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3)미사의 은총은 얼마나 큰가!조문현 바오로 서울대교구 월계동본당
내가 미사에 관심을 갖게 된 것은 38세 때인 1984년 셋째 아이를 갖게 되었을 때다. ‘아들’을 낳게 해달라는 지향을 두고 매일 미사에 참여하기 시작했다. 아들을 낳아 사제로 봉헌하려고 아들의 이름까지 미리 사무엘로 정해 놓고 본당 활동을 열심히 하면서 일년 동안 평일 미사에 빠짐없이 참여하곤 했다.
아내도 아들이 없으니까 동서들 보기를 민망해 했다. 특히 장인께서는 유교 제사장으로 남달리 남아선호사상이 강하셨던 관계로 뵙기가 부담스럽기만 했다. 그렇기에 아내 역시 아들에 대한 집념이 강했다. 임신한 몸으로 불평 한마디 없이 주일 교중 미사를 비롯해 평일 미사를 빠지지 않고 열심히 다녔다. 나는 본당에서 미사 해설을 했고 아내는 만삭의 몸으로 기쁘게 독서를 했다.
출산이 가까워질수록 아들에 대한 기대가 더 부풀어 올랐을 때 우연히 도티병원에 갔다가 뇌수종을 앓고 있는 아기의 모습을 보고 충격을 받았다. 그날 하느님께 “아들이든 딸이든 상관치 않겠습니다. 제발 건강한 아이만 낳게 해주세요!”라고 기도했다던 아내의 미소를 지금도 잊을 수가 없다. 진통이 왔을 때 입원했고, 병자성사를 죽을 때 받는 성사로 잘못 알고 거부하려던 아내는 순산하도록 축복을 주는 성사라는 신부님의 설명을 듣고 기쁘게 성사를 받았다. 혹시라도 ‘아들일까’ 기대를 해봤으나 예쁜 딸이었다. 아내는 실망할 겨를도 없이 “다른 아기들보다 우유를 많이 먹기 때문에 우윳값을 더 내야 한다”는 간호사의 말을 듣고 건강한 딸이라는 걸 알고는 무척 기뻤다고 했다.
그러나 당시에는 ‘아들딸 구별 말고 둘만 낳기’를 권장하던 때라서 셋째부터는 보험 적용이 되지 않았다. 병원비 마련에 힘이 들었지만 나날이 새록새록 커가는 셋째는 기쁨과 행복 그 자체였다.
둘째와는 9년 터울이지만 내리사랑이 무엇인지를 알 것 같았다. 비록 하느님께서는 그토록 원하던 아들을 주시지 않았지만 건강하게 출산토록 축복해 주셨고 세월이 흘러 셋째는 ‘두 아들’의 엄마가 됐다.
하루에 한 번은 꼭 미사에 참여해야만 사는 것 같았다. 일과처럼 되어 버린 평일 미사! 때로는 아내에게 핀잔을 들을 때도 있었다. “젊었을 때부터 그토록 (미사에) 많이 참여했으면서 싫증이 나지 않느냐”는 것이었다. 남들은 일주일에 한 번 주일 미사 가기도 힘들어하는데 매일매일 성당에 가니 제발 쉬엄쉬엄 하란다.
내게는 미사에 참여하는 시간이 하루 중 가장 편안하고 행복한 시간이다. 한편으론 성체를 모실 때마다 예수님께 죄송한 마음이 들곤 한다. 예수님께서는 우리를 구원하시기 위하여 목숨까지도 다 주셨는데 나는 주님의 축복 속에서 쉽게 성체를 모시면서 예수님처럼 모든 것을 내놓지 못하는 것이 죄송스럽기만 했다.
어떤 날은 평일 미사에 함께 가자고 아내에게 제안했다. 아내는 “나는 묵주기도 바치고 있을 테니 당신이나 다녀와요”라고 거절해 서운함을 느끼기도 했다. 아내가 ‘미사의 은총’을 잘 모르기 때문이라 생각하면서 이렇게 바친 적이 잇다. “하느님, 제 아내가 미사란 예수님께서 행하신 최후의 만찬과 십자가의 재현으로 ‘다 이루었다’(요한 19,30)고 하셨던 기도의 완성임을 알게 도와주십시오!”
우리가 종일 바치는 수백 단의 묵주기도의 은총보다 또 여러 시간 바치는 묵상기도의 은총보다도 단 한 번의 미사 은총이 더 크다는 말로 맺고자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