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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월 8일 재향군인의 날을 생각하며 <서대문 독립공원>을 가다.
지난 10월 8일은 재향군인의 날이었습니다. 국토방위에 대한 인식을 새롭게 하고 재향군인 상호간의 친목을 도모하기 위하여 지정한 날입니다.
재향군인의 날의 기념하는 10월 8일은 1961년 5월 8일에 세계향군연맹의 회원국으로 가입하였기 때문에 1965년 이 날을 ‘재향군인의 날’로 지정하였습니다. 그러나 어버이날과 중복된다는 문제가 지속적으로 제기됨에 따라 2002년 기념일을 10월 8일로 변경하였습니다.
재향군인의 날을 역사를 거슬러 올라가면 아래와 같은 이야기로 시작합니다.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국가의 존립은 그 나라의 국군에 의해 이루어져 왔습니다. 나라의 흥망성쇠도 국가의 간성이자 보루인 국군이 강하고 약한 정도에 의해 큰 변화를 보였다는 것도 주지의 사실입니다. 우리 나라 역시 고조선 이래 반만 년 동안 나라와 겨레의 확고한 안전을 보장하기 위해 우리 겨레에 의해 이루어진 군대를 조직·운영해 온 유구한 역사를 갖고 있습니다.
일제가 태평양전쟁을 일으키자 대한민국 임시정부는 1941년 12월 9일 정식으로 일본과 독일에 대해 선전포고를 하였습니다. 이로써 광복군은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국군으로서 중국은 물론, 영국·미국 등 연합군과 어깨를 나란히 하고 중국전선과 미얀마전선 등에서 대일전쟁을 수행하였습니다. 특히 1943년 6월부터 인도·버마 전선에 광복군이 투입돼 일본군에 강제 징집된 조선 출신 장병들에 대한 선무공작에서 영국 측에 절대적인 도움을 주었습니다.
1944년에는 중국과 새로운 군사협정을 체결, 우리 광복군의 독자적인 군사행동권을 확보하였으며, 1945년에는 국내 진입작전의 일환으로 국내 정진군(國內挺進軍) 총지휘부가 설립되었습니다. 이는 미국이 1945년 5월 수립한 ‘일본과 한국에 대한 침공 및 점령을 위한 전략 계획’에 의해 광복군이 미군의 OSS부대와 합동으로 국내에 진입, 일본군을 무장해제시키려던 계획이었습니다. 이 작전에 의해 광복군이 국내 정진군으로서 제반 훈련을 마치고 발진 명령만을 기다리고 있던 차에 안타깝게도 일제가 연합군에게 무조건 항복함으로써 좌절되고 말았습니다.
하지만 무려 50년에 걸친 장기 대일전쟁을 끈질기게 수행함으로써 광복 후 대한민국과 우리 국군의 정통성을 확고한 반석 위에 올려놓을 수 있었습니다. 바로 그런 점에서 국가와 민족을 수호하는 우리 군(軍)은 대한제국 국군 → 의병 → 독립군 → 광복군 → 대한민국 국군으로 이어지는 역사적 의의를 갖게 되었습니다. (재항 군인회 역사 소개 글 中에서)
10월 달은 한글날도 있고 개천절, 국군의 날, 재향군인의 날이 있어서 나라사랑에 대해서 특별히 더 많은 생각을 하게 됩니다.
특히 우리나라를 지켜온 애국열서, 그리고 나라를 위해 목숨을 아끼지 않은 군인들이 있었기에 우리나라가 지금 이렇게 평화롭게 선진국 대열에 합류하여 발전할 수 있었다는 생각을 해봅니다.
그런 점에서 서대문에 있는 <독립공원>을 찾아갔습니다. 독립공원은 지금은 공원으로 잘 조성이 되어 있어 서재필 선생의 동상과 독립문이 있고 옆에는 서대문 형무소가 자리하고 있습니다.
우리나라의 평화와 애국을 위해서 몸 바쳐간 많은 사람들, 그리고 군인들의 오랜 역사와 투철한 애국정신을 담고 있는 재향군인의 날, 우리나라를 위해서 열심히 몸과 마음을 다해 나라를 지키는 군인의 날을 생각하면서 이곳 서대문 독립공원의 모습을 담아보았습니다.
앞으로도 우리나라를 지키기 위해서 노력하는 군인들과 많은 사람들에게 감사함을 표하면서 우리나라의 평화로움과 국민들이 안전하게 오늘을 최선을 다해 보낼 수 있음에 대해서 다시 한번 감사함을 전하며 서대문 독립공원에서 그 감사함을 마음으로나마 전해봅니다.
<취재 : 청춘예찬 박수영 어머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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