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 부대는 ‘변화된 삶’을 의미합니다>
오늘 복음은 단식 논쟁을 통해서 ‘새로운 때’가 도래했음을 선포하십니다.
‘신랑’이 와서 함께 있는 때가 도래한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말씀하십니다.
“혼인잔치 손님들이 신랑과 함께 있는 동안에 단식할 수 없지 않느냐?”(루카 5,34)
사실 바리사이들과 요한의 제자들은 레위기 16장 29-31절에 따라, 구약의 속죄일을 지키기 위해 단식을 했습니다.
곧 잘못을 벗고 정결해지기 위해 1년에 한 번씩 단식을 했습니다.
그리고 열심한 바리사이들은 월요일과 목요일, 1주일에 두 번씩 단식을 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과 제자들은 단식을 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사람들이 이상하게 여겨 그 이유를 물었던 것입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는 단식을 거부하신 것이 아니라, 지금은 그 '때'가 아님을 말씀하십니다.
그리고 그 이유를 밝혀주십니다.
여기서 예수님께서는 당신 자신을 ‘신랑’이라고 부르십니다.
그리고 ‘신랑’이신 예수님께서 말씀하십니다.
“아무도 새 옷에서 조각을 찢어내어 헌 옷에 대고 꿰매지 않는다.
~ 또한 아무도 새 포도주를 헌 가죽부대에 담지 않는다.
~ 새 포도주는 새 부대에 담아야 한다.”(루카 5,36-38)
이처럼 예수님은 당신 자신을 낡은 옷에다가 깁을 수 없는 ‘새 옷’이며,
낡은 가죽 부대에 담을 수 없는 ‘새 포도주’에 비유하십니다.
이는 당신과 함께 새 시대가 도래했다는 사실을 말해줍니다.
그래서 이제는 단식의 의미도 달라진 것입니다.
새로운 단식, 곧 구약의 속죄와 정결을 위한 단식이 아니라, 신랑이 떠나간 후에 있게 될 단식입니다.
곧 단식이 주님의 수난과 죽음과 연결된다는 것을 말해줍니다.
이제부터 단식은 예수님께서 우리를 위해 돌아가신 것을 기억하며,
그 사랑에 감사드리며, 다시 오실 것을 기다리는 단식이 될 것입니다.
그러니 이제 ‘새 포도주’를 담을 ‘새 부대’가 필요할 때입니다.
새 부대는 ‘변화된 삶’을 의미합니다.
곧 새 포도주를 담을 변화된 삶이 필요한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신랑’은 이미 와 있고 혼인잔치가 열렸습니다.
‘신랑’ 없이는 열릴 수 없는 잔치입니다.
참으로 기뻐해야 할 때입니다.
새 시대가 왔기 때문입니다.
이제는 새 시대를 담을 새 부대가 필요할 뿐입니다.
그렇습니다.
새로운 ‘하늘나라’는 예수님과 함께 ‘이미’ 왔습니다.
우리는 이 '복음'을 믿고 받아들이고, 우리의 삶 안에서 하느님의 다스림을 받으며 살아갑니다.
그리스도께서 가져다 준 이 나라를 우리의 삶 안에서 그분의 영과 더불어 완성으로 나아갑니다.
우리는 이 축복의 삶을 향유할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아멘.
<오늘의 말·샘 기도>
“새 포도주는 새 부대에 담아야 한다.”(마르 5,38)
주님!
제 마음이 새 부대이오니, 사랑의 술을 부으소서!
당신 사랑에 취해, 제 마음 기뻐 흥겨워지게 하소서.
당신의 사랑에 젖고, 당신 향기 품게 하소서.
제 삶이 포도주 잔이 되어, 만나는 이마다 사랑을 건네게 하소서!
당신의 축복과 기쁨, 당신의 생명과 진리를 건네게 하소서.
한반도 방방골골 진리와 정의와 평화가 넘실거리고, 새 포도주로 달구어지게 하소서!
아멘.
- 양주 올리베따노 성 베네딕도 수도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