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림픽 단상(斷想)
그간 연일 37, 8도까지 오르내리는 열대야에 올림픽 열기까지 이어져 한반도는 여느 때보다 후끈 달구어졌다. 굳바이 런던, 리우에서 만나요!’205개 나라에서 16,000여명이 참가한 지구촌 최대의 잔치인 런던 올림픽도 ‘17일간의 대장정을 마치고 화려한 성화의 불꽃을 끄며 마무리를 장식했다. 한국은 초기의 부진을 떨치고 승승장구(乘勝長驅)하며 북경 올림픽과 같은 성적인 금메달 13개로 당초 목표인 10-10(금메달 10개, 종합순위 10위)을 넘어 5위를 달성했다. 연일 이어지는 낭보와 진기한 기록들은 스포츠 강국으로서의 면모를 보여주었으며 이제는 금메달 수와 순위에 크게 연연하지 않으리만큼 올림픽을 바라보는 우리의 시선도 변화하고 있다.
한편,‘신사의 나라’라는 별칭을 가지고 있는 영국에서 주최한 런던올림픽은 그 이름값에 걸맞지 않게 초반부터 수영, 펜싱, 축구 등 여러 종목에서 오심과 판정번복이 난무하였다. 심지어는 승부욕에 집착한 나머지 배드맨튼에서는‘져 주기’까지 하는 황당한 일이 벌어졌다. 심판은 물론 선수에 이르기까지 곳곳에서 스포츠정신을 훼손(毁損)하였다. 올림픽의 의의(意義)는 승리하는 것이 아니라 참가하는데 있으며 결과에 못지않게 과정도 중요하다는 것을 망각(忘却)하고 있는 듯하다. 또한, 인류평화와 화합의 기치(旗幟)를 걸고 벌이는 스포츠 제전(祭典)은 이면에 또 다른 모습을 보여주었다.
이러한 불편한 진실과 짜증스러움을 한방에 날린 쾌거(快擧)가 있었으니 바로 사흘을 걸러 새벽잠을 깨는 우리 팀의 축구경기였다. 예선경기에서 우리 팀은 다소 약세인 가봉과의 예선경기에서 실망스럽게도 무승부를 이뤄 조2위로 8강에 올라왔다. 역사에 가정은 없다지만 가봉을 물리쳤더라면 소위 축구의 종가라는 영국과 강력한 우승 후보인 브라질을 피하며 약체 세네갈과 8강을 치르고 순항(順航)을 기대 했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주최국과의 경기에서 우리는‘강한 팀에 강하다’는 특유한 근성으로 축구의 종갓집인 영국을 매섭게 공략했고 75,000명이 운집(雲集)한 밀레니엄 돔 구장에서 안방을 유린(蹂躪)하는 첫 골을 터트렸다.
헌데, 아니나 다를까 환희(歡喜)의 순간은 그리 오래가지 않았다. 핸드볼 파울로 인해 페널티킥이 선언되고 첫 골을 허용하였다. 잠시 후 수비 반칙을 이유로 석연치 않은 페널티킥 다시 허용, 우리 팀은 페널티킥 두 방으로 주저앉는 듯 했으나 골키퍼 선방(善防)으로 가까스로 위기를 벗어났다. 그리고 연장 30분을 포함, 언저리 시간까지 2시간이 넘는 사투(死鬪)를 벌였으나 승부가 나지 않았다. 정신일도하사불성(精神一到何事不成)에 천우신조(天佑神助)라고나 할까? 연장 끝, 페널티킥으로 5-4 극적인 승리를 거두었다. 상대편의 거친 태클로 부상당한 주전 골키퍼를 대체하여 투입된 19세의 청소년 골키퍼의 선방이 빛났다. 주심의 부당한 페널티킥 판정으로 질 뻔한 경기를 거꾸로 페널티킥을 통해서 승리로 이끌어 낸 것은 아이러니한 일로써 어느 반전드라마도 이와 견줄 수 없을 것이다. 또한 우리 선수들은 홈팀의 일방적인 응원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굳굳하게 버티며 경기를 노련하게 끌고 나갔다.
강력한 우승 후보인 브라질에 3:0으로 석패(惜敗)한 우리 팀은 3,4위전에서숙명의 라이벌인 일본과 만나게 되었다. 도박사(賭博師)들은 일본의 우세를 점쳤다. 초반 한국의 기선에 눌리던 일본이 전열을 가다듬어 공세를 이어갈 즈음, 전반 38분 중앙에서 공을 이어받은 박주영은 질풍노도(疾風怒濤)와도 같이 수비 세 명을 따돌리고 절묘한 슛을 꽂아 전 세계를 깜짝 놀라게 하였다. 후반엔 주장인 구자철이 수비를 제치고 왼발터치, 오른 발 슈팅으로 넘어지는 투혼(鬪魂)을 발휘하면서 일본의 골 망을 갈랐다. 우리 팀은 이 두 방의 절묘한 슈팅으로 그간 최고의 찬사를 받으며 우승을 넘보던 일본을 침몰시키고 올림픽 축구출전 64년 만에 첫 메달을 따는 쾌거를 이룩했다.
며칠 전, 예선경기 후 주장 구자철 인터뷰가 인상적이었다.‘여기까지 와서 한 꼴도 못 넣고 가겠습니까?’그간 골 가뭄이 있었던 자신에 대한 다짐이기도 했다. 홍명보 감독은 4년 여 팀을 이끌면서‘팀보다 큰 선수도 없고, 팀보다 큰 감독도 없다’고 했다. 런던올림픽에서의 한국 축구의 성공은 저변에 이 같은 선수들의 자신감과 열정, 그리고 지도자의 리더십이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고 본다. 이는 어떠한 어려움도 팀과 지도자의 부단한 노력으로 극복해 낼 수 있다는 귀중한 교훈을 남겨 주었다. 한국 스포츠 역사의 새로운 장을 연 축구팀을 비롯한 우리의 자랑스런 선수들과 관계자들에게 뜨거운 갈채를 보낸다.
사족(蛇足)- 한국 올림픽 대표팀의 병역 면제로 군대의 축구실력과 군 전력 증강에 다소 차질이 올지 모르나 국격신장과 외화벌이를 감안하면 감수할 만 하다는 것이 필자의 견해임을 밝혀둔다.
‘12.8.13, 경주에서, 정명섭
첫댓글 외화벌이...ㅎㅎㅎ 멋진 올림픽 후기 잘 읽었습니다~~~~
저두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