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光州사건은 김대중의 폭동이었다"
~뉴욕타임즈 기자의 34년만의 깨달음~
한국의 지식인이나 언론이 신주처럼 모시는 뉴욕타임즈. 1851년에 창간된 이 신문은 한국뿐 아니라 세계의 지식인과 언론에서도 곧잘 인용되곤 한다.
뉴욕타임즈의 펜타곤 페이퍼즈 베트남전 패배의 길로
뉴욕타임즈의 기자 또한 특별대우를 받는다. 한반도에서 군사적 충돌이 일어나면 세계의 주요 언론사 특파원들이 달려온다. 1968년 1월 23일 미해군 정보수집함 푸레블로호가 북한에 나포됐을때, 그해 크리스마스 이브에 80명의 승무원들이 석방됐을때, 1976년 8월 18일 판문점 공동경비구역(JSA)내에서 인민군떼가 미군장교 2명을 도끼로 후려갈겨 살해했을때, ---등 주한미군사령부나 미국대사관에서는 뉴욕타임즈 또는 AP통신 기자만을 따로 불러 특별브리핑을 해주곤 했다.
AP는 전세계적 취재망을 갖고있고, 뉴욕타임즈는 그 전통과 권위를 존중해 특별대우를 하는 것이라고 대사관이나 미군당국은 설명했다. 그 권위있는 뉴욕타임즈는 때때로 미국정부보다 훨씬 더 큰 권위를 자랑한다.
1971년 6월 13일 베트남전이 피크에 달하던 때 뉴욕타임즈는 140만부 발행의 일요판 1면톱에 베트남 문서 : 30년에 걸친 미국의 (베트남전) 개입과정을 추적분석(Vietnam Archive : Pentagon Study Traces 3 Decades of Growing U.S. Involvement) 제하의 닐 시한 기자의 장문의 기사를 실었다. 이날짜 1면에는 리차드 닉슨대통령의 딸 트레시아양이 아버지에 이끌려 웨딩드레스 모습으로 백악관 로즈가든을 걷고있는 큼직한 사진이 실려있었다. 독자들은 이 사진에 눈이 끌려 옆에 실린 시한기자의 길다란 문장에는 관심이 거의 없었다.
그러나 약 3천페이지에 달하는 분석과 4천여쪽의 부록문서를 밀폐된 호텔방에서 3개월간 읽고 간추린, 속칭 펜타곤 페이퍼즈(Pentagon Papers)는 베트남전의 戰勢(전세)를 기울게 했고, 궁극적으로 베트남을 공산적화통일의 길로 이끌었다.
영국인으로 옥스포드 나온 뉴욕타임즈 기자와의 만남
미국의 대표적인 보수논객인 앤 쿨터(Ann Coulter)가 일찌기 갈파했듯 뉴욕타임즈는 민주당과 함께 미국을 망친 진보주의자들(Liberalists)이라고 할수있을지 모른다.
그 뉴욕타임즈 기자를 1980년대초 일본 도쿄의 외국인특파원클럽(Foreign Correspondents Club, FCC,J)에서 몇번 만난적이 있다. 옥스포드를 나온 영국인으로 1960년대 후반 일본에 처음 갔을때 파이낸셜 타임즈(Finantial Times), 얼마후에 런던 타임즈(The Times)소속 특파원이었다가 80년대초에는 뉴욕타임즈로 옮긴 유능한 기자로 알려졌었다. 이름은 헨리 S 스토크스(Henry S. Stokes). 1938년생이니까, 그때 나이는 40대 후반쯤으로 기억한다.
역시 진보주의자로, 박정희나 전두환을 희대의 독재자로 낙인찍고 한국기자들을 그 앞잡이쯤으로 여기고 무시했다. 그는 말할수없이 오만했지만, 필자가 외신기자클럽에서 두어번 공개토론 한뒤 그는 비로소 나에게 말을 걸어왔다.
한번은 재일조총련 부의장(이름 잊음)이 외신기자클럽에 와서 (1980년 여름으로 기억) 전두환독재정권을 마구 비난했을때 필자가 나서, 김일성은 소련의 괴뢰로 정권을 잡고 Bullets(탄환)으로 권력을 유지하고 있지만, 전두환은 수년후면 Ballot(투표)으로 정권을 물려줄 것이라고 쏘아붙였다.
또 한번은 마이크 맨스필드 주일대사가 FCC,J의 초청연사로 나와 일본의 방위비 증액을 주제로 연설했을때. 스웨덴의 좌경기자(이름 잊음)가 한국이 민주주의에 역행하고 있다면서, 미국은 그런 한국을 계속 지원할거냐?고 따져물었다. 맨스필드는, 그 문제는 내 영역 밖이라면서 응답하지 않았다.
김대중집에 수시로 드나들던 헨리 스토코스
필자는 흥분하면 옆구리가 결린다. 옆구리가 몹시 결렸다. 사회자를 향해 오른손을 번쩍 들었다. 마이크를 잡고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나는 문제의 분쟁지역에서 왔습니다.(I came from the trouble spot.) 한국은 미국과 더불어 공산주의와 싸워 이긴 나라입니다. 그 과정에서 미군 3만5천여, 한국군 14만여명이 희생됐고 한국의 민간인 2백여만명이 공산주의자들에 의해 살륙됐습니다. 그렇게해서 얻은 자유민주주의 질서를 파괴하는 세력이 대한민국의 기본을 흔들었습니다. 전두환은 이걸 바로잡기 위해 잠시 나타난 군인입니다. 미국은 이점을 이해하며 같이 갈 것인지, 아니면 앞서의 스웨덴기자가 바라는대로 미국은 한국과 결별할 것인지 말씀해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일순 4백여명이 지켜보는 가운데 맨스필드 대사는 서서히 입을 열었다.
한국은 비극의 나라입니다.(Korea is a tragic Country.) 그러나 한국민은 비극을 극복하고 자유민주주의를 쟁취했습니다. 앞으로도 한국은 자유민주주의를 지속발전시켜 나갈 것으로 믿습니다. ---따라서 미국은 한국과 한국인의 친구로 남아있을 것입니다.(U.S. will remain friend of Korea and its people.)
우레와같은 박수가 약1분 계속되었다. 필자는 6.25때의 전투에 이어 여기서도 좌익과의 싸움에서 힘겹게 이겼다고 느꼈다. 스토크스 기자가 와서 손을 잡으며 말했다. 질문이 아니라 명연설이었다.(It was not a guestion, but a speech, excellent speech!)
그는 그무렵 전두환을 만날 생각도 안하고 김대중만 여러번 만났다. 그가 서울 동교동 김대중씨 자택으로 가면 국내외 기자들이 문밖에 진을 치고 있으면서 들어갈 엄두도 못낼때 무시로 수시로 드나들었다.
저널리스트로서의 不覺을 수치로 깨닫다
뉴욕타임즈에는 수시로 한국의 민주투사 김대중의 근황에 관한 기사가 대서특필되곤 했다. 스토크스 기자는 김대중을 30회 이상 만났다고 했다. 일본여자와 결혼하고, 일본의 국군창설을 외치며 1971년 자결한 審美主義(심미주의) 작가 미시마 유키오(三島由紀夫)에 心醉(심취)한 스토크스는 2013년 12월 영국기자가 본 연합국 戰勝史觀(전승사관)의 虛妄(허망)이라는 제목의 책을 출판했다. 이 책은 출간 3개월동안에 11刷(쇄)를 거듭했다.
그도 그럴것이 제목이 말하듯, 일본을 극찬하고, 전쟁에 이겼다고 敗者(패자)를 재판(국제도쿄전범재판)하는 법이 어디 있느냐며 미국을 신랄히 비판하고 있으니 말이다. 스토크스는 이 책에서 일본은 아시아 각국을 영국-프랑스-네덜란드 등으로부터 해방시켰다고 강변하고 있다.
이 책이 더욱 재미있는것은 스토크스의 김대중 신앙이 30여년만에 여지없이 깨졌다는 사실이다. 스토크스는 이 책에서 김대중을 私慾(사욕)의 權化(권화), 카멜리온과 같은 정치인이라면서, 그가 받은 노벨평화상은 엉터리상이라고까지 말했다.
그는, 민주화운동의 투사를 가장한 김대중은 짝퉁(fake)이며 사기꾼(imposter), 권력지향의 겉멋든자(pretender)---등 최악의 호칭으로 불렀다. 그는 또 광주폭동의 진실의 모습은 김대중폭동이었다고도 썼다. 광주폭동은 처음부터 김대중의 연극이었다고도 해다.
스토크스는 자신의 저널리스트로서의 不覺(불각)을 수치스럽게 여긴다고도 말하고 있다. 그가 좀더 명석했었더라면 김대중이 그토록 국내외의 명성을 얻지 못했을 것이다. 뿐만 아니라 그는 그러한 명성을 배경으로 대통령 4修(수)에 감히 도전하지도 못했을 것이며, 대통령이 안됐더라면 평양방문의 사기극도, 그로 말미암은 노벨평화상은 언감생심 생각도 못했을 것이다.
30여년만에 진실에 눈뜬 세계적 엘리트 기자
그보다도, 무엇보다도 개탄스러운것은 김대중과 김정일 그리고 그 졸개들이 심어놓은 惡(악)의 씨앗, 붉은 종자가 오늘날 대한민국을 이토록 어지럽고 혼란스럽게 만든 큰 요인가운데 하나가 헨리 S. 스토크스라는 기자의 不覺(불각)에서 비롯되었다는 사실이다. 이점 옥스포드대학을 나와 일본 도쿄에서만 수십년간 세계적 권위지의 특파원으로 일한 스토크스기자의 불각-불찰-불명으로 말미암은 편견이 그토록 무서운 결과를 빚었다는데 대해 엄중한 책임을 그에게 묻지 않을 수 없다.
더욱 한심스러운 것은 박근혜대통령이 7.4성명, 6.15선언등을 약속이니까 지켜야 된다면서 정부가 기념행사까지 하고있다는 사실이다. 김대중을 민주화의 化身(화신)처럼 미국과 세계에 알려온 헨리 S. 스토크스 NYT기자의 뒤늦은 고백을 박대통령이 한번쯤 읽어봤으면 좋겠다.
박대통령이 만약 그 글을 읽는다면 김대중이 김정일과 합의한 6.15선언을 비롯, 노벨평화상등이 형편없는 허구위에 구축된 모래성임을 깨닫게 될 것이다. 박대통령이나 한국의 기자들이나 스톡스기자처럼 뒤늦게라도 진실에 눈을뜨고 自省(자성)했으면 좋겠다.
기자는 역사의 기록자라고도 한다. 역사는 편견없이 사실대로 기록되어야 한다. 물론 그러한 작업은 쉽지 않다. 쉽지 않기 때문에 남다른 刻苦(각고)의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스토크스기자─. 그는 누구인가? 한때 김대중을 비롯한 한국의 여-야 정치인들이 신주 모시듯 한 세계적 엘리트기자였다. 그런 그가 30여년의 세월이 흐른 다음에야 비로소 진실에 눈을 떴다.
그의 글 가운데 다음과 같은 대목이 있다.
옛날부터 나의 知人(지인)이 김대중은 신용할 수 없다 북한의 호주머니 속에 있다. 그(김대중)는 북한을 위해 일하지, 한국을 위해 일하지 않는다고 하는 사람이 있었다. 나는 말도 안돼. 그는 한국의 민주화를 위해 늘 진력하고 있다. 기독교인이며 선량한 사람이다라고 반론했다. 그런데 내가 잘못알고 있었다. 대통령이 되자 금세 북한의 괴뢰임이 드러났다. 나는 저널리스트로서 다만 나의 불명을 수치스럽게 생각한다.
그에 비하면 학식도 경험도 공부도 부족한 한국언론매체에 종사하는 기자들이 쓰는 글이나, 깊은 생각도 공부도 없이 TV방송에 나와 마구 쏟아내는 혀놀림은 저널리즘이 아니라 너절리즘이라 해야 맞을것 같다.
30년만에 진실에 눈뜬 한국기자는 한사람도 없다
스토크스기자는 그나마 뒤늦게라도 자신의 불각-불찰-불명을 수치스럽게 여긴다고 고백이라도 했다. 30여년전 광주폭동을 취재-보도했던 한국기자들 가운데 광주민주화투쟁은 알고보니 김대중이 꾸민 폭동이었음을 뒤늦게 알고 스스로의 불각-불민을 깨닫고 고백하는 기자는 아직 단 한사람도 없다.
문창극을 물어뜯고 잡아먹은 KBS의 기자와 앵커들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따라서 無智(무지) 不覺(불각)투성이 한국기자들이 쓴 현대사는 모두다 짝퉁이며 사기요 왜곡으로 후세 史家(사가)들에 의해 기록될 것이다<월간 '한국논단' 8월호/霞山斷想>