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 신묘한 무술 - 쌍수압초 雙袖壓草
퇴각 退却의 징 소리에 적병들이 철수하자,
비로소 정신을 차린 정돌식 천부장이 눈을 들어 주위를 살펴보니,
남 흉노.
진영의 북쪽 고비사막에서 누런 흙먼지가 대지를 자욱하게 뒤덮으며 몰려오고 있었다.
왼손을 들어 햇빛 가리비 삼아 자세히 바라보니,
묵황야차 이중부 소왕이 5천의 기병대를 이끌고, 적의 후미 後尾를 들이치고 있는 광경이 보였다.
북 흉노 군은 적진 가까이 접근하자,
선봉장을 맡은 설담비과 손우지 천부장이 중군 中軍의 좌우, 두 갈래로 갈라지며 진격한다.
그러니 중군을 포함하여 공격 방향을 세 곳으로 나누어 돌진하는 것이다.
남 흉노의 습격을 예상하고 무천진 武川鎭에 진을 치고 있던,
묵황야차 이중부 소왕이 직접 기병대를 이끌고 지원 나온 것이다.
남 흉노의 후방이 속절없이 허물어지고 있었다.
묵황 야차의 위맹스러운 커다란 묵황도를 감히 대적 對敵할 장수가 없었다.
남 흉노의 병사들이 추풍낙엽 秋風落葉처럼 떨어져 나가고, 진형이 무너지며 말발굽에 유린 蹂躪 당한다.
일순간에 전황 戰況이 뒤집어져 버렸다.
그러자 한준이 대적하고 있던 설태누차 등 세 명의 장수들을 아록환과 가지연. 고적타 등
다른 장수들에게 떠맡기고는 자신은 아군의 북쪽을 휘젓고 있는 이중부를 노려보며 급히 말을 몰아간다.
그즈음,
장성의 동쪽, 평주를 공략한 우문무특 소왕의 군대가 전리품을 우마차에 바리바리 싣고,
개선 군가 凱旋 軍歌를 힘차게 부르며 무천진으로 돌아오고 있었다.
묵황야차 소왕의 부대에 함께 주둔 駐屯하고 있었던, 우문청아가 친위대를 대동하고 마중 나간다.
또다시 만난 초원의 영웅.
일 년 만에 다시 격돌하게 된, 초원의 두 젊은 영웅.
싸우던 장수들과 양군의 병사들. 모두 자신의 무기를 알아서 갈무리하며 멀찌감치 뒤로 물러나니,
큰 공터가 자연스럽게 만들어진다.
모두 좀전의 전투는 잊어버린 듯 제자리에 서서 두 주먹을 힘껏 거머쥐고, 목으로 침을 삼킨다.
이제 전설처럼 되어버린 두 영웅의 대결을 기대에 찬 눈빛으로 바라보고 있다.
중부가 먼저 입을 뗐다.
“한 장군, 그동안 잘 지냈냐?”
“그래, 덕분에 이렇게 또 만나게 되었네”
“이런 자리만 아니라면 마유주라도 한잔 나누어야 하는데...”
“흥! 입에 발린 소린 관두고 내 창이나 받아 보아랏!”
지난해 당한 치욕적인 아픔을 잊지 못하겠다는 듯이 막북무쌍 한준 소왕은
양 눈을 모양 사납게 치 떠고 양날 창을 앞으로 내지른다.
한준은 타고난 반골 기질 叛骨氣質이었다.
여러 번 이중부에게 패하였으나, 절대 굴복 屈伏하지 않는다.
패할수록 불굴 不屈의 기개 氣槪가 더 창성 昌盛한다.
아주 특이한 성격이고 체질이다.
한준은 치우 13식 창술을 전개 展開하기 시작한다.
양날 창이 좌우로 번갈아 가며 회전 回轉하기 시작한다.
이중부의 묵황도 역시, 넘치는 기세로 조선세법을 시전하며 한준의 양날 창을 마중 나간다.
말들도 엇갈려 가더니 다시 되돌아서 격돌한다.
용과 호랑이의 엄청난 기세가 또다시 결렬하게 부딪친다.
용호상박 龍虎相搏의 화려한 결투가 초원 위에 펼쳐지고 있다.
역시, 난형난제 難兄難弟의 치열한 대결이다.
치우창술과 조선세법이 차가운 늦가을의 초원을 뜨겁게 달구고 있다.
이 각을 그렇게 어지럽게 싸우고 있다.
돌연 막북무쌍의 양날 창이 위에서 비스듬히 묵황야차의 어깨를 노리고 베어온다.
지난해와 비슷한 상황이다.
묵황야차의 묵황도 칼등이 창 자루를 막아내면서 칼등과 창 자루가 맞대자,
중부는 묵황도를 앞쪽으로 슬쩍 당긴다.
양날 창은 묵황도의 칼등에 끼어버린다.
지난번과 같은 상황이 연출 演出 되었는데도 한준은 당황하지 않고,
창을 한 번 더 당겨 칼등에 꽉 끼인 것을 확인하고는 선선히 창을 손에서 놓아 버린다.
이런 상황이 벌어지기를 원하면서 먼저, 시도 試圖한 이중부가 오히려 이상함을 느끼고는
창 자루가 끼여 사용하기 어렵게 되어버린 묵황도를 땅에 내려놓는다.
순간, 마상 馬上의 한준이 한 손으로 자기의 말안장을 잡고는 두 발로 중부의 가슴을 돌려찬다.
중부는 예상치 못한 기습공격을 당하자, 얼떨결에 말 등에서 상체를 뒤로 젖히며 한준의 발길질을 겨우 피하였다.
그러자 한준이 중부의 말 안장으로 뛰어올라 주먹으로 중부의 안면을 가격한다.
어릴 때부터 싸움이 벌어지면 접근전을 계속 피하였던 한준이다.
그런 한준이 지금은 오히려 먼저 육탄전 肉彈戰을 시도하여,
좁은 말 안장 위에서 마구잡이로 주먹질을 해대는 것이다.
한준의 돌발적인 공격에 당황한 이중부는 일으켜 세우러던 상체 上體를 다시 옆으로 돌려 피하며,
한준의 팔을 거머잡고 함께 땅으로 떨어졌다.
서로 엉겨 붙어 서너 바퀴를 뒹군 후 떨어져 일어났다.
지난번은 중부의 작전으로 격투기가 벌어졌지만, 지금의 상황은 한준의 의도로 격투기가 시작된 것으로 보인다.
이는 분명 한준에게 어떤 복안 腹案이 있음을 의미하는 것이다.
관전하는 양측의 병사들이 숨소리도 죽여가며 주먹을 꽉 쥐고 긴장한다.
맨손 격투기 만큼은 아직 누구에게도 져본 적이 없었던, 중부가 예기치 못한
한준의 적극적인 육탄 肉彈 공격을 받고는 자신도 모르게 긴장한다.
둘 다 기마자세를 잡고 서로 눈을 노려보며 상대의 빈틈을 노리고 있다.
서로의 손과 다리가 교차 交叉로 올라가고, 상대방은 이리 막고 저쪽으로 피하며 몸놀림이 재빠르게 돌아간다.
돌연,
“쌍수압초 雙袖壓草”
한준이 큰소리로 기합을 넣고 기마자세를 낮추더니, 색다른 공격 자세를 취한다.
그런데 한준의 격투기 자세가 이전과는 상이 相異하다.
왼 손은 주먹을 쥐고 오른 손은 수도 手刀로 사용한다.
휘두르는 주먹은 위맹스럽고 찔러오는 수도는 칼날처럼 날카롭기 그지없다.
“쌍수압초” 雙袖壓草
양쪽 빈 소매로 초원을 압박 壓迫한다.
즉, ‘무기 없이 맨손으로 초원을 제압한다’라는 뜻으로,
격투기의 신기원 新紀元을 이룰 놀라운 무예가 등장한 것이다.
한준은 새로운 무술을 선보인 것이다.
양군 兩軍의 승패가 걸린 중요한 대결에서 처음 보는 기이한 무예를 펼친다.
그것도 엄청난 위력을 지닌 격투술이다.
중부도 쌍수도를 잘 사용하는데,
지금은 중부의 실력보다 한준이 한 수 위로 보인다.
싸우면서도 중부는 이상함을 감지한다.
갑자기 한준의 무술이 크게 발전했다는 것을 느낀다.
아니, 엄청나게 강해졌다.
지금까지 봐왔던 일반적인 수법들이 아니라, 생소하고도 신묘 神妙한 무예 수법 手法이
한준의 손과 다리에서 화려하면서도 힘차게 벋어나오고 있다.
이중부는 벌써 몇 차례나 위험한 순간을 넘기고 있었다.
한준의 기묘한 공격을 겨우겨우 피하며 간신히 버티고 있는 위기 상황이다.
한준의 오른쪽 수도 手刀를 방어하고 왼 주먹을 피하고자,
두 번이나 땅바닥을 굴려 위기를 겨우 모면 謀免하였다.
지금까지 격투기에서 불리하거나 져본 적이 없는 중부는 당황스럽다.
격투기를 배운 이후, 이렇게 일방적으로 수세 守勢에 몰려 본 적이 없었던 이중부다.
그것도 수많은 이목 耳目이 집중된 중요한 결투장이다.
아군을 안전하게 보호해야 하고, 힘들게 획득한 전리품을 본대까지 무탈 無頉하게 이송 移送해야 한다.
수치심은 둘째고, 입에서는 단내가 난다. 목이 말라 온다.
그런데 한준의 공격은 갈수록 더욱 거세지고 있었다.
중부는 손으로는 도저히 상대가 안 되니 이제는 주로 발차기로 상대한다.
조금은 효과가 있다.
어느 정도 거리를 두고 대결한다.
키가 조금 더 큰 이중부가 상대의 접근을 허용하지 않는 것이다.
둘 간에 벌어지고 있는, 이렇게 진행되는 격투기는 처음이다.
이전의 격투기와는 전혀 다른 양상 樣相이다.
전에는 몸놀림이 빠른 한준이 거리를 두는 입식 타격술을 구사 驅使하였고, 완력이 뛰어난 이중부는
상대방과 신체가 뒤엉키는 접근전을 선호 選好하였는데,
지금은 상반 相反된 모습으로 결투가 진행되고 있었다.
그러나 그것도 잠시다.
다리를 들어 올려 차거나 돌려차기를 하면 손놀림과 비교해 가격 加擊할 때,
상대방에게 더 큰 타격 打擊을 줄 수 있지만, 그만큼 동작이 커질 수밖에 없다.
큰 투자에는 큰 위험성이 항상 뒤따르고 있듯이,
동작이 크면 클수록 그에 비례하여, 빈틈과 허점도 덩달아 크게 노출 露出되게 마련이다.
그 틈을 놓치지 않고 한준은 집요 執拗하게 파고든다.
기어코 한준의 오른 수도에 어깨와 무릎을 연이어 가격당하였다.
넘어질 정도의 강한 타격이었으나, 중부는 타고난 맷집으로 가까스로 버티고 있었다.
그러나 쓰러지진 않았지만, 자세가 중심을 잃고 휘청거린다.
사냥감의 약점을 파악한 맹수의 날카로운 눈빛처럼, 한준의 공세는 한층 더 신랄 辛辣하게 이어진다.
돌려차기에 이어 왼 주먹으로 중부의 안면을 가격한다.
돌려차기는 몸을 비틀어 가까스로 피하였으나 또, 주먹이 안면으로 날아온다.
이제는 피하거나 막을 겨를이 없다.
한준의 무지막지한 공세를 이리 막고 저리 피하고자, 진력 盡力을 모두 소진 消盡해 버렸으니,
지치고 기력이 탈진 脫盡된 상태라 더 이상, 막거나 피할 여유마저 사라져 버린 것이다.
묵황 야차의 위기다.
이중부는 무술을 배운 이후 최대의 위기를 맞이한 것이다.
막북무쌍 한준의 양 손에서 펼쳐지고 있는,
‘쌍수 압초’란 기이한 무술 초식이 북 흉노의 무예 최고수로 알려진 묵황야차를 상대로 하여,
메마른 초원 위에서 화려하게 꽃 피우고 있었다.
-16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