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둥이 孫女 국민학교 3학년 되니까 卒業式 때는 내 나이 여든 한살, 나도 참석할껴
위 사진은 2年 前 (2021년)2월 18일자 고향 서천신문 기사 가운데 ♧'졸업식풍경도 바꿔버린 코로나 感染 病'이란 기사를 읽고 내가 기고한 '讀者 寄稿文'여유.
코로나 感染 病'이 3년째 우리들 생활리듬을 뒤흔드는 동안 가장 무서웠던 것은 열심히 배우며 공부해야 될 청소년들의처지였으리라.
우리 둥이손녀 태어나 잔병치레 없이 자라며
어린이집 유치원 마치고 국민학교에 입학하면서 밀어닥친 코로나가 시간이 갈수록 전 세계로 猖獗하여 入學ㆍ 卒業式 풍경까지 바꿔버렸으니 첨단 과학문명이면 무슨 힘이 있고 의사 병원 약국이 무슨 대책이 있으랴,
개학하면 국민학교 3학년이 될텐데 이제 코로나가 고개를 숙이겠지.
애들이 학교에서 공부하는 건지? 놀러 다니는 건지?
빛나는 卒業狀을 타신 언니께 꽃다발을 한아름 선사ㆍㆍㆍ
卒業시즌에 어릴 적을 회고한다.
졸업시즌이건만
벼락을 달려가 맞아 뒈질 코로나 땜에 작년엔 빛나는 졸업장 커녕 교문을 닫은 채 비대면 졸업장을 택배로 보냈다네.
올해 졸업식은 규제가 해제될런지?
어릴 적 학교 다닐 적에 59년도 1월인가? 2월인가?기산국민학교19회 졸업식 날, 62년도 역시 봄이 오려는 즈음 서천중학교 14회 졸업식 날, 65년도 1월 방학기간에 장항농고 14회 졸업식을ㆍㆍㆍ
초ㆍ중ㆍ고 세 군데 모두 졸업식장에서 재학생 5학년 때는 송사를, 졸업식 날은 졸업생 대표로 답사를 담임선생님들께서 나에게 시키셨지.
고교 졸업식 날은 겨울방학임에도 대학입시 대비 歸家 포기, 일제시대 지어 폐쇄시킨지 오래 된 학교 기숙사 바닥에
나 혼자만 자취하던 자리에 남아서 난로커녕 이부자리도 없이 떨면서 밤을 새웠던 뻐국새우는 사연은 그 때나지금이나 여전.
졸업식 즈음 선생님께서 시키심으로 답사를 연습하면서도 눈물을 줄줄 흘렸으니 정작 졸업식 당일엔 아직 아침도 먹지 않은 내게 친구 몇 명이 드리 닥쳐 빈 손으로 온 게 아니라 삼학쇠주를 들고와서 당시 내가 진지 차려드렸던 신현종 선생님 국 대접에 찬 술 부어주는 걸 빈속에 마셔버렸으니 어린 삭신이 오죽이나 떨렸으랴?
졸업식 시간이 되어 식장에 들어선 나는 답사를 해야될 졸업생 대표로서 연습때도 눈물짰으니 쇠주기운에 오죽 격했으랴?
모두 자리에서 일어나 재학생대표의 송사가 끝나가는데 나는 의자에 앉은 채 어깨만 들석이자 뒤에 동무가 "다음이 네 차례여"라며 귀를 잡아 돌리는 바람에 걸어나가 두리마리로 준비된 답사를 펼쳐들고 흐느끼며 읽어 가다가 "선생님! 천방지축 분간 못하는 저희들 보고 나가라면 어디로 가란 말입니까? 앞으로 다시는 선생님 속 썩이지 않을테니, 학교에 더 있을테니, <나가라>고 하지마셔유"
이 대목에서 바닥에 주저앉아 엉엉 울어 버렸으니ㆍㆍㆍ
어느 선생님께서 일으켜 세우니 혼날까봐 울면서 다 읽긴 읽었지.
우리 부모님은 누구도 오시긴커녕 졸업식 날인 줄도 모르셨을터, 다른 동무들 엄마 아빠 학부형들도, 교장 선생님도 심지어 '내빈으로 임석하신 경찰서장님도 눈물을 흘리셨다'고 훗날 어떤 후배 아우가 날
찾아와서 傳하던 기억이 2년 후면 우리나이 여든 살인 이 밤에 생생하게
떠 올라유.
졸업식날 유행 병처럼 행해졌던 유리창 깨려던 동기생 동무는 "재갑이 너 땜에 깨지 못했다"고 훗날 날 탓했으니 그 친구 이름이? 으~음
맞어 (이봉하)여.
어디 아프지나 않고 건강한지? 혹시?
오늘 추위가 보통이 아니네. 저는 내일 주일날이건만 대리근무 빚진 것 갚아야기 때문에 주일성수 못하고 여기 업무종료 후 06시쯤 대리근무하러 가유. 그럼 안녕히들 주무시겠어유?
예니 제니야 할미와 할비 누가 멋져?
"멋진건 할빈데 할미가 엄청 좋아"
엄청이란 말은 누가 가르켜줬니?
너희들 졸업식날 할비도 갈꺼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