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주는 장마처럼 비가 오고 있다.
아침에 일어나도 개운하지 않고 먹구름처럼 이불이 무겁다.
이런 날씨는 어르신들의 아팠던 몸이 더 힘들어지고 마음도 우울해진다.
월요일부터 기력이 없던 이영애 어르신이 기어이 거동이 힘들어졌다.
병원 진료를 보고 영양제 수액을 맞았는데도 다른 날과 다르게 일어나지 못한다.
휠체어에 앉아 겨우 식사를 하고 집에 가고 싶다고 한다.
“아들한테 가야 돼. 우리 아들한테 전화 해. 죽을란 가비라”라며 축 쳐진다.
평소 아들이 힘들어 할까봐 센터 다니며 지내야 한다던 어르신인데 아들을 부르라고 하는 걸 보니 많이 힘든가 보다.
다음 날 아침 일찍 아들한테 전화가 왔다.
“팀장님, 어머니 울산으로 모시고 가야 될 거 같아서 연락 드립니다.”
여러 번 울산 아들 집에 다녀 오던 분이었지만 이번에 가면 오지 못할 거 같았다.
운행을 끝내고 바쁘게 어르신 댁에 들렀다.
“울산에 가서 병원에 입원했다가 좋아지면 올께요. 어쩌면 요양원에 갈 수도 있을 거 같아요. 힘이 많이 없으시네요” 라며 마당에서 만난 아들이 얘기한다.
어르신은 울산에 갈 채비를 하고 있었다.
외투를 입는 어르신을 돕고 양말을 신켜 드렸다.
“나 땜에 애 먹었어. 고마바. 인자 아들따라 가야 돼.”라며 내 어깨를 토닥이는 어르신을 꼭 안아 드렸다.
건강하게 다시 오라고 얘기를 하고 싶은데 목이 메여 말이 나오지 않았다.
“다리에 힘이 없어. 죽어야 돼. 와 안 죽고 애를 미기는지 몰라”라며 어르신도 나를 안아주었다.
한참을 그대로 있었다.
“기다릴께요. 기운 차려 꼭 오세요.”라며 다른 때보다 긴 인사를 했다.
3년 전,
이용하던 센터에서 더 이상 어르신을 모시지 못한다고 했을 때였다. 아들은 요양원과 노인병원 여러 군데를 직접 가 보았지만 어머니를 모실 곳은 한 곳도 없었다고 했다.
누군가 효 센터라면 어르신을 받아 줄거라고 했고, 마지막 희망이라며 떨리는 목소리로 상담했었다.
어르신을 처음 만났을 때 ‘거창 내 집에서 살다가 죽을기라. 그게 소원이라’고 하셨다.
거창은 죽어도 떠나기 싫다고 하셨다.
그때부터 울산에 사는 아들은 매주 다녀가며 어르신이 잘 지낼 수 있도록 최선을 다했다.
센터 다니는 동안 힘든 고비가 여러번 있었지만 어르신의 소원은 늘 한결같았다.
하지만 이번은 달랐다.
거창을 떠나기 싫어했던 어르신은 다른 때보다 많이 지쳐 보였다.
두 손을 모아 간절한 마음으로 빌어본다.
꽃피는 봄이오면 어르신을 모시고 곰실 나들이를 다녀올 수 있기를.
2024년 2월 21일 수요일, 신정오
첫댓글 그냥 막 울컥합니다.
출근하는 길에 보여지는 그곳
초등학교 시절 윗집아지매였던 그곳
내가 퇴사하기전 까지는 매일 보게 될 어르신댁입니다.
마지막으로 어르신을 배웅하던 아침~
사무실 자리에 덥석 앉으며 북받치는 감정을 추스렸던 우리 신정오팀장님 참 큰일했습니다.
그리고 고맙습니다.
몇년전 다른기관에서 돌봄에 어려움이 있어 정오팀장 믿고 우리기관으로 의뢰했던 어르신입니다.
서로에게 오래도록 기억될 겁니다.
우리 주간보호선생님들 모두 수고많았습니다.
어르신이 효센터에 어떻게 오셨고 모셨는지를 알기에 안타깝고 마음 아픔에 공감이 갑니다.
얼른 기력을 회복해 어르신이 살던 집으로 돌아와 곰실 나들이 함께 할수 있길 기원합니다~~
다른 기관에서도 저희 기관에 연계한 거 보면 이유가 있지 않을까요?
늘 진심으로 어르신을 모시고 생각하는 모습을 보고 저도 많이 배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