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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your side
(여호수아 1:1-9)
프로 야구 좋아하십니까?
얼마 전 2024 신인 드래프트에서
1차 지명된 덕수고 정현우 선수라고
들어보셨나요?
이 친구가 제가 예전 교회에서
가르쳤던 학생이었어요.
1차에서 1순위로 지명되어
계약금 5억원을 받고
키움 히어로즈에 입단했습니다.
그 친구 소식 덕분에 프로야구에
흥미를 갖게되었어요.
그러다 어떤 선수에 대한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이 선수는 2022년 1차 지명으로
프로에 들어갔어요.
이후 국가대표로 뽑혀
아시아프로야구챔피언십(APBC) 2023에
나갔지요.
그렇게 승승장구할 것 같았던
그의 인생에 위기가 찾아왔습니다.
결승전에서 손가락 부상을
당하고 말았습니다.
심각한 부상이라 곧장 수술대에 올랐죠.
결국 4개월이나 재활 훈련을
해야만 했습니다.
그렇게 모두가 그의 미래가 끝날 것처럼
예상했어요.
그러나 그는 위기를 기회로
만들었습니다.
웨이트 트레이닝을 하며 몸을 키웠고,
타격 폼을 새롭게 장착했죠.
그랬더니 완전히 달라진 모습으로
돌아왔습니다.
그렇게 프로 데뷔 3년 차인 2024년에
KBO 리그 최초 월간 10-10 클럽,
최연소·최소 경기 30-30 클럽,
최연소 100-100 클럽,
단일 시즌 최다 득점 신기록 등
각종 기록을 갈아치우며 역대급 선수가
되었습니다.
그해 최연소 골든글러브와
KBO MVP를 수상하였습니다.
그가 바로 기아 타이거즈의
‘김도영’ 선수입니다.
누구나 인생을 살면서
‘이건 도저히 안 돼’라는 위기를 만납니다.
김도영 선수에겐 부상이 그랬고요.
그러나 그 위기를 기회로 만드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런 사람은 반드시 승리하게 되어있죠.
이것은 영적인 전쟁에서도 동일합니다.
날마다 우리 마음에 드는 낙심과 좌절이라는
생각과 싸워 이기려면
영적인 힘이 필요해요.
오늘 본문에서 여호수아도
이와 비슷한 고민 속에 잠겨 있었습니다.
그는 모세의 죽음 이후에 이스라엘 민족을
이끌어갈 지도자가 되었습니다.
당시 이스라엘 백성은
자그마치 200만 명이나 되었다고 합니다.
집안의 가장으로
한 가정을 이끌고 가는 것도 버거운데,
여호수아의 마음이 어땠겠습니까?
저라면 너무 큰 부담감 때문에
매일 밤을 뜬눈으로 보냈을 것 같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그의 생각을 아셨습니다.
그래서 그에게 찾아와 말씀해 주시죠.
과연 그 말씀은 무엇이며,
오늘 우리에게 주는 교훈은 어떤 것일까요?
말씀 속에서 그 의미를 살펴보겠습니다.
말씀드린 것처럼 여호수아는
갑작스러운 변화 속에 놓여 있었습니다.
40년 동안 광야를 빙빙 돌며
약속의 땅만 바라보고 왔는데
이스라엘의 영적 지도자인
모세가 죽었습니다.
이제 200만 명의 시선이,
400만 개의 눈이 여호수아를
향하고 있습니다.
먼저 해결해야 할 문제는
요단강을 건너는 일이었습니다.
넘실대는 요단강을 바라보며
여호수아는 어떤 기분이었을까요?
넘어가자니 강물이 보입니다.
또한 넘어간다 한들,
가나안 족속들과 싸워서 이긴다는
보장도 없습니다.
더구나 여호수아는 이전에
가나안 족속을 직접 보고 왔던
정탐꾼 출신이었습니다.
그들이 얼마나 장대한지
충분히 경험했던 사람이었죠.
그러니 더욱 고민했을 것입니다.
누군가는 이렇게 말했을 것입니다.
'차라리 건너지 말고 이 자리에 머무릅시다.
여기 앞에 강도 있으니
물 걱정은 안 해도 됩니다.'
생각해보면 이들은 광야 생활 내내
물 때문에 힘들었습니다.
마실 물이 없어서 하나님을 향해
불평불만을 쏟아냈었죠.
그런데 지금은 요단강이
눈 앞에 보입니다.
물 때문에 고생하는 일은 없다고
생각했을 것입니다.
이런 말을 듣고 있던 여호수아,
그는 매일 밤 두통에 시달리며
얼굴 빛이 어두워졌을지도 모릅니다.
바로 그때 하나님께서 그에게 나타나셔서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2절입니다.
여호수아 1:2
내 종 모세가 죽었으니
이제 너는 이 모든 백성과 더불어
일어나 이 요단을 건너
내가 그들 곧 이스라엘 자손에게 주는
그 땅으로 가라
하나님께서 여호수아에게 나타나서 하신
말씀이 무엇입니까?
“일어나, 건너, 가라”는 거였어요.
여기서 일어나라는 말은
히브리어로 ‘쿰’입니다.
이 말은 ‘자리를 박차고 일어서다’,
‘강하게 하다’입니다.
다시 말해 ‘지체 말고 망설임 없이
담대히 일어서다’는 말입니다.
근심과 걱정의 자리에서 일어나라는 거죠.
사람은 누구나 근심거리를 만납니다.
내 힘으로 도저히 해결할 수 없는
문제를 마주할 때가 옵니다.
그러면 다리 힘이 풀리고
아무것도 할 수 없게 되죠.
정말 해야 할 일을 하지 못하고
앉아만 있게 됩니다.
그러나 리더는 그래선 안 됩니다.
근심의 자리에 너무 오래 머물러서는
안 됩니다.
다시 일어나 바로 서야 합니다.
잠언 기자는 우리에게
영적인 지혜를 알려줍니다.
잠언 24:10
네가 만일 환난 날에 낙담하면
네 힘이 미약함을 보임이니라
환난이 우리를 놀라게 할 수는 있지만,
그것이 낙담으로 이어지면 안 된답니다.
하나님은 여호수아에게
‘강하게 일어나라’고 하셨어요.
오늘 우리도 똑같습니다.
현실의 문제에 지나치게 몰두하면
예배의 자리에 나아와도
말씀이 들리지 않습니다.
설교 시간 내내 어떻게 문제를
해결할지에만 골몰합니다.
‘이번 달 카드값이 예상보다
많이 나왔는데 어떡하지?’
‘내일 면접인데 뭘 준비하지?’
‘예상보다 수입이 적어서 생활비도
적자인데 어쩌지?’
이런 걱정에 파묻혀 살면
지금 가야할 길을 가지 못할 수 있어요.
그런 우리를 향하여 하나님은 말씀하십니다.
“사랑하는 아들아,
사랑하는 내 딸아,
일어나 걸어, 가라!”
그렇다면 우리가 일어설 수 있고
걸어갈 수 있는 근거는 어디에 있을까요?
함께 3, 4절을 읽겠습니다.
여호수아 1:3, 4
내가 모세에게 말한 바와 같이
너희 발바닥으로 밟는 곳은
모두 내가 너희에게 주었노니
곧 광야와 이 레바논에서부터
큰 강 곧 유브라데 강까지
헷 족속의 온 땅과
또 해지는 쪽에서 대해까지
너희의 영토가 되리라
여기서 먼저 주목할 단어는
“주었노니”입니다.
이 말은 히브리어로 “나탄”입니다.
영어로 ‘give’죠.
그런데 이 단어가 미래형이 아닌
완료형으로 쓰였음을 주목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아직 가보지도 않은 그 땅을
이미 ‘주었다’고 말씀하십니다.
너무 황당한 말씀 아닌가요?
아직 여리고의 견고한 성은
무너지지 않았습니다.
심지어 요단강도 건너지 못했습니다.
가나안엔 이방 민족들이
득실거리고 있습니다.
저라면 이렇게 생각했을 것입니다.
"하나님, 지금 농담하시는 거죠?
그냥 ’줄 것이다‘라고만
말씀해 주셔도 돼요."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아주 확실하게 선언하세요.
“내가 그 땅을 주었다.”
왜 이렇게 하셨을까요?
여호수아가 보기엔 이제 시작인데,
하나님께서 보실 땐 달랐어요.
이미 가나안을 이스라엘에게 주셨습니다.
여기서 우리가 알 수 있는 게 하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무언가를 맡기실 때는
그 일을 능히 감당할 수 있는 힘도
이미 주셨다는 사실입니다.
사사기 7장에 보면 기드온의 이야기가
등장합니다.
기드온은 백성들을 모아 전쟁을
치를 준비를 합니다.
처음에 32,000명이 모여요.
그런데 하나님께서 너무 많다고
갈 사람 가라고 하십니다.
그래서 남은 자가 만 명입니다.
그런데 이 사람들도 많다고 하십니다.
그러더니 물가로 가서 그들을 시험하여
딱 300명만 남게 하고 다 돌려보내십니다.
당시 미디안의 군대는 성경에 따르면
13만 5천 명이었어요.(삿 18:10)
기드온의 마음은 어땠을까요?
“하나님, 이게 뭔가요?
이 사람들 데리고 어떻게 전쟁해요?
저 못해요!”
라고 생각하지 않았을까요?
그러나 하나님의 생각은 달랐습니다.
그날 밤, 겁에 질린 기드온을 향해
이렇게 말씀하시죠.
우리 함께 사사기 7장 9절을 읽겠습니다.
사사기 9:7
그 밤에 여호와께서 기드온에게 이르시되
일어나 진영으로 내려가라
내가 그것을 네 손에 넘겨주었느니라
“넘겨주었느니라”
이거 어디서 들어본 말씀 아닌가요?
맞아요.
여호수아에게 주셨던 말씀과 같죠.
아직 싸운 것도 아닌데 이미 넘겨주셨답니다.
군사는 고작 삼백 명밖에 안 돼요.
그런데 이걸로 이기시겠다고 하십니다.
여러분, 이게 말이나 됩니까?
그런데 하나님의 입장에서는 말이 돼요.
전쟁의 승리는
하나님께 달려있기 때문이에요.
이들은 항아리 안에 횃불을 감추고
나팔만 들고 적진으로 침투합니다.
깜깜한 밤에 항아리를 깨면서
나팔을 불었어요.
그리고 외칩니다.
“여호와와 기드온의 칼이다”
그러자 어떤 일이 일어나요?
여호와께서 그 온 진영에서
서로 아군끼리 치게 하셔서
승리하게 하십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의 삶에도 정복해야 할
땅들이 많습니다.
하나님 명령대로 나가서 싸워야 한다는
것도 알겠어요.
그런데 나의 부족함이 먼저 보여요.
그냥 포기하고 싶고,
그만두고 싶을 때가 있어요.
우리가 주님의 뜻을 포기하면
누가 좋아하겠습니까?
우리의 대적인 마귀죠.
마귀는 우리가 포기하길 원해서
겁을 줍니다.
아예 옴짝달짝 못하도록 말이죠.
그때 이걸 기억하세요!
전쟁의 승패가 누구에게 있는지 알죠.
전쟁의 승리는 하나님께 달려있다.
승리의 주권자이신 하나님이
이미 넘겨주셨음을 믿고 나아가십시오.
우리 모두 이 믿음 가지고,
각자의 삶의 자리에서 승리하길
축복합니다.
다시 본문으로 돌아가 봅시다.
지친 여호수아를 일어서서
걸어가게 하시려는
하나님의 두 번째 약속이 무엇일까요?
우리 함께 5절을 읽겠습니다.
여호수아 1:5
네 평생에 너를 능히 대적할 자가 없으리니
내가 모세와 함께 있었던 것 같이
너와 함께 있을 것임이니라
내가 너를 떠나지 아니하며
버리지 아니하리니
여기서 기억할 말씀이 있습니다.
“떠나지 않고 버리지 않을 것이다.”
여러분, 세상은 영원한 게 하나도 없습니다.
아무리 사랑하는 사이라 하더라도
시간이 지나면 다 헤어져요.
죽음이 그사이를 갈라놓죠.
그리고 세상은 쓸모가 없어지면 다 버립니다.
토사구팽이란 말이 있어요.
토끼 사냥이 끝나면 쓸모없어진
개를 잡아먹는다는 의미죠.
세상에서 영원한 의리는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어떠신가요?
버리지 않고 떠나지 않을 것이라고
약속하세요.
우리 함께 9절도 읽어볼게요.
여호수아 1:9
내가 네게 명령한 것이 아니냐
강하고 담대하라 두려워하지 말며
놀라지 말라
네가 어디로 가든지
네 하나님 여호와가 너와 함께 하느니라
하시니라
하나님께서는 약속하세요.
“어디로 가든지 너와 함께 할 거야!”
이 말씀은 이미 모세에게 하셨던
말씀입니다.
출애굽기 3:12a
하나님이 이르시되
내가 반드시 너와 함께 있으리라
거대한 신과 같은
바로 앞에 서야 할 모세를 향한
하나님의 약속은 함께하심이었습니다.
그 약속을 믿고 모세는 바로 왕 앞에 섰고,
이스라엘을 이집트에서 구원했습니다.
우리는 어떤가요?
앞이 보이지 않는 상황 속에서
두려워하고 있진 않습니까?
세상을 이기신 예수님께서
우리와 함께하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마태복음 28:20
볼지어다 내가 세상 끝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
이 약속을 믿으십니까?
그렇다면 우리는 다시 일어설 수 있어요.
다시 걸어갈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본문에서 8절의 역할은
무엇일까요?
우리 다시 한번 8절을 읽어볼게요.
여호수아 1:8
이 율법책을 네 입에서 떠나지 말게 하며
주야로 그것을 묵상하여
그 안에 기록된 대로 다 지켜 행하라
그리하면 네 길이 평탄하게 될 것이며
네가 형통하리라
형통이 뭘까요?
돈 많이 벌고, 넓은 집에서 사는 것인가요?
자녀들이 다 좋은 대학가고
좋은 직장에서 떵떵거리며 사는 것입니까?
아프지 않고 건강하게 장수하는 삶인가요?
물론 이것도 형통이라고 할 수 있어요.
그러나 성경적으로 볼 때 형통은
‘하나님과 함께 하는 삶’입니다.
하나님과의 동행입니다.
여기엔 중요한 원리가 있습니다.
8절이 그 원리를 설명해 주죠.
하나님의 말씀을 묵상하고 지킬 때
동행의 삶이 가능하답니다.
왜냐하면 말씀이
우리에게 힘도 줄 뿐만 아니라,
우리가 가야 할 길도
알려 주기 때문입니다.
시편 119:105을 말하죠.
주의 말씀은 내 발의 등이요
내 길의 빛이니이다
또한 하나님의 말씀은
우리의 양식과 같습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도 사탄이 시험할 때
“사람이 떡으로만 살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입에서 나오는 말씀으로 산다”
고 하셨어요.
이처럼 말씀은 우리의 힘입니다.
좌절과 낙심, 실패와 염려만
넘치는 이 세상에서
그리스도인으로 살아가게 하는 힘이 바로
‘말씀’입니다.
이 말씀은 우리를 기적의 자리로 이끕니다.
예수님께서 베드로를 부르실 때
일화입니다.
베드로는 자신을 찾아오기 전날 밤,
늦게까지 고기를 잡습니다.
그러나 단 한 마리도 건지지 못합니다.
몸과 마음이 지쳐서 포기하고 싶을 때,
예수님의 말씀이 들려옵니다.
“깊은 곳에 가서 그물을 내려라.”
이 때 베드로는 이렇게 대답합니다.
누가복음 5:5
시몬이 대답하여 이르되
선생님 우리들이 밤이 새도록 수고하였으되
잡은 것이 없지마는
말씀에 의지하여 내가 그물을 내리리이다
밤새 한 마리도 못 잡고 허탕만 쳤는데,
말씀에 의지하여 그물을 내리자
어떤 일이 일어납니까?
고기가 그물 안으로 빨려 들어갑니다.
컵에 든 음료수를 큰 빨대로 ‘흡’하고 빨면
‘쭉’하고 빨리듯이,
그물을 던지자 모든 물고기가
그리로 들어가는 겁니다.
상상이 가시나요?
결국 그물은 찢어지고
옆에 있는 친구의 배에 도와달라고 했는데
그것도 잠기게 됩니다.
말씀을 의지하는 자는 기적을 경험합니다.
무엇을 해야 할지 모르는 그 순간에
하나님의 말씀을 의지하여
한 걸음을 전진하는 것,
그것이 믿음입니다.
오늘 여호수아를 향한
하나님의 메시지가 바로 그것입니다.
“모세와 약속한 그 땅을
내가 이미 너에게 주었어.
가서 밟기만 하면 돼.”
몇 주 전에 애들이 배고팠는지
피자를 먹고 싶다고 했습니다.
그 주에 외식을 많이 해서
피자 대신 집에 있는 걸로 먹자고 했습니다.
그랬더니 큰 아들이
“시켜만 주세요. 제 돈으로 할 테니까요.”
라고 말했습니다.
그러자 옆에 있던 둘째가 이렇게 말했습니다.
“시켜만 주세요. 형아 돈으로 할 테니까요.”
진서는 형을 믿었습니다.
형이 계산해 줄 걸 믿고
시켜만 달라고 한 거였죠.
이 당당함이 어디서 오겠습니까?
형과의 신뢰감에서 오는 거 아닐까요?
이런 면에서 볼 때
시편 기자의 고백이 우리에게 힘이 됩니다.
시편 46:1-3
하나님은 우리의 피난처시요 힘이시니
환난 중에 만날 큰 도움이시라
그러므로 땅이 변하든지
산이 흔들려 바다 가운데에 빠지든지
바닷물이 솟아나고 뛰놀든지
그것이 넘침으로 산이 흔들릴지라도
우리는 두려워하지 아니하리로다
사랑하는 여러분,
하나님께서 인도하시는 삶으로
초청받고도 여전히 걱정하고 계시나요?
우리는 하나님을 믿는 자들입니다.
하나님은 믿는다는 것은
그분의 약속을 신뢰하는 것이죠.
비록 지금 내 상황이 복잡하고 어려워도,
하나님의 약속이 주어졌다면
담대하시기 바랍니다.
가진 게 없고, 부족해도,
하나님께서 우리를 복의 근원이요,
복으로 삼으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그렇기에 우리는 겁내고
염려할 이유가 없어요!
우리는 이미 주님의 시각으로 볼 때
하나님의 복들입니다.
약속의 땅을 얻을
약속의 백성들임을 믿으시길 바랍니다.
말씀을 묵상하며
찬송가 543장이 계속 떠올랐습니다.
후렴 가사를 보면 이렇습니다.
세월 지나갈수록
의지할 것뿐일세
무슨 일을 만나도
예수 의지합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거친 세상 속에서 넘실대는 요단강이
보일 때가 얼마나 많습니까?
건널 수도 없고,
건넌다 한들 마주해야 할 가나안 족속은
왜 그리 큰지 모르겠습니다.
그럼에도 주님은 ‘가라’ 하십니다.
그런데 우리 주님은 참 좋은 분이시지요.
가라고 하시며 함께하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세월 지나갈수록
예수님만 의지하게 되는 가봅니다.
오늘 설교 제목 기억하십니까?
“By your side“
한국말로 번역하면 ”네 곁에서“란 의미죠.
참 좋으신 주님은 험한 인생길을 걷는
우리 곁에 계십니다.
우리가 나아가야 할 곳은 어디인가요?
바로 그 자리에 주님은
우리와 함께하실 것입니다.
그리고 이미 그 땅을 주셨습니다.
믿음을 바라는 것들의 실상입니다.
이미 주어졌음을 믿고 함께하심을 믿고
강하고 담대히 나아가십시오.
중간에 힘들고 어려운 일을 만나면,
다시 말씀 앞에 나아가서
채움받으면 됩니다.
이 놀라운 진리를 믿음으로
승리하길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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