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덜과 피맛길
재물을 마구 써버리고 없는 사람을 보고 사람들은 흔히 이렇게 말합니다.
"저 사람, 거덜났다."
원래 거덜은 조선시대에 말(馬)을 관리하던 관청인 사복시(司僕侍)의 하인(下人)으로, 귀인의 행차가 있을 때 그에 앞서가며 길을 틔우는 사람입니다. 즉, 임금이나 높은 사람을 모시고 갈 때 잡인의 통행을 통제하기 위하여 이렇게 외쳐 대던 하인을 말합니다.
"쉬... 물렀거라... 물렀거라! 대감마마 행차 납시오."
그 시대 ‘거덜’의 흔적이 오늘날에도 종로 뒷골목 ‘피맛골’에 남아 있습니다. 지체 높은 지배자의 곁에서 “쉬... 물렀거라!” 하고 권마성(勸馬聲)을 외치는 거덜은 단지 권마성을 외치는 데서 멈추지 않고 길거리에서 온갖 악행을 다 저질렀다고 합니다. 그래서 그 시대 고관들의 주요 통로였던 종로길의 백성들에게 이로 인한 고통이 이만저만이 아니었다고 합니다.
또한 높은 관리들이 지나갈 때마다 고개를 굽히며 예를 갖춰야 했고 행렬이 다 지나갈 때까지 계속 구부리고 있어야 했기 때문인데, 이처럼 일일이 예를 갖추다 보면 도무지 갈 길을 제 시간에 갈 수가 없었습니다. 하지만 예를 갖추지 않았다가는 현장에서 바로 거덜의 발길질에 치도곤을 당하기 십상이었습니다.
그래서 생겨난 것이 피맛길! 이른바 ‘힘없는 백성들, 즉 아랫 것’들은 아예 구불구불하고 지저분한 뒷골목으로 다니는 것이 차라리 마음이 편했던 것입니다. ‘피맛길’은 높은 사람의 말을 피한다(피마 避馬)는 데서 나온 말인데, 사실은 그 말 옆에 따르거나 앞장서서 거들먹거리는 '거덜'을 피하는 것이었습니다.
낮은 신분이었지만 지체 높은 사람들을 직접 모시다 보니 우월감에 사로잡혀 몸을 몹시 흔들며 우쭐거리며 걸었다고 합니다. 이 때문에 사람이 몸을 흔드는 것을 가리켜 거덜거린다, 거들먹거린다 하고, 몹시 몸을 흔드는 말을 ‘거덜마’라고 불렀다고 합니다. 또한 거덜들의 횡포가 심하여 그들에게 착취당했을 때 '거덜났다'는 말을 썼다고 합니다. 오늘날에는 살림이나 그 밖에 어떤 일의 기반이 흔들려서 어려워진 상황을 가리킬 때 ‘거덜났다’고 말합니다.
기록에 남은 '거덜'은 관직상 명칭은 견마배(牽馬陪)로 종7품의 잡직을 말하며, 피맛길은 지금 종로의 먹자골목입니다. 종로1가 청진동부터 종로6가까지로 빈대떡, 해장국 등으로 유명하였는데 2009년 이 일대를 재개발하면서 모두 철거할 예정이었으나 반대가 심하여지자 종로 6가까지 보존하기로 했다고 합니다.
70년대 종로 3가 금강제화 뒷쪽의 골목은 학사주점 여러 곳이 모여 있던 곳입니다. 주머니가 가벼운 대학생들과, 젊은 연인들이 적은 돈으로 푸짐한 안주와 소주, 동동주를 마실 수 있던 곳으로 암울한 시기에도 낭만이 넘쳐났던 곳입니다. 그 당시 단돈 천원이면 동동주 한 주전자에 큼직한 생선 구이 한 접시가 나왔기에 '거덜날 일'은 없었다고 합니다.
예나 지금이나 백성들의 삶은 피곤하였고 눈치를 보면서 낮은 자세로 살아야만 했습니다. 그러나 나라 살림의 온갖 궂은 일을 도맡아 처리하면서 국가의 근간을 이루며 국가 발전에 원동력이 되어 세계 6위의 국가경쟁력을 확보했습니다.
기쁘고 행복한 주일입니다!
첫댓글 선배들과 술집을 옮겨다니며
주머니가 거덜난적있습니다
거덜의 뜻을 배워갑니다~
예 좋은 시간 되세요
말의 어원을 알게됬네요.
좋은 시간 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