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이라는 복음 성가가 있습니다.
저는 행복이라는 복음 성가를 3 번 들은 기억이 있습니다. 처음엔 극동방송을 통해서 들었습니다. 그땐 아, 좋다, 찬양 사역자가 노래를 잘하는 구나, 그리고 잊어버렸습니다.
두 번 째는 하니 찬양 사역자가 우리교회 오셨을 때, 원 가수로부터 직접 들었습니다. 아이돌 가수들의 음악 지도를 할만큼 노래 솜씨가 대단한 찬양 사역자가 부르는 걸 들었습니다. 그때도, 아 좋은 데, 하고 잊었습니다.
그리고 세 번 째는 지난 9월 달, 교회 생일 주일 저녁에 기관별 복음 성가 경연대회를 할 때, 여선교회 막내인 6 여선교회 회원들이 이 곡을 불렀습니다. 그냥 잔잔하게 불렀습니다.
그런데 이게 웬일일까요?
이튿날 새벽에 새벽 예배를 드리러 눈을 떴는데 생각나는 겁니다. 이것이 행복이라오. 이것이 행복이라오. 그리고 보름이 지났는 데, 또 오늘 새벽에도, 눈을 떴는데, 생각이 나는 겁니다.
그리고 건듯하면 생각나요. 이것이 행복이라오.
지난 주일에 명절을 앞두고 어려운 이웃들을 찾아갔습니다. 이것 저것 마련해서 찾아 뵈었습니다. 그런데 얼마나 차가 밀리는 지, 원망이 슬슬 올라오려고 할 때 생각났습니다.
‘이것이 행복이라요.’
가사는 이렇습니다.
“화려하지 않아도 정결하게 사는 삶/ 가진 것이 적어도 감사하며 사는 삶/ 내게 주신 작은 힘 나눠 주며 사는 삶/ 이것이 나의 삶의 행복이라오.
눈물 날 일 많지만 기도할 수 있는 것/ 억울한 일 많으나 주를 위해 참는 것/ 비록 짧은 작은 삶/ 주 뜻대로 사는 것/ 이것이 나의 삶의 행복이라오./ 이것이 행복 행복이라오/ 세상은 알 수 없는 하나님 선물/ 이것이 행복 행복이라오 / 하나님의 자녀로 살아가는 것/ 이것이 행복이라오.”
눈물 날일 많지만 기도할 수 있는 것, 억울한 일 많으나 주를 위해 참는 것, 이것이 행복이라오. 이 대목에서는 종종 눈물도 흘렀습니다.
시편 16편은 다윗의 노래입니다. 시편 16편에 제목을
붙인다면 역시 ‘이것이 행복이라오.’일 것입니다.
다윗이 노래한 이것이 행복이라는 것을 살펴 봅니다.
첫 째, 다윗은 체험했습니다. 사울왕이 그렇게 잡으려 해도 잡히지 않는 것은 하나님께서 보호하시기 때문이라는 것을, 하나님은 나의 보호자이십니다, 이것이 나의 행복이라오.
둘 째, 하나님이 바로 나의 행복이십니다.
만약 자녀들이 부모님께 와서 ‘엄마는 나의 행복이십니다. 아빠는 나의 행복이십니다.’라고 한다면 심장이 당장 뜨거워지지 않을까요? 다윗이 이런 노래를 부를 때 하나님은 얼마나 기뻐하셨을까요? 오늘도 노래합니다.
‘주님, 주님은 나의 행복이십니다.’
셋 째, 다윗은 사울왕을 피하여 도망다니면서 외로웠습니다. 고독했습니다. 나를 알아 줄 사람이 어디 있을까?
그러나 그것은 오산이었습니다. 사람들이 다윗에게로 몰려 들었습니다. 억울함을 당한 자, 괴로운 자들이 다윗에게 몰려 들어 다윗의 편이 되어 주었습니다. 아둘람 굴에서는 400여명이 몰려 들기도 했습니다.
그리고 다윗을 위해 목숨을 건 장수들이 많았습니다.
그래서 노래합니다.
‘땅에 있는 성도들은 존귀한 자입니다.’
우리는 서로가 서로에게 이렇게 노래할 수 있을 것입니다. ‘나는 당신에게, 당신은 나에게 존귀한 자입니다.’라고 노래할 수 있을 것입니다.
다윗이 행복을 노래한 네 번 째 노래는
“내게 줄로 재어 준 구역은 아름다운 곳에 있음이여 나의 기업이 실로 아름답도다.”
내 분깃 이대로, 내 모습 이대로, 내게 주어진 여건 이대로 아름답다고 노래합니다.
이것이 행복입니다. 이것이 축복입니다.
다시 생각납니다.
‘화려하지 않아도 정결하게 사는 삶, 가진 것이 적어도 감사하며 사는 삶, 눈물 날 일 많지만 기도할 수 있는 것, 억울한 일 많으나 주를 위해 참는 것.’
이것이 행복이라오. 이것이 행복이라오.
하나님의 자녀로 살아 간다는 것,
그러니 세상은 온통 하나님의 선물입니다.
오늘도 하나님이 주신 선물입니다. 이것이 행복이라오 노래하면서 행복한 삶이되시기를 간절히 소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