움푹 파인 그림자 속으로 가녀린 소리들이 웅얼거린다 성에 낀 유리창에 실금이 번져가는 소리 같고 첼로의 기러기발이 저절로 떨리는 소리 같고 먼 길 떠난 아버지 흙 묻은 등산지팡이 소리 같고 노점의 접이식 가판대 등불 내리는 소리와 같다 주저 없이 더 먼 데로 떠나간, 술에 취한 애인들 그들이 다시 이 골목으로 돌아오진 않겠지만 아무 음역으로라도 지난 시절 밀어를 내뱉고 싶다 밤새들이 지나가는 하늘의 길이 만든 검은 성호는 태반으로 돌아갈 길들이 이 웅덩이에 있다는 뜻 같다 환상지를 앓는 아스팔트가 기지개 켜는 새벽의 부도심 집을 찾아가는 사람들 발걸음이 군장을 멘 듯한데 시절 제각각의 유행가들 섞이는 여명은 아련하다 작고 긴 짐승의 목구멍 속에 들어간 나무의 혀를 핥아대는 모래바람은 첫 여자를 대하듯 버스를 기다린다 구멍에서 자란 공기 방울들이 그 아픈 심장을 만지작거린다 저 구멍 속은 나 아닌 것들의 눈빛으로 가득 차 있다 저 구멍 속은 부끄러운 기억들로 부풀어 오른다 저 구멍 속에는 살아서 볼 수 없는 언어의 유적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