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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루살렘 성전에 이방 신 제단을 만듦 16:10~16
10 아하스왕이 앗수르의 왕 디글랏 빌레셀을 만나러 다메섹에 갔다가 거기 있는 제단을 보고 아하스왕이 그 제단의 모든 구조와 제도의 양식을 그려 제사장 우리야에게 보냈더니
11 아하스왕이 다메섹에서 돌아오기 전에 제사장 우리야가 아하스왕이 다메섹에서 보낸 대로 모두 행하여 제사장 우리야가 제단을 만든지라
12 왕이 다메섹에서 돌아와 제단을 보고 제단 앞에 나아가 그 위에 제사를 드리되
13 자기의 번제물과 소제물을 불사르고 또 전제물을 붓고 수은제 짐승의 피를 제단에 뿌리고 14 또 여호와의 앞 곧 성전 앞에 있던 놋 제단을 새 제단과 여호와의 성전 사이에서 옮겨다가 그 제단 북쪽에 그것을 두니라
15 아하스왕이 제사장 우리야에게 명령하여 이르되 아침 번제물과 저녁 소제물과 왕의 번제물과 그 소제물과 모든 국민의 번제물과 그 소제물과 전제물을 다 이 큰 제단 위에 불사르고 또 번제물의 피와 다른 제물의 피를 다 그 위에 뿌리라 오직 놋 제단은 내가 주께 여쭐 일에만 쓰게 하라 하매
16 제사장 우리야가 아하스왕의 모든 명령대로 행하였더라
예루살렘 성전의 구조를 바꿈 16:17~20
17 아하스왕이 물두멍 받침의 옆판을 떼 내고 물두멍을 그 자리에서 옮기고 또 놋 바다를 놋 소 위에서 내려다가 돌판 위에 그것을 두며
18 또 안식일에 쓰기 위하여 성전에 건축한 낭실과 왕이 밖에서 들어가는 낭실을 앗수르 왕을 두려워하여 여호와의 성전에 옮겨 세웠더라
19 아하스가 행한 그 남은 사적은 유다 왕 역대지략에 기록되지 아니하였느냐
20 아하스가 그의 조상들과 함께 자매 다윗성에 그 열조와 함께 장사되고 그의 아들 히스기야가 대신하여 왕이 되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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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말씀 요약]
아하스가 앗수르 왕을 만나러 다메섹에 가서 그곳 제단 양식을 보고 그려 제사장 우리야에게 보냅니다. 우리야가 그대로 제단을 만드니 아하스는 모든 제사를 새 제단에서 드리게 합니다. 또한 성전 앞에 있던 놋 제단을 새 제단 북쪽에 두고, 앗수르 왕을 두려워해 낭실을 옮겨 세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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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루살렘 성전에 이방 신 제단을 만듦 16:10~16
성도는 하나님을 섬기되 그분 뜻대로 섬겨야 합니다. 그러나 아하스는 하나님 말씀을 가볍게 여깁니다. 앗수르 왕이 아람과 북 이스라엘 연합군을 물리치고 다메섹을 점령하자, 아하스는 앗수르 왕을 만나러 다메섹으로 갑니다. 승리 축하와 감사 인사를 전하기 위함일 것입니다. 그런데 그곳에서 아람 왕들이 섬기는 신들의 제단(대하 28:23)에 마음을 빼앗깁니다. 아하스는 그 모양을 그려 제사장 우리야에게 그대로 만들라고 지시합니다. 그리고 기존 놋 제단을 옮기고 새롭게 만든 제단으로 교체합니다. 새 제단은 놋 제단보다 크고 화려했을 것입니다. 임의로 제단을 옮기고 교체하는 일은 율법을 범하는 것입니다. 이는 하나님 말씀을 가볍게 여기고 왜곡하는 심각한 죄입니다.
● 더 깊은 묵상
아하스가 다메섹 제단 모양의 새 제단을 성전에 만들게 한 이유는 무엇일까요?
하나님 말씀을 가볍게 여겨 내 마음대로 바꾸는 일은 없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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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루살렘 성전의 구조를 바꿈 16:17~20
아하스는 제단뿐 아니라 성전 기명들도 재배치합니다. 물두멍 받침 옆판을 떼 내고 물두멍 위치를 바꿉니다. 또 놋 소(열두 마리 소 모양) 받침을 없애고 놋 바다를 돌판 위에 둡니다. 전쟁과 앗수르에 바친 공물로 부족한 놋을 확보하기 위한 조치였을 것입니다. 이렇듯 성전 기명의 양식을 임의로 바꾸는 것은 하나님을 가볍게 여기는 태도입니다. 아하스는 안식일에 사용하던 낭실과 왕이 외부로 출입할 때 이용하던 문을 다른 방식으로 만듭니다. 이는 ‘앗수르 왕을 두려워하여’(18절) 행한 조치입니다. 앗수르의 세력이 강성해지니 하나님 섬기는 일에도 앗수르 왕의 눈치를 봅니다.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않으면, 결국 사람을 두려워하게 됩니다.
●더 깊은 묵상
아하스가 성전 기명들을 재배치한 이유는 무엇인가요?
요즘 나는 누구의 눈치를 보고 누구를 두려워하며 살아가나요?
오늘의 기도
하나님! 제가 원하는 방식을 버리고, 하나님이 원하시고 기뻐하시는 방식으로 예배하게 하소서. 신앙의 형식보다 경건의 능력에 초점을 맞추게 하시고, 사람의 시선보다 제 심령을 꿰뚫어 보시는 하나님을 의식하게 하소서. 하나님을 경외하는 것이 제 일상이 되길 원합니다.
하나님은 죄 많은 우리를 지켜 주시고, 보호하여 주시며, 우리의 도움이 되어 주시는 하나님이십니다.
‘나’에게 말씀하신 것을 적용함
우리가 의지해야 하고, 우리가 의탁해야 할 분은 오직 주님뿐임을 잊지 말고, 매순간 주님의 도우심을 구하고, 주님의 인도하심을 구하도록 하자
우리가 의지해야 할 것은 세상적인 것들이 아님을 늘 잊지 말고, 주님을 의식하면서 주님을 바라보고, 전 영역에서 주님을 의뢰하도록 노력하자
순수한 신앙을 가지고, 주님과 더 깊은 관계를 맺고, 주님의 뜻을 이루어 나가는 일에만 모든 노력을 기울이도록 최선을 다하자
내게주시는교훈은무엇입니까?
10~16절 아하스가 성전을 더럽힙니다. 그는 앗수르 왕을 알현하려고 찾아간 다메섹에서 이방 제단을 보고 감명을 받습니다. 그래서 똑같은 제단을 만들어 성전 중앙에 배치합니다. 그는 이 부정한 물건을 들여놓기 위해, 놋 제단을 한편으로 밀쳐둡니다. 유다 땅에서 하나님이 밀려나고 가증한 우상숭배가 득세하는 것을 극명하게 보여주는 사건입니다. 예배와 믿음의 일상에 가만히 들어와 하나님의 자리를 밀어내고 있는 세속의 풍속과 습관은 무엇입니까?
17~20절 아하스가 앗수르 왕의 눈치를 보며 성전의 구조를 변경합니다. 앗수르 왕은 두려워하면서도, 하나님은 안중에도 없습니다. 멋대로 성전 기물의 구조를 바꾸고 제단의 위치도 바꾸고, 성전의 보물을 내가고 이방 제단을 들였습니다. 아하스의 성전은 더 이상 하나님의 성전이라 말할 수 없게 되었습니다. 예배가 우리 입맛대로, 혹은 누군가를 즐겁게 하기 위해 변질되지 않도록 조심합시다.
기도
공동체-저희의 예배가 하나님 외에는 다른 것을 주인 삼지 않게 하소서
열왕기하16:10-20절
우리에게 주시는 교훈은
믿음의 타협의 결과는 앗수르 영향에 속하게 되었습니다
본문은 유다와 아하스가 믿음을 타협했을때의 결과를 소개합니다
아하스는 아람과 이스라엘이 유다를 공격하자
성전의 보물을 앗수르왕에게 보내 도움을 요청했습니다
앗수르는 성전의 보물을 받는댓가로 유다를 도왔습니다
이때 앗수르가 아람과 이스라엘을이겼습니다
앗수르의 기세등등함을생각할수 있습니다
아하스는 앗수르가 도와준 것에 대해 축하와 감사하기 위해앗수르를 방문했습니다
아하스는 앗수르를 방문하면서 앗수르의 제단을 보았고 마음에 뺏겨서
제단의 모든 구조와 양식을 그려 제사장 우리야에게 똑같이 제단을 만들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다메섹제단을 만들면 기존에 성전에 있는 것들은 다른 곳으로 옮겨야 합니다
14절을 보면
놋제단을 북쪽 한 구석에치웠다고 말합니다 아하스는앗수르를 닮고 싶었나 봅니다
앗수르가 워낙 강하니까 닮고 싶어했을수도 있겠다 생각이 듭니다
그런데 그렇게 닮고 싶어하던 앗수르에 눈치를 살피고 두려워하는 지경까지 갔습니다
아하스는 앗수르왕을 두려워하여 했던 행동들을 소개합니다
17절에
성전에 물두멍 받침의 옆판을 떼네고물두멍을 옮기고 놋바다를 돌판위에 두었습니다
18절에는
낭실 즉 성전으로 들어가는 현관을 여호와의 성전에 옮겨 버렸습니다
성전에 기물들을 변형을 하고 옮기는 것은 누가봐도 해선 안되는 행동입니다
그런데 아하스가 이렇게 한 이유가 있습니다
아하스가 앗수르왕을 두려워했기 때문입니다
아하스는 앗수르를 너무나 두려워한 나머니 앗수르왕의 탐욕을 자극할 만한 것을
제거했다는 것입니다 당시 여러가지 것들을앗수르에 공물로 보냈는데
그중에 놋도 들어갑니다
그래서 위의 사실은 놋을 앗수르에게 뺏기지 않을려는 조치라고
할수 있습니다
정리하면
아하스가 앗수르와의 타협이 결국에는 앗수르의 손아귀에 들어간 것입니다
아하스는 처음에그렇게 생각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렇게 한발한발 앗수르에
몸을 담갔는데 결국에는 앗수르의 손아귀에서
놀아나게 된 것입니다
그것을 잘 보여주는 것이 앗수르가 히스기야때
집어 삼키려고 공격해 온 것입니다
보십시오 타협했던 것이 결국은 손아귀에 들어갔습니다
아하스의 어리석은 모습이
나의 모습이 될수가 있음을 알고 믿음으로 긴장해야 합니다
아하스처럼 신앙의 본질을 잃으면 안됩니다
하나님께 우선순위를 두고 전심으로 하나님을 예배해야 합니다
다른것에 도취되지 않고 오직 하나님의 은혜를 붙잡아야 삽니다
1.변질된 제단
아하스는 자신들을 도운 앗수르에 감사하기 위하여 디글앗 빌레셀을 만나러 갑니다. 그곳에서 본 우상 제단을 보고 제사장 우리야에게 만들도록 합니다. 우상 앞에 직접 제사를 드립니다. 아하스의 행동은 신앙과 우상숭배를 혼합시킨 교묘한 행위입니다. 아하스의 잘못된 행위가 반복되어서는 안됩니다.
눈에 보기 좋은 것들을 사회 속에서 들여와 교회 공동체에 말씀에 비추어 보지 않고 적용하는 일이 있어서는 안됩니다. 영적인 바른 안목을 가지고 항상 이방의 것들이 교회 속에 자리 잡지 못하도록 하여야 합니다. 특히 하나님께 예배하는 일에 있어서 사람을 기쁘게 하기 위하여 예배를 받으실 하나님을 외면하는 일이 없도록 하나님 중심의 예배를 회복하여야 할 것입니다.
묵상하기
내 삶에는 이방적 요소가 함께 하고 있지 않은가?
2.안타까운 우리야
아하스 왕이 앗수르에 가서 제단의 설계도와 모형을 우리야에게 보입니다. 우리야 제사장은 아하스가 오기 전에 완수하기 위해 힘을 다합니다. 그의 모습은 불쌍해 보입니다. 권력 앞에 굴복하고 있는 비굴한 한 제사장의 모습으로 보여 집니다. 하나님께서 우상숭배를 싫어하시는 것을 알면서 바르게 행동하지 못했습니다. 우리야의 모습은 우상숭배를 거절하며 풀무 속에 들어간 하나냐 미사엘 아샤랴의 믿음과 비교가 됩니다.
여론이나 세상 풍조를 따라 복음의 본질을 다른 것과 섞어서는 안됩니다. 사가랴는 자신의 자리를 지키기 위하여 권력의 뜻을 따랐습니다. 하지만 그가 지키려고 한 그 자리는 하나님의 뜻대로 행하지 않을 때에는 의미 자체가 없는 자리입니다. 그 자리에서 하나님의 말씀의 순수성을 잃지 않게 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였습니다.
묵상하기
나는 복음의 본질을 지키기 위하여 최선을 다하는가?
아하스는 여호와의 구원의 도를 버리고 헛되고 헛된 사람의 구원을 의지했습니다
그래서 성전과 왕궁의 금은을 앗수르 왕에게 예물로 바치고 그의 구원을 의지했습니다
그런데 자기 의도대로 앗수르 왕이 와서 다메섹을 쳐서 멸하고 아람 왕을 죽이자 뜻을 이룬 줄로 알았습니다
이에 그를 만나러 다메섹에 갔다가 앗수르 우상의 제단을 보고 그대로 만들어 성전 놋제단을 옆으로 치우고 앗수르 제단을 그 자리에 두었습니다 사람의 구원을 받았으니 사람에게 좋게 보이려고 한 것입니다
뿐만 아니라 제멋대로 물두멍을 옮기고 구조를 변경했으며, 또
한 앗수르 왕이 와서 볼 것이 두려워서 안식일에 쓰기 위하여 성전에 건축한 왕의 낭실과 왕의 전용출입구를 치웠습니다 사람의 구원을 의지하면 이렇게 되는 것입니다 사람에게 좋게 보이려고, 다윗이 성령의 영감을 받아 준 설계대로 지은 성전의 식양을 제멋대로 바꾸고 제단까지 바꾼 것입니다
그러나 주께서는 그가 믿고 잘 보이려고 했던 그의 손에 의해 수치를 당하게 하셨습니다
"앗수르 왕으로 네 백성의 머리 털과 발 털을 미실 것이요 수염도 깎으시리라"(사7:17~20)
아하스는 성전을 헐지는 않았습니다 그러나 헐어버렸다면 나을 뻔 했습니다 사람의 식양을 혼합한 본래와 다른 성전은 없는 것이 더 낫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옷조차 혼합한 것은 입지 말라 하셨습니다
"양 털과 베 실로 섞어 짠 것을 입지 말지니라"(신22:11)
하물며 하나님의 것에 사람의 것을 섞은 잔을 용납하시겠습니까? 반드시 혼합한 잔은 쏟아버리실 것입니다
"속에 섞은 것이 가득한 그 잔을 하나님이 쏟아 내시나니"(시75:8)
지금도 많은 경우 주의 십자가에 사람의 교훈을 적당히 섞은 잔을 마시게 하여 십자가의 원수로 행합니다
"여러 사람들이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원수로 행하느니라"(빌3:18)
그러나 그들의 결말은 수치요 멸망입니다 "그들의 마침은 멸망이요"(빌3:19)
그러나 우리는 오직 십자가에 못 박히신 그리스도를 아는 지식이 가장 고상한 줄 알고, 그 죽으심을 본받아 부활과 영생에 이르기를 원합니다 "그의 죽으심을 본받아 어떻게 해서든지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에 이르려 하노니 그리스도 예수께 잡힌 바 된 그것을 잡으려고 하나님이 위에서 부르신 부름의 상을 위하여 달려가노라"(빌3:7~14)
오늘의 말씀요약
아하스가 앗수르 왕을 만나러 다메섹에 가서 그곳 제단 양식을 보고 그려
제사장 우리야에게 보내니 그가 그대로 만듭니다. 아하스가 새 제단에서 제사를 드리고 성전 앞에 있던
놋 제단을 그 제단 북쪽에 두고 물두멍을 옮기고 앗수르 왕을 두려워해 낭실을 성전으로 옮깁니다.
오늘의 말씀해설
다메섹의 제단(16:10~16)
신앙은 양보와 타협의 대상이 아닙니다. 아하스 왕은 앗수르 왕을 만나러 다메섹에 갔다가 그곳의 제단을 보고
예루살렘 성전에 동일한 제단을 만들도록 지시합니다. 사료를 보면 앗수르 왕들은 속국 왕들에게
앗수르의 종교를 강요하지 않았습니다. 따라서 제단을 예루살렘 성전에 복제하라는 지시는 앗수르 왕의
정치적 압력이 아니라 온전히 아하스의 판단에 따른 것임을 알 수 있습니다. 아하스는 하나님보다
앗수르 왕을 더 두려워했기에 하나님이 정하신 성전 양식과 제사 제도를 무시하면서까지 앗수르 왕의
인정을 받는 편을 택했습니다. 제사장 우리야 역시 하나님의 법을 고수하지 못하고
왕의 잘못된 명령을 그대로 이행합니다. 오늘날에도 세상의 평판을 의식해서 신앙의 기본을 소홀히 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어긋나는 것은 죄입니다.
교회는 어떤 죄와도 타협하지 않는 거룩함을 지녀야 합니다.
- 묵상 질문: 아하스가 다메섹 제단을 예루살렘 성전에 복제하려고 한 이유는 무엇일까요?
- 적용 질문: 절대로 타협해서는 안 되는 신앙의 기본은 무엇인가요?
성전 기물 훼손(16:17~20)
다메섹 제단을 예루살렘 성전에 복제한 아하스는 계속해서 성전 기물에 대한 추가 조치를 취합니다.
이것 역시 앗수르 왕을 두려워해서 행한 일이었습니다. 아하스는 아람과 북 이스라엘의 침략 위협에
대응하기 위해 앗수르 왕을 정치적으로 이용하려 했지만, 결국 앗수르 왕을 두려워하는 종과 같은 신세가 됩니다.
하나님을 두려워하고 섬겨야 할 유다 왕의 정체성을 상실한 것입니다. 우리가 세상이 친구처럼 느껴진다고
세상을 가까이하다 보면 어느덧 세상의 종이 되어 세상을 두려워하게 됩니다.
오직 하나님을 두려워할 때만 다른 모든 두려움에서 자유롭게 됨을 기억하십시오.
- 묵상 질문: 앗수르 왕에 대한 두려움 때문에,
하나님의 명대로 만든 성전 기물을 유다 왕이 바꾼 사실은 무엇을 깨닫게 하나요?
- 적용 질문: 하나님을 잠깐 잊고 있을 때 내가 가장 두려워하는 것은 무엇인가요?
오늘의 기도
두려움과 부러움 때문에 제 안에 들여놓고 있는 우상의 제단이 무엇인지 밝히 보고 깨닫게 하소서.
화려한 세상 것에 눈 돌리지 않고, 하나님이 계시면 족한 줄로 아는 순전한 신앙으로 서게 하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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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을 그토록 괴롭힌 아람 왕이 앗시리아에 의해 제거되자 유다 왕 아하스는 디글랏 빌레셀의 초청을 받아 다메섹을 방문하여 그곳의 화려한 제단의 모형도와 구조를 그려 제사장 우리야에게 그것을 만들도록 지시합니다.
유다의 역사를 중심으로 다시 재해석하고 있는 역대 하 28장에서는 디글랏 빌레셋이 아하스를 이용하여 자신의 이익을 취하면서 피해를 준 것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로 인해, 아하스는 자신의 잘못을 깨닫기는커녕, 자신의 편이 되어주지 않는 하나님을 원망하여 성전의 기물을 훼손하고, 그들을 지배하고 있는 앗시라아가 섬기는 몰록신과 다메섹의 신들의 제단을 모형을 오히려 그 성전 가운데 세웠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이 상황을 좀 더 자세히 증언하고 있는 것은 이사야 7장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그에게 이르기를 너는 삼가며 조용하라 르신과 아람과 르말리야의 아들이 심히 노할지라도 이들은 연기 나는 두 부지깽이 그루터기에 불과하니 두려워하지 말며 낙심하지 말라(사 7:4)”라고 아하스를 안심시키며 유다에서 가장 악했던 그에게 이사야라는 신실한 선지자를 보내셔셔 포기하지 않으심을 알려주셨습니다.
그를 향한 하나님의 도우심을 전하시며 “너는 네 하나님 여호와께 한 징조를 구하되 깊은 데에서든지 높은 데에서든지 구하라 하시니 (사 7:11)”라고 하셨지만
패역한 아하스는 “나는 구하지 아니하겠나이다 나는 여호와를 시험하지 아니하겠나이다 한지라(사 7:12)”라고 교만하게 하나님의 뜻을 뿌리치고 맙니다.
성전을 파괴하고 우상으로 더럽히는 이 악한 아하스를 향하여, 하나님께 그 징조를 구하라고 내미시는 손을 뿌리치는 자를 향하여, 하나님께서는 이사야의 입술을 통해 친히 징조를 보내시기로 결정하십니다
“그러므로 주께서 친히 징조를 너희에게 주실 것이라 보라 처녀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을 것이요 그의 이름을 임마누엘이라 하리라(사 7:14)“ 우리는 포기할지라도 결코 우리의 손을 놓지 않으시고, 독생자를 내어주시기까지 끝까지 사랑하시고 동행하시는 아버지 하나님을 온전히 신뢰하는 주님의 자녀 되길 간절히 소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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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왕기하 16:10~20 가짜가 진짜를 대신하는 세상
남 유다의 12대 왕이 된 아하스는 하나님 앞에서 불의를 행하고
이스라엘 열왕의 길로 행해 우상숭배 등의 가증한 일들을 본 받아 행했다.
그 결과로 아람왕 르신과 이스라엘왕 베가가 쳐 들어오자
앗수르에게 엄청난 뇌물을 주고 도움을 청했었다.
유다의 아하스 왕이 앗수르 왕을 만나러 다메섹에 갔다가
거기에 있는 단을 보고 구조와 모양을 세밀히 그려서 제사장 우리야에게 보낸다.(10)
제사장 우리야가 아하스 왕이 다메섹에서 돌아오기 전에
아하스가 다메섹에서 보낸 모든 것대로 단을 만든지라.(11)
참으로 정신 나간 왕에 정신빠진 제사장의 모습이다.
하나님이 빠져버린 지도자 하나님을 잊어버린 제사장의 모습이다.
제사장이라도 좀 똑똑한 제사장이 있었던가
왕이라도 하나님을 경외하는 왕이라면 이런 일은 없었을 텐데.
신속하게 왕의 명령을 준행한 것을 보면 성실한 제사장인지는 모르겠다.
그러나 본분을 잊어버리고 방향 감각이 없었던 제사장인 것 같다.
스티븐 코비가 이야기 했듯이
속도 보다 더 중요한 것은 방향이다.
열정 보다 더 중요한 것은 방향이다.
틀린 방향으로 열정과 에너지와 충성과 헌신을 다 드렸지만
하나님의 제사장으로서는 영점인 제사장이란 평가 밖에 없다.
행해야 할 것과 행하지 말아야 할 것
죄가 되는 것과 죄가 되지 않는 것을 분별 할 수있는 영을 주시옵소서.
우리들 주변에 슬그머니 들어와 자리잡고 있는 이단 사상들도
분별하게 하시고 진리의 성령에 이끌림 받는 자 되게 하옵소서.
왕이 다메섹에서 돌아 오자 더욱 가관인 일들이 벌어진다.
새로 만든 단 앞에 나아가 그 위에 제사를 드리고(12)
웃시야 왕 처럼, 사울 처럼 제사장의 직무를 빼앗아 대행하는 모습이다.
여호와의 전 입구에 있었던 놋단을 북쪽으로 옮겨 버린다.(14)
솔로몬왕 이후로 하나님이 디자인해서 주신 번제단을 옮겨버린 것이다.
하나님의 전을 모독하는 것이며 우상 숭배의 재단을 성전에 공식적으로
들려 놓겠다는 의미인 것이다.
뿐만아니라 아침 번제, 저녁 소제 왕의 번제와 그 소제, 국민의 번제와 그 소제를
이 새로 만든 임의의 단에서 드리게 한다.(15)
놋단의 용도는 왕이 하나님의 뜻을 물을 때 사용하는 용도로 제한한다.(15)
우상의 재단을 예루살렘 성전에 두는 것도 부족해서
성전의 모형도 임의로 바꾸어 버리는 아하스 왕.
하나님의 말씀을 부정하고 적극적으로 악을 행하는 모습이다.
한 걸음 더 나아가서 앗수르 왕을 위하여 성전식양을 임의로 바꾸어 버린다.
물두명의 받침을 떼어내어 버린다.(17)
앗수르왕에게 뇌물을 주기 위함인지 모르겠다.
놋바다를 놋소에서 내려 돌판위에 눈다.(17)
놋으로 만든소도 다른 용도로 사용하기 위함 인가 보다.
안식일에 제사장이 쓰던 낭실을 성전에서 옮겨버린다.(18)
제사장의 자리를 약화시킴으로 안식일을 거룩히 지키는 신앙을 무시한다.
모두가 다 앗수르 왕에게 잘 보이기 위함이다.
선조 다윗왕은 나의 도움이 천지를 지으신 여호와에게서로다(시121:2) 고백했지만
후손인 아하스는 나의 도움이 앗수르 왕에게로서이다 하고 선포 한 꼴이다.
성전도 자기 마음대로 망가뜨린 아하스의 행적이
아하스의 남은 사적은 유다왕 역대 지략에 기록되어 있다.(19)
첫째는 여호와께서 아람의 손에 붙여서
심히 많은 무리가 다메섹에 포로로 잡혀갔다.(대하28:5)
둘째는 이스라엘 베가가 쳐들어 와서 하루에 12만명의 용사가 죽는
대 참패를 당한다.(대하28:6)
세째는 에돔 사람들이 쳐들어 와서 패전을 거듭하고.(대하28:16)
네째는 블렛셋 사람들도 쳐 들어와서 많은 땅을 잃게 된다.(대하28:17)
다섯째는 동맹을 맺고 뇌물을 갖다 바친
앗수르 마져도 군박했다. (압제한다.) (대하28:20)
여섯째는 여호와께 범죄하여 (대하28:22)
여호와의 노를 격발케하고 (대하28:25) 나라를 망하게 했다. (대하28:23)
하나님을 떠나 우상 숭배의 길로 가버린 유다왕 아하스 행위의 결과이다.
오늘도 거룩한 주일이고 예배를 한다.
예배란 성령의 도우심으로 예수그리스도를 통하여
하나님 아버지께 나아가 행해 지는 것이다.
나의 만족을 위해서 드려 지는 것도 아니요
나의 방식대로 드려지는 예배가 아니다.
하나님 보시기에 옳바른 예배
오직 예수그리스도를 통하여 드려지는 예배
하나님 아버지의 영광을 위하여 드려지는 예배
바로 그런 예배를 드리고 싶다.
사랑과 은혜가 풍성하신 하나님 아버지,
변함없이 우리를 도우시고,
그 강하고 귀한 은혜의 손길을 신실하게 내미심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가진 것, 세상의 지식과 꾀로 해결하려 했던
교만 가운데 있었음을 아하스 왕을 통하여 돌아보게 하시니 감사합니다.
우리의 구원의 반석이시며,
세상 끝날까지 우리와 함께 하시겠다고 하신
예수 그리스도의 언약의 말씀을 굳게 붙들고,
날마다 그 임마누엘 하나님을 더 깊이 만나고
알아가는 성령 충만한 주님의 제자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이 시간에도 열방 가운데 주님의 복된 소식 전하시는
선교사님들의 가정과 사역위에 기름 부어주시고,
그 모든 필요에 넘치도록 아버지께서 풍성하게 채워 주시옵소서.
질병과 전쟁, 기운과 핍박, 모든 자연재해로 말미암아
고통받고 신음하는 주님의 백성들을 불쌍히 여겨 주시고
회복과 치유의 손길로 덮어 주시옵소서.
이 나라와 백성의 하나님을 경외하고, 아버지 놀라우신 뜻을
더 깊이 붙드는 거룩한 제사장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감사와 찬양을 아버지께 올려드리며,
우리의 길과 진리와 생명 되신 예수님의 거룩하신 이름으로 간절히 기도드립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