오고 오늘도 비가 온다는 일기예보, 어제 저녁부터 주반장님 날씨가 궂을 것에 대비하여 비옷 챙기라하고 우산도 가져오면 좋겠다는 카톡이 들어왔습니다. 그래도 대구지역은 일기예보가 잘 틀릴 정도로 비가 적은 곳이어서 아마 비가 오지 않을 것 같다는 기대를 가지고 아침을 맞았습니다.
기대했던 대로 낮은 구름이 하늘을 덮고 있었으나 비가 내리지는 않았습니다. 17명이 산에 오르기로 하여 동양고전연구소 주차장에 모였습니다. 벌써 한달이 지났지요? 그 멀고 험한 지리산을 일박이일로 다녀온 지가? 오랜만에 만난 얼굴에 반색이 돌았습니다. 4대의 승용차에 나누어 타고 팔공IC로 들어가 와촌 IC로 나와 신령을 거쳐 치산계곡으로 달려갔습니다. 10시10분쯤 수도사에 도착하였습니다. 꼭 한 시간이 걸렸습니다.
<수도사에서 단체사진>
어제 비가 많이 와 계곡 물이 많아진 치산계곡 물줄기는 설악이나 가야산 홍류계곡에 결코 뒤지지 않을 것 같다고 느꼈습니다. 숲은 청정한 숨소리로 그 정갈함이 손에 잡일 듯하고 맑고 흰 포말이 천지상하로 부서짐에 흘러내리는 계곡 물줄기는 속세에서 지친 마음을 청신하게 해주었습니다. 주차장에 차를 세우고 팔공폭포를 향해 산길을 올랐습니다. 몇 번 이미 와서 본 폭포였으나 오늘처럼 수량이 많은 적은 처음인 것 같았습니다. 위쪽에 1단 그리고 2단 다시 마지막 3단으로 쏟아져 내려와 서로 맞부딪혀 부서지며 깨지는 하얀 포말은 그대로 장관이었습니다. 티끌하나 없이 맑은 깊은 계곡의 물줄기를 보면서 너무나 심각하게 오염되어버린 우리가 살고 있는 환경에 대해 새삼 가슴을 억누르는 아픔을 느꼈습니다.
<팔공폭포를 뒤로 하고 포즈를 잡았습니다.>
지금부터 60년 전 우리가 젊을 때 살았던 우리나라의 모든 실개천과 작은 개울과 그리고 크고 작은 강줄기의 물은 지금 보는 계곡물처럼 그대로 마실 수 있을 정도로 깨끗하였습니다. 이제는 수돗물도 믿지 못하고 생수를 따로 사서 마시며 살고 있는 그런 세상에 살고 있습니다. 이보다 더한 것은 공기오염입니다. 수험생이 있는 웬만한 아파트의 학생이 공부하는 방에는 공기정화기가 놓여 있는 곳이 많습니다. 앞으로 몇 년 이후에는 숨 쉬는 공기를 정화시키기 위해 우주인들이 쓰고 있는 공기정화장치가 달려 있는 헬멧를 쓰고 살아야 할지도 모릅니다. 누군가 이런 이야기를 합니다. 이 지구에 30억 정도 인간이 사는 것이 적정 인구밀도인데 지금 60억이 살고 있다고, 그러니 부대끼지 않고 어떻게 살수가 있겠느냐고... 좀 편하고 좀 쉽게 살려고 만들어내고 생산하는 물품보다 더 큰 규모로 우리의 환경은 파괴되어가고 그에 따른 우리의 생활환경도 급속도로 나빠지고 있는 것입니다. 마치 냄비 속의 개구리처럼 우리는 그저 모르고 살아가고 있는 것이지요?
우리 회원 모두다 정신이 나간 것 같은 모습으로 쏟아져 내려치는 폭포의 포말에서 눈을 떼지 못하고 있습니다. 자연은 우리를 이렇게 순화시켜주고 있었습니다. 어제 또 오늘 아침까지 속세에서 일어났던 모든 일도 다 잊어버리고 새 사람들이 되어 있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산에 오는 것이겠지요? 푸른 숲과 맑은 물, 깨끗한 공기가 폐부로 스미어 들어오면 우리의 머릿속은 맑고 푸른 가을 하늘처럼 청명해졌습니다.
<망폭정 안에 걸린 시판들>
팔공폭포 옆에는 4년 전에 없었던 망폭정이 지어져 있고 그 안에는 이백의 <望廬山瀑布>의 시를 차운해 지은 5개의 시판이 걸려 있었습니다. 폭포를 보면 그 때나 지금이나 이백의 ‘飛流直下三千尺‘이 머리에 떠올랐겠지요. 동양고전연구회 팀들이 여산폭포를 직접 다녀왔는데 이백의 뻥이 너무 심했다고 말하는 것을 들은 적이 있었습니다. 시인의 눈으로 보면 그렇게 보였다고 하니 이백이 아니고는 이런 천하의 명구가 어찌 나올 수 있겠습니까?
望廬山瀑布(망여산폭포) ; 李白
日照香爐生紫煙(일조향로생자연);
햇빛이 향로봉을 비추니 자주빛 안개가 일어나고
遙看瀑布掛長川(요간폭포괘장천);
멀리서 폭포 바라보니 긴 강을 하늘에 걸쳐 놓은 듯 하네
飛流直下三千尺(비류직하삼천척);
날아 바로 떨어지는 물이 삼천척이나 되니
疑是銀河落九天(의시은하락구천);
혹시 하늘에서 은하수가 쏟아져 내리는 것이 아닐까
망폭정 안의 시판들이지만 근엄한 자세로 이곳에 온 우리들에게 반가운 인사를 하고 있습니다.
망폭대(望暴臺) 권익구(權益九ㆍ1662∼1722년)
玉屑分懸散白波(옥설분현산백파) 옥가루(玉屑) 나뉘어 걸려 흰 물보라 흩트리는데
銀缸如帶一條河(은항여대일조하) 은 항아리는 띠와 같이 하나의 물줄기를 쪼갠다.
登臨如識臺名美(등임여식대명미) 등임(登臨)해보니 대(臺)이름 아름다운 줄 알겠으니
太守當年好事多(태수당년호사다) 우리 태수(太守)의 올해는 좋은 일 많으리라.
부제현차장(附諸賢次章) - 제현(諸賢)들의 차운(次韻)한 글을 붙임<정민장(丁敏章)>
擊石雄濤倒玉波(격석웅도도옥파) 돌을 치는 힘센 파도 옥빛 물결 뒤집는데
飛流直下怳銀河(비류직하황은하) 나르는 물의 똑바로 내려옴은 은하수와도 같구나.
廬山瀑㳍誰言勝(여산폭포수언승) 여산(廬山)의 폭포 어느 누가 이보다 낫다 더냐?
援彼方知此景多(원피방지차경다) 저(廬山瀑布) 당겨보니 바로 이 풍경이 나음을 알겠네.
<이담로(李聃老)>
散玉瓈盤倒亂波(산옥려반도난파) 유리같은 너럭바위에 옥 흩어져 어지러운 파도를 뒤집으니
靑天疑却落明河(청천의각낙명하) 푸른 하늘에서 흡사 밝은 은하수가 떨어지는 듯
誰耽此景臺斯築(수탐차경대사축) 누가 이 경치에 빠져 이 대(臺)를 만들었나.
太守風流一培多(태수풍류일배다) 태수의 풍류(風流) 한 배(倍)는 많으리라.
<하성징(河聖徵)>
神龍怒噴百層波(신룡노분백층파) 신룡(神龍)이 노해 뿜는 백층(百層)의 파도
疑是靑天倒白河(의시청천도백하) 이는 푸른 하늘의 흰 은하수가 거꾸로 된 듯하다
太守誰爲臺號命(태수수위대호명) 태수는 누구라 이 대(臺)의 이름을 지었는가.
風流好事此中多(풍류호사차중다) 풍류(風流)와 호사(好事)는 이 가운데 많은 것을
<권치중(權致中)>
望爆臺前望見波(망폭대전망견파) 망폭대(望爆臺) 앞에서 파도를 보니
時如李白咏銀河(시여이백영은하) 이백(李白)이 은하수 읊을 때와 같네.
公山勝景廬山似(공산승경여산사) 팔공산(八公山)의 뛰어난 경치 여산(廬山)과 흡사해
能使騷人興自多(능사소인흥자다) 능히 시인들로 하여금 흥이 스스로 많게 하네.
<!--[if !supportEmptyParas]--> 조선시대 신녕현(현 영천시 신녕면)의 선비이자 문인인 자산(慈山) 권익구(權益九ㆍ1662∼1722년)의 문집인 ‘자산일고(慈山逸稿)’에 망폭대에 관한 시가 실려 있다. 자산은 ‘공산잡영(公山雜詠)’이라는 제목으로 팔공산 10경을 읊었다. 자산은 1699년 정민장, 이담로, 하성징, 권치중 등 선비 4명과 함께 팔공산의 기이한 나무나 돌 하나까지 두루 찾아다니면서 10경마다 한편씩 모두 시 50편을 읊었다. 자산이 노래한 ‘팔공산 10경’은 고풍정(古楓亭), 망폭대(望瀑臺), 환희교(歡喜橋), 은신굴(隱身堀), 괘호암(掛瓠巖), 와룡석(臥龍石), 법왕봉(法王峯), 사리치(獅利峙), 진불암(眞佛庵), 수침성(水砧聲) 등이다. <다음카페 참고:팔공산연구소-팔공지킴이><!--[endif]--> |
망폭대의 정자에서 새로 놓여진 다리를 건너 산속 소로로 들어갑니다. 오늘은 비가 오지 않으나 어제 온 비 때문에 바위길이 미끄럽습니다. 한 발짝 한 발짝 무게 중심을 잘 잡고 산길을 오릅니다. 낮은 구름으로 하늘이 덮여 뜨거운 햇살은 없지만 습기가 많아서 진땀이 솟아났습니다. 깊은 숨을 들어 마시며 푸른 나뭇잎들이 5월의 신록 같다고 탄복하기도 했습니다. 그즈음 나뭇가지에 비를 맞아 반듯한 매무새는 아니지만 시가 적혀있는 천이 걸려 있었습니다. 한용운스님의 “나그렇게 당신을 사랑합니다.”라는 시입니다.
나 그렇게 당신을 사랑합니다 - 한용운
사랑하는 사람 앞에서는
사랑한다는 말을 안 합니다.
아니하는 것이 아니라
못하는 것이 사랑의 진실입니다.
잊어버려야 하겠다는 말은
잊을 수 없다는 말입니다.
정말 잊고 싶을 때는 말이 없습니다.
헤어질 때 돌아보지 않는 것은
너무 헤어지기 싫기 때문입니다.
그것은 헤어지는 것이 아니라
같이 있다는 말입니다.
사랑하는 사람 앞에서 웃는 것은
그만큼 행복하다는 말입니다.
떠날 때 울면 잊지 못하는 증거요
뛰다가 가로등에 기대어 울면
오로지 당신만을 사랑한다는 증거입니다.
잠시라도 같이 있음을 기뻐하고
애처롭기까지 만한 사랑을 할 수 있음에 감사하고
주기만 하는 사랑이라 지치지 말고
더 많이 줄 수 없음을 아파하고
남과 함께 즐거워한다고 질투하지 않고
그의 기쁨이라 여겨 함께 기뻐할 줄 알고
깨끗한 사랑으로 오래 기억할 수 있는
나 당신을 그렇게 사랑합니다.
‘나 당신을 그렇게 사랑합니다.’
그리고 다시 좁은 산길을 올라갑니다. 숨이 헐떡이고 다리는 후들거리지만 정신은 더욱더 맑아지는 것 같은 진불암 가는 숲길입니다. 그리고 한구비 돌아 그곳에도 시가 걸려 있습니다. 김춘수 시인의 부재라는 시입니다. 한용운스님의 ‘사랑합니다’라는 싯귀보다 산속에 걸맞지 않은 것같아 여기에 쓰지 않기로 했습니다
<동승 진불암 주지스님의 제1석굴암에 대한 스토리텔링을 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두 개의 부도가 서있는 곳 여기서 850m에 진불암이 있다는 표시석이 20여명이 서있어도 충분할 공간이 떡갈나무아래 만들어 있었습니다. 그때 마침 진불암 쪽에서 스님 한 분이 내려오고 있었습니다. 붙임성 좋은 한 분이 인사를 하고 진불암에 가면 먹을 것이 있는가?하고 농조로 말을 붙였습니다. 인상 좋게 생긴 스님 그대로 쉽게 댓구합니다. 진불암에서는 무료로 커피도 마실 수 있고 공양도 해준다고 그런데 오늘은 공양주 보살이 휴가를 가서 자기는 그곳 주지 동승스님인데 오늘 군청에 일 때문에 출타하게 되어 진불암에는 아무도 없다고 합니다. 그러나 그곳에 가면 커피 끓일 가스버너가 있다고 하면서 잘 쉬고 가라고 했습니다. 내가 대뜸 질문을 던졌습니다. 진불암의 역사에 관해 이야기 해 달라고...기다렸다는 듯이 진불암에 대해 자기는 2015년부터 주지를 맡고 있고 영천에 아주 큰 절에 불사를 크게 이루고 이곳으로 와서 다시 불사를 시작했다고 헸습니다. 진불암은 신라 진흥왕때 자장국사가 설립하고 중국 구화산에서 유학할 적에 신라가 고구려와 백제의 공격을 받아 팔공산이 마지노선이 되었을 때 중국에서 석가모니부처님의 진신사리 102과를 가지고 돌아와 통도사, 진불암, 상원사 등에 안치했다고 합니다. 그래서 지금 진불암에 적멸보궁을 조성하는 불사를 하고 있다고 했습니다. 스님의 설명으로는 군위 제2석굴암이 있고 경주남산 석굴암은 제2석굴암 보다 70년이 지난 후에 조성했기 때문에 제1 석굴암이 있었을 터인데 삼국유사에 진불암계곡에 제1석굴암이 있다고 기록하여 2015년에 경북대 사학과 교수와 학생들이 계곡 안에서 석굴을 찾았으나 석불은 일본인들이 반출해갔고 그 주변에 작은 석불은 진불암 스님이 지게에 지고 오다가 산속에 안치한 것을 본인이 수습하여 적물보궁 안에 모셨다고 하였습니다. 오늘은 진불암에 전기가 들어오지 않아서 전기를 넣으려고 한전에 신청했으나 숲속의 나무가 너무 키가 커서 전봇대를 설치하면 사고가 날수 있어서 전기를 놓을 수 없다고 하면서 오늘은 군위군청에 태양열 전기판 설치를 알아보기 위해 가신다고 했습니다. 땅속으로 묻는 방법도 있다고 했더니 그것은 비용이 너무 많이 든다고 하였습니다. 스님의 강론이 끝나고 헤어져 우리는 다시 산길을 오르기 시작하였습니다.
그런데 집에 와 찾아보니 군위 제2석굴암은 1962년에 발견되어 그해 12월 국보로 지정이 되었고 제2석굴암이란 이미 토암산 석굴암이 이미 있었기 때문에 붙여진 이름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언제 시간이 나면 동승스님 말대로 진불암 계곡의 제1석굴 터를 찾아 보면 어떨까 생각해 보았습니다.
<즐거운 점심 식사>
이제 마지막 얼마 남지 않은 삐쭉 삐쭉 나온 돌이 깔린 경사가 심한 길을 조심조심 밟으며 앞으로 나아갔습니다. 그리고 수백년은 능히 되어 보이는 느티나무가 나오고 그 뒤로 진불암이 눈앞에 자리 잡고 있었습니다. 텅빈 산사는 인기척은 없었으나 검둥이 한 마리가 꼬리를 치며 처음 보는 우리를 반갑게 맞아 주었습니다. 요사채 한쪽에는 줄에 매어있는 노랑 진돗개도 보였습니다. 풀어놓은 개는 순한 것 같고 노랑개는 좀 성질이 있는 것 같아 묶어 놓은 것 같았습니다. 누가 개 이름을 지어주었습니다. 까만 개는 ‘짜장’ 노란 개는 ’카레‘라고 이름을 붙여 주었습니다. 정작 주반장이 오늘 준비해 가져온 메뉴가 카레였습니다. 비가 올 것 같은 날씨를 감안하여 따뜻한 카레를 보온도시락에 싸가지고 왔다고 했습니다. 반장님의 마음만큼 카레 맛도 좋았습니다. 푸짐한 반찬과 점심을 평상에 차리고 둘러 앉아 즐거운 점심시간을 가졌습니다.
<진불암단체>
무엇보다 오늘 날씨는 그냥 축복이었습니다. 구름은 낮게 끼었으나 비가 오지 않았습니다. 습기가 많아 후덥지근 하였으나 견딜 만하였습니다. 구름이 스치고 지나가는 진불암 계곡과 능선의 모습은 신선들이 살고 있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습니다. 식사 후 주지스님이 말한 가스버너로 끓인 커피를 마시고 적물보궁이라고 적어 놓은 새로 꾸며놓은 법당에 들어가 몇 사람들은 기도도 드리고 기와 불사도 하였습니다. 불당 안에는 한쪽이 깨어진 작은 석불이 모셔져 있었습니다. 동승 스님이 말한 제1석굴암 터에서 가져온 불상인 것 같았습니다.
3시가 다된 시각 하산을 시작하였습니다. 층층나무, 비목나무, 떡갈나무 등 키가 큰 활엽수들이 이번 가을이 되면 화려한 단풍잔치를 지금부터 준비를 하고 있는 것 같았습니다.
내려오는 길에 작은 계곡에서 발을 씻고 다시 팔공폭포 위쪽 계곡에서 맑고 깨끗하게 흘러내리는 물속에 들어가 다시 탁족을 하였습니다. 시원한 물소리 그리고 발목에 닿는 계곡물의 촉감은 진불암 계곡의 인상을 깨끗하고 신비스런 모습으로 바꾸어 놓았습니다. 이곳에서 나이가 지긋한 부부 같지 않은 남녀 두 사람도 맑은 물에 발을 씻고 있으며 진불암이 지난번에 다른 사람에게 팔려서 새로 온 주지가 사업을 잘하고 있다고 했습니다. 말을 듣고 보니 진불암에 올라가다 만났을 때 스토리텔링을 아주 잘 하는 것 역시 그냥 그렇게 되는 것이 아닌 것 같았습니다. 사업자 같은 종교인? 이 세상을 살고 있는 우리는 헷갈립니다. 온통 세상은 자본으로 묶여 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평화도 사랑도 아닌 돈이 우리가 추구하는 최상의 목표가 되어 가고 있는 것이 우리를 슬프게 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그래도 우리 주변에서 가끔은 그렇지 않는 사람들도 만나는 기쁨이 있어서 살아갈 만한 세상이라 느끼곤 합니다.
물은 맑고 청정한 소나무 가지 솔잎색을 청청하기만 한 진불계곡에 앉아 오랜 만에 자리를 같이한 이 선생님 ‘산이 물에 비추자 물고기가 놀라 달아나고 안개가 산을 덮자 학이 놀라 몸숨기네‘ 멋진 절구를 읊었습니다. 물어보니 할아버지가 지은 싯구라 했습니다. 이번 산행의 시를 지어 보내 달라고 부탁하였습니다. 두 밤을 자고 나니 카페에 이선생의 창작 시가 올라와 있었습니다. 같이 보고 느껴도 이렇게 멋진 시가 나오는 것은 깊은 경륜이 있기 때문일 것입니다. 감사합니다. 그대로 적어 넣었습니다.
○ 숲과 문화반 현장수업에 동행하여 稚山瀑布를 보고 眞佛菴까지 등산 도중 에 생각한 것을 先祖詩(足聯句)에 삼가 次韻 하다. |
<수도사 2층 차실에서 극락보전을 바라보면서>
수도암에 내려와 입구 2층 차실에 올라 보이차를 마시며 기분 좋은 산행의 추억을 만들며 편한 자세로 누워 쉬었습니다. 그리고 4시가 되어 우리는 다시 속세로 내려오게 되었습니다.
<수도사 2층 차실에서 마지막 휴식 중입니다>
치산계곡입구 치산마을에 250년 된 느티나무 보호수를 사진에 담고 오늘 산행을 마쳤습니다. 낮에 비가 오지 않고 좋은 날씨였는데 밤늦게 대구에는 작살비가 다시 내렸습니다. 다시 오늘의 날씨에 감사드리고 모든 사람들이 무사히 산행을 마친 것에 대한 고마운 마음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고맙고 감사합니다.
<치산마을의 느티나무 보호수 이 마을의 당산 나무입니다.>
첫댓글 진실로 존경하는 분 앞에서는 존경한다는 말을 안 합니다.
아니하는 것이 禮입니다. 그래서 말을 안 합니다.
진불암 팔공폭포를 다시 떠올립니다.
이선생님과 조선생님! 망폭정 안에서 두분의 시판이야기 덕분에 즐거운 산행이 되었습니다. 감사합니다.
함께 할수 없어서 아쉬웠는데...芝山샘 글로써 그 아쉬움이 조금 달래지는 듯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