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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라야마 도미이치 전 일본 총리가 한국의 정의당 초청으로 방한한 것을 두고 정말 난리다. 그런데, 나는 가슴이 아파오기 시작한다. 과거의 상처가 다시 떠오른다.
과거 무라야마 도미이치 총리 시절, 그가 일본군‘위안부’ 문제에 미친 영향은 긍정보다 부정이 더 컸기 때문이다. 더욱이 ‘혹시 최근의 아베정권을 보면서 그의 과거 입장이 달라졌을 수도?’ 했던 작은 기대마저도 방한 첫날, ‘일본 정부의 사죄와 배상을’ 요구하던 일본군‘위안부’ 피해자의 힘겨운 발언에 묵묵부답으로 대응했던 그의 모습은 역시 과거의 그를 연상시켜주고도 남는다. 그래서 이 들뜬 쏠림 상황이 더 갑갑하게 느껴진다.
무라야마 전 총리가 ‘무라야마 담화’로 식민지 지배와 침략에 사죄를 표명함으로써 일본의 과거역사 인식을 진일보시킨 공을 홀대하는 것은 결코 아니다. 최근 아베정권 하에서 무라야마 담화에 대한 공격과 철회 움직임마저 시도되고 있기에 그에 대한 부정적 입장을 표현하는 것조차도 사실은 편안하지가 않다.
그러나 그의 방한을 두고 쏠리고 있는 우리사회의 여론은 결국 무라야마 담화의 긍정적 평가에도 불구하고, 일본군‘위안부’ 문제를 일본국가의 ‘법적 책임’이 아닌 아시아여성기금이라는 민간위로금으로 매듭지으려 했던 그의 시책에 대해 상기하지 않을 수 없다. 그것은 일본군‘위안부’ 문제 해결에 씻을 수 없는 상처를 안겨줬으며, 여성인권운동사에도 큰 오명으로 남게 되었기 때문이다.
심상정 정의당 원내대표를 비롯한 의원들이 11일 국회 의원회관에서 열린 무라야마 전 일본 총리 환영식에서 무라야마 전 총리 일행과 함께 포즈를 취하고 있다.ⓒ민중의소리
일본 정부의 사죄와 배상을 요구했던 무라야마 도미이치 사회당 당수
필자가 무라야마 도미이치 씨를 만나게 된 것은 1994년 6월 중순경, 도쿄에서 열렸던 일본의 전후책임을 촉구하는 집회에서였다. 당시에 무라야마는 사회당 당수였다.
일본의 자민당 정권과 보수우익 정치가들의 입장과는 다르게, 일본 사회당은 1993년 1월 3일 일본군‘위안부’ 문제 등 전후처리를 위해 국회에 ‘전후보상조사특별위원회’를 설치할 것을 제의하는 등 일본 정부의 법적인 책임을 요구하는 활동을 해오고 있었다. ‘패전 50주년까지 전후보상을 실현하기 위한 제안’을 통해서는 “국회에서도 사죄를 결의해야 할 것”이라고 촉구했었다.
무라야마 당수도 총리로 집권하기 전인, 1994년 6월 30일 일본 도쿄에서 있었던 전후청산을 요구하는 집회장에 참석하여 일본 정부의 공식 사죄와 법적 배상이 이루어져야 한다는 공개발언을 한국의 피해자들과 일본의 시민들이 참석한 자리에서 했던 인물이었다. 이 발언을 들으면서 나는 사회당이 집권하면 일본군‘위안부’ 문제가 법적으로 해결될 수 있겠다는 희망을 가졌었다.
총리가 된 후 무라야마는...
그러나 그로부터 한 달도 지나지 않아 집권한 사회당 무라야마 정권은 이전의 전후처리에 대한 법적 보상의 원칙을 접고, ‘전후50주년 프로젝트’를 세우면서 자민당 정권 때의 정책을 답습, 개인배상의 실시는 어렵다는 방향으로 기울게 되었다. 그리고 법적인 책임이 아닌, 도의적인 책임을 내세워서 ‘일본의 여성을 위한 아시아평화국민기금’을 설립하여 국민으로부터 모금을 하여 피해자들에게 위로금을 지급하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한국과 일본, 대만, 필리핀 등 민간단체와 아시아의 피해자들이 민간모금을 통해 피해자들에게 위로금을 전달하려는 계획을 철회할 것을 요구하며 일본 정부가 국가로서의 가해자 책임을 인정하고, 피해자에게 공식 사죄와 법적 배상을 실시하며, 정부 안에 조사기관을 설치해 실태조사를 한 뒤 전후배상법을 제정할 것 등의 포괄적 해결을 촉구했다. 그러나 무라야마 정부는 이러한 피해자들과 피해국 및 자국의 시민단체들의 요구와는 상관없이 일본 정부의 입장을 그대로 관철시키기 위해 1995년, 전후 50주년이 되던 해에 아시아여성기금을 설립하고, 모금을 통하여 기금지급을 강행한 것이다.
총리에서 물러난 이후에도 그는 아시아여성기금의 이사장을 맡았고, 법적 배상을 요구해 오던 아시아 피해자들의 적극적인 반대에도 불구하고, 위로금 지급을 강행했다. 일본 정부의 국가책임 인정과 공식 사죄, 법적 배상 등을 요구하며 일본군‘위안부’ 문제 해결운동의 중심에 서 있던 정대협에 대해서도 집회석상에서 비난 발언을 하기도 하는 등 지도자로서의 자질까지 의심하게 했던 그였다.
일본의 우익에서는 일본 정부에게 ‘돈’을 요구하는 운동으로 정대협의 운동을 음해하고 공격하는 일도 계속했고, 위로금을 거부하는 피해자들을 향해 중간연락책들을 동원하여 기금 수령 요구 전화, 방문 등을 하며 기금 지급을 강행하며 피해자와 지원단체 간의 분열을 조장했다. 아울러, 기금 지급에 실패하자 아시아여성기금 측 관계자들은 일본은 사죄를 하고 싶었지만 정대협이 한일 간의 화해를 방해한다는 식으로 음해하면서 한일 간의 갈등과 과거사 미청산의 책임을 정대협에게 전가시키려 하는 모습들을 보이기까지 했다. 또한 정대협 운동이 민족주의적인 운동에 치우쳐 기금 수령을 거부하며 피해자들의 인권을 탄압하였다는 등의 비판을 해대기도 했다. 청년 활동가였던 필자도 큰 상처를 받아 자존감이 상실당한 경험이 지금까지 가슴에 얼룩져 있다.
“우리 국민들은 큰 감명을 받았다”?
그런 그의 방문에 대해 정의당은 “무라야마 담화의 역사인식을 확인하는 계기가 되기 바란다”, “최고 지도자로서 국가가 행한 과거의 잘못을 반성하고 사죄하는 일은 매우 어려울 것인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총리의 용기와 덕담에 우리 국민들은 큰 감명을 받았다”고 한다. 앞서도 말했지만 무라야마 담화에 대해 훼손하고 싶은 마음은 추호도 없다. 오히려 일본 우익들의 공격으로부터 무라야마 담화를 보호해야 겠다는 생각에 하고 싶은 말이 있어도 참아왔다.
그러나 아무리 한일 관계 회복이 시급하다 하더라도 과오를 덮은 채 나아갈 수는 없다. 잘못된 것은 정확하게 짚고, 다시는 그런 잘못을 되풀이 하지 않도록 해야 할 책임이 무라야마 총리에게도, 그리고 우리에게도 있는 것이다. 그것이 바로 일본군‘위안부’ 문제에 대한 일본 정부의 국가책임 인정과 공식 사죄, 법적 배상실현이며, 역사교육 반영 등 재발방지 조치를 실현하는 것이다.
1992년 1월 8일 미야자와 기이치 전 일본 총리의 방한을 계기로 시작된 수요집회가 어느덧 22주년이 되는 8일 오후 서울 중학동 일본대사관 앞에서 일본군 위안부 문제해결을 위한 정기 1108차 수요집회가 진행 김복동 할머니가 발언을 하고 있다.ⓒ김철수 기자
그동안의 무관심에 대한 정치권의 반성과 겸허한 노력을 기대한다
그림 전시회에 참석한 일본군‘위안부’ 피해자들이 마침 전시회장을 방문한 무라야마 전 총리와 잠깐 만나 동문서답식의 대화를 주고받았다. 그런데, 이 모습에 주최 측에서 억지로 만남을 주선한 듯한 인상을 갖게 되는 것은 필자의 지나친 생각인가? 그렇지 않고서 그 짧은 시간의 만남이 어찌 이해되겠는가? ‘일본 정부가 사죄하고 배상해야 한다’는 강일출 할머니의 말에 묵묵부답으로 대응했던 상황도 연출된 만남이라는 것이 읽혀지는 대목이다.
주최 측으로서 정말 진지하게 피해자들의 아픔을 고려했다면, 무라야마 전 총리로부터 피해자들을 만나 마음을 전하고 싶다는 요구가 나오도록 했어야 했다. 고령과 병약한 몸으로 인해 1년이 넘도록 수요시위에도 나오지 못하던 이들을 여의도 전시장에서 5분도 채 안 되는 만남을 허락할 만큼 피해자들은 가벼운 존재가 아닌 것이다. 이미 충분히 그분들은 그런 길목에서 일본 정부의 무시와 한국 정부와 정치권의 무관심 속에서 일본군‘위안부’ 문제 해결을 요구하며 활동해 왔다. 아무리 요구해도 묵묵부답의 시간들 속에서 충분히 고통받아온 것이다.
무라야마 전 총리를 덮어놓고 초청하기 이전에 문제 해결을 위한 정치권의 노력을 선행하고 무엇이 올바른 해결책인지를 겸허하게 고민하는 태도를 보여줬더라면 하는 안타까운 심정을 금할 수 없다. 부디 정부든 정당이든, 일본군‘위안부’ 문제를 한일 관계의 개선을 위한 수단이나 일회적 제스처로 취하지 말고, 일본군‘위안부’ 범죄가 가진 불법성과 일본 정부의 국가적 책임 소재에 대한 명확한 인식 위에서 올바른 문제 해결과 진정한 한일 과거사 청산을 위해 나아가주기를 촉구한다. 아울러 지난 20여 년간 한국과 일본, 아시아에서, 국제사회에서 일본군‘위안부’ 문제 해결을 위해 애써온 역사와의 진지한 대화와 겸허한 배움으로 문제 해결 방안을 찾기 위한 노력이 시작되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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같이 보면 좋을 것 같아서 퍼왔어.
예전에 '위안부' 문제에 대해서 알아볼 때, 정대협에서 할머니들 보상금 못받게 한다더라는 소리를 듣고 대체 무슨 말인가 했었는데... 일본 국가 차원이 아니라 개인의 문제로만 풀려고 해서 그걸 반대했던 거(내 이해 맞나?)구나.
난 저 무라야마씨 처음 듣는데, 무슨 대단한 사람인듯 한일 양국의 관계 개선에 큰 도움인듯 기사가 나더라고...
정대협에서는 관련해서 성명서도 내었더랍.
'위안부'문제에 대한 인식이 없는데, 한일양국의 올바른 역사인식에 앞장 선다는 게 너무 모순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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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아 난 무라야마 담화나 이번 방문이나 긍정적인 의미로만 생각했는데 이런 부정적인 측면도 있었구나..새삼 좀 반성하게 되네 나부터도 위안부 문제 해결에 대해 너무 일차적으로만 생각하고 있었던 것 같다..진짜 무라야마 같이 문제를 인식하고 있는 총리가 집권을 해도 우리가 원하는 방향에서 제대로된 법적 보상이 이뤄지지 않았는데 도대체 언제쯤 어떻게 위안부 문제가 종결될 수 있을까 시간은 흘러만 가는데 진전은 없고...진짜 가슴아프다