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사 전에 살던 집에서는 비닐을 1,2층 사이에 이중으로 쳐서 좁은
마당을 가려서 겨우 눈비만 피하게끔 한 공간에서 취목을 즐겼다.
네칸 폭밖에 안되는 곳을 지나 다니는 형태로 작업했었기 때문에
많은 불편함이 있었지만 열심히 했었다.
그러니 주차장을 취목장으로 쓰려는 야심찬 계획을 설계에 반영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비록 그 때문에 택지의 앞마당 면적이 30할가량 줄어들 수밖에 없었지만,.
이 점에 대해서는 엄청 관대한 아량을 베풀어준 아내가 고맙다.
“주차장 들어서서 어차피 마당이 작아졌는데 1층 평수 좀 늘입시다”
갑자기 대꾸할 말이 생각나지 않는다. 주차장 건축비로 들어가는 만큼
본채를 조금 줄여서 설계했는데, 그걸 영 못마땅 했었다.
‘사잇돈으로 목선반도 사야하고 밴드쏘랑 수압대패랑...’
내 손아귀에 있던 것이 어디론가 날아간 기분이 들었다.
주차장도 예산을 초과해서 만들어지는 우여곡절도 있었지만 나만의
공간이 확보되어 꽤나 흡족했다.
거실과 주방을 개방한 구조이다 보니 가구 하나 없는 텅빈 공간이
썰렁해서 싱크대를 최우선으로 만들어야 할 형편이다.
시중의 유명브랜드 싱크대는 너무 비싸다. 조리하는 장소에 천단위의
돈을 들여 꾸며 놓는다는 것이 영 내키지 않았었다.
주부들에게는 비싼 가격에 들여왔다는 품위사치에 감성적으로 멋진
행복을 느낄지는 모르겠지만, 뻥튀기가 너무 심하다.
게다가 대부분 친환경 소재를 쓰지 않으면서 말이다.
E1등급을 친환경자재라고 하는 나라에서 내가 산다.
선진국에서는 E1등급으로는 아예 가구를 제작하지 않는다 한다.
난 새 집의 가구를 모두 만들 생각임을 이미 아내와 합의?를 보았다.
모든 가구를 만들 때마다 처음에 가까운 작업이 될 수 밖에 없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의 터무니없는 자신감을 부추기는 두 스승이 있어
과감하게 작업을 하게 되었다.
많은 취목인들의 스승이신 인(터넷)선생과 유(튜브)선생의 도움을 받아
거대한 프로젝트에 서슴없이 발을 딛게 되었다.
일자형 길이 4미터...
수십년 쓰려고-가 아니고 조금이라도 친환경으로 가려고 자작 15t짜리
합판으로 박스들을 설계했다.
싱크대 오른쪽으로 냉장고가 위치하므로 식재료를 꺼내서 씻고 썰고 섞고 –
그러면 인덕션 위치가 제일 왼쪽으로 가게 되어서 설계할 때 미리 급배수
자리도 마련해 두었다. 거기에 맞추어 싱크대도 박스별로 크기를 정한다.
박스조립은 DIY스타일로 정하고 접한 모든 곳에 본드칠하고 타카로 임시로
직각을 잡아 둔 후 피스와 목심으로 최종 고정시켰다.
일곱개로 나누어진 박스들을 보며 스스로 대견해하며 담배연기를 날렸다.
목조주택이 아무리 조습작용을 한다곤 하지만 그래도 물가까이 있으니 칠을
해야 했는데 수성바니쉬로 하려 했던 마음이 바뀌어 아마인유로 먹였다,
“자작합판은 깨끗하고 깔끔하게 보이는게 좋드만, 누렇게 만들어 부렀네?”
으흐흑... 다용도실 상부장에 오일먹이니 부드럽게 보여서 좋다고 할 때와는
들려오는 뉘앙스가 퍽이나 다르다.
“으응? 그랴? 그럼 밝게 해줄게..”
아우로 화이트오일을 잽싸게 가져온다.
“그 비싼 오일을 그 위에 또 바를라고라?”
뭘 어쩌라고 하는 멀뚱거림에 확실한 결정을 해준다.
“안으로 들어간 것인께 냅둬부쇼. 가운데 지를 선반만 깨까시하고라”
바르기 전에 물어볼걸 그랬나? 어... 그럼 난 뭐하는 늠일까...?
요즘 유행하는 글 - 내가 이럴려고 목공배웠나... 자괴감들고...?
다음 진행사항은 겁나게 말잘듣게 보이는 얼굴로 물어 보았다.
“알판을 끼우는 형태로 액자형으로 만드는데 말이야...“
“연귀로 맞추고 루터로 알판몰딩해서 만들려고 안했쓰요?”
으어헝... 아내가 연귀도 알았었던가? 내가 무심히 흘리면서 했던 목공
전문용어를 이해하고 있었던가? 아... 또 움츠려 진다.
상판은 고심 끝에 엔지니어링스톤으로 했다. 알아보니라 고생 꽤나 했다.
그리 많지도 않은 무늬지만 선택은 너무나 당연하게도 아내의 몫이었다.
싱크대 전면은 모두 레드오크로 도배하기로 했다.
나이들면 남성화된다던데 그래서일까? 섬세한 것 보다는 굵직하고 거친
느낌의 무늬를 가진 오크계열을 맘에 들어 한다.
월넛도 좋아하지만 비싸니깐... 혹 비싸다니까 좋다는...?
집안의 분위기를 레드오크를 베이스로 하고, 액센트가 될 만한 곳에는
월넛이나 샤벨 또는 화이트애쉬로 구상했다.
만든다. 열심히! 이런 좋은 시절이 또 언제 있겠나 싶게...
어디서 본 게 있어서 알판을 쏘잉해서 대칭으로 해보고 싶었다.
그때는 밴드쏘가 없었다. 카페에 도움을 요청하니 부근의 취목인이 오란다.
처음 본 사이지만, 카페에서 낯익은 닉넴이라 편한 마음으로 대화한다.
그런데 쏘잉을 하자마자 판이 휘어졌다. 게다가 생각만큼 무늬가 이쁘게
안나온다. 알판도 그냥 평으로 같게 하자는 생각으로 다시 12인치 이상
짜리 와이드폭으로 결 이쁜걸로 잘 골라주길 바라면서 주문.
생애 최초로 쏘잉해 온 것은 아직도 선반위에 그대로 있다.
“해 왔어요?”
“으응... 근디, 별로네야. 이건 나중에 쓸 일이 있으니깐 보관하고 주문할게“
“그냥 쓰지”
“문양도 안 이쁘고 몰딩할 만큼 여유도 없고 그러네”
“그럼 잘 챙겨두쇼”
언젠간 틀림없이 기억해 내고 ‘그때 그걸로 하믄 쓰겠구만’ 할게다.
신발장 연귀 맞춤할 때도 고생했지만, 싱크대는 더욱 신경써서 해도 꼭
맞추기가 어렵다.
괜히 연장 탓만 한다고 할까봐 더 이상 거론하지 않는 일이지만, 내게는
상당히 불만족스러운 각도절단기가 있다.
목공배우러 다닌다고 하니까, 사돈댁 공장에서 인테리어할 때 쓰고 지금은
놀고 있는 것이라며 인편에 실려 보내 주었다.
하얀 알루미늄에 파란색! 오홋! 막끼다...였으면 오죽 좋을까마는...
메딘차이나 저렴이었다. 그래도 당시에는 그것도 어디냐 하며 막 잘라 썼다.
역시 감사한 일이라 그걸로 열심히 만들어서 사위집을 원목가구로 풍성히
장식해 주었다. 재료비만 그 연장 값의 열배는 족히 들었을 것이다.
그동안 실력이 늘었을 것인데도 연귀 맞춤은 자를 때마다 각이 쪼끔씩
눈꼽 반토막 만치나 틀어진다.
매번 연귀썰매 만들어 둘걸... 그러면서도 손에 익은거라고 그냥 한다.
은근히 우드필러로 땜빵하지 하고 믿는 구석도 없지 않았다.
그럼으로써 접사사진은 되도록 찍지 않는다는 것이 현명하다는 현실과 손잡고
구형 핸폰으로 부드럽게 찍는 기술도 익히게 되었다.
나도 좀 사치병이 있을까...
서랍레일과 싱크경첩은 최고급으로 주문했다.
완전인출이 되는 언더레일은 여러 면에서 유용했다. 더구나 반영구적이라고?
몰랐었던 새로운 형태나 구조에 흥미를 가지는 내겐 그런 것으로 조립하는
것이 일종의 즐거움이기도 하다.
“여기에 스타일리쉬한 손잡이들 사다 붙이면 되야“
“예앵? 저번에 오리 만든거 봉께 괜찮드만 걍 맹글믄 더 낫지 않겠시오?”
도저히 사서는 붙일 수 없는 위압감이 공기반 소리반으로 전해져 왔다.
‘나 좀 편하게 대충 맹글고 살믄 안되겠어? 앞으로 맹글것도 겁나 많은디
일일이 손잡이까지 언제 맹글어?’ 하지만 입밖으론 나올 수 없는 외침이다.
손잡이 만들려고 손잡이값 몇배나 들여서 라우터비트들을 산다.
이런거 혹시 일종의 반항일까?
어떤 형태의 손잡이로 만들까 마구리면만 뚫어지게 본다.
있는 비트들 꺼내 놓고 이리저리 맞추어 본다. 샤프로 그리고 다음엔 4B로
또 그 위에 빨간 싸인펜으로 덧씌워 가면서 그려 본다.
그런데 만들 때 그냥 손잡이 구실만 잘하게 만든다 만들었는데...
옆에서 보니 또 새 같다. 뭔 새인지 모르겠지만...
이왕 싱크대 손잡이 만드는 김에 신발장 손잡이도 만들어 본다.
연귀하고 남은 자투리로 뭔가 떠오르길래 만들어 보는데, 손꾸락이 개고생 했다.
나 역시 블랙프라이데이란 외래지름신에 홀려 이것 저것 한동안 신들렸었다.
그러다보니 목공을 시작하기 전부터 웬만한 공구들은 꽤나 가지고 있었다.
차량 경정비용으로 구입한 공구비만도 엥간한 소형 중고차값 들였다.
이사 오기 전에도 미리 조명, 인덕션 그리고 그로헤수전 등을 사들였다.
그런데도 뭐 하나 새로이 만들려면 꼭 부족한 것이 나타나곤 한다.
이건 또 어떻게 한담... 이리저리 정보를 찾고 메모하다 호주머니를 뒤져보면
영낙없이 지름신은 그 안에 있었다.
- 잊을만하믄 또 올림 -
첫댓글 글은 재밌게 잘 읽엇는데 그림은 하나도 안뜨네요. 그나저나 빛가람님 옆에서 풍월읊는 서당개가 대단하쇼.ㅋㅋ 취미가 일치한듯.
미안요^^ 카페에 그림올린지 하도 오래라.. 잘하다가도 또 나만 보이게 하는 복사기능으로 넣었나봥^^
워매~ 즐거워 하는 맘은 보이지만 왜 내 머리가 아플까라우~? ㅋ
해설은 생생한데 맞춰볼 그림이 없네용~
미안요^^ 카페에 그림올린지 하도 오래라.. 잘하다가도 또 나만 보이게 하는 복사기능으로 넣었나봥^^
부인취향에는 맞는지 심히 걱정
오오. 싱크대 환상이다. 멋져요. 핑크레이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