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십자가 현양 축일입니다. 종교박해가 끝나고 종교자유가 보장된 후 326년 성녀 헬레나께서 성지순례를 하며 골고타 언덕에서 세 개의 십자가를 발견하게 됩니다. 어느 것이 주님의 십자가인지 알기 위해 기적을 청합니다. 주교님의(마가리오주교) 입회하에 중병환자가 세 개의 십자가를 만지게 하였는데 주님의 십자가를 만지자마자 즉시 병이 완쾌되었다고 합니다. 그런데 612년경 동로마제국을 침입한 페르샤의 왕 고스로아스가 예수님의 십자가를 노획해 갔는데 15년후인 628년 9월14일에 헤라클리우스 황제가 예수님의 십자가를 다시금 되찾아 온 것을 기념하고, 이전에는 335년 콘스탄틴 대제가 예수님의 무덤 위에 예수님의 부활 대 성당을 짓고 헌당한 날이 9월14일이었기 때문에 이를 기념했습니다.
바오로 사도께서 “멸망할 사람들에게는 십자가의 이치가 한낱 어리석은 생각에 불과하지만 구원받을 우리에게는 곧 하느님의 힘입니다.”(1고린1,18)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가장 강한 것’이라는 제목의 글입니다. ‘가장 강한 것은 돌이다. 그러나 돌을 깨트리는 것은 쇠다. 쇠를 녹이는 것은 불이다. 불을 끄는 것은 물이다. 물은 구름에 흡수되어버린다. 구름은 바람에 날려간다. 바람은 사람을 어찌하지 못한다. 사람은 죽음을 향해 어찌하지 못한다. 그런고로 죽음이 가장 강하다. 죽음보다 강한 것은 바로 십자가이다. 십자가는 죽음을 이길 수 있기 때문이다.’ 라고 말합니다.” 깊이 생각케 하는 글입니다. 크리스챤이란 십자가를 깊이 이해하는 사람들입니다. 십자가를 이해하지 못하면 그리스도인이라 말할 수 없습니다. 바오로 사도의 말씀처럼 십자가를 하느님의 힘으로 받아들이고 그렇게 이해하는 사람이 그리스도를 믿는 신앙인 이라는 말입니다. 십자가는 죽음이라는 것을 분명히 알아야 합니다. 십자가는 중죄인에 대한 처참한 처형법입니다. 십자가는 아주 부끄러운 죽음입니다. 인류 역사상 가장 비참하고, 가장 부끄럽고, 가장 저주스러운 죽음이 바로 십자가입니다. 그런데 우리 그리스도인은 여기에서 무궁한 신비를, 엄청난 생명력을, 부활의 신비를 발견하고 이 죽음을 기꺼이 받아들입니다.
예수님께서 죽을 수밖에 없는 우리를 구원하시고자 자원하시어 십자가에 죽으심으로 우리를 구원하셨습니다. 바오로 사도께서 말씀하신 바와 같이 예수님께서는 자신을 낮추셔서 십자가에 죽기까지 순종하셨습니다. 그래서 하느님 아버지께서는 그를 높이셔서 모든 이름 위에 뛰어난 이름을 주셨다. 라고 말씀하십니다. 가장 비참하게 죽으신 예수님을 모든 이 위에 높이시고, 부활의 영광을 주셨습니다. 십자가는 부활에 이르는 길이며 수단입니다. 그리고 십자가는 우리에게 대한 하느님의 무한한 사랑의 상징이며, 구원의 길입니다. 그리고 많은 기적을 행하시고, 죽은 자를 살리신 예수님께서 자원하여 비참한 십자가를 받아들이셨음은 우리가 부활의 영광에 이르기 위해 어떻게 해야 하는지를 가르쳐주고 있습니다.
오늘 독서에서는 불평불만을 하는 백성들에게 불 뱀을 보내어 물린 사람들을 죽게 하신다는 것과 뱀에 물려 죽을 수밖에 없는 이들이 기둥에 만들어 매단 구리 뱀을 쳐다본 사람을 살리신다는 민수기 말씀을 들었습니다. 이 구리 뱀은 십자가의 전표입니다. 오늘 복음에서는 십자가에 죽으시고 부활하신 예수님만이 하느님 아버지께 갈 수 있는 유일한 길이 되심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토록 우리를 사랑하신 아버지 하느님의 사랑을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나를 따르려는 사람은 누구든지 자기를 버리고 제 십자가를 지고 따라야 한다.”(마태오 16,24) 라고 예수님은 말씀하십니다. 예수님을 따르는 삶은 자신이 죽고, 십자가를 자원하여 받아들이는 것입니다. 이웃을 위해 희생하고 봉사하는 것을 기쁘게 행하며, 나의 모든 어려움도 세상 구원을 위해 기꺼이 받아들이는 것입니다. 썩는 밀알의 삶이 십자가를 받아들이는 삶입니다. 9월은 순교자 성월입니다. 순교자들이 십자가를 기꺼이 받아들인 사람들입니다. 순교자들의 순교정신을 본받아 순교정신을 바로 사는 것이 십자가의 신비를 잘 사는 사람일 것입니다.
“나에게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밖에는 아무것도 자랑할 것이 없다.”(갈라6,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