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현이 축구를 시작한 계기는 축구선수였던 아버지 때문이었다. 그의 아버지는 80년대 많은 고교축구 전문가들이 한국 축구계의 대들보가 되리라고 생각했던 이세혁이었다. 이세혁은 당시 고교 최고의 테크니션으로 각종 대회에서 득점왕, 도움왕을 싹쓸이했던 선수였다. 이미 고1 때 고교축구를 주름잡으며 화려하게 등장했지만 등장과 동시에 그는 치명적인 심장질환으로 축구를 접어야 했다.
고교 최고의 플레이메이커, 한국축구의 10년을 책임질 천재라는 별명을 순식간에 잃어버린 그는 그 후에도 축구를 놓지 않았다. 비록 장시간 달리는 것은 할 수 없었지만 거리에나가 항상 공을 가지고 온갖 묘기를 부리며 사람들의 시선을 끌었고, 집에서는 온갖 축구 자료들에 둘러싸여 시간을 보냈으며, 유럽에도 나가 유럽축구도 직접 체험했다.
선수생활을 접고나서 10년 후, 그의 축구인생은 본격적으로 지도자의 길로 접어들었다. 그는 자신이 다녔던 고등학교팀을 감독했다. 자신이 그동안 쌓아왔던 축구지식과 기술, 노하우를 모두 쏟아부을 수 있는 찬스였을텐데도, 그는 건성건성 훈련스케쥴을 짜 훈련을 시키고, 경기 때는 몇가지 지침만을 내릴 뿐이었다. 으레 다른 고교팀에서 하듯, 좋은 학생들을 스카웃해올 생각도 하지 않던 그였지만 그의 팀은 신기하게도 항상 우승을 차지했다.
그 사이에 참한 여자를 만나 결혼도 한 20대의 젊은 감독 이세혁은 아이를 가졌다. 그 아이가 바로 이현이었다. 그는 꿈을 이루지 못한 세대들의 공통적인 생각을 가지고 있었다. 자신의 꿈을 그 아이가 이루어야 한다는 생각. 그는 자신의 아이를 세계 최고의 선수로 키울 생각이었다. 고교축구를 감독하면서도 보이지 않았던 자신의 능력을, 축구에 관한 모든 지식을 이현에게 전수할 생각이었던 것이다.
어렸을 때부터 만화보단 세계 유명팀들의 경기를 보여주었고, 나가서 놀땐 항상 축구공을 쥐어주었다. 이세혁은 아들에게 축구를 하라고 강요하지 않았다. 그저 많이 접하도록 했을 뿐이었다. 그의 기대만큼 이현은 축구를 매우 좋아하는 소년으로 자라났다. 가끔씩 운동장 한켠에서 아들이 또래의 모든 아이들을 가볍게 데리고놀 듯 축구하는 것을 보며 속으로 조금은 뿌듯했으리라.
그는 이현이 초등학교를 졸업할 무렵 가족을 데리고 네덜란드로 떠났다. 사업상의 문제였지만 이현에게 좋은 경험을 시켜주고 싶어서이기도 했다. 네덜란드에 떠난후 아는 지인의 도움으로 테스트 후 이현을 프로팀 유소년 클럽에 참가시킬 수 있었다. 자신의 기대대로 이현은 유럽의 아이들의 기량또한 압도했다. 거기에 외국인들과의 경험은 나중에 세계적인 선수가 되기 위해서는 필수적인 것이었다. 이현은 다행스럽게도 외국인들과도 곧잘 어울렸다.
1년후 귀국한 그는 에이전트 회사 창업을 준비하고 있었다. 자신의 아들을 위해서는 자신이 직접 에이전트가 되어야 한다고 생각했으리라. 그사이 이현은 축구부에 들지 않겠느냐는 제의를 받았던 모양이었다. 그는 아들에게 마음대로 하라고 했으나 이현은 거절한 듯 보였다. 아마도 권위적이고, 수준낮기 짝이없는 학교 축구부에 실망한 것이리라.
그는 많이 불안하기도 했다. 자신의 아들은 축구에 관해서라면 어떤 전문가 못지않게 알고 있었고, 기술 또한 최고의 테크니션이라는 자신이 가르쳤던만큼 뛰어났지만 잔디에서 맘대로 공도 못차는 열악한 상황속에서 더 있다가는 상황이 악화되리라 생각했던 것이다. 하루빨리 그는 아들을 프로팀에 입단시키거나, 해외 정식 유소년 클럽에 테스트를 시켜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러던 어느날, 이현이 학교에서 어떤 한 남자와 함께 돌아왔다. 매우 유명한 남자였기에 그는 속으로 상당히 놀랐다. 차범근 감독이었던 것이다. 이현은 무슨 일이 있었는지 싱글벙글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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