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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좋은 우리절(I Love Buddh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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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주절주절잡담 스크랩 월정사(09.5.4)
수일화 추천 0 조회 38 09.05.16 19:08 댓글 0
게시글 본문내용

 월정사(月精寺)

  대한불교조계종 제4교구의 본사로 강원도 중남부에 있는 60여 개의 절을 관리하고 있다. 〈삼국유사〉 권3 대산오만진신(臺山五萬眞身)에 따르면 643년(선덕여왕 12) 자장율사가 중국 당나라에서 문수보살의 감응으로 얻은 석존 사리와 대장경 일부를 가지고 돌아와서 통도사와 함께 이 절을 창건했다고 한다. 자장이 창건할 당시에는 초암(草庵)으로 엮어 만든 임시암자에 불과했지만, 그뒤 신효(信孝)·신의(信義)·유연(有緣)이 차례로 이곳에 머물면서 점차 사찰다운 면모를 갖추게 되었다. 〈사적기 寺蹟記〉에 의하면 1307년(충렬왕 33)에 큰 불이 일어나 불타버렸으나 이일(而一)이 중창했고, 1833년(순조 33) 다시 화재로 소실되었던 것을 1844년(헌종 10)에 영담(瀛潭)·정암(淨庵) 등이 재건했는데, 1·4후퇴 때 군사작전상의 이유로 아군에 의해 칠불보전(七佛寶殿)을 비롯하여 10여 채의 건물이 전소되었다. 이때 양양군 서면 선림원지(禪林院址)에서 출토되어 이 절에서 보관하고 있던 통일신라시대의 선림원지 동종(804)도 함께 불타 녹아버렸다. 그뒤 1964년에 탄허(呑虛)가 적광전을 중창한 이래로 만화(萬和)가 계속 중건하여, 현재는 대강당·삼성각·심검당·승가학원·용금루·일주문·요사채 등이 있다.

  중요문화재로는 8각9층석탑(국보 제48호)과 그 앞에 있는 석조보살좌상(보물 제139호), 세조가 친필로 쓴 오대산상원사중창권선문(보물 제140호) 등이 있으며, 이밖에도 월정사의 보물 및 유물을 모아 놓은 보장각에는 소형 목조탑을 비롯하여 경전·인도불상·불화 등이 소장되어 있다.(브리태니커) 

 

수광전(壽光殿)

무량수전은 서방 극락정토의 교주 아미타불을 모신 곳으로 수광전, 극락전 이라고도 불리운다.

  아(阿)란[아미타(바)Amitabha 무량광(無量光)ㆍ무량수(無量壽)] 한량없다(無)의 뜻이며 미타는 수명을 뜻하니 목숨이 없는 수명의 다함이 없는 부처님이란 뜻이다. 월정사 무량수전은 상단에는 아미타부처님과 협시보살로 관세음보살과 대세지보살을 좌우에 모시고 뒤쪽으로 극락의 법회 장면을 묘사한 목각탱화 극락회상도(極樂會上圖)를 모시고 있다. 

  중단에는 지장보살님을 모시고 지장시왕(地藏十王) 목각탱화를 봉안하고 있으며, 하단에는 지옥의 중생을 극락으로 인도한다는 인로왕보살님을 금선묘(金線描)의 탱화로 봉안하고 있다. 지금 무량수전은 1989년 도명스님 때 시작해 1992년 현해스님이 완공했다.

삼성각 (三聖閣)

  독성 나반존자, 산신님, 칠성님을 함께 모신 곳이다.

  나반존자는 남인도 천태산에서 홀로 선정을 닦아 십이연기(十二緣起)를 깨달은 성자로 우리나라에서는 단군을 신격화한 것으로 신앙되고 있다. 칠성님은 본디 중국에서 유입된 도교신앙의 신으로 불두칠성의 별자리를 신격화한 것으로 한국에 들어와 토착화 되었다. 

  처음에는 약사(藥師)신앙과 결합되었다가 조선 중기 이후 수명신의 본디 모습이 강조되어 병자나 자식 낳기를 기원하는 사람들의 신앙이 되었다. 우리나라에는 산에 호랑이가 많았으며 산을 주재하는 산악신이 있다고 믿었다. 산신님의 다른 모습은 호랑이라고 믿었으며 주로 호랑이와 같이 표현된다. 이는 모두 불교가 들어오면서 호법신장(護法神將)의 하나로 흡수된 것으로 불교의 포용력과 흡수력을 보여주는 것이라 하겠다.

  상단에 칠성탱화와 칠성조각을 모시고, 향우측(向右側)으로 산신탱화와 산신조각, 향좌측(向左側)으로 독성탱화와 조각을 봉안하고 있다. 1994년 현해스님 때 중건했다

월정사팔각구층석탑(月精寺八角九層石塔)

        국보 제48호

        강원 평창군  진부면 동산리 63-1 월정사

  자장율사가 창건한 월정사 안에 있는 탑으로, 그 앞에는 공양하는 모습의 보살상이 마주보며 앉아 있다.

  탑은 8각 모양의 2단 기단(基壇) 위에 9층 탑신(塔身)을 올린 뒤, 머리장식을 얹어 마무리한 모습이다. 아래층 기단에는 안상(眼象)을 새겨 놓았고, 아래·위층 기단 윗부분에는 받침돌을 마련하여 윗돌을 괴어주도록 하였다. 탑신부는 일반적인 석탑이 위층으로 올라 갈수록 급격히 줄어드는 모습과 달리 2층 탑신부터 거의 같은 높이를 유지하고 있으며, 1층 탑신의 4면에 작은 규모의 감실(龕室:불상을 모셔두는 방)을 마련해 두었다. 지붕돌은 밑면에 계단 모양의 받침을 두지 않고 간략하게 마무리하였고, 가볍게 들려있는 여덟 곳의 귀퉁이마다 풍경을 달아 놓았다. 지붕돌 위로는 머리장식이 완벽하게 남아 있는데, 아랫부분은 돌로, 윗부분은 금동으로 만들어서 화려한 아름다움을 더해주고 있다.

  고려시대가 되면 4각형 평면에서 벗어난 다각형의 다층(多層)석탑이 우리나라 북쪽지방에서 주로 유행하게 되는데, 이 탑도 그러한 흐름 속에서 만들어진 것으로, 고려 전기 석탑을 대표하는 작품이다. 당시 불교문화 특유의 화려하고 귀족적인 면모를 잘 보여주고 있으며, 전체적인 비례와 조각수법이 착실하여 다각다층석탑을 대표할 만하다. 또한 청동으로 만들어진 풍경과 금동으로 만들어진 머리장식을 통해 금속공예의 수법을 살필 수 있어 중요한 자료가 되고 있다.

  적광전(寂光殿)

  팔각구층석탑 뒤에 만월산 자락의 한 기운이 엉긴 곳에 자리한 적광전은 정면 다섯 칸, 측면 네 칸의 매우 큰 법당으로, 팔작지붕에 다포계 양식으로 세워졌으며 갖가지 문양이 어우러진 단청은 매우 화려하다. 1930년대의 조선고적도보에 의하면 과거 7불을 보신 칠불보전이 자리하고 있었으나 6.25 전쟁 때 아군에 의해 소실되었다가 1968년에 만화스님이 주지로 계실 때 다시 중건되었다. 

  적광전 외부 기둥 18개 중 16개는 오대산에서 자생하는 소나무이고 2개는 괴목이며, 내부기둥 10개는 오대산에서 자생하는 전나무로 만들었다. 적광전이 소실되기 전에는 칠불보전(七佛寶殿)이라 했다.

  대체로 적광전에는 비로자나 부처님을 모시는 것이 통례인데 이곳 적광전은 그 통례를 깨고 석굴암의 불상 형태를 그대로 따른 석가모니불을 모시고 있다. 이는 1964년 만화스님 법당 중창당시에는 현판이 대웅전이었다. 그러나 1950년대 탄허스님의 오대산수도원을 기념하기 위해 결사의 주(主) 경전이었던 화엄경의 주불인 비로자나불을 모신다는 의미로 적광전으로 고쳐 현판을 달았다.

 

불유각(佛乳閣) 

부처님 우유가 있는 집이란 뜻으로 월정사를 찾는 이에게 시원한 감로수(甘露水)를 제공하고 있다. 큰 석확안으로 세조가 피부병을 낳고자 등을 씻었던 물이 좋기로 유명한 오대산의 샘물이 솟고 있다.

  범종루(梵鍾樓)

 북, 종, 운판(雲版), 목어(木魚) 등 사물(四物)을 두는 곳이다.

새벽예불과 저녁예불 하루에 두 번 두드린다. 북은 걸어 다니는 모든 중생을, 종은 지옥에서 고통받는 중생을 위해 친다. 이 종소리를 들으면 지옥 옥졸들이 지옥 중생들을 괴롭히다가 잠깐 쉰다고 한다. 운판은 청동이나 철로 만든 구름 모양의 넓은 판인데, 날아 다니는 중생들이 이 소리를 듣고 해탈하라고 친다. 목어는 물고기 모양으로 나무의 속을 파서 만들었으며 물 속에서 사는 중생들을 위해 두드린다.

  용금루(湧金樓)

 본래 팔각구층석탑 가까이 있던 것을 1994년에 지금의 자리로 옮겼다.

누각의 기초를 화강석 기둥으로 하였고 밑으로 사람이 지나다닐 수 있도록 한 누마루형식의 건축으로 용금루의 계단을 한단한단 오르면 월정사경내가 마치 불계佛界와도 같이 조금씩 가까워오는 구조로 월정사의 장엄함을 경험하게 하는 구조라고 하겠다. 

 

 

 

월정사석조보살좌상(月精寺石造菩薩坐像)

     보물 제139호

     강원 평창군  진부면 동산리 63 월정사

  월정사 경내의 8각 9층탑을 향해서 정중하게 오른쪽 무릎을 꿇고 왼다리를 세워 탑에 대해 공양하는 것 같은 모습을 하고 있는 높이 1.8m의 보살상이다.
  머리에는 높다란 관(冠)을 쓰고 있으며 갸름하면서도 복스러운 얼굴에는 만면에 미소가 어려 있다. 머리칼은 옆으로 길게 늘어져 어깨를 덮고 있고, 목에는 아주 뚜렷한 3줄의 주름이 표현되어 있다. 목걸이는 매우 섬세하고 곱게 조각하여 가슴에까지 늘어지게 장식하였다. 보살이 입고 있는 옷은 얇고 가벼워 몸에 밀착되어 있고 옷주름은 모두 희미하다. 오른쪽 팔꿈치는 동자상을 받침으로 고이고 있으며 동자상의 머리에 팔꿈치를 올려 놓아 편안한 자세를 취하고 있다.
  이 석조 보살좌상은 이곳에서 그리 멀지 않은 강릉 신복사지 석불좌상(보물 제84호)과 같은 형식이지만 상체에 비해 하체가 빈약하여 조형상 다소 불균형스런 모습이다. 그러나 개태사와 신복사지 탑 공양상과 더불어 고려시대 화엄종 계통사원에서 만든 특징을 보여주는 대표적인 예이며, 당대 불교사상의 한 단면을 살펴볼 수 있는 작품으로 높이 평가된다.(원본은 성보박물관에 모셔두고 모조품을 새로 조각하여 설치함)

 

 진영당

 개창주開創主나 중창주重創主와 같은 고승의 진영을 모시는 전각이다.
월정사의 진영당은 조사당을 따로 두어 개창주를 따로 모시고 있어 근 · 현대의 스님들만을 모시고 있다. 정면 다섯 칸, 측면 두 칸의 맞배지붕 형태인 월정사 진영당은 근대 월정사에 주석한 조계종 초대 종정이신 한암스님, 현대불교학의 아버지이신 탄허스님, 조계종 초대 총무원장 지암스님, 6.25의 전란후 월정사를 중건하신 만화스님의 영정을 모시고 있다. 1975년 만화스님이 중건하고1994년에 현해스님이 증축했다.

조사당(祖師堂)

적광전(寂光殿) 뒤에 자리잡은 조사당( 祖師堂)은 규모가 정면 세 칸, 측면 한 칸이며 맞배지붕으로 되어있다. 월정사를 창건한 자장율사의 진영眞影을 모신 곳이다. 자장율사의 진영은 1804년에 제작된 통도사에 모셔져 있는 자장율사의 진영이 가장 오래 되었으나 월정사의 자장율사진영은 최근에 제작한 것이다. 1958년 영해당 경덕 스님이 중건했으니 현존하는 월정사 당우 가운데 가장 오래된 것이다.

 

 

 사천왕문(四天王門) 

동방 지국천왕持國天王은 오른손에 비파를 들었고, 남방 증장천왕僧長天王은 왼손에 보검을 들었고, 서방 광목천왕廣目天王은 왼손에 보검을 들었고, 북방 다문천왕多聞天王은 보차와 보탑을 들고 있다.
월정사의 천왕문은 조선시대에 나타나는 전형적인 사천왕의 모습을 가지고 있다. 벽화에는 중국선종의 제2대조인 혜가, 부모은중경, 자장율사, 지장보살, 포대선인, 기인 한산의 설화가 그림으로 설명되어있다. 1974년 만화스님이 중건했다.

 금강루

 사천왕문을 지난 곳에 위치하고 있다. 일주문, 사천왕문, 불이문으로 이어지는 한국사찰의 가람배치에 있어서 월정사는 불이문의 자리에 금강문을 두고 있다. 금강문의 오른쪽에는 움금강역사상이라고도 하는 나라연금강이, 왼쪽에는 훔금강역사상이라고도 불리우는 밀적금강이 있으며 특히 밀적금강역사는 지혜의 무기인 금강저를 들고 부처님을 호위한다. 

  이는 일체만물의 생성에서부터 소멸까지를 표현한 것으로 금강역사의 강한 힘과 지혜로 불법을 호지護持하고 사찰을 수호하며 불교의 진리를 표현하고 있다. 전면 3칸, 측면 2칸, 2층 누각으로 1997년 12월 현해스님이 착공하여 1999년 10월에 낙성했다.

 

 

 

남대지장암

  월정사에서 상원사로 올라가는 큰길로 200 미터쯤 가다 보면 오대천을 가로지르는 지장교(地藏橋)가 나온다. 이 다리를 건너 200미터 가량 들어가면 조용하게 자리잡은 암자가 있는데 바로 남대 지장암이다. 본디 지장암은 기린산 정상 가까이 있었는데 뒤에 '중부리'로 옮겼다가 조선조 말에 지금 자리에 터를 잡았다.

  남대 기린산 기슭에 자리한 지장암은 그 기원이 오대산 신앙의 문을 연 보천태자로 거슬러 올라가니 '삼국유사' 에는 ' 남대의 남쪽에는 지장방을 두어 팔대보살을 수반으로 일만의 지장보살 모습을 그려 봉안하고 지장경과 금강반야경을 독송하게 하고 ... 금강사(金剛社)라 하라' 고 기록하고 있다.

  지장보살은 ' 하나의 중생이라도 성불하지 않으면 나 또한 성불하지 않겠다 ' 는 서원을 세우고 지옥중생의 해탈을 위하여 노력하는 분이다.

  현존하는 건물로는 정면 6칸, 측면 3칸의 인법당(因法堂)을 비롯하여 삼성각, 육화료, 요사체 등이 있으며 1995년에는 기린 선원을 새롭게 중창했다. 현재 비구니 스님의 참선도량으로 면모를 일신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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