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가 장 날 사 온 검정 고무신 신고
까까중머리 소년은 길을 나선다.
소년과 냇가로 간 검정 고무신이
피라미 담을 어항이 되었다가
어느새 개미를 실은 돛단배 되고
소년과 들판에 간 검정 고무신은
모래를 실은 트럭이 되었다가
눈밭을 가르는 썰매가 된 변신조차도
무죄가 된 검정 고무신.
논두렁 불에 언 발 녹이려다 구멍이 난 양말
소년이 엄마에게 혼이 날까 감춰 주었던
마음이 고은 검정 고무신.
소년이 콧물을 훔친 소맷귀처럼
반들거렸던 검정 고무신 코는
이 냇가로 저 들판으로 쏘다녀서 인지
까까중머리 자란 만큼 생이 다해서인지
어느 날 돌부리에 상처를 입어
달도 잠이 든 밤 가물가물한 호롱불 아래
어머니 손가락에 감긴 하얀 실의
한 땀 한 땀 시침바느질에
짧기만 같던 제 생을 이어서 간다.
어느 날 동무들과 자치기 놀이에 빠져
해 저문 줄 모른 소년은
어둑한 삽작길서 얼큰한 노랫소리와
별을 이고 온 아버지 손의 운동화에
소년은 검정 고무신 잊어버렸다.
샛별이 지는 그날의 기억도
아스라한 추억 속의 두메산골 댓돌 위에
검정 고무신 없고 소년도 간 곳 없어
중년의 가슴으로만 담아 둔 회상이라네.
-몽중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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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정 고무신
황일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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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02.16 18: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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