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윗의 첫 아들 암논은 왕위 계승 순위 1위였다. 그리고 그 다음은 아비가일의 소생인 길르압인데 어떤 이유인지 삼하3:3절 이후 그에 대한 기록이 전혀 나오지 않는 것을 봐서 어쩌면 길르압은 일찍 죽었을 가능성이 높다. 그 다음은 압살롬이다. 그에게 아리따운 여동생이 하나 있었는데 그녀가 다말이다.
(삼하 13:1) 그 후에 이 일이 있으니라 다윗의 아들 압살롬에게 아름다운 누이가 있으니 이름은 다말이라 다윗의 다른 아들 암논이 그를 사랑하나 (삼하 13:2) 그는 처녀이므로 어찌할 수 없는 줄을 알고 암논이 그의 누이 다말 때문에 울화로 말미암아 병이 되니라
“그 후에 이 일이 있으니라”는 표현은 적어도 이 사건이 전장의 다윗의 범죄와 무관하지 않다는 뜻이다. 13장부터 시작된 다윗의 삶에 찾아든 불행들은 어느 정도 다윗이 저지른 죄악의 열매들이었다. 그가 욕망을 절제하지 못해서 저지른 한 순간의 죄악이 그를 평생 원수에게 발목 잡혀 살게 하였다. 그의 부하 요압의 눈치를 평생 보고 살아야 했고 자식들이 동일한 범죄를 저질러도 책망 할 수가 없었다. 밧세바를 범하고 우리아를 죽인 그 사건으로 말미암아 다윗의 삶은 완전히 뒤집어 지고 말았다. 그는 모든 일에 자신감을 잃어버렸고 그 어떤 일에도 바른 훈계를 할 자신감을 상실하였다. 죄는 바로 사람을 그렇게 만든다.
(삼하 13:14) 암논이 그 말을 듣지 아니하고 다말보다 힘이 세므로 억지로 그와 동침하니라 (삼하 13:15) 그리하고 암논이 그를 심히 미워하니 이제 미워하는 미움이 전에 사랑하던 사랑보다 더한지라 암논이 그에게 이르되 일어나 가라 하니
다윗의 장자 암논은 매우 호색적인 인물이었다. 그는 그의 이복누이, 압살롬의 동생 다말을 연애하였지만 그것은 그의 욕망이었지 사랑이 아니었다. 동생의 간곡한 부탁과 거절에도 불구하고 억지로 다말을 강간하고 욕구를 채우고 난 후에는 다말을 내 쫓아 버렸다.
(삼하 13:16) 다말이 그에게 이르되 옳지 아니하다 나를 쫓아보내는 이 큰 악은 아까 내게 행한 그 악보다 더하다 하되 암논이 그를 듣지 아니하고 (삼하 13:17) 그가 부리는 종을 불러 이르되 이 계집을 내게서 이제 내보내고 곧 문빗장을 지르라 하니
이 사건은 다윗의 가문에 형제간의 살인극을 부르고 압살롬의 반역의 단초가 되었다. 다윗은 암논의 이러한 잘못에 화를 냈지만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성경은 단지 (삼하 13:21) 다윗 왕이 이 모든 일을 듣고 심히 노하니라고만 기록하였지 그 후에 어떤 조치도 취하지 않았다. 이것은 그 자신도 또한 탐욕적 방탕에서 자유롭지 못한 까닭이었다.
가장 유능한 사람들, 하나님의 사업에 힘 있게 일할 수 있는 인물들을 이런 방식으로 묶어놓는 것이 사단이 흔히 즐겨 쓰는 방법이다. 사단은 사람마다 가진 약점을 잘 안다. 어떤 사람은 이성 문제에 넘어지게 하고, 어떤 사람은 경제적인 문제로 실수하게 만든다. 그렇게 한번 죄를 범하고 나면 그 후로 원수는 그들의 영향력을 현저하게 떨어지게 하고 입을 막음으로 하나님의 사업에 해를 가한다. 하나님의 영광은 가리어지고 그 사람의 유용성은 한 순간에 줄어들고 만다.
누구나 사람은 완전하지 않다. 그리고 끊임없이 자아가 하나님을 붙잡은 손을 놓게 하려고 대기하고 있다. 원수는 인생의 앞길에 덫을 놓고 마치 뱀이 하와를 유혹하고 시므이의 아들 요나답이 간계를 꾸며 암논에게 말하는 것처럼 우리가 죄악의 구덩이에 빠지게 할 함정을 판다. 매순간 자신의 욕망을 선한 의지의 지배력 아래 굴복시키고 하나님을 바라보지 않는다면 우리도 한 순간에 무너지게 된다.
“죄의 오점을 제거하는 데는 일생의 노력을 요구한다. 자아를 억제하고 부인하는 데는 매일 새로운 노력이 필요하다. 매일 싸워야 할 새로운 싸움이 있고, 얻어야 할 새로운 승리가 있다. 매일 심령은 십자가의 강력한 승리를 위해 하나님께 열렬하게 간구하도록 강권되어야 한다.”(1보감, 537)
하나님 아버지! 우리가 결코 완전하지 않음을 고백합니다. 자아를 신뢰하지 않도록 도와주소서. 날마다 주님께 시선을 고정하고 원수가 승리하는 빈틈을 주지 않게 하소서. 주님만을 바라봅니다. 주님을 의지합니다. 주님손 꼭잡고 이 길을 가게 하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