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茶) 한 잔의 예절
김순덕
팽주가 앙증맞은 다완(茶婉)에 정성스레 따라주는 차(茶)를 두 손으로 감싸
서 가슴께로 가져와 빛깔과 향을 음미 한 다음, 천천히 아주 천천히 입으
로 가져갔다.
조금의 흐트러짐도 허용하지 않는 듯 조심스레 마시고 난 후 다시 한잔을 더 따라
주면 그 맛 또한 다른 맛으로 내게 다가왔다.
다도(茶道)라는 언어 속에서 나타났듯이 차 문화의 올바른 길을 배우리라 짐작은 하
였지만 이렇게 차(茶)한잔을 마시는 데도 무언의 행위에서 그리고 상대를 배려하는 덕
(德)이 다 내포 되었다는 것을 오늘에야 조금은 알 것 같다.
내 생활 속에서 길들여진 커피 맛의 쌉쌀한 듯한 맛과 그 향에 도취되어 습관처럼
마셔서 이제 커피는 잘 차려진 식사 후에는 습관처럼 후식으로 자리를 잡아 가고, 가
는 곳마다 사람이 많이 왕래 하는 곳이면 어김없이 커피 자판기가 있는 것은 커피를
즐긴다는 증거이기도 하다.
어쩌다 어느 자리에서 다른 차를 대접 받았을 때는 예의상 즐거운 표정으로 마시면
서 담소 할뿐 차에 대한 느낌은 별로 없었던 것이 사실이다.
놋화로에 ‘자르르 자르르’물 끓는 소리가 들린다. 대나무 포자로 물을 떠서 다완
(茶婉)에 따르는 소리가 옥구슬 구르는 소리로 들린다.
다완(茶婉)에 채워지면 녹차 향(綠茶香)이 방안가득 퍼져 온다. 조용한 산사 산방
에는 촛불에서 심지 튀는 소리가 유난히 크게 와 닿는다.
육십 여명의 수강생들이 큰 선방(禪房)을 가득 메우고 있지만 누구 하나 궁금한 말
한마디 건네는 것조차도 잊은 듯하다.
녹차를 마신 다음, 다른 차를 맛보기 위해 조용히 자리를 옮겼다, 다섯 가지 맛을
낸다는 오미자차, 쑥 향기 그윽한 쑥차와 모이차의 은은한 향에서 인지 심신이 편안
한 느낌으로 다가왔다.
그리고 연꽃이 큰 귀 사발에 활짝 피어있는 모습에서 또 다른 느낌으로 다가왔다.
송엽(松葉)차가 입안으로 들어와서 떠날 줄 모른다, 솔향기에 취해 마치 솔밭에 누
워 솔바람과 입맞춤 하는 듯한 착각이 든다.
팽주가 가르쳐 준 봄에 핀 연한 솔잎을 따서 항아리에 차곡차곡 담아서 설탕이나 꿀
에 재웠다가 쓴다고 자세히 알려줬다.
팽주의 조용하고 다감한 말씨에서 다도(茶道)가 조금씩 보이기 시작한다, 선머슴
같은 내 자신을 돌아보면서 야생마(野生馬)와 준마(駿馬)의 차이를 생각해 봤다.
우리 앞에서 차 마시는 법을 손수 보이던 스님의 말씀이 귀에 맴돈다, 흙탕물에 물
들지 않는 연꽃처럼, 큰소리에 놀라지 않는 호랑이처럼, 그물에 걸리지 않는 바람처
럼, 그 말뜻을 지금도 다 이해 하기에는 부족함이 많은 것 같다.
초의 선사는 혼자 마시는 차는 신령(神靈)스럽고 둘이 마시면 수승(殊勝)하다고 했
다. 또한 고려 말 충신인 포은(圃隱) 정몽주(鄭夢周)의 시에서 “나라에 보답할 곳도
없는 늙은 서생이 차 마시는 버릇만 생겨 세상일 잊는다네. 바람 불고 눈 내리는 밤
고요한 집에 홀로 누워 돌솥에 찻물 끓는 소리만 아껴 듣누나,” 라는 글을 읽으면서
선현들이 차를 가까이 두고 다도를 수행한 것 같다.
차의 역사는 참으로 오랜 세월이 흘렀지만 차의 효용이나 다도의 깊은 의미를 알지
못한 것을 부끄럽게 생각한다.
우리나라에 최초로 차가 들어온 것은 신라 흥왕 때 중국에 사신으로 간 대렴 공(大
廉公)이 차 종자를 가져와 지리산 장축 전에 심었다고 전해진다.
그러나 조선불교통사(朝鮮佛敎通事)에 따르면 가락국의 김수로 왕의 왕비인 허황옥
이 인도에서 건너올 때 불탑과 사리, 경전, 비단 금, 은 등과 함께 차 종자를 가져와
김해 백월산에 심었다고 쓰였는데 그곳에 차나무가 있는 것을 보아도 증명이 된다.
옛날에는 궁에서나 제(祭)를 지낼 때에 귀히 여겨 제물(祭物)로 올렸다는 고증(考
證)이 있다.
오늘날 서구 문물이 받아 들여 지면서 커피가 일반화되었고, 우리 차라고 하여 생강
차, 모과차,대추차 인삼차들을 말 하지만, 다산 정약용의 아언각비(雅言覺非)에는
대추탕이나 인삼탕이라고 지적하여 차에 격을 두었던 것 같다.
몇 년 전 중국을 여행 하였을 때 차로 유명한 고장에 가서 보이차와 우룡 차를 맛보
았지만 아둔한 내 감각으로는 별로 다른 느낌을 그 당시에는 받지 못했었는데, 짧지만
이 시간을 통해서 차 한잔 마시는 데도 예절이 스며있는 것에 놀랍다.
차는 만드는 방법에 따라 이름이 달라진단다. 이른 봄 연한 잎을 따서 뜨거운 무쇠
솥에 덕어서 말린 것을 녹차라 하고, 부분적으로 발효된 것을 황차 오룡차·철관음·
재스민. 청자 등이고 강 발효차인 홍차와 곰팡이 발효차인 보이차가 있다.
보이차는 숙성이 오래 될수록 독특한 향과 차에 성분이 더 좋아져서 지방질 제거와
암 예방과 머리와 귀, 그리고 눈을 맑게 하는 탁월한 효과가 있단다.
세계적으로 유명한 프랑스의 포도주처럼 백년 이상 된 값이 비싼 보이차도 있어 차
애호가들이 군침을 삼키는 귀한 차라고 한다.
단순하게 차 마시는 법도만 배운다는 어리석은 생각에서 다도에는 철학과 사상 도
덕, 미술, 문예, 건축, 음악이 어우러진 종합예술이라고 생각된다.
지금 마시고 있는 차 한 잔 한잔의 액체 속에는 얼마나 많은 철학(哲學)이 담겨 있
는지 글로 다 표현 할 수 없음이 안타까울 뿐이다.
2005 20집
첫댓글 단순하게 차 마시는 법도만 배운다는 어리석은 생각에서 다도에는 철학과 사상
도덕, 미술, 문예, 건축, 음악이 어우러진 종합예술이라고 생각된다.
지금 마시고 있는 차 한 잔 한잔의 액체 속에는 얼마나 많은 철학(哲學)이 담겨 있
는지 글로 다 표현 할 수 없음이 안타까울 뿐이다.
팽수,
신령, 수승.
대렴공. 허황옥.
김해 백월산.
다산의 아언각비.
차 한 잔속에는 얼마나 많은 철학이 담겨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