십년도 더 지난 일이었지 싶다.
모 까페에서 활동할 때, 쪽지가 날아왔다.
내가 돌씽이라 좀 그렇긴 한데, 어쨌든 상대녀는
미혼으로 두 사람이 잘 맞겠다 싶어 '소개팅 받아볼
의향이 있느냐' 고 물어보는 쪽지였었다.
일단은 자신이 나를 만나본 후에 결정을 내리겠다며
약속장소를 잡아놓고 점심식사겸 자리를 같이했다.
개량한복차림으로 나온 그녀의 첫 인상은 의외였다.
초여름 경이었었는데 얼굴이며 팔등이 햇볓에 그을려
가무잡잡했고 약간의 로션을 바른 듯 하다.
깔끔한 식당이었고 그녀 자신이 나를 보자했으니
그날 일정의 비용을 전부 그녀가 계산한다 한다.
진주가 고향인 그녀...
손윗 오빠가 행시에 붙어 고향 부군수로 금의환향했건만
당직때 사고로 반신불수가 되어, 그 오빠를 치료하느라
집안이 파산지경에 이르렀다 한다.
그랬음에도 그 오빠는 하늘나라로 가고말았다.
그녀는 진주여고를 다니다 그만두고,
그때부터 직업전선에서 돈을 벌었어야만 했다.
그러다 지금의 신랑을 만났는데 말 그대로
일자무식으로 용접기능사였는데 도면을 볼줄 몰라
그녀가 신랑가르치는데 힘들었었다 한다.
신랑은 돌씽으로 본부인이 딸과 남편 내팽겨치고
떠났고 남자는 힘들게 살다 그녀를 만난 것이다.
이를 깨물고 노력하여 남양주에 넓다란 땅을 구입하여
반듯하게 집을 짓고 시어머니(당시 90세) 모시고
신랑과 애들 뒷바라지하며 그 힘든 밭일하면서
지금껏 살고있다.
당연히 검게 그슬릴 수 밖에...
그 아들이 사춘기때 엄마에게 털어놓기를
위의 배다른 누나가 친 자식이고 자신은
데려온 자식 아니냐며 울더라는 것이다.
이건 계모래도 친 엄마 이상이다.
그런 계모 못봤다 나는...
두 아이 다 성장하여 부모에게 극진히 효를 하니
이보다 더 큰 행복이 어디있겠는가.
지질이도 여자복이 없는 난
여태 그런 여자를 못봤다.
그녀가 소개시켜준 여자와는 꽝됐다.
여튼 그런 여자가 눈에 들어왔으니
넷상에서건 이래저래 만나는 여성들이
눈에 들어올리 없다.
물론 젊고 이쁘장한 여자와는 여러차례
사귀었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배우자감과는
한참 거리감이 있다.
오늘따라 그 아름다운 여자가 유독 생각이 난다.
첫댓글 비가 내릴듯,,,
하늘이 잔뜩 내려 앉았네요
혼전에 친구들과 잡담을 나누다
설전을 벌인 일이 있는데
혼인할 상대와 연애 상대는 다르다는거 ~였죠
지금 생각해 보면 일견 맞는말 같지만
다시 생각해 보아도 난 동일하다는 생각 입니다
각자의 취향 이겠지요 만,,,
머리 식히는 시간인가,,,
글도 올려주고요ㅎ
벙갯날 수고 하셨어요
그녀가 어느날 제게 대학 졸업반 아들의
성적표를 톡으로 보내왔더군요.
그래도 최고의 명문사학에 다니는 재원으로
전 과목이 A 플러스였습니다.
저는 마치 제일처럼 기뻤고 좋았습니다.
그래서인지 제 주변의 지인들
자식자랑은 팔불출이라 하지만
저한테는 자랑합니다.
그건 제가 그만큼 좋아한다는 방증이지요.
여튼 그 소식을 까페에 아는 여자두명에게
오프라인서 만나 전했더니 빽 소리치며
그깟 S대도 아닌걸 뭔 그리 호들갑떠냐고 합니다.
그녀 부산여자인데 과부로 애들 부산 국제고
나와서 떵떵거리고 사는 모양입니다.
당시 담임에게 촌지로 학부모들 모여
한번에 보통 백단위 이상으로 줬다 하는군요.
그렇게 자란 아이가
우리사회에 자신들의 특권인양
권력층들의 전횡을 일삼지않을까 심히 저어됩니다.
물론 그녀 아들
반듯하고 한 인물합니다.
고시든 뭐든 무조건 붙습니다.
말 그대로 버러지만도못한 것들과는
하늘과 땅차이지요.
어젠 고마웠습니다~^^
@프리아모스 그래서 '근본'을 따지는거죠
기본 소양이 안된 사람들이 주변에 많거든요
글속에서
님의 배려와 인간미가 느껴집니다
오후 시간도 보람있게~~가자 !!
그래서 공부 잘하고 두 뇌 명석한 여자 좋아하시는
성애도사님.
진주 여고.
경남 서부 최고의 명문이었어요.
제가 사귀던 분 고모님이 진주여중출신으로
황산성 변호사와 동기였다 하는군요.
황 변호사님은 훗날 서울에 올라와
경기여고를 나왔지만...
여튼 진주 및 마산출신들 가운데
그래도 난다긴다하는 사람들 경남고 아님
부산고로 진학했었지요.
거기(부산ㆍ마산ㆍ진주)출신들
몇몇분들 저와 직간접으로 알고있어서요~ㅎ
ㅎ ㅎ 그런여자분은
남자 찾으러 안다니죠
열심히 자기개발하며
살지요.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