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을 위한 행진곡"이 도대체 무엇이길래.... "임을 위한 행진곡"이 도대체 무엇이길래.... "임을 위한 행진곡" 가사 (歌辭)
■ 임을 위한 행진곡 가사
사랑도 명예도 이름도 남김없이
한평생 나가자던 뜨거운 맹세
동지는 간데없고 깃발만 나부껴
새날이 올 때까지 흔들리지 말자
세월은 흘러가도 산천은 안다
깨어나서 외치는 뜨거운 함성
앞서서 나가니 산 자여 따르라
앞서서 나가니 산 자여 따르라
<작사 : 백기완 // 작곡 : 김종률>
아티스트:노래를 찾는 사람들//앨범노래를 찾는 사람들 (20주년기념음반)앨범정보:2004.10.07 정규앨범
한국민족문화대백과 : "임을 위한 행진곡"
유형:-작품 // 시대:-현대 // 성격:-민중가요
작가:-백기완 원작 // 황석영 작사 // 김종률 작곡
[정의]1980년 5·18광주민주화운동을 추모하는 노래이자,
한국의 민주화운동을 대표하는 민중가요.
[내용]1981년 5월, 백기완의 미발표 장시「묏비나리」(1980)의
한 부분을 차용하여 소설가 황석영이 가사를 짓고,
전남대 출신으로 대학가요제에서 수상한 바 있는
김종률이 곡을 지었다.
이 노래는 1970년대 말부터 광주의 극회 광대에서 활동하던
문화운동 관련자들이 모여 지하방송 ‘자유광주의 소리’를
창설하기로하고 첫 작품으로 만든 음악극 「넋풀이 굿(빛의 결혼식)」
에 포함되어 있다.
「넋풀이 굿」은 광주민주화운동 과정에서 전사한 두 남녀의
영혼결혼식을 그 내용으로 하고 있으며
「임을 위한 행진곡」은 고인이 된 두 남녀가 저승으로 가면서
‘산 자’에게 남기는 마지막 노래로 배치되어 있다.
‘사랑도 명예도 이름도 남김없이’, ‘동지는 간 데 없고
깃발만 나부껴’ 등의 가사는 온 몸을 바쳤던 치열한 투쟁과
엄청난 죽음으로 귀결된 비극적 패배의 절망을
고스란히 담고 있으며, ‘앞서서 가나니 산 자여 따르라’는
이러한 비극적 죽음과 절망을 딛고 나아가는
비장한 의지와 용기, 결단을 잘 표현하고 있다.
이러한 가사 내용은 대중적이면서도
비장한 4/4박자 단조의 행진곡 음악과 조응한다.
음악극 「넋풀이 굿」은 가정용 카세트녹음기로 녹음되어
서울로 옮겨졌고, 여기에 수록된 「임을 위한 행진곡」은
서울과 광주에서 급격히 빠른 속도로 구전되며 전국으로 확산되었다.
[현황]
1980년대 말부터 이 노래는 민주화운동 집회를 시작할 때
민주화운동의 열사들에게 바치는 묵념과 함께 불리는 노래가 될
정도로 한국 민주화운동을 대표하는 노래가 되었다.
김대중 정부 이후 5월 18일이 국가 기념일로 지정된 이후
이 노래는 기념식장에서 공식적으로 제창되었으나
2010년과 2013년 국가보훈처가 기념식에서 이 노래를 빼려다
유족들의 반대에 부딪치는 사건이 발생했고,
2013년 6월 국회에서 이 노래를 5·18 광주민주화운동의
공식 추모곡으로 지정하자는 결의안이 통과되었다.
[의의와 평가]
1970년대의 구호적 행진곡의 유행을 종식시키고, 비극성 등의
서정성을 풍부하게 담은 행진곡의 시대로의 이행을 확고히 했다.
이 작품이 보여준 비장한 단조 행진곡은 이후 민중가요의
가장 대표적인 양식으로 자리매김 되었다.
[왜곡]
임을 향한 행진곡은 5 · 18 민주화 운동 중 희생된 윤상원과
노동 운동가 박기순의 영혼결혼식을 위해 만들어진 곡입니다
임은 각기 윤상원과 박기순을 서로 지칭하는 것이며 살아있는
다른 민주투사들을 일깨우고자 하는 내용을 담고 있습니다
황석영선생이 방북을 했을때 북한노동당에서 불법적으로
곡을 사용히고 황석영선생을 이용하는 바람에
임이 김일성을 뜻한다고 논란이 있으나
황석영 선생이 직접 북쪽에 이의를 제기하는 등
적극적으로 대응하였음에도 불구하고
5·18이 불편한 많은 사람들은 곡의 내용을 변질시키고
있습니다
1980년 5·18 광주 민주화 운동 중 계엄군에 희생된 윤상원과
1979년 노동 현장에서 야학을 운영하다가 사망한
노동운동가 박기순의 영혼결혼식(1981년)에 헌정된 노래다.
소설가 황석영이 시민사회운동가 백기완의 옥중지
<묏비나리>의 일부를 차용해 가사를 썼고,
당시 전남대 재학생이던 김종률이 작곡했다.
처음에는 '님을 위한 행진곡'으로 알려졌으나,
최근에는 표준어 규정에 따라 통상 '임을 위한 행진곡'이라고
부른다.
‘임을 위한 행진곡’은 1997년 5·18 민주화운동 기념일이
정부 기념일로 지정된 이후 2008년까지 5·18 기념식에서
제창돼 왔다.
그러나 2009부터 2년간은 해당 노래를 본행사에서 제외하고
식전 행사에서 합창단이 부르는 방식으로 변경됐다.
이에 광주 5·18 유가족회를 포함한 시민단체들이 반발해
광주 금남로 등에서 별도의 5·18 기념식을 여는 등 반쪽 기념식
논란이 일기도 했다.
또한 야당 및 5·18단체는 본 행사 식순에 ‘임을 위한 행진곡’을
반영해 제창할 것을 지속적으로 요구했다.
이에 2011년부터는 ‘임을 위한 행진곡’이 본 행사에 포함됐으나,
합창단이 합창하고 원하는 사람만 따라 부를 수 있도록 했다.
이 곡은, 1980년 518민주화운동 당시에 희생된
윤상원과 박기순의 영혼결혼식에 헌정된 노래극(뮤지컬)
"넋풀이 - 빛의 결혼식"에 삽입된 노래로,
그 노래극의 마지막을 장식하는 합창곡입니다.
이 노래극은 1981년에 만들어졌는데,
소설가 황석영과 당시의 전남대 학생이던 음악인 김종률등
광주 지역 노래패 15명이 공동으로 만들었다고 합니다.
"임을 위한 행진곡"은 김종률이 작곡하고,
당시 YMCA 위장결혼식 사건으로 서대문구치소에 수감중이던
백기완이 옥중에서 쓴 장편시 "묏비나리 - 젊은 남녘의 춤꾼에게
띄우는"의 일부를 차용하여 황석영이 가사를 붙인 노래입니다.
(백기완에 대해 아는 사람은 그를 선생이라고 부르고,
모르는 사람은 그를 빨갱이라고 부릅니다....)
이 노래는 당시 전두환 정권의 감시를 피해 황석영의 자택에서
이동식 카세트 녹음기를 이용하여 녹음하여 1982년 2월에
윤상원과 박기순의 유해를 광주 망월동 공동묘지에 합장하면서
거행된 영혼결혼식에서 처음으로 공개되었다고 합니다.
따라서, 이 곡을 처음을 부른 건 황석영, 김종률 등을 포함한
그 노래패 15명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 곡은 이후 카세트테이프 복사본, 악보 필사본 및 구전을 통해
민주화 및 노동운동세력 사이에서 민중가요로서 빠르게
유포되었고, 518민주화운동의 상징적인 대표곡이 되었습니다.
이 곡은 군사독재시절 유포와 가창이 금지된 금지곡이었던 탓에
구전으로 전해져, 가사와 가락이 부르는 사람에 따라 약간
다르다고 합니다.
그 중 가장 일반적으로 알려진 가사가 518 민주화운동 추념식에서
기념곡으로 사용되었는데,
2008년에 이 곡의 작곡자인 김종률이 518민주화운동 30주년 기념
뮤지컬을 준비하면서
그에 쓰일 곡을 모아 2008년 5월에 발표한 음반 "님을 위한 행진곡"에
수록된 그 곡의 가사는, 구전되면서 변형된 가사를 바로잡고
백기완의 원작을 최대한 그대로 보존하기 위해 수정하였다고 합니다.
이 때 이 곡을 솔로로 부른게 가수 서영은입니다.
원래는 "님을 위한 행진곡"이었는데, 표준어 규정에 따라
"임을 위한 행진곡"이라고 부른 것이라 합니다.
이러한 작품의 경우는 원래의 표현을 존중해주는 것이 맞겠지요?
가사의 원작자인 백기완은 1998년
"나는 이 노래에 대한 소유권도 저작권도 가지고 있지 않다.
이미 이 땅에서 새 날을 기원하는 모든 민중의 소유가
됐기 때문이다."라며 저작권 불행사 입장을 밝혔다고 합니다.
임을 위한 행진곡은 매년 5·18 민주화운동 추모행사에서
유족과 시민들 사이에서 518 민주화운동을
사실상 대표하는 노래로 제창되어 오다가,
1997년 518 민주화운동 기념일이 국가기념일로 승격되어
정부 주관으로 첫 기념식을 열었을 때부터 2008년까지
정부주관 기념식 본행사 말미에 기념곡으로서
제창되었습니다.
그런데 쥐바기 정부 시기였던 2009년부터
'임을 위한 행진곡' 제창이 공식 식순에서 제외되고
식전 행사로 밀렸으며, 2011년부터는 '임을 위한 행진곡' 제창이
폐지되고 합창단의 기념공연시 합창에 삽입되는 것으로
바뀌었다고 합니다.
2013년 국가보훈처는 '임을 위한 행진곡'을 대체할 별도의
5·18 민주화운동 공식 기념곡 제정을 추진하겠다고
했다는데, 지금은 어떤지 잘 모르겠습니다.
아무런 명분도 없이 남에게 피해나 주는
데모나 강성노조의 불법시위에서 이 곡을 불러
그 가치를 더럽히는 일이 없었으면 좋겠습니다.
[해설]
<임을 위한 행진곡〉은 대한민국의 민중가요로서, 5·18 민주화운동 중
희생된 윤상원과 노동운동가 박기순의 영혼결혼식을 위하여
1981년 작곡되었다.
가사의 원작자는 백기완, 작곡자는 김종률이다.
처음에는 〈님을 위한 행진곡〉으로 알려졌으나, 최근에는 표준어 규정에
따라 통상 〈임을 위한 행진곡〉이라고 부른다.
1982년 2월 윤상원과 박기순의 유해를 광주 망월동 공동묘지
(현 국립 5·18 민주 묘지)에 합장하면서 영혼결혼식을 거행할 때
처음 공개됐는데, 이 노래는 이후 카세트테이프 복사본, 악보 필사본
및 구전을 통해 민주화 및 노동운동 세력 사이에 이른바 '민중가요'로써
빠르게 유포되었고, 5·18 민주화운동의 상징적 대표곡으로서
자리 잡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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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다는 것의 의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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