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 언론 플레이에 춤추기에 앞서 자성할 시간
박병환 유라시아전략연구소장·전 주러시아 공사
지난 9월 13일 푸틴 대통령과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극동 러시아의 보스토치니 위성 발사장에서 정상회담을 했다. 이번 정상회담은 한국은 물론 국제사회가 비상한 관심을 보였는데 초점은 러시아와 북한이 과연 군사협력을 할 것인가였다. 회담 이후 푸틴 대통령의 발언으로 보아서는 그럴 가능성이 분명하지는 않고 양국의 움직임을 계속 지켜봐야 할 것 같다. 그런데 일부 국내 매체들은 러시아가 뜬금없이 한국에 대해 적대적 태도를 보이고 있다고 보도 또는 주장하였는데 과연 그런가?
주류 매체 A는 9월 7일 자 사설에서 ‘우리 뜻과는 아무 상관 없이 러시아와 북한이 순전히 자신들 필요에 의해 무기 거래를 하고 그 결과로 우리가 안보 위협을 받게 됐다’ ‘우리가 가만 있는데도 우크라이나 전쟁의 불똥은 결국 한국으로 튀었다’ 고 주장하였다. 우크라이나 전쟁 발발 이후 한국 정부가 어떤 조치를 취해왔는지, 그리고 어떻게 행동했는지를 보면 이런 주장은 사실관계가 맞지 않는다. 우선 한국은 작년 3월 주요 러시아 은행과의 거래를 중지하고 57개 수출 통제 품목을 고시하였고 올 2월에는 741개 품목을 추가하는 등 미국의 대러 제재 캠페인에 적극 동조하였다. 그 결과 러시아는 비우호국 명단에 한국도 올렸다.
윤 대통령은 작년에 이어 올해에도 나토 정상회의에 참석하여 반러시아 노선을 드러냈으며 특히 올 7월에는 키이우를 방문하여 젤렌스키 대통령을 만나 ‘사즉생 생즉사’를 외치며 함께 싸우자고 하였다. 그간 윤 대통령은 “우리는 우크라이나에 대해 늘 인도적, 평화적인 지원을 국제사회와 연대해서 해왔고 살상 무기는 공급한 사실이 없다. 그렇지만 어디까지나 우리 주권의 문제이다” “민간인에 대한 대규모 공격이나 국제사회에서 묵과할 수 없는 대량 학살, 전쟁법을 중대하게 위반하는 사안이 발생할 때는 인도적, 재정적 지원만을 고집하기 어려울 수 있다” 등과 같은 입장을 표명함으로써 우크라이나에 대한 살상무기 지원 가능성을 시사하였다.
또한, 한국은 작년부터 폴란드에 K-2 전차 및 K-9 자주포 등 장비를 대량으로 판매하였는데 폴란드는 러시아에 대해 적대적이며 우크라이나를 적극 지원하는 나라이다. 게다가 올 3월에는 미국에 우크라이나를 지원하기 위한 목적으로 155mm 포탄 50만 발을 대여하였다. 이러한 사실들을 놓고 이번 북러 정상회담에 대해서 ‘우리가 가만있는데 불똥이 튀었다’고 하는 것은 우기는 주장일 뿐이다. 무엇보다도 푸틴 대통령은 한국의 움직임이 러시아로서는 우려되는 수준에 이르자 지난해 10월 한국에 대해 경고한 바 있다.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17일 '로씨야련방에 대한 공식친선방문일정을 성과적으로 마치시고 9월 17일 울라지보스또크시를 출발'했다고 조선중앙통신이 18일 보도했다. [조선중앙통신 홈페이지 캡처] 2023.9.18. 연합뉴스
주류 매체 B는 당시 ‘푸틴의 ‘한·러 관계 파탄’ 위협 가당찮다‘라는 제목의 사설을 통해 푸틴 대통령의 발언을 깎아내렸다. 푸틴 대통령은 작년 발다이 클럽 회의 때 한국 측 참석자(김흥종 대외경제정책연구원장)의 북핵 관련 질문에 대해 “한국이 우크라이나에 무기와 탄약을 제공하기로 결정한 것으로 알고 있으며 그것은 양국 관계를 파멸시킬 것이다” “우리는 한국과 매우 좋은 관계이다. 우리는 항상 한국뿐만 아니라 북한과도 대화할 가능성을 갖고 있다. 그런데 현재 한국이 (폴란드를 통해서) 우크라이나에 무기와 탄약을 제공하기로 결정하였다고 알려져 있다. 이것은 양국 관계를 파멸시킬 것이다. 우리가 북한과 이와 같은 방향으로 협력을 재개한다면 한국은 이에 대해 어떻게 반응할 것인가? 한국은 이를 기뻐할 것인가?” 라고 답하였다. 이에 대해 매체 B의 사설은 “사실에 부합하지 않는 뜬금없는 언동일 뿐 아니라 대한민국의 주권과 한국민의 자존심을 훼손하는 대단히 부적절한 외교적 결례”라고 반박하였는데 사실상 한국이 우회적으로 우크라이나에 살상무기를 제공함으로써 우스운 반박이 되었다.
B 매체는 또한 ’그간 우리 정부는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과 서방의 요청에도 살상무기를 지원하지 않는다는 입장을 밝혀왔다. 러시아의 침공 피해국인 우크라이나를 지원하고 연대를 표명하면서도 한반도 안보 상황 등을 신중히 고려한 조치였다’고 하였는데 이 주장도 공허한 것이 되었다. 러시아의 북한에 대한 접근은 예견된 것이었다. 그리고 이 사설은 ‘국제사회는 일치단결해 우크라이나와 함께하고 있다’고 하였는데 미국의 대러 제재 캠페인에 동참하고 있는 나라는 49개 국에 불과하고 그나마 거의 전부가 서방권 국가이며 이른바 ‘글로벌 사우스(Global South)’로 불리는 아시아, 아프리카. 중남미 국가들은 미국의 제재 참여 독려에 호응하지 않고 있다. 왜 이런 현상이 일어나고 있을까? 단지 미국의 위세가 예전만 못하기보다는 이번 전쟁에서 우크라이나의 자유 수호보다는 러시아의 약화를 도모한다는 미국 등 서방의 저의가 드러났기 때문이다.
이번 러북 정상회담 보도와 관련하여 덧붙여 지적한다면 미국 정부의 언론 플레이에 휘둘리고 있다는 것이다. 러시아 측의 반응에 대해서는 잘 알아보려고 하지 않을 뿐만 아니라 선입견을 갖고 대하다 보니 이런 현상이 일어나고 결과적으로 사실관계로부터 멀어지는, 엉뚱한 이야기를 하게 된다. 달리 말해 한국의 관점에서 주체적으로 취재 및 보도하지 못하고 있다. 미국 정부는 이번 러북 정상회담을 우크라이나 지원에 대한 미국 내 소극적인 여론을 약화시키고 나토 동맹국들의 추가적인 지원을 독려하는 동시에 한국에도 무기 지원을 요구할 수 있는 구실로 활용하려 할 것이다. 그러한 목적을 갖고 언론 플레이를 한다고 봐야 할 것이다. 실제로 미국은 그간 러북 간 무기 거래를 자주 언급하였으나 확실한 증거를 제시하지는 못하였고, 서방에서 자주 주장하지만, 러시아가 포탄과 탄약이 떨어졌다는 상황과 관련하여서도 구체적인 증거는 내놓지 못하고 있다.
러시아를 방문 중인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지난 13일 러시아 아무르주 보스토치니 우주기지에서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과 상봉했다고 조선중앙TV가 14일 보도했다. 김 위원장이 푸틴과 함께 우주기지를 참관하고 있다. [조선중앙TV 화면] 2023.9.14. 연합뉴스
이번에 러 측은 북한과의 군사협력에 대해 선을 그었으며 설사 이루어지더라도 국제적 의무를 벗어나지 않는 범위에서 이루어질 것임을 분명히 하였다. 특히 북한군 파병설에 대해서는 푸틴 대통령은 한마디로 ‘난센스’라고 하였다. 현재로서는 북한이 러시아에 무기를 판매하고 러시아가 우리가 우려하는 대로 핵심 군사기술을 북한에 지원할 것인지는 분명치 않다. 지금까지는 미국 당국자조차도 이에 대해 단정적인 표현을 쓰지 않고 가정법으로 경고하고 있을 뿐이다. 김정은이 위성 발사장을 찾아가고 극초음속 미사일과 전략폭격기를 둘러보고 태평양함대사령부를 방문한 것이 선입견으로 작용해서는 곤란하다. 러시아의 대한반도 정책이 한국의 우크라이나에 대한 지원으로 등거리 정책에서 북한 쪽으로 기우는 방향으로 전환되고 있는 것은 확실하나 그렇다고 사실관계의 근거 없이 논리적 비약으로 치닫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균형감각이 있고 책임감 있는 매체라면 미국의 언론 플레이에 춤추기보다는 우리 정부에 대해 그간 대러 외교를 어떻게 해왔길래 러시아의 태도가 저렇게 변하였느냐는 질문도 던져야 한다고 본다. 그럼으로써 한국 정부에 이제라도 러시아가 북한 쪽으로 과도하게 기울지 않도록 치열한 외교를 촉구하여야 할 것이다. 그간 한국과 러시아 사이 고위급 접촉은 이번 9월 인도에서 개최된 G20 정상회의 계기에 양국 외교장관의 짧은 만남이 전부이다. 지금 우리는 러시아를 비난하기만 할 때가 아니라고 본다. 지난 4월 안드레이 쿨릭 주한 러시아 대사는 시민언론 <민들레>와의 인터뷰에서 "러시아는 미국이 동아시아에서 '지정학적 실험'을 하고 있다고 본다. 한국이 그 첫 희생양이 될 수 있다"고 경고하였는데 경청할 만한 메시지라고 본다.
출처 : 푸틴 대통령은 경고하였다 < 민들레 광장 < 기사본문 - 세상을 바꾸는 시민언론 민들레 (mindle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